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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더운 녀성들

세상 정말 많이 좋아졌습니다. 필자가 대학다니던 시절에는 이름만 들어도 불편하던 것이 북한의 노동신문인데, 지금은 캡처가 남한신문에 버젓하게 등장하니까요. 최근에는 김정은 위원장의 행적이 보도된 노동신문 1면 아래에 북한의 과학기술계 소식이 있었습니다. 기사제목은 이 글 제목과 동일한 “미더운 녀성들”이었습니다. 남한 같았으면 “믿음직스러운 여성과학자”들 정도로 제목을 달았을 것인데, 한글이 약간 다르다보니 제목이 순간 눈에서 “미운 녀석들”로 잘못 읽혔습니다. 분명 ‘미더운’ 이라는 형용사는 표준어인데도, 요즈음 남한사회에서는 잘 안쓰이는 말인 탓입니다.

로동신문 2018 11월 16일 금요일자 신문 1면 내용을 보면 북한에서는 지난 6년간 모든 분야를 망라하여 여성박사들이 240명 배출되었다고 합니다. 이들중에는 자매나 모녀도 있었다고 하는군요. 이 대목에서 한국통계를 한 번 찾아보았습니다. 현재 한국에서는 연간 15,000 의 박사학위 수여자 중 3천명 정도가 여성이라고 합니다. 한편 미국에서는 최근 연 5만5천명여명이 박사학위를 수여하는데, 외국인 비율로는 중국인이 가장 많아 약 5천명, 2위가 인도(2,300명), 3위가 한국(1,300명)이라고 합니다. 이들 통계를 비교해보면 북한의 여성 박사학위 취득자 숫자는 6년에 240명이니 해마다 50명 정도이며, 남한 대비 겨우 2%에 불과합니다. 북한의 국내 여성박사학위 소지자는 남한여성 미국 박사보다 적을 것 같습니다. 이쯤되면 북한에서 박사학위 받는 것이 남한보다 훨씬 힘들어보인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일단 돈과 시간 그리고 의지만 있다고 박사과정에 쉽게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닐 확률이 높습니다. 북한의 여성박사들은 실력과 집안 모두가 좋은 금수저 엘리트들일 것 같습니다.

북한의 주요 박사학위 배출기관은 국가과학원, 김일성 종합대학, 김형직 사범대학, 김책 공업 종합대학이라고 합니다. 이외에도 평성리과대학이라는 작은 규모의 순수과학 위주의 대학이 있는데, 마치 우리 옛날 과기대 정도에 해당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김일성 종합대학의 분교라고 하니, 아마도 레벨을 높이려고 분교의 형식을 빌린 것이 아닌가 합니다. 북한의 국가과학원은 6.25 전쟁이 끝나지도 않은 1952년에 설립되었다고 하네요. 통일부의 북한정보포털을 참조해본 결과, 아마도 국가과학원은 우리의 과거 KIST와 KAIST를 합쳐서 운영하던 시절의 역할을 가진 것같다. 즉, 학위를 수여하는 교육기관의 역할도 가지면서 광범위한 과학기술 연구소와 분원들을 가진 조직인 것이죠. 여성과학자들이 졸업 후 어떤 곳에 진출했는지 몇 개의 사례도 보도하고 있습니다. “인민들의 호평받는 《봄향기》화장품을 더 많이 생산하기 위해 노력하고있는 신의주화장품공장 지배인”처럼 연구원이 아니라 생산현장에서 메니저로 일하는 여성들을 소개했습니다. 그리고는 “당의 뜻을 높이 받드는 길에 한몸 다 바칠 불타는 열의에 넘쳐있다. 본사기자 강효심” 이라고 기사가 끝을 맺습니다. 우리가 거쳐온 70~80년대식 국뽕기사여서 익숙했고 많이 반가왔습니다.

위의 기사를 읽고나니 여러가지 복잡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선은 70년간 갈라져 있는 두 사회는 너무 다른 사회일 것이며, 또 우리가 무시하고 비난해온 것과 달리 그곳도 어느정도 돌아가는 사회일 것이라는 점입니다. 마치 우리네 군사정부시절처럼 말입니다. 또 다른 생각은 역대 진보정권이 남북문제의 급격한 진전을 보려다가 결국은 힘이 빠진 정권말년에 엄청난 역풍을 맞았다는 점입니다. 우리의 감성과 달리 남북문제는 통일까지 가기도 전에 수많은 집단과 개인의 이해관계가 얽히는 복잡한 교차로인 것이 사실입니다. 얽힌 실타래를 한올한올 풀기 싫어서 가위를 사용하는 날에는 토막난 실로 옷을 만들어야 할 불가능한 프로젝트로 변질될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남북문제가 진전되는 와중에 직격탄을 맞을 사람들은 탈북자들입니다. 자유를 찾아 어렵게 남한까지 왔는데, 여태껏 종편이나 보수정권의 나팔수 역할을 충실히 해주느라 북한정권에는 미운 털 밖혔을 사람들을 이제 남한정권도 돌보지 않는 사태가 올 것입니다. 시간이 좀 지난 이야기이지만, 1983년 아웅산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인 강민철은 버마 감옥에서 오랜세월 수감 중 한국행을 원했지만, 당시 김대중 정권이 남북문제의 부담스러운 사건이 부각되는 것이 싫어서 불허했다고 합니다. 북한은 그 사건 자체를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으니, 북한행도 불가했습니다. 그는 25년간 복역중 53세의 나이로 2008년 5월에 사망했다고 합니다. 그가 정말 한국행을 원했는지 알 길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큰 사건이었으니, 교도소에 가서 그를 취재하고 싶은 기자들이 한 두명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가 수감된 교도소 건물도 방송에서 한 번 본 적이 없으니 그 배경은 얼추 짐작할 수 있습니다. 과학기술자라면서 오지랖 넓게도 새해 벽두부터 탈북자를 고민하는 것보니 당신도 정치에 기웃거리는 인간인가 라고 묻고싶은 사람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새해든 연말이든, 인문학이든 자연과학이든 인권이 가장 먼저 살펴보아야 할 변수이니까요.

갑자기 북한 여성과학자들 이야기하다가 탈북자로 넘어오게 되어 이야기가 복잡해졌죠? 통일 프로젝트를 너무 빠른 속도로 견인하려면 위험하다는 것 우리가 다 공감하는 이야기이지만, 정치하는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매혹적인 주제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새해에는 과학기술계가 정치의 통일 프로젝트를 좀 도와주면 어떨까요? 우선 좀 안전한 주제를 잡아 남북한 학회를 한 번 해보면 좋을 것같습니다. 서울-평양을 오가며 한의학회나 생물학회의 비무장 지대 생태계 보고 같은 것 어떨까요? 방송에도 공개되고 남북을 오가는 과학자들이 시민들도 만나고 대학에서 특강도 하는 열린 학회 말입니다. 아마 취재차 위의 로동신문 과학부 기자 강효심씨도 오겠죠? 적극 추천합니다. 4차 산업 혁명은 잠시 미루고, ‘통일 산업 혁명’을 시작하는 2019년이 되길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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