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다리의 물리학 : 오르고나서 걷어차기
- 1169
- 0
아직까지 식을 줄 모르는 청문회 논쟁은 한국인의 역린이라는 입시 진실게임이 터지면서 급격히 발화했습니다. 바로 이전에는 일부 특목고의 일반고 전환으로 홍역을 치룬바 있습니다. 그래도 기특한 것은 과학고까지 일반고로 넘기자는 이야기는 없더군요. 어차피 권력지향형 아이들이 가는 곳이 아니니까, 의대만 못가게 막아서 국가와 민족을 위해 외화벌이에 충실하라고 그런 것인가요? 어찌되었든 차등 교육이냐 아니면 평등교육이냐 하는 문제는 이상만큼 간단하지 않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열심히 해와서 오늘날의 성공을 이루었는데 아직은 더 열심히 가야한다는 논리와 이제는 좀 나누고 평등을 실현해야 할 시기라는 두 주장은 좌우 진영논리만큼이나 거리를 좁히기 어렵습니다. 한국은 인구과잉에 자원은 부족한데, 반대로 돈만 있으면 각종 서비스가 엄청 좋은 곳이니 경쟁해야 먹고살고 또한 그 경쟁을 통과한 승자에게 부여되는 특권은 아주 큽니다. 그러니 우리들 대부분이 교육문제와 계층문제에 이중적인 잣대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핀란드 교육을 보고 와서 그쪽 평등교육을 따르자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만, 정말 몰라서 저러나 하는 딱한 생각이 듭니다. 인구가 핀란드처럼 6백만도 안되는 나라라면 뭔들 못하겠습니까? 그런데 말입니다. 계층사회의 원조격인 영국에서, 이튼스쿨로 대표되는 사립학교를 폐지하자는 주장이 최근 가디언지에 나왔습니다. 브렉시트를 저질러놓은 카메론 전 총리와 브렉시트를 외통수로 만들어가는 존슨 총리가 이튼 출신인데, 이들이 사회를 망치고 있다는 분노가 기폭제였지 않나 합니다. 눈여겨 봐야할 부분은 유명사립대학을 해체하자는 주장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대학부터는 특정인에게 혜택을 주는 작용만이 아니라 지적연구로 세계속에서 경쟁해야할 책무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옥스포드와 캠브리지 대학들은 공립(Public)인데, 국가의 지원금도 받고 사립재단에서 운영비도 받으니 우리나라의 사립과 비슷합니다. 재미있게도 학교에 대해서는 영국에서 Private라는 단어는 잘 안씁니다. 괴상하게도 사립을 Public이라고 하는데, 특정인들에게만 개방되는 대학이 아니니까 Private보다는 오히려 Public이라는 말이 타당해보입니다. 국립은 State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다시 본론으로 가보면, 통계가 흥미롭습니다. 영국사립중고등학교 출신들은 전체 7%밖에 안되는데, 판사65% 귀족 57% 배우 44% 기자 43% 가수 30%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판사와 귀족 그리고 기자까지는 그렇다치고, 왜 배우와 가수까지 통계에 넣었을까요? 아마도 주관적인 평가에 좌지우지되는 직업이라는 점, 네트웍이 중요하고 영어구사력과 메너등이 관건인 직업이니까 배우-가수도 귀족연습이 일상생활인 사립학교 출신들에게 유리할 것같습니다. 사립학교 평균 학비는 연간 1만6천파운드인데, 영국 연간 평균임금은 연간 2만8천400 파운드라고 하는군요. 한명의 중산층 부모가 번 돈에서 세금내고나면 전액을 털어야 가능합니다. 그런데 전액 장학금을 받는 숫자는 겨우 1.2% 라고 하니, ‘돈없으면 오지마세요’라는 이야기입니다.
미국 아이비 리그도 사정이 비슷합니다. 학비가 엄청난데 해마다 인상률은 물가상승률을 훨씬 넘고 있습니다. 가난한 집에서 학부를 아이비 리그로 마치고 대학원으로 로스쿨 가면 몇십만 달러에 이르는 빚을 갚느라 연봉높은 로펌 변호사로 일해야 할 때, 부자집 출신들은 법원서기로 들어가서 더 권력에 가까운 직업을 가질 수 있습니다. 가난한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 수혜자 비율이 40% 이상이라고 발표하는 대학들이 있지만, 전액장학생으로 환산해보면 수혜자 숫자는 10% 이하로 뚝 떨어집니다. 조금씩 여러 명에게 나눠주고 수혜학생들 숫자로만 계산하여 장학금 비율을 높이는 꼼수를 쓰는 것입니다. (하버드 로스쿨 학비는 올해 $65,875로 발표되었고 숙식비를 합하면 일년에 $99,350이 든다고 안내하고 있습니다. 십만불 아래로 맞추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입니다.) 그나마 미국은 캘리포니아를 위시한 몇 개의 주에서 학비가 사립의 절반도 안되는 주립대학을 훌륭하게 구축하여 선택의 폭을 넓혀두었습니다. 하지만 여기도 외국인은 학비가 사립과 별반 차이가 없고 타주 출신은 최소한 일년은 외국인과 동일한 학비를 내야 합니다.
프랑스는 엘리트 교육이 영미권에 비해 결코 뒤떨어지지 않을만큼 심하지만, 다행하게도 대부분의 엘리트 고등교육기관들에는 학비가 거의 없고, 사립 중고등학교의 존재감이 미미합니다. 그래도 여전히 부자집 아이들이 그랑제꼴에 많이 진학한다는군요.
어느 사회나 사다리를 놓고 기득권층이 먼저 올라가고나면 사다리를 차버리는 시스템을 가동하려고 합니다. 사다리에 먼저 올라간 집단들은 자기들끼리 선후배로 끈끈하게 엮입니다. 그런데 한국만의 특징이 있습니다. 미국은 나라가 크니 중위권 대학만 졸업해도 성적이 괜찮으면 취직이 별 문제 없고, 프랑스는 사회안전망이 촘촘하여 불만이 덜합니다. 그리고 영국은 아마도 영어라는 무기로 해외진출이 쉬울 것입니다. 실제로 가까운 중동에 많이 진출하는 등 다른 선택의 여지가 있다는 것이죠. 한국은 이민을 많이 나가던 과거의 트랜드가 바뀌어 지금은 이민 나가는 사람도 줄고 유학도 단기로 바뀌고 있습니다. 한국이 그만큼 매력과 장점이 많은 나라가 된 것입니다. 물론 경제력이 따라야 한다는 전제를 붙여야 겠죠. 바깥으로 나가던 발걸음이 줄고, 나갔던 사람들도 들어오는 판국이니 취업경쟁이 가열되고 입시경쟁까지 연결되는 현상을 보입니다.
사다리를 통해 다 올라가서 윗층에만 모이면 하중이 가분수가 되어 건물이 위험해질 터이고, 몇 명만 올라가고 걷어차버리면 아래층은 지옥이라고 난리입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 뾰족한 방법이 없습니다. 그냥 사다리를 계속 놔두는 수밖에요. 하지만 본인의 힘으로만 오르게 단속해야죠. 물론 이미 오르기 전에 잘 먹고 와서 남보다 힘이 센 것까지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다만 사다리 오를 때만이라도 부모가 밀어주는 일은 못하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나서 좋은 학교 졸업장은 좋은 인생을 위한 보증수표가 아니라, 출발선일 뿐이라는 것을 사회가 직간접으로 보여줘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