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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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쓸 때, 자기 주장으로 지면을 채우기보다는 유용한 정보나 서로 생각해볼 수 있는 주제를 던져보자는 다짐을 합니다만, 자기 주장을 담아 글을 쓰기가 쉽기 때문에 그쪽으로 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번호에서는 정신을 번쩍 차리고 재미있는 이야기와 함께 정보를 하나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이미 아시는 분들에게는 싱거운 이야기가 될까봐 염려스럽군요.
요즘 유튜브가 너무 대세인 것 같습니다. 심지어 정보찾기를 할 경우도 구글창이 아니라 유튜브 창에 키워드를 입력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처음 유투브가 나왔을 때 과연 이런 컨셉이 먹힐까 하는 의문이 있었습니다. 튜브란 말이 진공관으로 만들어진 브라운관식 텔레비전이니, 어린 아이들이 부르던 노래, “텔레비전에 내가 나오면 정말 좋겠네~”하는 노래를 실제로 구현한 아이디어가 유튜브인 것이죠. 필자도 여러가지를 배우면서 유튜브 신세를 엄청 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뭔가를 배울 때처럼 목표가 확실한 상태로 유튜브를 하면 괜찮은데, 좀 쉬려고 유튜브를 찾으면 불편하더군요. 비슷한 종류들을 모아주는 서비스가 오히려 컨텐츠를 다양하게 접할 기회를 제한하는 것 같습니다. 특히 정치적 견해와 관련된 영상을 찾아보면 비슷한 주장들을 잔뜩 몰아줍니다. 그러니 유튜브를 통해서 다른 견해도 가능하다는 것을 배우기보다는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확신만 늘어납니다. 그래서 더욱더 보고싶은 것만 보고, 듣고싶은 것만 듣는 현상이 심화될 것 같습니다. 예리한 칼은 요리재료만 자르는 것이 아니라, 요리사 손도 다치게 할 수 있다는 것은 역시 언제나 진리입니다.
그러다가 최근 출퇴근길에 우연히 핸드폰 앱에서 VOA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VOA는 Voice of America인데, 외국인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면서 미국을 소개하는 일종의 관제언론으로서 냉전시대에는 공산권에까지 미국체제를 간접적으로 선전하던 매체였습니다. VOA는 옛날에 라디오 단파방송으로 방송되었으며 한국에서는 영어공부용으로 지금 기성세대들이 애용하던 프로그램입니다.그런데 요즘 핸드폰 버전으로 만나게 되니 반갑더군요. 다양한 주제를 한 5분 전후의 프로그램으로 소개하는데, 영어문장도 나오고 진행자가 읽어가는 동안 하이라이트 처리를 해주기 때문에 영어를 말과 글로 동시에 접할 수 있습니다. 과학관련 이야기도 많이 나오고 영문법, 미국문화, 국제뉴스등을 다양하게 다룹니다. 며칠 전에 본 과학관련 이야기로 기억에 남는 것은, NASA에서 달 지표 아래에 얼음으로 존재하는 물이 많다고 확신하여 우주선을 보내서 달표면에 충돌시켜 얼음상태의 물을 채집하려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정말 달에 물이 많을지 궁금합니다. 영문법으로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영어에서 불평할 때 진행형을 많이 사용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예를 들면 When I met him yesterday, he kept complaining about his roommate. 같은 식입니다.
그런데 오늘 진짜로 소개하려는 이야기는 약간 괴기스럽습니다. 미국 서남부 산타페에 살고 있는 연세가 많은 할아버지 Fenn 이라는 분은 과거 월남전에 파일럿으로 참전하여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미국으로 돌아와 아주 부자가 되었는데, 그만 암이 발견되어 시한부 선고를 받습니다. 그래서 자기 인생을 정리하면서, 자기가 누리게 된 많은 것들을 사람들과 나누겠다며 보물상자를 만들어서 그 안에 많은 폐물을 넣고는 2010년에 그 상자를 어딘가에 숨깁니다. 그리고 책을 출판하여 자기 인생 이야기와 더불어 보물상자가 어디에 숨겨졌는지 힌트를 담은 시와 함께 출판합니다. “금은보화가 들어찬 상자가 산타페부터 저 북쪽 몬태나주 경계까지 2천 킬로미터에 이르는 어느 지역에 숨겼는데, 찾는 사람이 임자다”라고 책에서 광고를 한 것입니다. 힌트는 위험한 지역은 아니라는 것이며, 또한 사유지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태껏 350,000이나 되는 많은 사람들이 이 보물상자를 찾으러 나섰고 6명은 산악지대에서 사망하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산타페는 이 보물상자 덕분에 호텔투숙객이 6% 늘었다고 합니다. 여러 이야기 중에, 부동산중개업에 종사한다는 한 싱글맘 이야기가 기억에 남습니다. 자기는 어린 아들 하나만 키우는 싱글맘인데, 보물상자를 찾아 5년 이상 그 지역을 샅샅이 찾아다녔다는군요. 그러면서 그쪽 자연과 너무 친해졌고, 지금은 미국 서남부라면 손금을 보듯이 훤하다며 설사 못찾아도 이 작업 덕분에 자기 인생이 너무 풍요로워지고 자연을 정말 많이 알게되었다고 합니다.
상자를 숨긴 할아버지는 극적으로 암이 치료되어 아직 건강하게 생존해계십니다. 보물상자가 언제쯤 찾길 것 같으냐고 묻는 인터뷰 기자에게, “글쎄… 오늘 저녁에 누군가가 찾았다고 법석을 떨지, 아니면 내가 죽고도 백년 아니면 오백년 지나야 찾길 지 누가 알겠어요?”라고 너스레를 떨었다고 합니다. 보물상자를 파묻기 전에 그 상자를 봤다는 사람들도 있다지만, 정말 이 할아버지가 보물상자를 숨긴 것은 확실한걸까요? 아니면 그냥 심한 관심종자 중 한 분인 것일까요? 이도저도 아니면, 관광객도 모으고 지역경제도 살리기 위해 시당국과 합작한 이벤트인 것일까요? 그보다 더 애매한 것은, 설사 누군가가 찾았어도 세금문제 때문에 찾은 사실을 발설하지 않을 확률이 높다는군요. 그래서 진실과 거짓을 구별하기 어려운 여러가지 요소가 혼재된 해프닝입니다. 그나저나 누가 출장이나 학회로 산타페에 가게되면 주말을 투자하여 한번 도전해보시죠. 물론 상자를 찾았어도 “심봤다!”고 외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좀 편집해서 소개했는데, www.voanews.com 에서 Fenn으로 찾으면 원문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