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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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망의 2020년에는 쥐의 부지런함을 닮아 남다른 노력으로 많은 것들을 이루시는 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지난 해에는 워낙 ‘인공지능’이라는 단어가 많이 등장했던지라 아마 올해부터는 ‘로봇 올림픽’ 같은 이야기도 나오지 않을까 하여 잠깐 먼저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래는 필자가 빈곤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만들어 본 가까운 미래의 가상 뉴스입니다. 첨삭을 원하시는 아이디어는 댓글로 알려주시면 좀 더 완성도 있는 ‘로봇 올림픽 헌장’이 나올 수 있겠습니다. 자 그럼 미래뉴스, 큐!
(진행자:) 2025년 4월 18일 쌈바방송 뉴스를 전해드리겠습니다. 오늘은 아인슈타인 타계 70주년이 되는 날인데요, 오늘 뉴스시간에는 최종합의를 앞두고 마지막 조율중인 세계 로봇 올림픽 위원회의 결정상황에 대한 특집 브리핑으로 시작하겠습니다. 도움을 받기 위해 로봇 전문가이신 황XX박사님을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2028년 인간 하계올림픽은 7월말 미국LA에서 개최예정입니다만, ‘장소는 다른 곳, 시기는 동일연도’라는 합의원칙에 따라 2028년 10월에 첫회 로봇올림픽을 개최하기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IROC 위원회측은 첫회 로봇 올림픽의 장소는 일단 그리스 아테네로 결정하고 그리스 당국과 협의중에 있다고 합니다. 최종적으로 경합을 벌였던 캘리포니아 실리콘 벨리 관계자들은 아쉬움을 표하면서, 제1회 아테네 로봇 올림픽의 성공을 위해 기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자, 이제 종목과 룰이 가장 큰 쟁점사안일 터인데요, 각국전문가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격론을 거쳐 거의 큰 그림이 완성중이라는군요. 점진적으로 종목과 규칙에 관한 수정을 계속해 나갈 방침이라고 밝히고, 이번에 논의된 규칙은 일단 1회 로봇 올림픽에만 적용될 것이라고 합니다.
모든 종목은 인간올림픽 경기종목 내에서 실시하며, 룰과 경기환경도 가능한대로 최대한 모방할 것이라고 합니다. 모든 종목은 로봇간의 경기로만 실시하지만, 몇가지 종목에서는 인간과 겨루는 시범종목도 둔다고 합니다. 로봇간에 겨루는 종목들보다 인간과 겨루는 시범종목에 사람들의 관심이 쏠려있는지라 오늘은 먼저 시범종목에 대해서 전문가와 함께 논의해보려고 합니다. 1회 대회에서 선정된 인간과 겨루는 종목은 탁구로 선정되었다고 합니다. 동일한 하나의 라켓을 사용하여 현재의 탁구경기와 동일한 룰로 경기하며, 로봇은 경기중에 충전을 하거나 무선으로 지시를 받지 못한다고 합니다. 사람은 물도 마시고 관중이나 코치들의 응원도 받는데, 로봇에게 너무 불공정하다는 시비가 있지 않을런지요?
(황박사:)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로봇 올림픽은 로봇에 장착된 인공지능 수준과 움직임-반응 능력을 동시에 판단하는 경기인만큼 스스로 자신의 게임을 풀어갈 수 있느냐 하는 능력이 중요합니다.
(진행자:) 아니, 그러면 축구같은 단체전에서는 어차피 감독으로부터 지시도 받고 선수들 간에 의사소통도 필요한데, 무선소통이 불가하면 어떻게 하나요?
(황박사:) 그래서 첫회 올림픽에서는 일단 단체경기는 제외되었습니다. 앞으로 이부분에 대한 논의가 있을 것입니다만, 현재의 취지는 장외의 스테프들이 로봇을 컨트롤하는 것은 마치 인간 올림픽에서의 도핑 같은 부적절 행위로 취급하겠다는 것입니다.
(진행자:) 잘 알겠습니다. 그러면 경기에 참가하는 로봇의 형태나 체중, 신장 등에 관한 제한규정은 있는지요?
(황박사:) 일단 최대한 자유롭게 하자는 것이 취지입니다. 하지만 자유롭게 놔두면 특정종목에만 전문화된 로봇이 만들어질 확률이 있으니, 경기종목을 두 개씩 짝을 지어 점수를 집계한다고 합니다.
(진행자:) 무슨 말씀이신지요?
(황박사:)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100 미터 달리기만 한다면, 다리 대신 바퀴를 단 로봇이 등장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50미터 허들과 100미터 달리기를 같이 묶어서 한 종목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달리다가 부딪혀서 허들을 쓰러뜨려도 되지만, 쓰러진 허들이 다른 레인으로 넘어가면 실격이고, 허들 하나 하나를 넘은 다음에는 그때마다 반드시 지면에 터치가 되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습니다. 모든 허들을 한 번에 날아서 넘으면 안된다는 것이죠. 그러면 날개가 달린 로봇이나 바퀴로 뛰는 로봇은 당연히 아웃될 것입니다.
(진행자:) 그렇게까지 인간과 유사하게 경기를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요? 로봇은 그냥 로봇이지 않습니까? 특화된 분야에 더 좋은 성능을 가지면 되는 것이지, 왜 인간과 비슷해야 하는지요?
(황박사:) 좋은 질문을 해주셨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로봇은 인간과 더불어 살며 인간의 생활을 도와주는 보조자 개념입니다. 어떤 특정 임무에 특화된 로봇은 그냥 ‘전용 기계’라고 불려야 하니까요. 현재 우리가 정의하는 로봇은 전용기계가 아니라, 형체가 인간에 가까우면서 여러가지 임무가 수행가능한 다재다능한 기계를 말합니다.
(진행자:) 잘 알겠습니다. 자, 그럼 인간과 로봇이 대결을 벌이게 될 탁구 이야기로 다시 넘어가 보겠습니다. 시청자 여러분! 인간과 로봇간의 탁구경기중에 어떤 일이 일어날 지 상상이 가시는지요? 로봇성능은 각국이 철처하게 비밀에 붙여 현재로서는 어느 정도 수준일 지 가늠할 수 없습니다. 과연 한국, 일본, 미국의 탁구로봇이 중국의 인간탁구 고수들의 만리장성을 넘을 수 있을 지 귀추가 주목되는군요.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아직 로봇의 탁구수준이 초등학교 선수와 겨루어야 할 정도라고 합니다. 하지만 특화된 벤처회사들이 숨겨둔 강호의 고수가 있을 지, 아니면 룰을 지키면서도 전혀 개념이 다른 탁구를 구사하여 인간을 혼란에 빠뜨릴 로봇이 나올 지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로봇 전문가들에 따르면 1회 올림픽에서는 로봇이 인간을 이기기 어렵지만, 아마 제2회가 예정된 2032년 올림픽에서는 충분히 역전가능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라고 합니다. 황박사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황박사:) 저는 현재 탁구경기 룰대로라면 로봇이 인간을 이기는 날은 2050년 이후에로나 늦추어질 것이라고 봅니다. 겨우 2그램 밖에 안되는 공을 라켓으로 치면 회전에 따라 방향도 바뀌고, 무엇보다도 랠리가 너무 빠르게 이어지는데 그런 동작을 로봇이 과연 쫓아갈 수 있을까 의문이 듭니다. 제 생각에는 종목이 좀 더 정적인 골프라면 2028년 올림픽에서 충분히 로봇이 인간을 이길 수 있을 것이고, 테니스의 경우 2032년에 한 번 해볼만 할 터이지만, 탁구는 워낙 순발력이 필요하기에 아무래도 2032년까지는 무리라는 생각입니다.
(진행자:) 아니, 일전에도 알파고와 이세돌 9단 간의 바둑대회에서 당연히 인간이 승리할 것으로 예측했지만 인공지능이 쉽게 이겼고, 지금은 프로기사들이 인공지능과 접바둑을 두면서도 쩔쩔매는 형국인데, 오히려 전문가이시기에 기술의 발전속도를 너무 조심스럽게 예측하시는 것은 아닌지요?
(황박사:) 하하, 그런 면이 있겠죠. 가까이에서는 약점이 더 잘 보이니까요. 하지만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상황을 분석해봅시다. 빠른 반응에 의한 움직임은 계산만 하는 연산이 아니라 엄청난 속도와 정확도를 요구하는 운동 컨트롤이 필요하기에 전혀 다른 차원입니다. 더군다나 상대의 동작에 거의 실시간으로 반응하고 역습까지 해야 하니까 상당한 어려움이 있습니다. 탁구같이 서로의 빠른 반응으로 행해지는 운동에서의 움직임은 치타가 초원을 질주하는 움직임과는 전혀 다른, 아주 높은 차원의 운동입니다.
(진행자:) 그렇군요. 설명을 듣고보니 이해는 됩니다만, 그래도 저는 2032년에는 인간 최고수와 로봇 최고수간의 탁구수준이 거의 비슷한 정도로까지 가지 않을까 생각됩니다만… 끝으로 종목선정에 대해서 황박사님께서 한 번 정리해주시죠.
(황박사:) 예 우선 제1회 대회에서는 아까 말씀드린대로 단체전 경기는 없습니다. 축구, 배구, 농구, 탁구 복식 등은 없는 것이구요. 그다음, 물에서 하는 경기도 일단 제외되었습니다. 수영, 다이빙, 수구, 카누 등은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도구나 동물을 이용하는 경기들, 즉, 싸이클, 펜싱, 양궁, 승마, 테니스, 베드민턴도 이번에는 빠지구요, 주로 개인 육상경기 위주로 구성됩니다. 잠깐 말씀드린대로 100미터 달리기-50미터 허들이 한 종목, 높이뛰기와 장대 높이뛰기를 묶어서 한 종목, 4명의 로봇이 팀으로 참가해야 하는 400미터 계주가 독립되어 한종목 등등 겨우 10 종목 정도입니다만, 회를 거듭할수록 종목이 늘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미래 어느 날에는 분명히, 인간 세계챔피온과 로봇 절대고수가 탁구대 앞에서 펼쳐지는 양보없는 명승부가 있을 것입니다.
(진행자:) 예, 이것으로 오늘 특집방송을 마치겠습니다. 우리나라 로봇 제작진들도 3 년동안 열심히 준비해서 2028년 아테네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길 바랍니다! 시청자 여러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