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택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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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직격탄을 맞은 요즘 프랑스에서는 외출이 자유롭지 못하다. 하루에 한 번 집 주위에 한시간 정도만 나가서 운동을 하든지 식료품 구매를 하는 정도로만 외출이 허용된다. 외출시에는 날자와 시간 그리고 자필서명한 외출증명서를 지참해야 하기 때문에 상당히 번거롭다. 처음에 재택근무 정도만 할 때는 출퇴근에 소요되는 시간이 없으니 옆방으로 출근해서 다시 거실로 퇴근하는 정도로 리듬을 맞추며 은근히 즐겼지만, 외출까지 자유롭지 않게 된 다음부터는 기저 스트레스가 엄청 차오른다. 경제에 끼칠 심각한 타격을 감수하고도 이런 결정을 내린 프랑스 정부의 입장도 이해가 되니까 불평을 할 상대도 불분명하다. 이렇게 하루종일 갇혀있느라 지루해진 도시의 사람들은 저녁 8시가 되면 전부 발코니로 나와 박수를 치고 호각을 불고 고함도 지른다. 의료진을 향한 응원이기도 하지만, 우선은 아직 내가 살아 있다는 절규이고, 이 답답한 세상 언제까지 갈 것인지에 대한 막연한 하소연이기도 할 것이다. 텅 빈 거리를 보며 문득 든 생각은, 아무 교감없이 지나치던 행인들도 우리 삶을 증명해주었던 소중한 이웃, 호모 싸피언스라는 것이다. 그들이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 지 알 수 없었지만, 우리는 같은 시기에 같은 길을 걸었던 내 삶의 역사속 이웃이었다. 미운 놈이든 고운 사람이든, 정말 아무도 없는 텅 빈 지구를 생각해보라. 그 위에서 천 년을 산다한 들 무슨 의미가 있으랴? 그러니 상대가 정말 꼭 필요한 사람이든 밥만 축내는 놈팽이든, 모두가 다 귀한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외출제한을 당하며 생각해보니, 내 젊은 시절 한국에서는 야당 정치인들의 가택연금이 다반사였다. 그래서 DJ가 살던 동교동과 YS가 살던 상도동이 여의도나 청와대보다 더 자주 신문지상에 오르내렸었다. 그리고 아마도 역설적으로 그분들이 밖에서 사람들을 자유롭게 만나지 못하고 연금되어 있는 기간이 정치를 위한 철학이 익어가고 투쟁 에너지가 샘솟던 시간이었을 것이다. 넬슨 만델라는 27년간이나 버텨냈던 그 긴 감옥생활을 통해 한차원 높은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을 것이다. 너무 식상한 이야기지만, 우리가 처한 환경이 아니라 우리 마음가짐이 지옥도 천당도 만드는 것이다. 외출제한 시절을 맞딱드려 나도 그들의 발뒤꿈치라도 잡아보려는 노력을 해보는 중이다. 유튜브도 지겨워서 요즘은 TV도 가끔 보게 된다. TV에는 터키에 설치된 시리아 난민촌 할머니의 인터뷰가 나온다. 길게 줄을 늘어선 꼬마들의 손을 뽀독뽀독 씼기시며, 마스크는 고사하고 비누도 없이 다닥다닥 붙어사는 난민촌에 코로나가 들이닥칠까봐 매일 기도하신다고 한다. 코로나를 자가발전했던 신천지에서는 매주 헌금이 몇 억씩 걷혔을 터인데 또 다른 지구촌 구석에서는 비누도 없이 무방비 상태로 전염병을 염려하는 상황을 보며, 나는 144,000명에 들려고 뛰었다는 그들이 생각났다. 구원도 영생도 경쟁이라고 믿고있다고 하니, 이렇게 많이 발전한 우리 사회지만 얼마나 허망한 철학을 가진 사람이 많은 지를 말해주는 직접적 증거다. 나는 이제부터 내 자식들부터 잘되길 바라는 바램도 접을 생각이다. 사람들 속에서 자기 역할에 충실하고,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길 기도하련다. (다시 평온이 찾아오고나면, 애를 써보았다는 흔적만 남은 힘없는 철학으로 변질될 확률이 높다.)
개인은 이런 시기에 유약한 감정의 동요를 보일 수밖에 없지만, 국가는 냉정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도 자주 닥칠 인재와 자연재해를 대비하는 일에 거의 최고의 인재와 최다의 예산을 준비해야 할 것같다. 기술이 발달할수록 인재가 자연재해와 복잡하게 결합될 확률이 높아진다. 제조업이나 에너지를 포기할 수 없기 때문에 미세먼지를 줄이기는 어려울 것이고, 생명공학을 발전시키다가 우연한 사고로 황당한 질병이 창궐할 수 있을 것이고, 4G-5G AI 자율주행을 포기할 수 없기에 동시다발적인 사고확률이 높아진다. 그래서 아마 미세먼지가 줄지 않는다면 10년쯤 후에는 사람들이 우주복 같은 패션을 입고 거리를 다닐 지 모른다. 기술을 어떻게 발전시킬지에 대한 상상력보다 리스크를 미리 예측하고 준비하는 상상력이 훨씬 더 어렵다. 왜냐하면 발전시키는 쪽은 자기가 하는 분야 하나에서만 뛰어나면 되지만, 리스크를 다루는 사람들은 그 모든 것이 하나씩뿐 아니라 어떻게 결합될 수 있는 지도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열 포졸이 한 도둑 못잡는다’ 라는 속담이 말해준다. 맥아더 장군이 말한, ‘작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받을 수 있지만, 경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받지 못한다’는 말도 비슷하다. 능동적인 작전보다, 수동적이어서 항상 상대의 갑작스럽고 비밀스러운 작전에 대비해야 하는 경계가 훨씬 어렵다. 그리고 이제는 전쟁의 개념에 재해를 포함시켜야 할 시기인 것같다. 테러는 이미 전쟁에 포함되었지만, 재해는 아직까지 민간의 영역이다. 하지만 피해나 필요인력을 생각해보면 전쟁을 좀 더 넓은 개념으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아마도 세월호 사고시에도 해군이 일찍부터 곧바로 개입했더라면 좀 더 좋은 결과를 얻었을 것이다. 정치군인들에 의한 쿠테타 상흔으로 거부감도 있겠지만, 코로나 사태가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군대를 생각해봐야 할 계기임에는 틀림없다. 끝으로, 외딴 곳에서 외로움이 더욱 깊을 해외의 코세니아들 모든 분들께 안부를 전합니다. “멀리 있어도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앞으로의 전쟁은 경제전쟁이 될 듯 합니다. 더욱 교묘한 전쟁이 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