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과 코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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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머니로부터 전해들은 6.25 이야기는 차마 믿기 어려웠고, 직접 목격하신 동족간의 악행을 태연하게 말씀하시는 어머니는 인간본성에 대한 기대를 접고 평생을 살아오신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다행하게도 이 끔찍한 악몽이 우리 세대에 대물림되지는 않았다. 휴전지역 한반도에서 그동안 심각한 충돌이 셀 수 없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나름대로 평화를 잘 관리해왔다. 우리는 이제 평화를 당연시하여, 핵미사일도 아닌 북한의 장사정포 사정거리 내에 있는 강남집값이 불패인 시대를 살고 있다. 동족상잔의 전쟁이 재소환되리라는 염려는 보수주의자들의 마음에서도 거의 기우로 내몰린 것은 엄청난 업적이다. 아마도 커진 국력과 높아진 국제적 위상 덕분일 것이다.
드높아진 우리의 자신감과 비교해본다면, 미국인들의 자신감은 그 비교를 불허한다. 현존하는 미국인들은 태어나서 지금껏 모든 것이 미국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상을 살아왔기 때문에 아예 ‘자존감이 없다’. 누가 누구와 비교해봐야 자신감이니 열등감이니 하는 개념들이 생길 터인데, 미국인들은 세계어 영어를 모국어로 구사하고 미국이 전부인 세상을 살아온 덕이다. 그래서 미국에 오래살아 그 일원이 된 필자는, 가장 국제화된 국가인 동시에 가장 국수적인 국가가 미국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미국이 진주만도 아닌 본토, 그것도 뉴욕중심부에서 테러의 도를 넘어 공습의 범주인 쌍둥이 빌딩 붕괴가 자국의 민항기를 도구로 저질러진 9-11 테러는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사건이었으며, 영원히 치료되지 않을 상흔을 남긴 것이다. 그래서 10년동안이나 빈라덴을 추적하여 기어이 사살함으로써 자존심을 회복하고 트라우마를 지우려고 한 것이다. (필자는 9-11 당시 미국에 살고 있었다.)
그런데 2015년 샤를리 에브도 테러사건으로 프랑스도 비슷한 국면을 맞았다. (이 사건 이전부터 현재까지 필자는 프랑스에 살고있다.) 대낮에 세계문화수도이며 이슬람 교도와 공존하는 평화의 도시 빠리시내 한복판에서 자동화기가 난사되었다. 며칠 후 나는 출근길 운전중에 라디오를 통해 이 사건의 후속조치들을 듣고 있었는데, 미국의 한 중년 작가와 전화로 진행된 인터뷰가 나왔다. 그는 프랑스 정부에 조언하고 싶다며, 참을 수 없는 분노때문에 대응을 너무 오버하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덧붙이기를, 미국은 9-11테러의 지나친 대응이 국력의 손실과 국론의 분열로 이어졌다고 했다. 나는 방송을 들으면서 자국 중심으로만 생각하는 미국지식인 중에 이런 사람이 있다는 것에 놀랐다.
그런데 이제 또다른 기술세계가 제공할 AI, 자율주행, 100세 시대 같은 쓰나미에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 지 아니면 오히려 우리에게 기회가 될지를 고민하던 시절에 코로나가 닥쳤다. 그리고 심리적 패닉에서 가까스레 벗어난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묘하게도 9-11과 상황이 겹쳐보였다. 긴 역사뿐 아니라 겨우 몇 십년 세월에서도 인간사회 행동양식은 반복재현된다. 수많은 논쟁과 보도에도 불구하고 이상하리만큼 핵심을 못잡고 결국 이전과 비슷한 어디메쯤으로 돌아가니까. 사회전체가 무지해서 핵심을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여러 계층의 이권이 얽혀있어 이쪽의 한 매듭을 풀면 저쪽의 다른 매듭이 묶이는 현상 때문이 아닌가 한다.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려고, 전세를 건드리면 월세가 뛰고 다주택자를 건드리면 엉뚱하게 서민들에게 피해가 전가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언뜻 보기에는 부동산은 돈이 걸린 문제라 그럴 수도 있지만, 테러나 감염병도 이권이 엇갈린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 속에서도 한국총선은 치루어졌고, 금방 미국대선도 치루어질 것을 보면 팬데믹마저도 정치적 이해관계와 독립변수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정리해보자. 사회에 큰 사건이 생기면 처음에 사람들은 어리둥절해하다가 얼마후에는 정부를 향한 분노로 바뀐다. 다급해진 정치권은 만만한 희생양이라도 찾아서 제삿상을 차리고 싶어한다. 정부가 치밀하게 음모를 꾸민다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어느 나라에서나 이런 메카니즘으로 자연스럽게 사태수습이 진행된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사건이 덮히면 궁극적인 원인제거와 사회 체질개선은 공허한 주장으로만 남고, 사회는 다시 바쁘게 경쟁의 일상으로 복귀한다. 그리고 전문가들도 기득권 집단이기 때문에 서로가 불편해할 근본적인 논제까지 꺼내서 흔들지는 않는다. 그런다고 사회가 갑자기 바뀌지도 않을 터이니, 괜히 바위에 떨어지는 계란이 되고싶지 않은 것이다. 예를들면, 9-11은 과도한 친 이스라엘 정책에 상당부분 원인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미국은 복수와 반성을 동시에 수행했어야 하지만, 반성은 없고 복수에만 촛점을 맞추어졌다. 그래서 빈라덴을 사살하는 것으로 미국은 정의를 구현했고 승리했노라고 선포하였다. 코로나 사태는 9-11보다 좀 더 복잡한데, 발원지인 중국에 엄중하게 책임도 묻고 근본대책도 고민해야 하지만, 백신을 먼저 만들어내는 국가가 승리를 선포하면 사건은 종결될 것이다. 나는 코로나가 이렇게까지 퍼진 이유는 물자와 인력의 이동거리와 횟수가 지나치게 늘어난 세계경제 구조(Paradigm)에 있다고 생각한다. 상식적인 이야기이니까 필자의 의견에 동의할 많은 학자들과 시민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엄청난 관성을 가지고 내달리는 현 체제를 과연 누가 어떻게 방향을 전환할 것인가? 이미 몸집이 커져 호랑이만해진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수 있는 사람이나 국가는 없다. 유일해보이는 한가지 방법은 미국과 중국이 첨예하게 대결하여, 예전의 미-소 체제처럼 세계를 두 진영으로 갈라놓아 결국 자연스럽게 이동과 교역량을 줄이는 것이다. 그런데 이 방법은 경제구조만 둘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군비경쟁까지 올인하는 시대착오적 과오를 범할 것같다. 마치 타짜 영화에서 곽철용이 “묻고 더블로 가!”를 외치는 장면처럼 판이 위험하게 커질 수 있는 것이다. 전방에 빙산이 다가오는 것이 보여도 배의 방향을 쉽게 바꿀 수 없는 관성의 법칙은 테스형이 아니라 뉴턴형이 알려주셨는데, 이 법칙이 사회현상에도 적용된다. 자 이제, 아는 척하면서도 해결책은 없는 내 상상력의 한계는 여기까지다. 다만 해류가 바뀌어 빙산이 다른 방향으로 돌아서길, 아니면 빙산을 한 방에 순한 물로 바꿔줄 수 있는 신병기의 도래를 바랄뿐이다. 우리 자식들, 그리고 자식들의 자식들을 위해서…
테스는 형이 아니라 언닌데.....테스형이 뭔가 하고 검색해보니 나훈아 노래네요.ㅎㅎ 프랑스에 계신 분께 한수 배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