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종교 그리고 우리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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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는 아마도 개신교회들에게도 엄청난 피해를 입혔을 것이다. 비대면 예배로 인한 헌금 손실도 클 것이고, 정원을 정해둔 입시형 구원론의 신천지 교주님과 하나님에게 까불지 말라고 일갈한 목사님이 개그콘서트를 능가하는 염력을 보였기 때문이다. 개발독재 시대를 지나는 동안 개신교는 간접적이지만 독재정권에게 면죄부를 제공한 면이 있었다. 천주교 정의사제구현단이 정권에 저항했던 것과 대비된다. 천주교는 서슬이 퍼렇던 시절에 미문화원 방화사건 주범을 숨겨주었고, 찾아온 죄인을 사제가 보호해주는 것은 당연하다는 발언으로 정권을 경악케 했다. 하지만 외국만의 사정인지는 모르겠지만, 가톨릭 사제들의 지속적인 아동성추행 기사는 서양신문들의 단골기사다.
독재정권의 명분은 북의 위협으로부터 남쪽 체제를 지켜낸다는 것과 잘살게 해준다는 것이었다. 이와 짝을 이뤄 실향민 주축의 대형교회가 있었고 강남개발과 동시에 신형 대형교회들이 강남에 포진하였다. 마치 정권이 앞에서 끌고 대형교회들이 뒤에서 미는 것처럼 보였다. 세월이 한참 지난 지금은 국가도 손보기 어려운 공룡처럼 대형교회들이 성장했다. 거대한 교회당 건설과 목회자 세습은 북한정권의 표절에 해당하는 안쓰러움을 보여주었다. 거기다가 최근에는 혜민스님까지 가세하여 명실상부한 종교통합까지 이루었다.
사실을 근거로 하는 과학자들이 보기에 종교는 미신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개신교뿐 아니라, 어느 종교든지 열심있는 종교인들은 근거없는 확신과 자만으로 가득차 있다. 신은 그들만 구원한다는 배타적 신앙때문에 이성적인 토론은 사실상 불가하다. 하지만 종교와 과학의 대립은 코로나 팬데믹시대를 지나며, 과학의 완벽한 KO 승으로 끝난 것같다.
순진한 사람들을 속여서 돈을 갈취하고 지성보다는 억지, 보편보다는 편협으로 이끄는 종교는 정말 사회의 아편일까? 그리고 우리는 종교없이 과학만으로 정말 인간의 문제와 행복 그리고 가치를 지킬 수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진실에 기반한다는 자신감이 과학을 또다른 독선적 종교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현재 우리가 밝혀낸 과학을 금과옥조로 여기지만, 공존하는 수많은 오류도 존재한다는 것을 지금로써는 전혀 알 길이 없다. 만약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과학이 진실의 전체라면 더이상 과학연구를 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현재도 연구는 계속되고 있으며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우리의 과학연구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여행이며, 세월이 지나도 언제나 미완성교향곡 같은 정체성을 가질 것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지식 수준이 낮은 사람일수록 과학에 대한 맹신도는 훨씬 높다. 화성에 물이 있다가 없다가, 금성에 생명체가 존재하다가 없어졌다가 하는 기사들이 몇십년째 반복되고 있다. 그리고 140억년 전에 있었다는 빅뱅이 진실이라면 그 이전은 또 무엇이었는지? 연속되는 질문이 꼬리를 물게 된다. 빅뱅의 나이는 137억 9900만 년(±210만 년)이라고 하니 정말 대단한 계산실력이다. (재미있게도 빅뱅이론을 처음 주장한 사람은 벨기에의 가톨릭 신부이며, 코페르니쿠스도 신부였다.) 물론 빅뱅 이론을 비웃을 필요는 없다. 첫 걸음부터 완벽할 수 없으니까. 하지만 이런 학설을 증명된 이론처럼 ‘종교화’하는 것은 과학적이지 않다. 이유는 간단하다. 재현할 수도 없고 관찰할 수도 없으니까.
천동설을 믿었던 시대까지는 분명 지동설이 비과학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현재의 과학에도, 미래에는 천동설처럼 판명될 것들이 상당수 존재할 것이다. 필자가 여러번 우려먹은 소재인데, 불과 몇 십년전에 커피는 담배와 더불어 아주 나쁜 식품으로 분류되었다. 혈압상승으로 심장병을 유발하고 수면을 방해하며 위장장애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 커피는 거의 만병 통치약처럼 대접받는다.
중세 암흑기가 끝나고 르네상스가 세상을 덮은 후에, “종교는 보수, 과학은 진보”라는 틀이 균형을 이루어왔다. 신실한 종교인들에게 과학은 위험해보이지만, 지적인 과학자들에게 종교는 아둔해보인다. 하지만 과학자들도 그들이 아는 것이 전부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내년과 미래를 생각해보면, 이미 동력을 잃은 종교보다는 과학이 사회적으로 중요한 결정에 훨씬 큰 영향을 키칠 것이다. 예를 들면 안락사와 동성결혼은 종교보다 과학의 지배력이 우세한 선진사회에서 먼저 받아들여졌고 곧 한국사회에서도 격론이 벌어질 이슈다. 종내에는 결국 인간복제까지 승인될 지 모른다. 과거에 황우석 교수가 물러나면서 주장한 “그래도 이 기술은 대한민국 국민들 것”이라는 국뽕주사를 다수가 맞는다면 위험한 기술들이 준비 없이 실현될 수 있다.
원자폭탄이 아니라, 미개한 바이러스가 전 인류를 이렇게 오랜시간 감금시키는 현장을 우리는 경험하고 있다. 그러면 미래를 어떻게 개척해나갈 것인가? 아마도 한 축은 백신을 조기개발하는 등의 과학적 방법일 터이고, 다른 한 축으로는 자연을 아끼고 생명을 존중하는 종교적 신념과 실천이다. ‘코로나보다 더한 바이러스가 나오면 또 더 강한 백신을 개발하고…’처럼 증폭에 증폭을 거듭하는 과학적 방법만으로는 결코 이길 수 없는 싸움이 될 것이다. 너무 진보적인 과학이라면 계속 틀어막아야 한다는 주장이 아니라, 준비가 될 때까지 속도를 맞추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낙태문제를 보자. 가톨릭과 과학계가 밀고 당기며 어느 정도 속도를 조절한 덕분에 그나마 연착륙하여 현재에 이르렀다. 의학의 발전과 생명존중 그리고 미혼모에 대한 사회인식, 경제구제책과 더불어 인구감소 문제까지 고려해서 풀어야 할 문제이기 때문에 낙태문제는 과학과 종교가 머리를 맞대고 풀어야 하는 사회문제다.
정리하면, 과학은 언제나 노정 위에 있는 진리이니 현재의 과학이 절대진리라는 좁은 시선을 경계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종교도 사회의 균형추로써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는 사실도 인정하자는 것이다. (물론 쓰레기 종교인들 감시도 철저히 하자.) 정말 힘들었던2020년 아듀! 올 한해도 현장에서 수고하신 세계 곳곳의 코세니안들과 코센본부 스탭들에게도 안부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