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후 경제-과학-기술, 이대로 가능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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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덕담은 진부하지만 가치있는 사회관습인데, 올해는 덕담조차 쓸쓸해보이는 새해다. 작년 한해를 거의 코로나로 격리된 세상을 살게된 답답함과 배신감이 주요 원인일 터인데, 그 배신감이 누구 때문인지 확실하지도 않다. 만약 코로나가 연구과정의 사건-사고에서 기인했다면 그런대로 이해가능하지만, 사회와 박자를 맞추지 못하고 발전만 추구한 과학기술의 필연적 부산물이었다면 심각한 문제다. 최근 한겨레 신문은 코로나가 미세먼지를 타고 대륙간 횡단이 가능했을 것이라는 외국논문을 한편 소개하였는데, 상당히 설득력 있는 연구결과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비행기가 사람들을 자주 실어날랐지만, 전체에 비하면 대륙간 이동 숫자는 제한적이다. 그런데도 겨우 몇 개월만에 전 세계를 팬데믹 아래에 놓이게 했으니, 이 문제는 중국 그리고 우한의 한 연구소에게 책임을 묻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 보인다. 결국 우리가 그동안 열심히 한 과학기술은 돈과 명예 그리고 국가주의에 입각한 경쟁이 주요 동기부여였을 뿐, 깊이있는 철학적 질문에 답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공부가 싫어서 뭐 좀 있는 척, 결론 없는 철학을 논하는 한량같은 태도를 정당화하려는 것이 아니다. 지금 세상은 뭔가 하나가 인기를 얻으면 선악이나 진위를 논할 시간도 없이 일단은 모두 그쪽으로 뛴다. 그래서 속도와 결과 그리고 파워와 돈이 중요할 뿐, 그것이 향후 만들 부작용은 제쳐둔다. 이런 경향은 이제 정지시킬 수도 없고 방향을 바꿀 수도 없다. 심지어 지속가능한 에너지 정책마저도 결국 경쟁과 효율에 의해 지배되며, 5년 정도 (선출 정부의 임기한도) 내에 괄목할만한 성과를 내지 못하면 퇴출수순을 밟아야 하는 애물단지로 전락한다. 전체 에너지 패러다임을 바꾸는 일을 5년만에 성취할 수도 없을 터이며, 확실하지 않은 정책을 믿고 5년씩이나 기다려줄 국민들도 없으니, 모든 정책은 개미군단의 주식투자처럼 단기성과 위주로 구성될 수밖에 없다.
현재는 인문학 전성시대라고 하지만 그 인문학은 무차별 경쟁을 수행하는 중간에 잠시 쉬어가는 엔터테인먼트일 뿐, 우리 삶을 성찰하는 도구로써 기능하지 못한다. 그래서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따위는 돈벌기 위해 포장만 현란하게 장식한 싸구려 상품일 뿐이다. 종교행사도 퍼포먼스이거나 사회적 관계맺기의 일환일 뿐, 고통스럽지만 새로운 삶의 가치를 만들어나가는 노력에 전념하지 않는다. 이런 현상은 비단 종교지도자들의 타락에만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세속적 성공과 부를 원하는 신도들과 결속된 총체적 약속이다. 그래서 종교마저도 자본의 힘으로 무장하지 못하면, 포교력도 설득력도 그리고 세련미도 없는 구태의연한 집단으로 평가되어 사람들이 모이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의 정점은 역시 돈이다. 현대의 신은 야훼도 알라도 석가도 아니고 돈이다. 돈은 현대세상의 힘일뿐 아니라, 소통의 주체다. 생각해보라 돈 안걸린 문제에 열 올리며 토론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지. 정치이슈에 장삼이사들이 그렇게 열심인 이유도, 결국 각자의 형편에 유리하게 주택정책, 교육정책, 노후정책을 내어놓으라는 외침이다. 전문 학회, 고급 강연 그리고 가벼운 유튜브쇼까지도 결국은 돈에게 구애하는 세레나데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교환가치로 기능하는 것이 이상할 것은 없지만, 가치만 남고 윤리가 너무 망각되어 결국 제2, 제3의 코로나가 계속 야기된다면 우리 문명은 존속이 보장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경제-과학-기술에 좀 더 확실한 윤리를 부여하는 노력이 절실하다. 그런데 윤리는 개인에게 당장 이익을 돌려주지 않기 때문에 동기부여가 약하다는 문제가 있다. 그래서 정부가 주도할 수밖에 없는데, 정부는 윤리를 지키지 않는 개인이나 사기업을 규제할 뿐 아니라 윤리에 충실한 대상들에게 적극적으로 혜택을 주는 방안도 같이 고려해야 할 것이다. 사실 윤리기준은 우리가 다 생각할 수 있는 쉬운 것이다. 얼마나 적극적으로 실행하려는지는 별 개의 문제이지만… 필자가 생각한 경제-과학-기술의 윤리는 다음과 같다. 첫째, 어떤 연구나 개발도 자연변조나 파괴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계획하여 수행한다. 둘째, 어떤 연구나 개발도 생명변조나 파괴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계획하여 수행한다. 셋째, 어떤 연구나 개발도 사람들의 사회계층 심화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계획하여 수행한다. 앞의 두 개는 중복되는 부분도 있을 것인데, 공해차량에게 심한 과태료를 물리거나, 태양광이나 풍력 1kW 생산하면 한전 전기1kW는 무료로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것, 또는 양계장이나 돼지축사의 평당 육류 생산량을 제한하는 등 우리가 어렵지 않게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런데 세번째가 좀 어려울 것같다. 쉽게 말하면 실업률을 높힐 가능성이 큰 연구나 개발은 지양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만약 어떤 AI 프로젝트가 해당분야 사람들의 실업률을 높힐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되면, 그 대책을 동시에 제시하지 못하는 프로젝트를 승인하지 않거나, 아니면 높은 오버헤드 비용을 물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경제-과학-기술 프로젝트는 자연-생명-인간을 존중하거나 아니면 실제 피해에 대한 보상을 프로젝트 수행자들이 자동적으로 부담하게 만드는 것이다. 반대로 세가지 윤리를 적극 실현하려는 프로젝트는 정부나 지자체가 적극 지원해주는 것이다. 그래서 이참에 주택문제 해결을 위한 사기업 프로젝트나 개인차원의 프로젝트 지원도 고려해볼만하다. 한국사회에서 주택문제 해결은 실업이상으로 사회계층 심화를 줄여주는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엄격한 윤리기준 없이 현재의 경제-과학-기술을 지속시키려고 한다면, 빈익빈-부익부 심화뿐만 아니라, 아마도 제2-제3의 코로나 사태는 거의 예약되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제 선진국만 베끼면 되던 시기에서 벗어나, 고통스럽지만 스스로 새로운 판을 짜야 할 과제를 안고 새로 시작하는 달력 앞에 서게 된 것이다. 공무원들은 잃어버린 영혼을 되찾고, 시민들은 뿔뿔이 흩어졌던 연대의식을 다시 결집해야 할 엄중한 새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