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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건강한 언론 그리고 과학

과학 칼럼에 정치와 언론을 주제로 글을 쓰려면 마음이 불편해진다. 과학기술자들의 정치참여는 ‘순결서약’을 깨뜨리는 것처럼 교육받아온 탓이다. 예전에 가난했던 조국이 독재정치 하에서 경제개발을 속히 이루려고, 정치에 눈 감고 개발경쟁에만 매진하도록 요구받았다. 하지만 지금은 정치가 연구환경을 결정하니 정치와 과학의 연결고리를 고민해봐야 한다. 다만, 머리 좋은 과학자가 정치도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오산이다. 정치는 수식과 논리로 작동되는 기계가 아니라 유권자들의 지지로 추진력을 얻는 ‘내편 만들기 게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추할 때는 조폭들의 단합대회 같고, 고상할 때는 ‘읍참마속’의 고사처럼 거룩한 희생을 치루는 의식이 되기도 한다. 물론 그 생태계 내부의 속살은 “나는 내 손모가지와 가진 돈 모두를 건다! 너는 무엇을 걸래?” 같은 거친 협박도 오가는 실전상황일 것이다. 오늘날 과학은 정치와 여론의 시녀일 수밖에 없는 처지니까 정치를 이해하지 못하면 과학을 지속가능하게 경영할 수 없을 것이다.

페이지가 넘어간 트럼프 체제는 정말 기상천외했다. 귀를 의심하게 만드는 정책에 어안이 벙벙할 때 더 놀라운 조치가 이어졌다. 문화유산을 정하면서 팔레스타인 편을 든다는 이유로 2018년 유네스코를 탈퇴했고, 2019년에는 파리 기후협약도 탈퇴한다고 선언했다. 비슷한 시기에 한국에서는 원전과 지속가능 에너지의 대립, 그리고 4대강 댐 유지와 철수 간의 논란이 지속되었다. 정치권은 이런 부분까지 전문성을 갖추기 어렵기 때문에, 아마도 탈원전 이슈는 언론의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간단한 원칙에 충실했다면 좀 더 쉬웠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예를 들면, 원전폐기를 장기목표로 두고, 재생 에너지가 원전 하나에 해당하는 에너지를 생산해낼 때마다 원전을 하나씩 해체할 것이라고 발표하는 것이다. 그런데 일단 선언부터 해놓고 일을 시작하다보니 뒷감당이 어려웠다. 중동에 수출하여 건설중인 원전의 운용이 시작되는 시점이라는 것도 탈원전의 당위성과 도덕성을 증명하기 어렵게 했다.

민주사회에서 정치는 늘 언론을 껴앉고 살아야 하는 처지인데, 언론은 방향을 예측하기 어려운 바람같은 것이다. 여기에 여론이 더해지면 바람은 태풍으로 변한다. 언론은 대안제시보다는 사건과 사고 자체를 좋아한다. 큰 일이 있을 때마다, 희극인지 비극인지에 관계 없이 언론들이 가장 신바람이 나있던 것을 상기해보면 자명하다. 사건-사고가 있어야 장사가 잘되는 업종이 언론이다. 개인에게도 마찬가지다. 뭔가 좀 뜬다는 사람이 있으면 언론사들은 집중취재와 인터뷰로 거의 도배질을 한다. 그러다가 그가 위기를 맞으면 이제는 기자들이 돌연 하이에나로 변해 밤낮 없이 집앞에 죽치며 기관총같이 긴 망원렌즈로 커튼 너머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한다.

당장 코로나 백신부터 인공지능에 자율주행 차량까지 사회를 격동속으로 몰아넣을만한 문제들이 올해부터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그 속에는 심지어 전문가들조차도 진실을 알기 어렵거나 자신들의 이익이 결부되어 진실을 말할 수 없는 부분도 많다. 그런데 대다수 국민들은 언론을 통해서만 사안을 이해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국가별 백신 거부율 통계가 보도되고 있는데, 시민들은 도대체 얼마나 제대로 알고 의사를 표시한 것일까? 후유증은 쉽게 과장되고 새로운 백신의 원리는 상당히 복잡하다. 충분한 이해없이 이런 깜깜이 결정을 요구받고는 그 결과가 다시 거부율로 보도되는 일은 점점 더 많아질 것이다. 현재 우리 삶은 너무 많은 변수로 인해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곳으로 점점 빠져드는 중이다. 그리고 잘 모르기는 우리와 마찬가지지만,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아는 척하는 언론의 안내를 받으며 세계최초라는 구호 속을 계속 전진할 것이이다.

인터넷으로 책을 덜 읽게 되면서 지식보다는 정보가 중요해졌다. 그래서 간단한 결론만 기억하고 싶어한다. 언론은 이런 환경에 적응하여 자극적으로 단편적 지식을 쏟아낸다. 안타깝게도 신뢰할만한 과학기술 언론은 황우석 사태 때 잠시 등장하고는 모두 사라졌다. 삼성전자 반도체만 지속된다면 한국은 건재할 것인가? 속도를 늦추는 것이 답인가? 아니면 다른 길로 가는 것이 답인가? 남들 안따라가고 이런 혼자만의 고민을 해볼만한 자신감은 한국사회에 있는 것인가? 등등의 생각에 연초부터 머리가 복잡하다. 이제 가장 염려스러운 것은 상위대학들의 연구 경쟁력이나 대기업들의 개발 경쟁력이 아니라, 언론생태계다. 유튜브로 선택이 다양해졌기에 오히려 자기 진영쪽 정보만 골라서 섭취하는 기이한 정보 생태계까지 형성되었으니 말이다.

황우석 사태때 모두를 감동시켰던 BRICS라는 포항공대팀의 ‘집단뉴스생산팀’을 기억한다. 당시에는 한 사건이어서 집중이 쉬웠을 것이다. 이제는 코로나와 미래 사회를 위한 에너지, 환경의 문제는 훨씬 추상적이고 복잡하다. 그래서 말인데 OhMyNews 같은 자생적 언론생태계가 과학계를 중심으로 만들어질 수는 없는 것일까? 카이스트에 ‘과학기술 저널리즘 대학원’이 있는 것으로 안다. 이런 학과 학생들이 졸업 후 기성언론 취업을 목표로 하기보다 현재 있는 자리에서 새로운 언론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과학기술관련정책을 위해 정치와 국민이 찾아오는 언론을 만들어보자. 젊은 과학지성들의 결속과 연대 그리고 도전을 부추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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