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센, 벼랑 끝에 서다!
- 1890
- 21
- 5
또 한 해가 간다. 자유를 몇 년간 억압해왔던 코로나를 보내고 예전처럼 일상이 반복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내년부터 코센 운영을 위한 예산이 전면 삭감되어 운영진들이 다른 업무로 뿔뿔이 흩어져야 한다는 소식이었다. 보수와 진보가 여러 번 자리바꿈을 한 최근 몇십년간의 정치지형에서도 코센은 지속되었기에, 참 대단한 일관성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어쩌면 정책의 일관성이 아니라, ‘한인과학기술자 네트워크’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 정책편성자들의 ‘일관된 무관심’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겨우 연간 10억도 안되는 예산으로 25년동안 1만3천명의 해외주재 한인과학기술자들과의 ‘접선망’을 꾸준하게 구축해두었는데, 참 난감하다. 아마 기재부에서 예산을 편성하면서 ‘노는 프로젝트’ 같아서 부담 없이 빨간 줄을 긋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어릴 때 참고서나 노트를 산다고 하면 마지못해 허리춤에서 돈을 꺼내주시던 어머니도, 팽이나 연 같은 장난감을 산다고 하면 냉정하게 손절하시던 그 분위기가 떠올랐다. 아이들과 같이 놀면서 소통하는 것과 혼자 골방에서 공부하는 것은 충전과 방전의 선순환을 만드는 메카니즘인데, 애들은 책상에 앉아 공부만 해야 한다고 생각하셨던 것이다. 노벨상 프로젝트나 선진국 진입을 위한 국정과제라는 타이틀이 붙지 않은 프로젝트들은 정부관리들 눈에도 팽이나 연처럼 보일 수 있을게다.
현재의 과학기술은 수많은 학자들 간의 소통과 협업 그리고 리뷰와 더불어 발전한다. 근래 과학기술의 가장 많은 결과물이 나온 장소를 꼽아보면, 단연 미국의 실리콘 밸리와 보스턴 지역이다. 실리콘 밸리에서는 스텐포드와 UC 버클리가 셔틀버스를 운행하고, 보스턴과 맞닿은 캠브릿지에 위치한 하버드와 MIT는 동일선 지하철로 겨우 두 정거장 떨어져 있는 협업환경을 조성해두었다. 이런 환경에 부응하여 엄청난 IT 기업들은 실리콘 밸리로, 그리고 세계 최고의 제약회사들은 보스턴으로 몰려왔다. 반면 한국은 수직적 서열 문화 때문에 연구자들 간의 협업이 턱없이 부족하다. 게다가 목표가 분명히 보이는 선두주자를 쫓아가는 일은 잘해내었지만, 혼자서 방향 찾는 것은 아직까지 익숙하지 않다. 새로운 길을 가려면 그만큼 리스크도 크고 외롭기 때문에 활발한 토론을 통해 겪어보지 못한 상황을 미리 충분히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때로는 99%를 마치고도 마지막 단추 하나를 못끼워 애를 태우는 경우도 흔하다. 이럴 경우, 외국에서 비슷한 경험을 해 본 사람들의 조언은 결정적이다. 비록 그 조언이 현재의 고민과 딱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고 해도 엉킨 실타래를 풀 수 있는 힌트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코센의 예산을 전면 삭감한 것은 현정부가 주장해왔던 국제협력강화라는 방침에도 역행하는 처사다. 다만, 앞에서도 언급한대로 예산 편성자들이 코센과 국제협력강화와의 상관관계를 인지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코센의 기능정지는 해외한인과학기술자들과 국내연구자들 간의 연결망을 리셋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인지 부주의가 결정권자들에게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인지 부주의에 관한 대표적인 예시로 6.25 전쟁을 촉발했던 미국의 에치슨 라인 (Acheson Line Declaration)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들의 판단은 “남한은 미국의 이익과 정책에 있어 자산이 아니라 부채다”라는 것이었다. 그 부채 국가가 지금은 미국의 전략적 요충지가 되었으니, 에치슨의 판단은 명백한 오류다. 또 다른 예는 프랑스 혁명 재판부가 화학자 라부아지에(Lavoisier)를 처형한 것이다. 그에게 화학은 부업이었고, 본업은 세금징수관련 고위 공직자였는데 세금을 착복했다는 죄명으로 단두대에서 처형된다. 그는 숨쉴 수 있게 해주는 공기에게 산소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으며 질량보존의 법칙을 최초로 언급한 화학자였다. 그를 구하기 위해 수많은 탄원서가 접수되었지만, 혁명재판소의 판결은 “프랑스 공화국은 과학이 아니라 정의를 원한다”는 것이었다. (과학은 정의를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도구인데, 이 무슨 궤변인가?) 1794년 당시 처형장면을 지켜본 라그랑쥬(Lagrange)는 “프랑스가 그의 목을 떨어뜨리는데는 한순간이면 되었지만, 그 같은 두뇌를 얻는데는 아마도 한세기 이상 걸릴 것”이라고 탄식했다. 라부아지에는 2 년 후 명예가 복권되었고, 당시 격랑을 피해 미국으로 간 그의 제자 듀퐁은 미국에서 거대한 기업을 일구었다. 듀퐁사는 1938년에 세계최초의 인공섬유인 나이롱을 발명한다. 그리고 나이롱으로 여성용 스타킹을 만들어 실크 스타킹보다 2배 비싼 가격으로 팔기 시작했다. 인류 의복혁명의 신호탄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프랑스의 손해는 어머어마했다.
외국에서 활동하는 한인 과학기술자들을 중심으로 어떻게든 코센을 살려보자. 우선은 정부의 지원이 지속되도록 탄원해보고, 장기적으로는 국가 예산 편성에서 자유롭도록 ‘민영화’ 또는 ‘자발화’ 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웹사이트를 성실하게 운영하는 부분과 열심 참여자들에게 약간의 보상지급, 그리고 국내외 유관기관과의 정보교류의 3가지가 전부다. 우선은1만3천여 코센 참여 재외 과학기술자들의 서명을 받아 정부에 제출해보는 방법이 좋을 것같다. 회원들의 댓글과 아이디어 그리고 운영진에 대한 응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여기에서는 별다른 구체적 방도를 제시하기보다는 코센이 위기에 처해있다. 그리고 이유는 내년도 예산이 전면 삭감되어 KISTI 내에서 코센사업을 지원할 인력이 배당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만 알리려 했다. 다시 한 번 많은 참여와 의견을 부탁드린다.
많은 분들이 동참해 KOSEN이 계속 함께 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
과학자들간의 소통이 쉽지 않는 현실에서 KOSEN의 작다고 느끼는 큰 역할에 항상 감사했습니다.
작은 의견은 무시될 수 있지만 작은 모래가 모여 큰 해안이 되고, 물분자가 모여 바다가 되듯 모두 동참한다면 이번을 기회로 KOSEN이 더 커질 수도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KOSEN 담당자분들 화이팅하세요.
여러 학자 님, 뜻있는 사람들과 같이 협업으로 수익 프로젝트를 만들어 계속 운영하여 외부 지원에 의존하지 않는 샘물로 운영해 나가는 방법이 좋을 듯 합니다. 그리하면 사업도 더욱 확장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아이디어는 많이 있으니.......
KOSEN이 길게 이어졌으면 합니다. 미국에 2010년에 와서 놀랐던 것이 YMCA가 있어 놀랐습니다. 제가 초등학교때는 활성화 되었었던 YMCA가 얼마후, YWCA건물로 바뀌었고, 그 뒤론 청소년 상담소로 아주 바뀌었었는데, 2023년 캘리포니아에 여기 전기 지역사회를 위해 일하고 있는 YMCA를 보면서, 무언가 한번 만들어 지면, 탈바꿈은 여러번 할 지언정, 오래도록 community에 service 하는 그런 단체가 만들어 졌으면 합니다. 역시 정부의 보조금 보다는 민간의 힘으로 이어져야 길게 갈 것 같습니다. 힘내시기 바랍니다.
위의 의견에 적극 동참합니다. 이번에 설문조사가 있던데 관련된 내용을 강력히 어필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도 주변 동료에게 참여를 촉구하였습니다.
현재의 네트워크를 계속 이끌어나갈 뭔가 동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댓글의견도 있지만 산학연을 함께 참여하는 방법도 고려해야 할 것같습니다.
담당자분들 부디 화이팅 하십시요.
정부과제로 겨우겨우 살아가지만 KOSEN과 이 겨울을 함께 통과했으면 합니다. 후원이나 다른 어떤 방법이 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