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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의 안방 차지

미국 뉴저지 주 약간 남쪽에 위치한 작은 도시 프린스턴에는 프린스턴 대학만이 아니라, 고등과학원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아인슈타인과 폰 노이만 같은 근대물리학의 거장들이 연구하던 곳이죠. 이 기관은 씨끄럽게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싫어해서 코 앞까지 도착해도 간판이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저희 집이 근처에 있어서 가끔 다녔던 곳인데,내부 분위기는 수도원처럼 아주 차분합니다. 이곳에 프리먼 다이슨(Freeman Dyson, 1923~)이라는 연로하신 물리학자가 한 분 계십니다. 어쩌면 현재 생존하신 분들 중 가장 유명한 물리학자가 아닐까 합니다. 이 분은 특이하게도 노벨물리학상 대신에 종교계의 노벨상이라는 템플턴상을 받으신 분입니다. 저도 한 번 뵙고 토론을 한 일이 있습니다만, 건강이 안좋으셔서 붙잡고 오래 이야기를 나누기가 죄송할 정도로 노쇠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 분이 얼마 전 미국의 The New York Review of Books라는 월간지에 생물학에 관한 글을 기고하신 것을 보고 읽어보았습니다. 그저 과거의 명성과 젊을 때 업적으로 우려먹고 사시는 분 정도로 그 분을 불경스럽게 보았던 저는 석학의 젊은 감각과 통찰력,왕성한 에너지로 미래를 고민하는 자세에 아주 감명을 받았었습니다.

그 기고에서의 주장은 상당히 단순한 것이었지만,생물학의 진보와 대세론을 좀 더 현실감 있게 표현했습니다. 20세기는 물리학의 세기였다고 본다면, 21세기는 생물학의 세기가 될 것이라고 봤습니다. 요즈음 분위기로 보면 하나마나 한 이야기 같죠? 하지만 좀 더 구체적인 각론이 있습니다. 물리학 시대란 말은 물리학이 주류 학문을 이루었다는 의미만이 아니라, 물리학에서 파생된 제품들이 안방을 점령했다는 말이랍니다. 물리학이 좀 더 구체적인 응용대상을 가지고 발전한 부분이 전자공학과 기계공학들인데, 이들의 제품인 TV, 컴퓨터, 프린터, 자동차, 시계, 전화들이 우리 삶과 우리집 안방을 점령하고 있다는 이야기죠. 참으로 20세기는 물리학 방정식들이 세상의 질서를 움켜 쥔 시절임에 틀림없습니다.

마찬가지로 21세기는 생물학의 시대가 될 것이라는 예측의 의미는 생물학이 단순히 인기 있는 연구분야가 될 것이라는 정도가 아니라, 생물학에서 파생된 제품들이 우리들의 안방과 삶의 공간을 차지할 것이라는 것이죠. 어떻게? 예를 들면, 화분을 사와서 다양한 색깔의 꽃이 피는 장미를 키운다든지, 애들이 도마뱀 알을 부화시키는 장치를 사와서 부화시키는 놀이를 한다든지 등이 제시되었습니다.

예로 제시한 것들이 좀 궁색하기는 했습니다만, 좀 더 자세히 생각해보니 벌써 우리 삶에 여러 변화가 있었더군요. 우선은 저희들이 어렸을 때는 애완동물 시장규모는 보잘 것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견공들 음식파는 가게나 미장원도 있고, 수의사라는 직업의 인기도 상당히 올라간 상황이잖아요? 애완동물 시장규모가 정말 무시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졌습니다. 더욱 눈여겨 봐야 할 부분은 제약시장입니다. 오늘도 아침에 출근하시면서 비타민에 칼슘 등등 종합영양제 몇 알 정도는 입에 털어놓고 오셨죠? 집집마다 약병을 한줄로 세워보면 거의 모든 집이 1미터 정도의 길이는 될 것 같습니다. 비아그라 같은 망측한 약들 성능 이야기가 보수 사회에서도 공공연하게 보도되는 세상입니다.

조만간 한 알 먹으면 살이 꼭 1킬로씩만 빠지는 다이어트 알약도 나오겠죠? 그리고 인공장기나 인공신체부위 시장도 커지겠죠? 자동차 엔진오일 갈고, 타이어 바꾸어 끼듯이 나이들면 무릎 관절 바꾸고,구부러진 등에 철심 밖고 심장과 허파 청소하려고 병원에 약속 잡는 세상이 오겠죠. 이쯤되면 삶과 죽음을 정의하는 것도 좀 복잡해질 것 같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뇌를 다른 사람 것으로 바꾸어 끼는 세상은 안오겠죠?

이렇게 평균수명이 늘어나서 오래 사는 것은 좋습니다만, 은퇴나 연금 등 사회제도는 훨씬 늦은 속도로 따라올 것이고, 가끔씩 생기는 부작용들, 부화한 도마뱀 숫자가 엄청나게 늘어나서 부엌서랍을 열자마자 몇 마리씩 튀어나온다든지, 쉽게 생각하고 갈아끼운 인공장기가 안맞아서 멀쩡한 사람이 갑자기 의식불명이 된다든지 등등은 누가 해결할 지 모르겠습니다. 기술로 해결이 안되니, 법적인 문제가 커져서 법률시장까지 연쇄적으로 키워주겠죠? 이런 징후를 종말론적인 관점에서 보는 것은 너무 사이비 종교적 발상인지, 아니면 계속 부추기는 것은 007영화에 자주 나오는 비뚤어진 과학자들의 무책임한 야욕인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이슨은 제가 읽은 기고문에서 이런 윤리적인 문제나 부작용들은 좀 접어두고 생물학의 방향을 당분간 그냥 지켜만 보자고 제안했습니다. 다이슨이 이런 제안을 안했어도 여러분이나 저나 이런 내용으로 약간 고민하는 척 하다가 곧 이전처럼 일상의 아귀다툼에 빠져 작은 일에 일희일비하면서 살게 되겠죠. 어차피 나 혼자 책임질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니까 말입니다. 그러니까 괜히 철학자인 척 혼자 고뇌하지 말고 그냥 '긍정의 힘'을 믿어야 할까봐요.

사람들은 감사패니 공로상이니를 주고 받으며 박수치는 파티를 즐기지만, 끝나고나서 청소하는 일에는 자기 시간을 할애해두지 않습니다. 그렇게 뿔뿔히 떠난 파티장은 고상하던 바로 직전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아수라장인 것을 자주 봤었습니다. 생물학이라는 파티의 막은 이제 금방 올라갔으니 상받는 사람 위하여 박수 치고 떡 얻어먹을 궁리나 하고 지저분한 뒷정리까지는 아직 생각할 필요가 없을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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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느끼는 거지만 필력이 대단하십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