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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읽기'를 부활하자

필자가 초,중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고전읽기 반이라는 것이 있었다. 공부 좀 하는 애들로 구성되어 고전을 읽게 하고, 독후감이나 시험을 통해 상을 주던, 이른바 '강제독서반'이었다. 필자는 '신의 아들'들만 모이는 그런 선택된 모임에 들지는 못했다. 다만, 친한 친구와 동반하교하려고 방과후 같이 읽은 책들이 좀 있었다. 기억에 남는 책은 '우리의 민화'다. 구수한 옛날이야기들이 전통가치와 결합되어 교훈을 주던 책이었다. 따지고 보면 권선징악의 범주를 벗지 못하는 진부한 책이었지만, 착한 이에게 상주고 나쁜 인간들에게 확실히 응징하는 사회를 만들지 못한 후손들에게는 아직도 절실히 필요한 책이다. 외국에서 자란 우리집 애들에게 소개해보려고 비슷한 책을 찾아보았으나 여태껏 발견하지 못했다. 거기까지는 그렇고, 요즘 한국에서는 광우병 때문에 야단인 모양이다. 실질적 위험도가 낮다고 해도, 국민생명의 위협까지 떠앉아가면서 소고기를 수입하려는 정부를 보면서, 우리 정부가 남의 정부인지 아니면 외국 축산업자들을 향한 박애정신이 지나친 것인지 국민들이 혼동스러운 모양이다. 필자는 광우병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바가 없지만, 초식동물인 소에게 동물성 사료를 먹였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자연의 섭리를 무시한 인간들의 행태는 비난받아야 마땅하다. 그 즈음에 일전에 한국사회에서 모습을 감춘 황우석 박사의 애완견 복제 뉴스가 보였다. 어찌된 영문인지 다른 인터넷 신문에서는 일언반구도 없고 유독 그 유명한 신문에만 일번 뉴스로 걸려 있었다. 어찌 이리도 시점이 정확할 수 있을까? 필자가 인터넷 신문을 열기 조금 전에 생각하고 있던 바로 그 분이다. 애완견 복제는 다음에 하시고, 이렇게 새정부가 곤경에 처해 있을 때, '광우병 안걸리는 소'를 탄생시키셨던 옛날 추억을 더듬어 광우병 문제를 단칼에 해결해주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마도 그 특허수입은 우리나라 연간 GDP를 넘을지 모른다. 이건희 회장께서 말씀하시던 만명을 먹여 살리는 한 명의 천재요, 이육사 시에 나오는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때의 기억을 다시 확인해보려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는 것 같다. 기억을 돌이켜보면, '광우병 안 걸리는 소'라는 기사들은 몇 년이 지나면서, ‘광우병 잘 안 걸리는 소’ ('광우병 내성소')로 슬쩍 한단계 낮아졌었다. 그런데 광우병이 심각하던 영국에서 이 특허를 기필코 사겠다는 소식이 대서특필되길 기다렸는데,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영국과는 복제 연구로 서로 교류도 많았던 것 같았는데, 왜 '광우병 내성소'를 사겠다는 제안이 없었을까? 그러고 보니, 한글 기사를 이해하지 못한 것인지, 광우병 내성소에 대한 외국에서의 비평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들은 바 없다. 글이 좀 비꼬는 투로 흐르고 있지만, 정말 몰라서 묻는 질문이다. 한 십년전부터 정보통신이 강해졌을 무렵에 한국과학기술계에는 '정보통신을 찍고 나노와 바이오를 향하여'라는 기치 아래 수많은 말잔치, 돈잔치 연구들이 있었던 것 같다. 지금 나노와 바이오의 현주소는 어디인가? 명함값 좀 한다는 사람들이 화려한 것만 찾아서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사이에 정작 한국사회를 벌어먹인 산업은 조선이나 자동차였다. 그 자랑스럽던 반도체와 휴대전화의 부가가치는 점점 떨어지고 있고, 재래식 산업이라고 천시당하던 중공업이 먹여살리고 있다. '일등 아니면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다'라는 구호에 사회 전체가 속고 있다는 느낌이다. 2등인 일본, 3등인 독일도 잘 살고 있지만, 오히려 1등인 미국이 더 힘들어 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과학이 굳이 응용산업과 연계되어 있을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필자도 100% 동의하는 말이다. 그러나 산업과 관계 없는 과학만 골라서 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우리 과학계도 첨단이라는 깃발 아래 줄서야만 훌륭한 과학자라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나노와 바이오라는 단어가 안붙으면 연구비가 안나온다는 말들을 하지만, 학자들이 관료들을 오히려 그렇게 가르친 것은 아닌지 역으로 묻고 싶다. 첨단을 한답시고 과학이 실질적 산업과 멀어지는 것보다 필자가 더 염려하는 것은, 첨단 유행 때문에 과학기술계가 더 무지해지고 있는 것이다. 신기술만 쫓아다니느라 기초가 너무 허술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첨단유행병이 돌면, 대표적으로 부실해지는 것이 학부강의다. 그렇게 기초교육을 부실하게 받고 졸업한 사람들이 또다시 ‘첨단 전도사’들이 되는 악순환이 되풀이될 수 있다. 책상에서 소설같은 연구기획서 쓰다가 사라져 버린 많은 벤처들을 보라. 기초가 약하면 응용력이 턱없이 약해진다. 하체가 부실한 육상선수 꼴이다.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 결론을 내야겠다. 솔직히 말하면, 19세기 이래로 연구는 이미 너무 많이 되어 있다. 새로운 연구의 대부분은 급수전개에서 제4차항 이상에 해당하는 고차항들로, 전체 함수값의 겨우 1% 이하를 수정하려는 지엽적인 것들이 대부분이다. 이제는 첨단만 지향할 것이 아니라, 이미 나와있는 수많은 이론과 특허들을 리뷰해봐야 할 시점인 것 같다. 시한이 지난 공짜 특허들로 대박이 날 수도 있고, 전체 판이 짜지지 않던 이론의 토대를 체계적으로 제공받을 수도 있다. 그래서 필자가 괜히 옛추억을 끌고와서 '고전읽기반'을 운운했던 것이다. 이제 철 지난 온고지신의 고전읽기가 과학기술계에서 유행했으면 좋겠다. 물론, 다양성이 무시될 수 없다. 혹자는 과거 회귀적 고전읽기로, 혹자는 미래지향적 첨단 연구로 담론을 넓히며, 균형을 맞추자는 이야기다. 그나저나 시절이 하 수상하니, 백마 대신 ‘진짜 광우병 내성소'를 타고 이 광야에 나타날 초인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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