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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소개: 날씨도 문화도 돈이다.

이상하게 요즈음 연속적으로 딱딱한 글만 쓰게 되어 자제하고, 이번 호에는 좀 더 재미있는 글을 올리려고 노력했습니다. 잠시 쉬어가는 기분으로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프랑스에서 5년 동안 살면서 박사학위를 마치고 곧장 미국으로 취직해서 10년 살다가 미국정부소속 파견 엔지니어로 다시 프랑스로 돌아왔습니다. 말도 불편하지 않고 문화도 익숙한 나라인데, 10년 동안 너무 미국화된 탓인지 재적응에 상당히 시간이 걸리는군요. 일년반이 지난 지금에야 겨우 주변환경을 조금 즐기는 수준이 되었습니다. 저와 같은 프로젝트를 위해 한국에서 파견나오신 분들도 계신데, 이분들이 프랑스에 대한 불만 중 가장 큰 것은 왜 돈을 내어도 서비스가 늦냐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인터넷 설치라든지, 자동차 수리 같은 것들 말입니다. 고객(돈)이 왕인 자본주의에 우리가 너무 중독된 탓이라고 제가 역설을 합니다만, 사실 저도 불편함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도대체 이렇게 게으르게 일해서 앞으로 어떻게 먹고 살려는지 남의 나라지만 걱정되는 구석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런 나라가 선진국이 맞을까요? 단지 조상을 잘 둔 덕에 그 후광으로 산다는 생각도 해보았지만, 과거의 후광을 걷어낸 현재시제로도 프랑스가 선진국인 것은 분명합니다. 제가 최근에 출판을 준비중인 책이 있습니다. IT를 중심으로 한 고도의 서비스 사회는 격심한 빈부격차를 야기하는 불평등 사회라는 주장을 하는 책입니다. 그래서 제조업이 강한 나라로 가자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프랑스는 제조업 국가도 아니고 IT 국가도 아닙니다. 주된 산업은 첨단기술과 문화-예술입니다. 한번도 사고가 없었던 원자력 발전은 고유가 시대인 요즈음 주목을 받고 있고, 납기를 못 지켜 늘 입방아에 오르는 호텔 같은 거대 여객기 A-380은 남불의 뚤루즈에서 조립되고 있습니다. 이런 정도야 돈벌이 되는 자명한 일입니다. 하지만, 현찰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던 문화예술도, 심지어 날씨까지도 첨단기술만큼이나 돈이 된다는 것을 요즈음 제가 남불에서 확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프로방스 지방의 거의 모든 도시들은 최근에 하지를 맞이하여 음악제를 했습니다. 6월 21일 토요일 늦은 밤시간에 시내에 나갔더니, 젊은이들로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더군요. 그리고 며칠 전부터는 시내에서 영어와 독일어가 많이 들립니다. 영국에서 미국에서 그리고 독일에서 엄청난 사람들이 오고 있습니다. 깐느 영화제, 아비뇽 연극제, 니스 꽃축제, 오랑쥐 재즈축제 등등 판을 벌려서 잘 놀기만 하면 수많은 외국관광객들이 와서 돈을 뿌려주고 갑니다. 프랑스는 일년에 자국국민숫자와 비슷한 7~8천만명의 관광객이 방문한다고 합니다. 원가가 적게 드는 관광산업은 순이익이 최소 50%는 될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수출품의 순이익은 매출의 10%가 안된다는 숫자와 비교해보면 열통터질 일이죠. 여기는 이렇게 게으른 인간들이 지중해 연안의 좋은 날씨에서 잘 놀기만하면 돈이 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박터지게 일해야 먹고 사는 우리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죠? 그러나 그것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프랑스는 관광 인프라가 아주 잘 갖추어져 있습니다. 도시간 연결을 위해 기차와 비행기 고속도로 등 교통이 잘 정리되어 있고, 대도시 시내교통은 지하철, 버스, 전차가 자연스럽게 공존합니다. 쇼핑에서는 흥정이 가능하지만, 말도 안 되는 바가지는 없는 나라입니다. 그리고 좀도둑은 있지만, 살인, 강간 등 살벌한 범죄율은 아주 낮은 나라입니다. 인근의 이태리와 스페인도 비슷한 문화를 가지고 있지만, 이런 면에서 프랑스보다 훨씬 못합니다. 프랑스는 정책이 아니라 체질상 예술을 중시하는 민족입니다. 하지만 정책도 체질을 잘 뒷받침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거리의 악사들 수준은 유명 교향악단의 전속주자 같고, 각종 공공 조형물에는 정교하고도 운치있는 디자인이 가미되어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골목의 악사들, 춤꾼들은 시에서 등록을 받아 경제적 보조를 해준다고 합니다. 자신들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놀기만 해도 돈을 버는 모습을 보니, 마치 골프 선수들이 좋아하는 운동하면서 잘 먹고사는 배아픈 장면이 떠오릅니다. 혹시 골프도 직업으로 하면 고역일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있나요? 고역이라고 느끼는 선수들도 많겠지만, 그런 사람들은 탑그룹에 속할 리는 없겠죠? 좋은 일을 즐겁게 해야 세계적인 성과가 있을 터이니까요. 제조업 중심의 견실한 독일, 일본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의 심한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문화 예술을 배경으로 한 프랑스, 이태리, 스페인은 큰 노력 없이 쉽게 사는 것 같고, 영어산업을 배경으로 한 영국과 아일랜드는 현재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서울시도 It's culture, stupid!라는 슬로건을 걸고 문화도시로 탈바꿈하려고 몸부림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우리 이공계는 체질상 너무 문화를 무시하는 것은 아닌지요? 이제는 정보통신에 컨텐츠를 결합하자며 이공학과 문화를 접목시키려는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컨텐츠 타령은 겨우 '끼워 팔기' 수준을 벗지 못하고 있는 느낌입니다. 우리가 직시해야 할 것은, 이번 세기부터 인류는 과거에 너무 많이 일해서 야기된 잉여생산을 나누고 즐기는 문화의 시대가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더 많이 생산하겠다고 동물들을 학대하고 환경까지 파괴하는 부지런한 사고뭉치들이 아니라, 게으른 낭만주의자들이 더 필요한 세상이라고도 해석될 수 있습니다. 벌써 연예인이 전문직보다 훨씬 돈 잘 버는 시대이니, 성적표에 연연해서 자녀들을 너무 닦달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아직 결혼도 안하셨는데, 자녀타령 이냐고요? 그런 분들에게는 멋진 왕자님, 공주님이 나타나시길 빕니다. 하지만 결혼 후에도 연예처럼 낭만적으로 사시길 바랍니다. 아파트 평수 늘려가는 목표에 올인 하는 것 말구요. 자! 어떻게 좀 읽을만 하셨는지요? 더 영양가 있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다음달에 찾아 뵙겠습니다. 세계 도처에서 건강한 여름 (혹은 겨울)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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