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프랑스 근무를 일년동안 하고 이번에 다시 휴가차 미국에 왔습니다.
좁지만 세련된 프랑스에 살다가 넓디넓은 미국에 발을 들여다 놓으니 다시 모든 것이 새롭고 어색합니다. 어쨌든 말년에 팔자 한 번 좋다는 생각을 하며 미국에서의 휴가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비행기를 타고 출입국을 하며 여권을 내보이거나 외국관공서에 신상서류를 제출해야 할 일이 있으면 늘 마음이 상당히 불편해집니다. 과거에 무슨 나쁜 짓을 한 이력이 있는 사람처럼 말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하니, 제가 제출하는 한국 서류에 상당히 가짜정보가 많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공문서 위조가 전공이냐구요? 아닙니다. 그런 기술이 있었다면 벌써 크게 한 건 해서 콩밥 먹으며 반성하고 있겠죠.
자! 이제 제 사연을 한 번 들어보시죠.
우선 호적에 저의 출생일은 1960년 8월 28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처럼 음력입니다.
어머니에게 물어보아도 양력날자를 모르시기에 대학시절에 제가 천문대에 연락해서 진짜 생일날을 알아냈습니다.
1960년 음력 8월 28일은 양력 10월 18일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생일은 이때에 쇱니다.
간혹 외국 관청에 일 보러 갔다가 생년월일을 물으면 8월28일 대신에 10월 18일이 입에서 툭 튀어 나와서 외국 공무원들을 썰렁하게 만듭니다. I am sorry! 하면서 수정하면 앞에 앉은 공무원 얼굴에서 두가지 표정이 보입니다.
“이 자식, 간첩아냐?“
아니면, “덜 떨어져도 유분수지, 자기 생일도 헛갈려?“
좌우간 테러문제가 있은 후, 이런 상황이 생기면 좀 심각해집니다.
그 다음으로는 결혼기념일입니다.
6월 10일이 결혼기념일.
아내에게 돈 적게 들이고 장미 한송이로 때워보려고 감언이설로 아부를 일쌈는 날입니다.
그런데 한 번은 한국대사관에 호적등본 공증받으러 갔다가 한 소리 듣고 말았습니다.
왜 결혼날자가 호적과 일치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럴리가 없는데 무슨 소리냐며 자세히 봤더니 오리지날 서류에 엉뚱한 날자가 적혀있어요.
아! 결혼식 날자가 아닌, 혼인신고 날자인 모양입니다만 전혀 생소한 7월의 어느 날입니다.
갑자기 속에서 웃음이 나오더군요. 제 주위에는 사고치고 여자가 배불러지니 할 수 없이 삼복더위 7월에 결혼한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하객으로 가서 짖궂은 농담을 질퍽하게 늘어놓았던 기억이 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금방 마음을 가다듬고 제가 대사관 직원에게 역공을 했죠. “선생님은 혼인신고일을 아시나요?” 돌아오는 대답은, “아니, 그냥 호적보고 옮겨적으시면 될 것을 왜 기억하냐고 물으세요? 공문서 대로 하시라구요!”엄청 창피했습니다.
논리에서 밀리니 즉시 꼬리를 내리고 자비를 구했죠.
외국에서는 결혼당일날 증인들 데리고 시청에 가서 혼인신고 합니다. 우리만 겪을 수 있는 촌극이죠.
하나 더 있습니다. 외국에서는 꼭 출생지를 묻습니다. 그런데 우리 호적에는 출생지가 의미 없고, 본적이 중요하죠. 저는 이 정보마저도 본적을 써 넣었다가 출생지를 적었다가 오락가락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경우 출생지 가지고는 어떤 정보에도 접근불가하기 때문에 본적을 적는 것이 맞는데, 어떨 때는 정말 출생지가 중요한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이 문제는 ‘촌놈’이 아니면 별 걱정없습니다. 출생지나 본적이 동일하게 서울이면 고민 필요 없으니까요. 외국에서는 출생지가 중요합니다. 모든 출생기록이 출생지 병원과 관청에 보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북출신이신 부모님들의 출생지를 적으라는 칸을 만나면 더 조심스럽습니다. South Korea라고 내 자신의 출신국가를 적다가, 부모님란에 오면 그냥 Korea라고 적습니다. 출생지를 North Korea라고 적어두면 얼마나 썰렁해집니까?
이런 것 말고도 엄청 많습니다. 영문이름을 띄어썼다가 붙였더니 전혀 다른 이름처럼 되어버려서 꼬치꼬치 질문을 받았던 기억도 있습니다. 아주 옛날 일이긴 합니다만, 국제운전면허증은 기간이 지나서 한국운전면허증으로 랜트를 하려고 들이밀었더니, 그 카드가 운전면허증인지 알 수 있는 영단어가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오렌지를 ‘어린 쥐’로 발음하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만, 국제화 시대에 이런 공문서 문제는 어떻게 좀 개선이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왜 직접 외교부에 건의하지 않았냐구요? 건의했다가 또 한소리 들었어요. 우리나라에서 결혼 성립 여부는 민법에 따르면 신고일을 기준으로 한답니다. 예식장에서 백 번 맞절해봐야 소용없대요.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죠? 그러니 외국을 떠도는 저 같은 뜨내기에 역마살 낀 인간들이 겪는 ‘팔자’려니 해야죠. 아 참! 위의 ‘어린 쥐’에서 제가 띄어 쓰기 한 것, 눈여겨 보셨나요? 일부로 한 짓입니다. 인터넷에서 처음 봤을 때, 곧 바로 어린(Young) 쥐(mouse)가 생각났기에 중간에 빈 칸을 넣어보았습니다. 이번 호 내용이 좀 시니컬해서 웃자고 한 소리입니다. 건강한 여름 되시길 바랍니다.
아 정말 생각지 못했던 부분인것 같네요. 외국에 나가면 정말 저럴일이 생길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