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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전사, 교원의 길로 내딛는 첫걸음

독실한 크리스찬 이명주씨 (건축가, 명지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內定)는 이제껏 자신이 일궈온 결실을 모두 하나님의 축복으로 돌린다. “성숙하지 못한 신앙으로 하나님 앞에서 미련하고 고집스러웠던 저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끝까지 저를 버리지 않으시고 항상 제 안에서 역사하셨습니다. 제가 87년도에 명지대학교를 선택한 이유를 며칠 전에야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바로 오늘을 선물하시기 위함이셨습니다.” 명지대 건축학과 교원임용 4차 시험인 교목님과의 면접 중 첫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이명주 씨는 명지대를 졸업한 후 홍익대 대학원을 거쳐 독일 베를린 공과대학 건축공학과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이수했다. 인터뷰 도중 가장 크게 와 닿은 부분은 그녀의 근면함과 성실성이다. 그런 그녀의 성격이야말로 ‘오늘의 선물’을 있게 한 원동력임에 분명하다. 수학기간 동안 다수의 작품활동은 물론 수려한 수상경력을 내세우리만큼 그녀는 건축분야에서 내로라 하는 존재다. 그리고 앞으로 국제화 시대에 걸맞는 우리나라 여성 건축인으로서 앞장 설 인물이다. 이명주씨가 KOSEN을 알게 된 계기는 우연하게도 남편을 통해서다. 1999년 남편이 베를린 공과대학 한국인 학생회 회장을 맡아 봉사하고 있을 무렵이다. 때마침 한민족과학자대회가 베를린에서 개최돼 그곳에서 KOSEN 한선화 실장을 접하고 난 후 그녀는 KOSEN이라는 인연의 굴레를 쓰게 된 것. KOSEN의 정보보상제도에 대한 설명을 한 실장으로부터 자세히 듣는 순간 건축전문가이드, 통역, 기본계획안 등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하던 당시의 유학생활에 KOSEN은 작은 희망의 불꽃과도 같았다. 이후 실제로 보상을 2회 정도 받으며, KOSEN 카페인 ‘광장’의 게시판 신설 소식을 접하고는 카페마담역에 추천을 받는다. 카페를 맡은 초기엔 주경야독이 절실한 이 시기에 게시판에서 잡담이나 주고 받아서야 되겠냐는 남편의 반대에 부딪혔지만, 세계 곳곳의 한민족 과학자들과의 유대관계를 유심히 지켜보며 요즘은 오히려 칭찬을 받는단다. 작년까지 토실토실 살찌운 ‘광장’의 마담 자리를 내놓는 것이 여간 서운하지 않지만, 아끼는 만큼 새로운 변화와 활성화를 위해 카페의 일원으로 남기로 했단다. 가끔 2003년 새로 임명된 ‘광장’의 3대 카페마담을 보면 예전 그 시절의 모습을 보는 듯 불안 반 기대 반으로 웃음이 절로 난단다. 어느 단체건 이끌어 나가는 위치가 개인의 삶을 얼마나 희생해야 하는지, 하물며 사이버 상의 만남을 현실로 이행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를 알기 때문이다. 카페 마담 역을 물러난 또 하나의 이유는 앞으로 걷게 될 교원의 길을 위한 준비과정이 필요했던 탓이다. 베를린에서 건축가로서 활동하던 그녀가 그 길을 접었던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바로 ‘꿈과 희망을 불어 넣어주는 강사’라는 말을 듣고 싶었단다. 그녀만의 아픔이랄까… 그녀는 그간의 인생역정을 전율이 흐를 정도의 감동과 함께 눈물로 털어 놓는다. 일류대학 졸업생이 아닌 자신의 명찰이 부끄러워 마치 고시라도 준비하듯 잠을 설치며 타 대학원에 도전했지만, 그곳에서도 여전히 그녀의 명찰은 늘 그녀를 따라다녔다. 이제는 자랑스럽다는 그녀의 명찰, 그녀 말대로 영원히 바꾸고 싶지 않은 하늘이 내려준 선물이 아닐까. “독일에서도 유독 한국사람들 사이에는 출신교를 따지며 선후배를 챙겨주는 관습이 존재했습니다. 명지대 명찰을 내 손으로 뗄 수 없다면 명지대생이 얼마나 능력 있는지, 얼마나 당당하게 살아나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겠다는 각오로 살아왔습니다.” 그녀는 후학들에게 유학생활을 하면서 ‘최선을 다하라!’, ‘공부 열심히 하라!’는 식의 상투적인 말을 남기고 싶진 않단다. 그러나 꼭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자신이 아는 지식이 마치 자기만의 것인 양 움켜쥐지 말라는 거다. “’지식’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지식을 아낌없이 주어라” 둘을 보여줄 시간에 하나를 알차게 보여줄 방법은 없는가? 그 도움을 받는 사람으로 하여금 미소짓게 할 수는 없는가? 누군가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결국 자신을 위한 투자라는 그녀의 변론이다. 4차에 걸친 고된 시험을 치른 이후 그녀는 전라남도로 자료수집 여행을 다녀왔다. 심판대 위에 올려진 심정을 가라앉히고 싶기도 했지만, 그보다 먼저 그녀의 관심사인 국민보건복지시설물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목포, 영암 등지에 산재한 시ㆍ군 보건소를 돌아보며 각실의 배치와 기능 및 장래 증축내역 등을 조사했단다. 그 와중에 영암초교 구강치료실 도면 변경에 대한 감사의 선물로 건네 받은 노란 호박 한 덩이는 명지대 인사처의 축하메시지와 함께 영원히 가슴 한 켠에 잔잔한 여운으로 남을 것이란다. 9년의 외국생활을 마치고 투명한 학교로 다시 돌아온 그녀! 돌아왔을 때 느낀 처음의 감동을 상기하며 그녀는 늘 시작하는 기분으로,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게 살 것을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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