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SEN을 만들고 다듬고, 두 명의 KOSEN愛人
- 1613
- 5
- 1
KOSEN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만큼은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들이 있다. 20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KOSEN의 성장과 혁신의 모든 순간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뚝심 있게 이끌어 온 이들, 한선화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정책본부장(전 KISTI 원장)과 윤정선 KISTI 책임연구원(전 KISTI 과학기술정보센터장)의 얘기다. 한선화 본부장은 처음 KOSEN의 틀과 정체성을 만든 것은 물론, 1999년부터 2017년까지 수차례에 걸친 KOSEN의 혁신을 진두지휘했다. 윤정선 책임연구원은 2000년부터 현재까지 사업을 다듬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며 탄탄한 성장의 토대를 만들어왔다. 이들이 말하는 KOSEN의 20년은 어떤 것일까.
한선화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정책본부장(전 KISTI 원장), 윤정선 KISTI 책임연구원
처음 KOSEN의 틀을 만들 당시의 이야기를 해주세요.
한선화 KOSEN이 발족한 1999년 당시는 월드와이드웹(WWW)이 들불처럼 퍼져나가던 시기였습니다. 그에 따라 유통되는 정보의 양은 많이 늘어났지만, 동시에 필요 없는 정보, 일명 정보쓰레기(infosludge)도 급증했어요. 자연스럽게 꼭 필요한 정보만 걸러 쓰고 싶다는 욕구가 커졌고, 그것은 과학기술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때 과학기술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해외의 동포과학자를 활용하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게시판 형식의 웹페이지를 만들어 국내 과학자가 원하는 정보를 해외의 동포과학자가 정확하고 빠르게 전달할 수 있게 하면, 과학자들이 정보를 수집하고 걸러내느라 불필요한 시간을 허비할 필요가 줄어들지 않겠냐는 것이었습니다. 그 아이디어가 KOSEN의 시발점이 됐습니다.
이렇게 처음에는 단순한 자료교류 게시판 정도의 개념이었으나, 사업을 운영하면서 저를 비롯한 KOSEN팀은 ‘암묵지’(학습과 경험을 통해 개인이 체화한 지식)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암묵지는 사람 머릿속에 들어있는 지식이어서 휴먼네트워크가 아니고는 확보하기 어려운데, KOSEN에는 국내·외 한인과학자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있으니 이를 이용하자는 생각이었어요. 그렇게 ‘info on Demand’(이후 What is?로 변경)를 시작했습니다. 이 메뉴를 통해서 회원들은 R&D를 수행하며 체득한 경험과 노하우, 실패를 통해 얻은 교훈 등 살아있는 암묵지를 교류했습니다. 연구 과정에서 직면하는 세부적인 문제에 대해 서로 자율적인 답변을 주고받기도 하고, R&D 도중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 도움을 요청하면 전 회원이 실시간으로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문제해결을 도와주는 경우도 많았어요. 이러한 지식교류 서비스가 정착하면서 KOSEN은 ‘한인과학자들의 휴먼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암묵지 등 고급 지식정보를 교류하는 웹2.0(사용자 참여 중심의 정보서비스) 형태의 커뮤니티’라는 정체성을 확립하게 됐습니다.
윤정선 저는 출범 이듬해에 KOSEN에 들어왔는데, 처음부터 정말 독특하고 신선한 사업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특히, 다른 사람들이 두뇌유출이 심각하니 이를 막아야 한다고만 생각할 때, KOSEN은 해외로 나가는 과학자를 꼭 잡아야 할까? 오히려 파견 보냈다고 생각하고 선진국의 기술과 정보를 흡수해서 전달해주는 존재로 십분 활용하는 게 낫지 않을까? 이런 발상의 전환을 하더군요. 서비스도 기존의 어떤 사이트에도 없던 새로운 것들이었습니다. 이때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혁신적인 발상을 하고 차별화를 추구하는 것은 KOSEN팀의 문화가 됐습니다. 저 역시 그랬고요. 지금도 KOSEN의 가장 큰 장점이 무엇인지 물으면, 유일무이한 독창적 사이트라는 점이라고 말씀해주시는 회원들이 많습니다.
KOSEN은 자타공인 성공한 사업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한선화 사람들을 특정 정보 사이트로 유인하려면 정보, 재미, 이익 이 세 가지가 필요한데, KOSEN은 이를 모두 갖췄습니다. 첫 번째, 유익한 정보가 있습니다. KOSEN에 들어오면 과학기술 각 분야의 핵심적인 논문을 전문가들이 분석·요약한 리포트와 암묵적 지식 등을 확보할 수 있으니까요. 두 번째로 재미가 있습니다. 아무리 유익해도 재미가 없으면 꼭 필요할 때만 접속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KOSEN에는 10년 이상 매일 출근도장을 찍듯 출석하며 열정적으로 활동하는 KOSEN人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 이유는 오프라인 행사와 커뮤니티를 통해 친분을 쌓거나 KOSEN의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전 세계 회원과 소통하며 재미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세 번째로 KOSEN에 오면 실질적인 이익이 생깁니다. 초반에는 열심히 정보를 제공하는 회원에게 꽤 풍족한 비용을 지급했어요. 과학기술부가 이 사업을 절대적으로 믿어준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발족할 당시가 IMF 구제금융 사태를 겪은 직후라 유학생들이 굉장히 힘들어할 때였는데, KOSEN이 지급하는 정보 보상비용을 디딤돌 삼아 무사히 유학을 마친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또 KOSEN의 다양한 서비스를 통해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고 성과를 내는 것도 큰 이익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렇게 삼박자가 맞은 덕분에 지난 20년간 성공적으로 사업을 추진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윤정선 가장 큰 성공요인 중 하나는 전문성이라고 생각합니다. KOSEN은 회원이 만들어가는 사이트예요. 분석 논문을 선정하고 가공하고, 지식을 올리고 공유하는 모든 것을 회원이 다 합니다. KOSEN팀은 사이트가 잘 굴러가도록 방향성을 제시하고 약간의 기름칠을 해 줄 뿐이에요. 이렇게 자유로운 정보의 생산·공유가 이뤄지는 웹2.0 서비스들은 암묵적 지식을 활발하게 생산한다는 장점이 있지만, 정보의 정확성·전문성 확보가 어렵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특히 KOSEN의 정보는 과학기술 R&D에 활용되는 것이어서 정확성이 생명이기 때문에 이 문제를 꼭 해결해야 했어요. 그래서 매년 KOSEN전문가를 선정해 정확성·전문성을 담보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5명으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엄격한 심사를 거쳐 과학기술 주요 분야에서 매년 200명 가까운 전문가를 선정하고 있어요. 이분들이 자료 추천이나 분석원고 검토를 해주기 때문에 KOSEN이 생산하는 자료는 믿고 쓸 수 있다는 것이 과학자들 사이에 정평이 나 있습니다. 그것이 성공의 핵심 요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KOSEN전문가라고 하면 과학기술계에서 꽤 알아줍니다. 이력서나 명함에 전문가 경력을 넣는 분도 많아요. 그러다 보니 점점 더 많은 분이 전문가 참여 신청을 하시고, 저희는 더 실력 있는 전문가를 모실 수 있게 되고, 그 결과 KOSEN의 지식정보 수준까지 높아지는 선순환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 혹은 보람있는 일은 무엇이었습니까?
한선화 처음 사이트를 오픈해놓고 몇 달 동안 회원확보를 하느라 거의 매일 밤 자정까지 연구실을 떠나지 못했던 게 기억이 납니다. 듣도 보도 못한 독특한 개념의 사업인 만큼 홍보하려면 직접 발로 뛰어야 했어요. 전 세계 재외한인과학기술자협회 사이트를 매일 찾아 들어가서 게시판에 글 올리고 메일로 주소 보내고 하느라 하도 마우스를 많이 써서 손바닥에 물집이 다 잡혔었습니다. 그렇게 회원을 3천 명까지 끌어올려 놓으니까 그때부터 입소문이 나면서 회원이 급증하기 시작하더군요.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KOSEN을 토대로 성장한 회원들이 세계 각지에서 학위 잘 받고 좋은 곳에 취업해서 훌륭한 과학자로 자리 잡은 걸 볼 때입니다. 아직도 해외에 나가면 KOSEN 회원이라면서 반갑게 맞아주는 분이 많아요. 휴먼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사업은 이런 게 참 보람이구나 싶습니다.
윤정선 맞아요. 회원들이 KOSEN 덕분에 잘됐다는 얘기를 들을 때가 가장 즐겁습니다. 특히, KOSEN팀이 나서서 연계해 준 게 아니라, 다양한 KOSEN 서비스를 활용하는 과정에서 회원들이 서로 알음알음 네트워크를 형성해 공동연구를 하거나 원하던 기관에 성공적으로 취업하는 사례를 보면 더 보람 있습니다. KOSEN이 스스로 움직이는 지식생태계를 형성했다는 뜻이니까요.
한선화 다른 회원의 질문이나 자료요청에 놀랍도록 빠른 답변을 해주는 회원들을 보면 깜짝 놀랄 때도 많았습니다. 마치 그런 질문이 올라오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10분도 안 돼 답변을 해주는 회원도 있고, 심지어 KOSEN팀보다 더 오랫동안 KOSEN에 접속해 있는 분도 봤어요. 이렇게 자율적 질의응답이 잘 이뤄지는 네트워크가 있다는 걸 외국 과학자들은 너무 부러워합니다. 또 인문사회 분야에도 이런 사이트가 있으면 좋겠다고 부러워하는 분도 많이 봤어요. 아무리 열심히 답변해도 그 회원에게 돌아가는 것은 정보왕, 지식왕 같은 타이틀과 한 달에 한 장 문화상품권이 전부에요. 그런데도 바쁜 시간을 쪼개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선뜻 전해주는 것은 ‘나눔의 기쁨’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그저 같은 과학자를 돕는 게 좋아서, 나도 도움을 받았으니 갚아야지, 이런 순수한 마음이 전부에요. 이런 모습을 볼 때 마음이 따뜻해지고 보람도 컸습니다.
앞으로 KOSEN이 어떻게 발전하기를 바라십니까?
한선화 KOSEN은 정체성이 매우 확실한 사업이고 기본적으로 애정과 봉사, 나눔 이런 마음이 바닥에 깔려 있습니다. 그래서 담당자들이 바뀌지 않고 회원과 끈끈한 휴먼네트워크를 계속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50년 60년 후에도 KOSEN이 계속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클래식 영화나 LP판처럼 따뜻한 사람 냄새가 나는 그런 커뮤니티로 오랫동안 남기를 바랍니다.
윤정선 지금껏 그래왔듯, KOSEN만의 차별화된 서비스를 계속해서 개발해 나갈 계획입니다. SNS가 급성장하면서 예전과는 달리 글로벌 휴먼네트워크를 형성할 방법이 많아졌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KOSEN에서만 가능한 것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KOSEN처럼 신뢰할 수 있는 사이트가 아니면 아무리 네트워크가 있다고 해도 국제공동연구나 국제협력 사업을 하기는 어렵습니다. 또 해외 회원을 활용해 전 세계 과학기술 R&D 정책을 비교하면서 발전적인 정책수립의 기반을 마련할 수도 있고요. 더 나아가 KOSEN이 과학기술에 관한 다양한 실험을 하는 플랫폼 역할도 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어떤 과학자가 새로운 R&D사업에 대한 아이디어를 냈다고 치면, 전 세계 과학자들이 아이디어를 덧붙이고 여기에 정책입안자가 참여하고 펀딩까지 붙여 구체적인 사업을 실현하는 겁니다.
앞으로 KOSEN은 점점 더 새로워지고 과학기술계에서 차지하는 역할도 커질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KOSEN 회원들의 성장이겠지요. 회원의 가치창출을 극대화를 목표로 앞으로도 최선을 다하는 KOSEN이 되겠습니다.
한선화 전 KISTI 원장님, 윤정선 KOSEN 책임자님 두분은 KOSEN의 산 증인이십니다. KOSEN 20주년을 맞이하여 두분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