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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 없는 암기식 과학교육이 이공계 기피 불렀다-현종오 과학교사협회장

과학교사들이 실험을 통한 과학교육의 정상화를 내걸고 과학교사협회를 창립했다. 지난달 17일 충북 수안보에서 열린 협회 창립대회에서 ‘실험을 통한 과학교육운동’을 이끌어온 현종오씨(47,성동기계공고 교사) 첫 협회장으로 선출됐다. 서울사대에서 화학교육을 전공하고 80년부터 교사생활을 시작한 그는 실험을 통한 과학교육과 과학의 대중화를 위해 많은 활동을 해온 인물이다. 그는 91년 후배 교사들과 함께 ‘신나는 과학을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교사단체를 결성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그 뒤 이 단체는 입시위주, 문제풀기 위주의 파행적 과학교육에서 벗어나 실험을 통한 과학교육을 정착시키도록 하는 데 앞장서 왔다. 또한 그는 과학대중화에 관심 있어서 KBS 과학탐험대, SBS 호기심천국, EBS 요리조리팡팡 등에 출연하거나 자문을 해오고 있다. 99년에는 한국교원대에서 화학교육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대한화학회 홍보실무이사와 초중등분과 초대분과장을 맡고 있다. 이번에 그는 자신이 만든 ‘신나는 과학을 만드는 사람들(서울)’외에 ‘화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광주)’ 전교조 과학교육분과 등 10여개 단체를 묶어 협회를 창립했다. 창립멤버는 현재 560명에 불과하지만 개인 회원을 늘려 2만명의 과학교사들을 모두 어우르는 명실상부한 과학교사협회를 만드는 것이 현종오 회장의 꿈이다. 그를 만나 보았다. -협회를 만들게 된 계기는? =2001년에 미국 세인트루이스에서 열린 미국과학교사협회(NSTA)에 갔다가 큰 자극을 받았다. 회원이 6만명인 이 협회는 열기가 대단했고, 새벽6시부터 밤까지 토론과 발표가 진행되는 데 놀랐다. 새벽부터 행사를 하는 것은 시간을 아껴 수업 결손도 줄이기 위한 것이었다. -협회의 모태가 된 작은 과학교사 모임이 많다. 그 역사에 대해 말해 달라. =1986년 서울공고 교사로 일하면서 과학교사모임을 처음 시작했다. 전교조 운동도 중요하지만 전문적인 교과모임도 필요하다고 느껴 시작한 지 벌써 18년이 됐다. 그 이후 지방의 교육과학원 소속 교과교육연구회 등을 중심으로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모임이 만들졌고 신과람(신나는 과학을 만드는 사람들)처럼 큰 단체가 생기기도 이제 전국모임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어느 정도 형성됐다. -현재 초중고교의 과학교육을 어떻게 보나? =현장 과학교육은 곪아 터질대로 터질 지경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학은 다른 과목과 달리 실험을 해서 자연의 원리를 이해해야 하는 과목이다. 문제풀기식 입시와는 거리가 먼게 과학이다. 하지만 고등학교에서는 선생들이 실험에서 손을 뗀지 오래다. 이공계기피도 그 연장선상에서 보아야 한다. 나 자신도 부끄럽게 생각한다. 그러니 아이들이 과학을 싫어하고…. 이공계 기피 현상에는 잘못된 과학교육에도 상당 부분 책임이 있다. 신참 젊은 교사들은 처음에는 실험을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지만 입시의 중압감 아래 길어야 6개월에서 1년이 지나면 의욕이 꺾이게 된다. 아이들은 열심히 하는 선생을 좋아하지만 교사들 사이에서 실험 열심히 하는 교사가 왕따 되는 분위기이다. 교장도 열심히 실험하는 교사보다 시험점수 올리는 데 더 관심이 많다. 학교마다 실험실소모품으로 1400-2000만원의 과학실험실 비용이 있다. 그런데 이 비용을 다 소모는 하지만 실험은 하지 않는다. 어디론가 돈이 블랙홀처럼 새는 것이다. 중학교까지만 해도 실험을 어느 정도 하지만 고교에 가면 실험은 거의 안한다. 특히, 서울 강남권은 학생들에게 실험을 열심히 시키면 부모의 항의가 들어온다. 사람들이 철저히 입시에 감염돼 있다. 실험보다 문제를 잘 푸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교장도 학교 학생들 평균을 높여야 하고, 겉보기 등급이 중요하니까 실험을 하면 눈총을 준다. -그렇다면 과학교육이 잘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과학은 그 자체를 즐거움으로 느껴야 한다. 4-5살 때 호기심 많던 아이들이 문제풀기를 하면서 과학에 대한 호기심과 탐구심을 마음 속 깊이 묻어 버리게 된다. 암기를 해서 과학을 배우는 탓이다. 실험을 자기가 마음대로 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부모도 자신이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고 답을 같이 찾아보는 부모가 가장 훌륭한 부모다. 학교 과학교육도 저기에 고기가 많이 있다고 가르쳐주는 교육이 아니라 스스로 고기를 잡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요즘 실험 과학행사를 하다보면 옆에 있는 부모가 장치를 빼앗아 대신 해주는 것을 보는 경우가 많다. 이럴게 아니라 어려운 과정을 체험하게 해주고 기다려야 한다. 진로를 결정할 때도 밥만 생각할 게 아니라 꿈을 동시에 생각할 수 있는 아이에게 얘기 해줄 수 있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참여 정부를 외치고 있다. 교사들의 과학교육정책 참여는 확대되고 있나? =그동안 교사들은 과학교육과정만들 때도 정책을 결정할 때도 소외돼 왔다. 교육청은 현장의 과학교육 실태를 정말 모른다. 영국의 사범대 교수는 일주일에 한번씩 수업현장에 가서 연구를 한다. 게다가 한국의 사범대 교수들은 영재교육과 교사연수에 매달려 현장으로 갈 시간이 없다. 하지만 새정부 들어 조금씩 교사들의 참여가 확대되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으로 본다. -사대를 없애고 교육대학원을 만드는 데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장기적으로는 그렇게 해야 한다고 본다. 학부 전공이 기초가 돼서 교육대학원에서 교육학을 배우면 교사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교육 전문가로 전문성을 갖고 대접을 받을 수 있고 질 높은 교육자가 될 수 있다. 서울대에서 사대를 없앤다는 얘기가 오래 전부터 나왔지만 잘 안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도 대학에 사대가 있는 나라는 극히 드물다. -대한화학회가 교사들의 활동을 많이 도운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렇다. 이공계 기피가 심각해지면서 3년 전 대한화학회가 고교 교사들에게 문호를 개방해 활동을 지원해주기 시작했다. 화학회에서 1년에 500만원 씩 주는 지원금으로 우선 교사들을 위한 인터넷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인터넷 활동을 중심으로 여러 교사 모임들이 모여 발표도 하면서 전국 단위의 모임을 결성하자는 움직임이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다행히 교육부도 올해부터 과학교사들의 활동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교육부는 교사들이 교과교육연구회를 구성해 연구계획을 제출하면 1년에 1천만원 정도 지원을 해준다. 그러려면 전국단위의 지회가 10개 이상 되어야 하기 때문에 교육부에 협회를 등록하고 창립대회를 17일 가진 것이다. -과학교사들의 활동이 가장 활발한 곳은 어디인가? =광주의 화사모 즉 화학을 사랑하는 교사들의 모임은 아주 열심히 활동한다. 다른 지방과 달리 전남은 물리와 화학 교사모임이 나누어져 있을 만큼 활발하다. 경기도 과학교과교육연구회도 규모가 크고 잘 하는 단체다. 서울의 신나는 과학을 만드는 사람들도 앞서나가는 단체 가운데 하나다. -현재 회원이 560명뿐이다. 물화생지 다합쳐서 중고교 과학교사는 2만명 정도 된다. 어떻게 회원을 늘릴 것인가? =출발은 단체가 모여했지만 개인회원들이 들어와서 실질적인 모임 되어야 한다. 지금은 지역모임의 연대적 성격이 더 강하다. 좀더 많은 과학교사 대중을 포괄하는 조직이 되어야 한다. -앞으로의 활동계획은? =우선 당장 해야 할 두가지 프로젝트가 있다. 하나는 SSC 키트 개발이고, 또 하나는 학교 실험실 현대화이다. SSC 키트 개발 및 보급사업은 한국과학문화재단이 지원하고 있다. SSC는 스몰 스케일 케이스트리의 약자로 작은 키트로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는 기자재이다. 이 교육기자재는 미국 콜로라도대에서 만든 것이지만 우리 실정에 맞게 개량하려 하고 있다. 요즘 중고교에 가면 보통 4명이 한조가 돼 실험을 한다. 그러나 실험은 학생 개인이 마음대로 해보고 체험할 수 있어야 한다. 이 키트는 그런 조건에 맞는 키트이다. 화학에서 시작은 했지만 물리 등 다른 분야를 포함해 모두 11개의 세트를 개발할 예정이다. 하나의 세트로 여러 가지 실험을 해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동그란 금속판을 놓고 금속과 금속 사이의 전압을 측정할 수 있는 기자재가 있다. 전해질 속에서 금속판을 알미늄, 아연, 구리, 주석, 철 조각으로 바꿔가면서 각 금속 전극의 이온화 포텐셜을 재면 학생이 이온화의 개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왜 전지가 전기를 발생하고, 금속에 녹이 잘 슬고, 어떻게 하면 녹스는 것을 방지하는 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학생이 빗물을 담아와 동네의 산성비 지도를 만들 수 있는 기자재도 있다. -실험실 현대화는 어떻게 하나? =교육부는 지난해 과학교육발전위원회 발의에 따라 국가 프로젝트로 5년 동안 2700억원을 학교 실험실 현대화에 투자하기로 했다. 몇 년 전 정부는 학교마다 수천만원을 정보화사업 에 쏟아 부었으나 소프트웨어가 없는 상태여서 무용지물이 됐다. 실험실 현대화도 자칫 학교 정보화사업의 실패를 되풀이할 가능성이 높다. 협회는 이렇게 되지 않도록 감시 자문하는 역할을 할 생각이다. 실험장비만 사놓으면 실험교육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교육부의 큰 오산이다. 실험실 현대화의 핵심은 맨파워 즉 교사의 능력이다. 교사들이 실험을 할 수 있도록 연수의 기회를 확대해야 한다. 그래서 전국과학교사연합연수를 8월에 하려고 한다. 특히 올해 9월에 분당에서 개교하는 대안학교가 있다. 한반에 20명씩 시민단체가 100억원을 모아서 학교를 만들었다. 협회는 우리 아이디어를 여기에서 우선 진정한 실험 교육으 구현해보려고 한다. -장시간 인터뷰에 감사한다. 협회가 입시 교육에 왜곡된 과학교육을 정상화하는 데 견인차 역할을 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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