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노 바늘 이용하면 물방울이 잘 굴러요.”
2003-11-28
김창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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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뾰족한 바늘 끝에서 물방울이 굴러간다면 믿을 수 있겠어요. 저도 신기한 건데...더 잘 굴러요. ”
최근 금속의 바늘 끝처럼 날카로운 표면에서 물방울과 같은 액체를 굴러다니게 할 수 있는 기술이 선보여 세계 과학기술계를 놀라게 하고 있는 재미 과학자가 있다. 주인공은 미국 UCLA 항공우주공학과 김창진 교수(47)다.
그는 금속과 같은 표면에 나노 크기의 초미세 바늘판을 형성 다른 물질이 전혀 달라붙지 않도록 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일부는 결과가 나왔다. 김박사가 밝힌 ‘바늘위를 굴러가는 물방울’의 원리는 이렇다. 물질의 금속 표면에 나노 크기의 초미세 바늘을 촘촘하게 심어놓으면 유체가 딱딱한 고체 표면 대신 공기와 부딪히는 효과를 내면서 마치 미끄러지듯 표면 위를 굴러간다는 것이다. 김박사는 나노 바늘판이 형성된 표면에 물을 한 방울 떨어트리면 편편한 표면에 비해 99% 이상의 방수 표과가 발휘되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나노 크기의 바늘 모양을 더 예리하게 하면 할수록 다른 유체 물질에 대한 반발력은 더 커진다고 설명했다. 현재 방수처리 물질로는 테플론이 널리 이용되고 있으나 나노 기술을 이용하면 테플론의 표면에 비해 훨씬 더 큰 유체에 대한 반발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물방울은 대게 표면에서 30도가량 기울여야 잘 구르는데 이 기술을 적용한 표면에서는 미세한 움직임만으로도 구르게 됩니다. 조금 더 나아가 극미세의 전기로도 이리저리 움직이는 효과를 만들 수 있습니다. 앞으로 다양한 용도로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기술은 일단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될 것으로 보인다. 군사 목적으로 개발한 것도 사실이다. 우선 최첨단 선체에 사용될 것으로 보인다. 잠수함 등에 사용될 전망이다. 이 기술을 적용해 잠수함의 표면을 처리하면 반발력이 감소해 마찰이 적어지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그는 밝혔다. 빠른 속도로 물살을 헤치고 나갈 때 저항이 적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상업적으로도 무궁무진하다고 전했다. 나노 바늘 층을 비옷에 코팅 처리하면 빗방울이 전혀 스며들지 않고 항상 마른채로 유지된다고 설명했다. 다만 비용이 문제라고 주장했다. 좋은 재질이라고 해도 1억원이나 되는 소모품을 구입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적용할 수는 있지만 용도가 한정적이라는 것이다.
이밖에 김교수는 이 기술을 적용하면 송유관 등 긴 거리의 배관의 내부를 코팅 처리해 유체의 흐름을 훨씬 빨리 할 수 있는 등 다양한 적용이 가능하다고 부연했다.
김교수는 아직 이번 기술개발에 대한 공식적인 발표는 미루고 있는 상황이다. 조금 더 적용 대상을 확대해 볼 생각이다. 2004년 2월 쯤 공식적인 발표할 것이라고 소개했다.
김교수는 지난 83년에 서울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다음 미국으로 건너갔다. 아이오와 주립대에서 석사를 하고 UC 버클리에서 로봇공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가 로봇 공학을 전공한 것은 그의 성격 때문이라고 소개했다.
뭔가 항상 만지작 거리는 것을 좋아하는 김교수에게 로봇은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천생의 과학자다. 하지만 그는 로봇공학을 전공했던 박사 과정 시기를 자신의 인생 중에서 가장 실망했던 시기라고 털어놓았다. 로봇 공학이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따른 방향이었기 때문이다.
“로봇 공학을 전공한 것은 실제 로봇에 대한 기술을 개발하고 만들 줄 알았어요. 그런데 실제로는 수학 등 학문적인 부분만 하는 거예요. ‘귀국해야 하나’하고 수없는 밤을 고민했었어요.”
하지만 로봇 공학이 지겨워지던 시기에 새로운 학문이 다가왔다. 다름 아닌 MEMS였다. 그는 MEMS(초미세가공기술)로 과학자 인생의 돌파구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천성적으로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그에게 당시 새로운 학문인 MEMS는 굉장히 재미있는 학문이었다.
“MEMS에 대해서는 어느 곳에서도 배울 수 가 없었습니다. 지금은 과학자라면 누구나 MEMS를 알지만 당시 만해도 거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MEMS는 전자과에서 시작했어요. 기계과 학생이 전자과에 가서 배웠어요. 정말 재미있게 배웠어요. 뭐 그런 거 있잖아요. 당구를 처음 배울 때 경험을 보면 잠 잘 때도 천장이 당구대로 보인 다는 말 있지요. 제가 처음 MEMS를 배울 때가 그런 심정이었습니다.”
사실 김교수는 대학교수가 되는 것이 꿈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는 민간이든 국가연구기관이든 연구기관에 들어가서 제품이나 기술 개발을 하고 싶었다는 것. 하지만 당시 그가 공부한 MEMS로는 어느 곳에도 들어갈 수 없었다. 아무도 받아주는 기술자가 아닌 것이다. 당시 MEMS는 그만큼 획기적인 기술이었기 때문이다.
김교수의 대학교수에 대한 개념은 따분하다는 것을 간직한 사람이다. 경북대 영문과 교수를 지낸 부친을 보면서 대학교수는 정말 재미없는 직업 쯤으로 생각했다. 결국 갈데가 없어서 교수의 길로 들어설 수밖에 없었다. 남들이 들으면 행복한 고민이라고 할 수도있다.
UCLA에 오게 된 것도 이런 선구자적인 위치와 무관치 않다. 미국에서는 거의 처음으로 MEMS 전공 교수를 선발했다. 전자과에서는 MEMS를 전공한 사람들이 일부 있었지만 기계과로서는 처음이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MEMS와 관련 당시에 벌어진 한가지 에피소드를 말했다. 90년도에 한국에서 세미나를 했을 때의 이야기다. 정부출연연구기관과 민간연구기관의 연구원들과 교수들을 모아놓고 MEMS 기술에 대해 1시간 여 동안 강의를 하고 나온 질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얼토당토 없는 질문이었다고 회상했다.
“아주 재미있는 것을 하시네요. 공상과학을 하시네요”라고 하는 참가자가 있는가 하면 “살아 생전 그 기술이 적용된 것이 나올수 있을까요”라는 질문까지 한 두 가지가 아니라고 밝혔다.
한국에는 자주 오는 편이다. 그의 자녀가 대전에 있는 외국인 국제학교에 다니기 때문이다.
젊어보이는 비결에 대해 물어봤다.
그는 젊게 보이는 것 때문에 손해가 많다고 설명했다.(현재 47세임) 일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많이 만나야 하는데 너무 어리게 본다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한국이 미국보다 불편하다고 말했다. 한국은 나이를 따지는 문화이기 때문이다. 처음 보는 사람들은 건방지다는 말을 많이 한다. 나이를 너무 젊게 생각하고 하는 소리다.
그가 팀장으로 있는 랩(LAB)에는 현재 24명이 공부하고 있다. 한국인도 몇몇이 섞여있다.
그는 몰리는 학생들 때문에 약간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연구가 천직이고 맡은 일이 있으면 끝까지 책임지는 성격 때문이다. 학생들을 제대로 가르칠 수 가 없다는 것이 그의 걱정거리다.
“15명 정도가 적정인원이라고 생각합니다. 3년 전에는 가능했는데 이후로는 거의 지켜지지 않네요. 지금은 너무 많은 편입니다. 줄이려고 해도 연구를 하다 보면 그렇게 되지 않네요.”
미국으로 유학 온 한국인 후배들에 대해 가장 아쉬운 점은 학업에 대한 욕심이 점점 떨어진다는 것. 어려운 여건에 미국까지 와서 공부하려면 모든 것이 궁금할 텐데 질문이 많지 않다고 ‘학생들의 의욕 부족’을 늘어놓기도 했다.
“저는 너무 궁금해서 밤잠을 설치던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공부하는 친구들을 보면 궁금한 점이 거의 없는 것 같아요. 왜 궁금한 점이 없는지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예요.”
어린 시절에 대해 들어봤다. 비교적 순탄한 학창시절을 보낸 편. 대구 계성초등학교와 경상중학교, 경북고를 나왔다. 학교 이야기가 나오자 한국의 주입식 교육에 대한 병폐를 지적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온 유학생들의 공통점이라고 지적했다. 개인의 자질을 보면 상당히 우수한 편이지만 창의력 측면을 보면 다소 떨어진다고 평가했다.
“한국인 유학생들은 공부는 잘합니다. 그런데 정작 연구를 잘하는 유학생은 거의 없습니다. 아마 한국의 주입식 교육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김창진 박사 연락처: cjkim@ucla.edu
[대전일보 구남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