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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과3범(?) 이응신 박사

과학기술자는 융통성과 사교성이 없는 사람이다? 이같은 사회적 인식이 자리잡은 지 이미 오래 되었지만 최근 온라인 시대가 도래하면서 그런 인식에 점차 긍정적인 변화가 일고 있다. 몇 해에 걸쳐 KOSEN에 참여해온 과학자 이응신 박사의 관점은 과학기술자들의 이 같은 특성이 온라인 상에서는 강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서로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간에 시공간을 초월하여 정보를 공유한다는 필요성을 겸비한 만남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며, 이미 여러 온라인 매체를 통해 입증되고 있다. 특히 KOSEN은 과학기술자라는 범위가 묵시적으로 정해져 있는 온라인 단체이므로 다른 온라인 매체들과 비교할 때 회원간 동질감을 더 짙게 느낄 수 있다. “다른 온라인 매체 회원들이 주로 컨텐츠를 ‘소비’하는 경우라면 KOSEN회원들은 스스로 ‘생산’에 참여할 수 있으므로 다른 매체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장점을 가집니다. 또한 24시간 깨어있는 온라인 매체이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KOSEN이 단순한 정보의 생산이나 처리가 아닌 다양한 사업을 시도했으면 하는 바랩입니다. 몇 차례 시도했던 워크샵이나 세미나, 오프라인 모임 등을 좀 더 사업적인 측면으로 확대하여 KOSEN이 지닌 강점을 최대한 부각시켰으면 합니다.” 이응신 박사(KOSEN ID: Eisenbahn)는 KOSEN이 공식적인 행사보다도 과학기술의 장기적 발전을 고려한 다양한 행사를 주관할 것을 주문한다. 해외 과학자들이 국내 중고등학교 과학반이나 과학클럽, 대학 실험실 등을 방문, 참여하는 방안도 제기했다. 미래의 과학기술자들에게 꿈을 키울 수 있는 유익한 만남이 될 것이라는 취지에서다. 이를 위해 KOSEN이 중개 역할을 톡톡히 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본다. KOSEN의 마당발로 자리매김한 그는 처음 원대한 꿈을 간직하고 상경하여 신비로운 무엇인가를 기대하며 물리학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냉엄한 학문의 벽에 둘러싸여 자신의 한계에 부딪혔고, 갑갑한 도서관에 갇혀 책과 씨름하는 것으로 자족할 수밖에 없었다. 활달한 성격 때문인지 그는 ‘전과자’라는 별명이 생길 정도로 전공을 여러 번 옮겨다녔다. 베를린 공대 유학길에 올랐을 때 물리학을 택할 수도 있었지만, 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이론역학을 선택한다. 이것이 바로 거대한 함정이었음을 누가 알았으랴. 수학이라는 구렁텅이는 오히려 학부시절이 그리울 정도로 공부에만 열중해야 정복이 가능했다. ‘적당주의’라는 말을 용납하지 않는 그의 성격은 이론역학과 구조역학 등 '역학'이라는 이름이 붙은 모든 과목을 섭렵하기에 이른다. 독일에서 역학을 처음부터 끝까지 공부한 한국사람이 아직까지 없을 정도이니 그의 끈기와 인내는 대단한 것이었다. “박사과정에서 철도차량연구소로 옮기면서 다시 전공을 바꾸는 전과자가 되었습니다. 주로 화물열차 탈선을 취급했는데 주위의 친구들이 ‘인간탈선’을 경험하지 않고 어떻게 기차탈선을 이해할 수 있느냐며 탈선을 부추기는 바람에 먼길을 돌아간 일도 있죠. 물론 결정적인 순간 정상 운행한 결과, 탈선을 방지하고 무사히 학위를 마친 셈이지요.” 그를 대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진지한 겉모습과는 사뭇 다른 그의 말재간에 놀라게 된다. 귀국 후 그에게는 또 한 번의 전과기록이 붙는다. 전과 3범이라는 화려한 별은 그만이 달 수 있는 특별한 수사가 아닐까? “앞으로도 전과할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그러나 물질의 운동에 기반을 두고 있는 분야는 물리학이나 역학에서 다루기 때문에 아무리 전공을 바꾼다 해도 기본을 벗어나진 않겠지요. 선진국이라고 하는 유럽이나 미국에서 기초과학분야를 공부한다는 것은 한국에 귀국하더라도 아주 유용하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끊임없이 기초학문, 특히 수학에 시간을 투자하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그는 오랜 기간 묵묵히 기초학문을 공부하면서 학문 뿐만 아니라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활동이 공통점을 갖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예술, 학문, 스포츠 등은 분야는 다르지만 모두 인간이 관여한다는 면에서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다. “인문과학이나 사회과학을 전공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과학기술 분야가 아니라도 인간의 이성이 주체가 되어 학문을 풀어나간다는 점에서 예술이나 과학기술의 핵심 역시 인간의 이성이지 자연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흔히 자연과학이라고 하면 ‘자연의 비밀이나 규칙을 밝히는 학문’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베를린에서 산전수전 다 겪으며 그가 내린 결론은, 자연과학은 ‘인간이 얼마나 합리적으로 자연을 이해하고 있는가를 나타내는 지식의 체계’라는 것이다. 자연과학의 주체는 자연이 아니라 인간의 이성이고 자연은 인간이 바라보는 객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주지해야 제대로 자연과학을 하고 있다고 여긴다. 과학기술자 자신이 스스로 자연을 바라보고 분석하는 틀을 갖추고 있어야 하고, 자신만의 눈을 가져야 세계 어느 곳을 가더라도 자신있게 입장을 밝히고 남들과 토론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남들이 연구한 결과만을 이해하는 것으로는 어디서도 발붙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귀국 후 다른 여건들은 몰라보게 향상되었으나 후학들의 학문 환경을 볼 때는 예나 지금이나 그다지 발전이 없어 보였습니다. 학생들 스스로 자신만의 고유한 세계를 확립하고 남들이 한 연구 결과를 분석, 비판하는 자세가 부족합니다. 더 심각한 것은 과학기술자들이 컴퓨터에 의존해 시뮬레이션으로 모든 연구를 수행하려고 하는 자세입니다. 아무리 시뮬레이션이 화려하고 효과적이라 해도 실험 데이터가 뒷받침되지 못하면 공허한 울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의 이 같은 지론의 배경은 과학의 역사를 되돌아봤을 때 아무리 화려한 이론도 시시한 실험결과 하나로 무너지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자연과학의 대상은 자연이지 컴퓨터 프로그램이 아니다. 자연에서 일어나는 물질 운동을 이해하고 그 결과로 나타나는 현상을 측정하여 인간이 규정한 틀과 비교하여 진위를 가리지 않는다면 시뮬레이션으로 산처럼 많은 일을 했다한들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다. 현재 그는 서울대 공과대학 기계항공 공학부 역학실험실에서 산업체 연구과제로 전동식 파워스티어링(Electric Power Steering:EPS)을 연구하고 있다. “순수자연과학 분야는 잘 모르지만 기술분야에서 과제를 수행하면서 그 결과가 산업계나 사람들의 생활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은 종종 연구자들을 흥분시키곤 합니다. 지금 수행하는 과제도 그렇습니다. 전동식 파워스티어링을 장착하면 연비가 최소 5퍼센트 이상 좋아지고, 차내 공간절약과 조립시간 단축, 친환경적 조향장치 등 좋은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죠.” 전동식 파워스티어링은 2004년부터 시장이 급성장하여 2007년에는 파워스티어링 시장의 50퍼센트 정도를 차지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처음 시장진입 시기를 놓치면 경쟁에서 탈락하고 관련업체들은 문을 닫아야 하는 실정이다. 개발에 있어 한국은 현재 걸음마 단계인데 반해 일본의 자동차 부품업체들은 상용화 단계를 넘어 시장진출을 노리고 이미 대량생산에 들어가고 있다. 때문에 그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순수 연구에 그치지 않고 업체와 공동으로 제품개발도 함께 하기 때문에 연구에 박진감이 넘칩니다. 앞으로 4개월이 지나면 전체 개발의 일부가 공개될 예정입니다. 일본업체의 한국시장 장악을 저지한다는 생각으로 개발에 뛰어들었으나 전기전자로 제어를 하는 부분이 많아 어려움도 많습니다.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도 쌓여있고요.” 단순한 기계에 불과했던 자동차에 지능을 불어넣는 작업. 이런 작업의 일환이 전동식 파워스티어링과 조향안정시스템(Electric Stability Program:ESP)의 개발이다. 머지 않아 자동차는 컴퓨터에 의해 제어되는 로봇처럼 탈바꿈할 것이다. 이런 시점에서 핵심부품 중 하나인 전동식 파워스티어링 개발에 뛰어들었음을 그는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세상을 바꾸는 박진감 넘치는 일의 중심에 서 있는 그, 그리고 변화하는 세상의 중심에 있기 위해 언제라도 전과자가 될 용의가 있는 그. 오늘도 그는 그렇게 치열하게 하루를 살고 있다. [KISTI 동향정보분석실 유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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