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과 과학을 이어주는 사람, 이치근 박사
2004-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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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east Engineering”
이치근 박사(KOSEN ID: cgtor)의 전공인 산업공학을 비전공자들에게 소개하는 말이다. 어색하게 들릴 수도 있을 법한 이 말은 그 이유와 더불어 전공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다 보면 자연스레 그 뜻이 전해져온다. 산업공학은 경영과학, 공업경영, 시스템공학, 경영과학 등으로도 불린다. 그가 산업공학을 ‘가장 공학답지 않은 공학’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대부분의 공학이 Hard한 반면 산업공학은 대단히 Soft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공학이 눈에 보이고 손에 만져지는 물리적 객체를 생성하는 데 반해 산업공학은 여러 객체들로 구성된 시스템의 현상을 이해하고 보다 바람직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데 치중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1986년 당시 대학문을 들어설 때만 해도 혼란스러운 캠퍼스에서 공부 이외의 다른 문제들에 관심을 빼앗기는 학생이 상당수였다. 그 역시 예외가 아니다. 전방입소거부, 6.29선언 등의 문제로 그가 전공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3학년 이후부터였다. 당시 산업공학분야에서 풍미했던 생산자동화에 흥미를 느꼈던 그는 학과공부 외에도 별도의 전공서적을 탐독하는 등 대학전반기와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변해갔다. 고교시절부터 가장 좋아했던 물리학의 매력을 산업공학에서 다시 찾게 된 것이다.
“물리학이 물리적인 현상을 이해하고 이를 토대로 바람직한 현상을 유도하거나 어떤 현상을 재생산하는 방식을 찾아내는 학문이라면, 산업공학은 인간과 기계가 형성하는 시스템의 현상을 이해하고 이를 토대로 보다 바람직한 시스템의 운영을 도모하는 학문이라는 믿음이 생겨났기 때문이죠.”
한국과학기술원에서 석사학위 전공으로 선택한 분야는 CAM(Computer Aided Manufacturing). 그러나 박사 1년차를 보내며 세부 전공에 많은 회의를 느꼈고 급기야 박사과정을 그만두고 회사로 자리를 옮긴다. 회사생활은 재미있었지만 차츰 학교생활의 자유로움에 그리움을 느끼던 중 회사생활 4년차에 미국 미시간대학으로 유학길에 오른다. 이는 그에게 그리 쉬운 결정만은 아니었다. 아마도 자신에게 같은 일을 3년 이상 할 수 있는 끈기가 모자랄 수도 있겠다는 자책과 함께 떠난 길이기에.
이같은 그의 근심은 오히려 극대의 노력으로 작용했는지 그는 당당히 박사과정을 마치고 지도교수로부터 독립하게 되었고, 그의 연구분야는 여러 방향으로 다양화되었다. 이런 과정에서 크게 도움이 된 것은 박사과정 중 폭넓게 수강한 과목들이었다.
“남다른 호기심 덕분에 대부분의 학생들이 수강하는 평균 과목 수의 두 배 가량을 이수했는데, 이는 다양한 분야에 대한 호기심을 쫓아다닌 결과였습니다. 제 전공분야는 흔히 산업공학 내에서 응용과학이라 불리는데, 물류란 응용과학을 이용해서 물자 및 정보의 흐름을 파악하는 구체적인 적용분야라 할 수 있습니다.”
현재 그가 관심을 가진 분야는 생산시스템 설계와 물류(Logistics) 및 공급망 관리 (Supply Chain Management)이다. 다소 피상적으로 들리는데, 새로운 단백질의 개발, 새로운 소재의 개발, 초고속 연산소자의 개발과는 많이 다른 그야말로 Soft Engineering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미국 미시간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현재는 캐나다 토론토대학 조교수로 재직 중인 그에게 캐나다의 문화에 대해 간단하게 들어보았다.
“캐나다는 여러 면에서 미국과 한국의 중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미국은 교수들에게 1년에 9개월치 월급을 주고 나머지는 프로젝트 등에 개인인건비를 포함시키기를 요구하는 반면, 캐나다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12개월치 월급을 줍니다. 그렇다고 더 많은 액수를 받는 건 아니지만 받는 자의 입장에서는 그나마 스트레스를 덜 받는 셈이며, 교수들간의 급여 차이도 적은 편입니다. 이러한 일례에서도 드러나듯이, 미국이라는 사회가 치열한 경쟁을 기반으로 운영되고 있다면 캐나다는 좀더 여유가 있는 듯합니다. 또한 부의 재분배가 미국보다 훨씬 잘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캐나다의 부의 재분배를 설명하는 데 좋은 예가 두 가지 있다. 그 중 하나는 전국민 무료 의료보험이고, 다른 하나는 연간 소득이 대략 6천만원을 넘기면서 살인적으로 높아지는 소득세율이다.
“전국민 의료보험제도로 인해 길거리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노숙자들도 당당하게 병원에 걸어 들어가 무제한으로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이러한 의료혜택은 캐나다 재정에 큰 부담이 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또한 소득이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생활수준에 있어 큰 차이가 없는데, 이는 소득이 많은 가정에 부과되는 기하급수적인 소득세의 상당 부분이 의료보험의 유지에 사용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인터뷰에 응하기 전까지만 해도 KOSEN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했다. 몇 건의 분석을 담당했지만 KOSEN의 전반적인 활동에 대해서는 어렴풋할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인터뷰 준비과정에서 KOSEN 여기저기를 훑어보며 설립취지, 임무 등 많은 부분을 숙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급속한 국제화로 해외에 거주하는 과학 및 공학인력이 과거 어느 때보다 많은 오늘, KOSEN과 같이 국경없이 서로의 지식을 교환할 수 있는 장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유용한 분석자료들은 물론이고 재외한인과학 및 공학인력 대상의 학술대회 후원 등 사업을 확대시켜나가는 KOSEN의 활동에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그는 KOSEN에 한 가지 제안을 덧붙였다. 그가 전공하고 있는 분야인 물류는 최근 참여정부가 주도하는 동북아 물류허브건설과 더불어 주목을 받고 있는데, 지난 여름 한국을 방문했을 때 물류관련 연구소와 학교들을 방문해 보았지만, 정작 정부의 연구비 지원정책은 철저하게 국내에서 활동 중인 인력에게만 제한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한다.
“미래의 사업내용에 이미 포함되어 있을지도 모르지만, 해외에 거주하는 연구인력들이 보다 직접적으로 고국의 기술발전과 연구개발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보다 적극적인 사업도 의미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KOSEN 재량권 밖의 사업일지는 모르지만, 정부의 연구비 지원정책에 대한 제도적 장애를 해결하고 해외 거주 연구인력이 보다 실질적이고 직접적으로 국가의 과학기술발전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하거나 혹은 그 통로로 KOSEN이 이용된다면 KOSEN의 존재 가치가 한층 높아지리라 생각됩니다.”
그는 한국의 과학도들이 긍지와 책임감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고도 덧붙였다. 요즘 들어 다수의 공대생들이 안정된 미래를 위해 대입시험을 다시 치룬다거나 사법고시를 준비하고 있다는 뉴스를 접할 때마다 씁쓸하기 그지 없다. 명분이 분명하다지만 그렇다고 전혀 다른 분야로의 변신을 대다수의 이공계 전공자들이 그렇게 쉽게 계획하고 있다는 점이 안타깝기만 하다. 이에 그는 한국의 과학도들이 보다 진취적인 사고를 하기를 당부한다.
“한국을 방문하면서 수많은 과학기술자들이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히 연구하는 모습을 볼 때도 있지만, 어떤 경우에는 이유 없는 패배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경우도 있는 듯합니다. 아직은 특정부문으로 국한되어 있지만, 우리도 세계 초일류로 인정 받은 많은 기술집약제품으로 세계시장을 선도하는 기술 선진국입니다. 한국의 과학도들도 전세계의 과학도들이 경쟁 상대임을 인식하고 보다 진취적인 도전의식을 가져야 할 때라고 봅니다.”
그는 또한 한국의 과학도들이 어려운 길을 걷는 것을 마다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
“일련의 불행한 사건 및 사고로 이제 한국사회도 원칙과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과학기술분야도 예외가 아닌 듯합니다. 얼마 전 배아복제로 세계적 주목을 받았던 황우석 교수의 경우처럼 한국과학기술의 쾌거도 없지 않지만, 아직도 논문표절과 같은 불미스러운 일이 끊이지 않고 있기도 합니다. 이제 한국의 과학도들도 높은 수준의 윤리의식은 물론이고 시류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뿌리없는 각종 이론들을 뒤따를 것이 아니라 어렵더라도 보다 기본에 충실한 깊이 있는 학문을 추구하려는 노력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KISTI 동향정보분석실 유연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