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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 그리고 그 이상의 행복

서울 서초동이라는 테두리 안에서만 줄곧 생활해온 유년시절. 그 (KOSEN ID: seokminyun)의 성장 과정은 당시 같은 환경의 또래들과 다를 바 없이 평탄했지만, 그가 걸어 온 길은 결코 남들이 가기에 쉽지만은 않은 여정이었다. 그는 지금과 같은 결실을 얻기 위해 많은 노력을 경주해왔고 평범한 듯 보이는 일상 속에서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일들을 하며 살고 있다. 그러면서도 내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의 여유로움은 사람을 참 편안하게 만든다. KAIST에서 플라즈마 물리 및 저유전체 박막 제작에 대한 연구로 석ㆍ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현재 반도체 제작 관련 일을 하고 있다. 반도체 제작은 크게 설계와 설계를 현실화시키는 공정 부문으로 나눌 수 있는데, 그가 하는 일은 공정과 관련된 것이다. “여러 공정 중에서도 식각 및 장비 제작 관련 일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식각 공정은 미술로 치면 조각에 비유해서 설명할 수 있는데 그 단위가 훨씬 작다는 것이 차이점이라고나 할까요? 조각을 하려면 그에 필요한 도구가 있듯이 반도체를 조각하는 데에도 필요한 도구가 있습니다. 그런데 반도체 조각에서는 0.1마이크론 정도의 아주 정교한 조각을 해야 하다 보니 도구 의존도가 매우 높을 수밖에 없지요. 제가 하는 일은 반도체 공정을 위한 도구(장비)를 만들고 이러한 도구를 쓰는 방법(공정)을 개발하는 것입니다.” 그는 우리나라가 디램 제작같은 반도체 제조산업은 발달해 있지만 반도체 제조산업에 필수적인 장비산업 부문에 있어서는 낙후된 상태임을 지적한다. 따라서 대부분의 공정 장비를 외국에서 수입하고 있고, 그러다 보니 반도체 제조분야의 수출 실적으로 흑자를 거둔다손 치더라도 상당 부분이 반도체 장비 수입으로 다시 지출되기 때문에 고수익을 기대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때문에 우리나라의 반도체 산업이 국가경제에 더 큰 이익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장비산업을 성장시켜 수출로 인한 수익이 국내 경제에 흡수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정부 대책이 미비한 현실임을 안타까워한다. 그가 일하는 곳은 반도체 식각 장비 분야에서 세계 정상급의 기업이다. 그는 현재 신제품 개발부에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거나 관련 기술 동향을 파악하는 일을 하고 있다. 입사 후 중요한 신제품이나 신기술 개발에 줄곧 참여해왔기 때문에 식각 장비 개발에 관련된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기술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 “논문이나 특허 등에도 나와 있지 않는 정보를 다루다 보니 이러한 정보 및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 큰 재산일수도 있지만 부서 특성상 회사에서 가장 민감한 정보들을 다루는 관계로 논문이나 학회 발표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불편도 있습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입사 이후 논문 출판 등과 같은 표면적인 연구 실적은 거의 없는 형편입니다. 특허 출원도 매우 제한된 범위 내에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엔지니어 입장에서는 손해 보는 느낌이 들 때가 있기도 하지요.” 입사한 지 3년 남짓. 열심히 일하는 것과 그 속에서 빚어지는 인간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그의 기억 저편에는 우연한 많은 만남들이 숨쉬고 있다. “특히 기억에 남는 우연한 만남이 많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우연한 만남을 즐기는 편이기도 하고요. 석사과정 중에 외국 학회에 참석할 기회가 많았는데 한 번은 저희 실험실을 방문했던 연구원을 통해 그가 일하는 샌디에고 소재 캘리포니아 주립대(UCSD)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자신이 일하던 실험실을 소개해줬는데 제 전공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었기에 그 땐 대충 둘러보았죠. 대학 내의 여러 교수가 공동연구를 하고 있는 비교적 큰 실험실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몇 년 후 졸업을 앞두고 로스앤젤레스 소재 캘리포니아 주립대(UCLA)에서 두 달 정도 연구할 기회가 되었는데, 그곳에서 공동연구를 하던 교수님이 박사 후 연구원 생활을 함께 하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하더군요. 그런데 그 교수님이 USCD의 실험실을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던 바로 그 분이었습니다. 결국 저는 그곳에서 일년 반 동안 박사 후 연구원 생활을 하게 되었답니다. 처음에 그 곳을 방문했을 때는 그 곳에서 박사 후 연구원 생활을 하게 되리라고는 전혀 예상치도 못했었지요.” 연구와 관련된 우연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UCSD에서 박사 후 연구원 생활을 하면서부터 실리콘밸리에 있는 회사들과 주로 공동연구를 했다. 그 기간 동안 한 회사에서 연구발표를 한 적이 있다. 청중 가운데 두 명의 연구원이 질문을 퍼부었고, 그는 나름대로 열심히 설명을 한 결과 발표를 무사히 마쳤다. 그런데 어느 날 면접시험을 보러 간 회사의 면접관이 발표 당시 질문을 퍼부었던 두 연구원이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그 회사가 아닌 다른 곳에 발을 들이게는 되었지만, 생각해보면 재미난 우연이었다. 그는 아내와의 인연도 운명적인 만남이라고 한다. 하지만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추후 다시 기회를 제공해달라는 것인지, 이 에피소드는 미지수로 남긴단다. 들을 기회가 된다면 꼭 듣고 싶은 이야기다. 미래에 대한 그의 고민은 남들이 듣기엔 행복한 투정이 아닐 수 없다. 여기저기 부르는 데도 많고 모든 일에 흥미를 가진 그이기에 생기는 고민이니까. UCSD에서의 연구도 재미있었고, 담당교수 역시 그를 각별하게 대해주었다. 아내와 함께 집으로 초대해 만찬을 대접하는가 하면 출산 전에는 미국인들이 출산예정일을 앞두고 지인에게 열어주는 파티인 ‘베이비 샤워’를 해주기도 하고, 구직활동에도 여러 모로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연구교수직으로 학교에 계속 남아달라는 제안도 있었다. 그래서 교수의 길을 생각해보기도 했지만 그는 결국 회사 생활을 선택하게 되었다. “회사 생활이라는 게 상대적으로 미래가 불안하긴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해지지 않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라서 보다 흥미로운 인생을 펼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려운 결정이었습니다만, 살아오면서 겪은 우연한 만남들을 제가 알게 모르게 즐기고 있었다는 점이 이처럼 호기심을 자극하는 미래를 선택하는 결정을 내리는데 한 몫을 한 셈이죠.” 그는 KOSEN과도 우연 혹은 그 이상의 만남이 지속되기를 원한다. 이것이 그가 현재 KOSEN에 바라는 가장 큰 바램이다. 세계 곳곳에 있는 한국 과학자들의 네트워크 형성을 돕고 있는 KOSEN의 역할은 한국의 과학자들이 어디서든 하나로 연결될 수 있는 든든한 고리가 되기 때문이다. “KOSEN에 자주 방문하는 편이긴 하지만 아직 KOSEN을 통해 인맥을 형성하진 못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제가 거주하는 ‘실리콘밸리’의 과학자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서로 정보를 교환하거나 친목을 도모하는 모임을 갖고 싶습니다만, 이런 점에서 저의 노력 뿐만 아니라 KOSEN의 중개자 역할이 아직은 미흡하지 않은가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KOSEN이 해외 각 지역별 모임을 주선하는 등의 적극적인 방법으로 한국 과학기술자 네트워크를 형성해주셨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지금껏 살면서 알게 된 과학도들에게서도 그는 많은 점을 배우고 있다고 한다. 역시 과학도의 길을 걷고 있는 자신을 스스로 대견하게 여기기도 한다. 아직 기량을 발휘하기에 연륜이 많이 쌓였다고 하기 어렵지만, 자신의 전공분야에서 꾸준히 노력하며 실력을 갖추면 자신의 미래에 대해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열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며, 과학자의 길을 걷고자 하는 후배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마음이기도 하다. “이공계 전공자들은 자신의 미래에 대한 시각이나 목표가 다른 전공을 하는 사람들에 비해 한정되어 있는 듯합니다. 특히 남들보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들은 이론이나 학구적인 것에 치우치기 쉬운데 실용적인 기술에 관심을 갖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의 대학은 미국의 대학에 비해 실용 연구 분야가 적은 편입니다. 실용적인 부분을 강조하여 대학에서 배운 것을 사회에 나가 적용할 수 있는 산 교육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산업계에서 오랜 경험을 쌓아온 분들에게 대학 강단에 설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하여 후배 양성의 기반이 되도록 하는 것이 매우 효과적일 것입니다.” 그는 긍정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다. 인터뷰에 대한 답변과 함께 보내온 그의 일기에서 따스한 감동이 전해져온다. 사랑스러운 남편으로서의 모습, 친구처럼 다정한 아빠의 모습, 그리고 실력을 겸비한 사회의 든든한 일꾼으로 자리하고 있는 그의 모습이 참으로 여유로우면서도 활기차 보인다. 하지만 항상 이와 같은 여유로움에 안주하지 않고 미래를 설계해 나가는 투지와 주체적인 삶의 태도야말로 오늘의 그를 있게 한 원동력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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