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자통신연구원 강신원 박사
2005-04-06
- 5271
- 0
1. 박사님의 이력과 학창시절을 소개해 주세요.
충청북도 영동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다니기 전까지 어린 시절을 두메산골에서 보냈습니다. 이 시기가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가장 기억이 많이 남으며 어려울 때 그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면 정신적으로 많은 힘이 되는 것 같습니다.
서울 은평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대문중학교에 진학하였습니다. 중학시절 기억에 남는 일은 친구들과 함께 동양방송에서 “호돌이와 토순이” 녹화를 보러 갔던 일, 문화방송에서 그 당시 인기 아나운서 변웅전씨가 진행했던 “묘기 대행진” 및 “명랑운동회” 등을 보러 다녔던 일들이 많이 생각납니다. 묘기 대행진을 방청하면서 기묘한 묘기들이 실제는 많은 부분에서 PD들에 의하여 연출된다는 사실을 알고 텔레비전에서 볼 때의 그 신비함이 많이 없어졌습니다. 대성 고등학교를 다녔었는데 학교의 모토가 “하면 된다”였습니다. 처음에는 자유스럽지 못한 분위기에서 강요되어 싫기도 하였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 어려운 현실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였던 것이 아직까지 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경희대학교 경제학과에 진학하였는데, 대학선택 및 학과선택의 이유는 지금 생각해도 좀 재미있습니다. 제가 대학을 진학하기 전까지 유일하게 가본 대학이라는 점 때문에 학교를 선택했고, 수학을 못해 수학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기 때문에 학과를 선택했습니다. 우연한 선택이었지만, 당시의 선택에 대하여 현재는 매우 만족하고 있습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군대에 입대하여 전투병으로 근무하였는데 전투병은 전문용어이고 쉬운 말로 하면 방위입니다. 노고산 훈련소에서 근무하였는데 자대배치 받을 때 연대장님이 그러시던군요, “좀 힘들지만 자긍심을 가지고 업무에 임해주기 바란다”고. 그 의미는 군 복무를 하면서 두고 두고 알게 되었습니다. 그 곳은 바로 아무도 배치 받기를 원하지 않는 힘든 곳이었습니다. 석사를 마치고 Colorado School of Mines에서 자원경제를 전공하고 환경경제를 부전공으로 공부하였습니다. 학교는 160년 이상 오래된 전통 있는 대학교이었는데 이름이 광산학교라서 친구들이 대학교 졸업하고 광산학교 들어갔다고 놀려댄 기억이 납니다.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해서 사랑하는 부인을 만나 결혼하고 초등학교 1학년과 유치원에 다니는 귀여운 아들 둘이 있으며, 현재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정보통신서비스연구단에서 선임연구원으로 활동적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2. 박사님의 연구분야를 간단하게 설명해 주세요. 그간 이루어오신 연구실적과 앞으로의 연구방향 및 계획에 대해서도 듣고 싶습니다.
대학 및 대학원 시절에는 경제통상에 관심이 많아 부전공으로 통상 및 국제경영에 대해 공부하였고, 관심이 보다 현실적으로 변화되어 박사과정에서는 자원 및 환경경제를 전공하였습니다. 이때 중요 연구관심분야는 환경재화의 경제적 가치분석, 환경규제와 생산성의 관계분석 등 환경에 대한 경제학적 접근이었습니다. 이러한 연구분야는 졸업 후 귀국하여 한국전자통신연구원에 취업을 하면서 변화되었습니다. 연구원 근무 초기에는 연구원의 연구업무(인터넷 요금, 정보화 평가 등)와 개인적 관심분야를 병행하였고, 별도로 간간이 그 동안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던 경제통상 분야의 연구를 시작하였습니다. 그 후 점차적으로 개인적 관심분야로 연구과제를 수행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어 현재는 통신서비스정책, 전자상거래, 자유무역협정(FTA), 국제표준화, WTO 정부조달협정(GPA), OECD 및 ITU 등 국제기구업무 및 협상 등에 대하여 연구하고 있습니다.
연구업무를 수행하면서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일은 “한•EU 통신분야 정부조달협정” 협정개정협상에 참여하여 협상에서 뜻밖의 좋은 결과를 얻어내 국가적으로나 개인적으로 보람이 있었으며, 올 초에 ITU-T SG3에서 라포춰로 선임된 일입니다. 한가지 아쉬운 일은 “한•싱가포르 FTA 협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전자상거래 부문에 대하여 자문을 하였는데 결과적으로 최종 협정문은 본인이 자문한 내용과는 좀 차이가 있게 결정된 일입니다.
앞으로 연구방향으로는 현재까지 추진하여온 통신정책, 국제통상 및 협상, 표준화 및 국제기구 연구를 보다 심도 있게 진행하여 개인적으로 연구에 대한 보람도 찾고 국가적으로 조금이 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3. KOSEN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현재 KOSEN에서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신지요?
KOSEN과 인연을 맺은 지 벌써 4년이 됩니다. 처음에는 자원 및 환경에 대한 관심 있는 자료를 찾아보려고 정보를 검색하다 검색엔진에서 우연히 KOSEN을 발견하여 회원에 가입하고 활동하게 되었고, 현재는 통신정책관련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처음 전문가로 지원할 때는 반신반의하였는데 KOSEN 전문가로 선임되어 무척이나 기뻤습니다. 그 후 전문가로 선임해주신 팀장님을 만나 이야기할 기회가 있어 여쭈어보니 현재 많은 이공계 전문가들이 활동하고 있으며 한 분 정도는 사회과학을 전공한 전문가가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위촉되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기대에 부흥하기 위하여 활동 첫해에는 OECD 관련자료, 보고서 및 연구자료 등을 KOSEN에 제공하였습니다만, 요즘 들어 연구업무량이 많아져 적극적으로 활동하지 못하고 있는 점이 아쉽습니다.
4. KOSEN 회원과의 교류와 관련한 의견이 있으신 가요? 국내 과학기술자로서 KOSEN회원과 전 세계의 한민족 과학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이와 관련하여 KOSEN에 바라는 점 혹은 KOSEN에 거는 기대나 발전방향을 제시해주세요.
연구자들은 향상 관심 있는 분야에 전문성이 높은 연구를 지속적으로 하고 싶어할 것입니다. 이러한 욕구를 KOSEN이 많은 부분 채워주고 있으며, 인센티브를 주어 격려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KOSEN의 역할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사료됩니다.
본인도 counterpart의 요구에 의하여 연구업무를 수행하고 일이 바빠 연구자로서의 의욕이 떨어질 때 KOSEN에 접속하여 여러 연구자들이 자신의 분야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는 것으로 보고 있노라면 무언의 힘을 얻곤 합니다. 따라서 KOSEN의 역할도 연구자들의 힘을 북돋아 주는 방향으로 지속적인 역할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KOSEN이 연구자들에 의하여 만들어지고 운영되듯이 많은 연구자들의 참여를 독려, 적절한 인센티브 사용, 그리고 연구의 시너지를 높일 수 있는 네트워크의 형성 등에 보다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제가 너무 판에 박히고 아무나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했는데 저는 항상 문제가 풀리지 않을 때 원론 또는 기본으로 돌아가서 생각해 봅니다. 문제를 해결하는데 시간이 더 걸리고 돌아가는 것 같지만 항상 원론에서 해답을 찾곤 합니다.
5. 마지막으로 이공계 종사자 혹은 과학도에게, 또는 이 길로 접어들고자 하는 후학에게 힘이 담긴 격려를 해 주신다면.
제가 이공계 종사자가 아니어서 이러한 말씀 드려도 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느끼고 있는 점들을 말한다면, 항상 사회과학을 공부한 사람들은 이공계를 전공한 사람들을 부러워할 때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사회과학에서 나온 결과는 특허로 인정도 되지 않고, 또한 연구결과물에 대한 보상이 미비하기 때문입니다. 사회적 통념이 아무리 많은 노력이 투여되고, 훌륭한 연구결과물이라 할지라도 이러한 결과물에 대한 경제적 가치를 인정해 주는데 인색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하나는 사회에서 사회과학에 대한 기술적 전문성의 인정에 인색하여 직장을 퇴직하고 나서는 그 전문성에 대한 사회 활용도가 급격히 떨어져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점들에 대하여 만족하고 있지 못합니다. 이와 반대로 만족한 수준이 아닐지라도 이공계 연구산출물은 특허를 내서 연구결과물에 대하여 보호도 받을 수 있으며 노력에 대한 경제적 가치의 인정 및 보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을 나누어서 비교하기는 적절하지 않지만, 자연과학을 하면 노력에 대한 결과와 보상이 보다 사회적으로 보장되어 있으며, 전문성에 따라 보다 만족한 성취감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요즘은 자연과학의 인기가 떨어지고 있지만 자연과학이야 말로 선진국가 진입에 있어 근본이 되며 개인의 전문성을 확보하고 성취감을 맛볼 수 있는 분야임을 고려하여 자연과학을 선택 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