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공장의 물리학자-김광제 박사
2002-07-29
신동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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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시카고에서 남쪽으로 약 30분 달리면 미국 최초의 국립연구소인 아르곤연구소가 나타난다. 이 연구소의 명물 가운데 하나는 세계의 3대 방사광가속기 가운데 하나인 APS(Advanced Photon Source)이다. 거대한 원형링 속에서 전자를 가속시켜 24시간 내내 강력한 X-선을 발생시키는 이 장치는 재료공학, 생물학, 물리학, 화학, 환경, 지질학, 지구과학 등 모든 분야에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도구가 되고 있다. 해마다 2500명이 APS에 와서 다양한 연구를 수행한다. APS에 매달려 있는 상근 연구원만 해도 400명에 이른다.
APS에 소속된 연구그룹은 가속기와 실험 두 개의 디비전으로 나눠진다. 가속기 디비전의 부책임자인 김광제 박사(66)를 만났다. 김광제 박사는 APS그룹 전체를 이끌었던 조양래 박사와 함께 방사광가속기를 개발하는 데 필요한 이론을 확립한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또한 최근에는 제4세대 방사광가속기의 요체가 될 자유전자레이저의 개념을 발전시키는 데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어디에서 태어났고 어떻게 해서 미국에 왔는지 말해달라.
=1944년 경북 영주에서 태어났다. 빨지산으로 어수선한 시절 초등학교 교장이던 아버지가 4살 때 대구로 전근을 가시면서 온가족이 대구로 이사해 고등학교까지 대구에서 나왔다. 1966년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유학해 1970년 매릴랜드대 소립자 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어 캘리포니아의 스탠포드선형가속기센터(SLAC)에서 3년 동안 연구원으로 있었고, 독일의 막스플랑크연구소에서 3년, 마인츠에서 2년 동안 있다가 1978년 버클리로 돌아왔다. 전공분야는 원래 소립자이론인데 버클리로 돌아오면서 가속기 분야로 전공을 바꾸었다. 1998년에는 좀더 큰 방사광가속기가 있는 아르곤연구소로 옮겨 현재 가속기 디비전의 부책임자로 일하고 있다.
-미국 유학을 결심하게 된 동기는?
=아무래도 물리학은 공부를 해야하는 분야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니 유학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GRE 테스트 보고 어플라이했다.
-박사학위는 어떤 것이었나?
=내가 미국에 유학한 시기는 물리학이 한동안 침체돼 있다가 다시 활기를 띄기 시작하면서 표준모형이 만들어지던 때였다. 그 때 물리학의 핫이슈는 가속기에서 숱하게 쏟아져 나오는 소립자를 장론으로 설명하는 것이었다. 장론적 접근은 4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여러 장벽에 가로막혀 별로 이론적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70년대에 들어와 다시 실마리를 찾게 되면서 장론이 부활했다. 이휘소 박사도 장론을 부활시키는 실마리를 찾은데 크게 기여한 물리학자 가운데 하나였다. 나 역시 이휘소 박사가 하는 일과 관계 있는 비슷한 일을 했다. 이휘소 박사는 대학원 학생 때, 캘리포니아에서, 독일에서 만난 적이 있는 데 그만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말았다. 특히, 매릴랜드대에서 나를 지도했던 김호길 교수(전 포항공대 학장)가 1978년 로렌스버클리연구소 연구원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불러서 나도 이 연구소로 가게 됐다. 포항방사광가속기 소장을 지낸 이동녕 교수 역시 로렌스버클리연구소에 함께 있었다.
-왜 연구 분야를 소립자 물리학에서 가속기 쪽으로 바꾸었나?
=로렌스버클리연구소로 자리를 옮길 당시 이 연구소에서는 방사광가속기에 대한 연구가 한창이었다. 방사광가속기는 전자를 가속시켜서 X선을 발생시키는 물리학 실험장치이다. 특히 이론 분야와 달리 가속기 분야는 실험을 통해서 이론이 맞는지를 금새 알 수 있어서 좋았다. 소립자 물리학에서 쓰는 고에너지가속기는 입자들을 가속시킨 뒤 충돌해 원자핵 등의 내부구조를 밝히는 것이 목적이다. 하지만 방사광가속기는 입자에서 생겨나는 X선을 어떻게 하면 더 강렬하게 만들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당시 버클리에는 방사광 가속기 분야의 세계적 리더들이 많았고, 나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방사광가속기 분야에서 일을 하면서 본인의 가장 중요한 업적은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가장 밝은 빛을 낼 수 있느냐를 연구하려면 우선 방사광의 밝기를 정의해야 한다. 나는 방사광의 밝기를 어떻게 정의하고 입자의 빔의 성질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에 대해 기본적인 연구를 했다. 내 연구 결과가 방사광 가속기 건설에 그대로 사용됐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X-선은 전자를 금속판에 때려 여기에서 나오는 빛을 갖고 만들었다. 그러나 물리학자들은 1940년대부터 가속기에서 나오는 빛이 강력한 X-선 소스라는 것을 알아냈다. 가속기에서는 24시간 내내 빛이 안정적으로 나와 이를 이용해 다양한 실험을 할 수 가 있다. 최초의 1세대 방사광가속기는 기존의 가속기에서 나오는 빛을 이용하는 형태였다. 하지만 1970년대에 뉴욕의 브룩헤이븐 가속기를 필두로 등장한 방사광가속기는 오로지 X-선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개발한 것이었다. 로렌스버클리연구소가 만든 3세대 방사광 가속기는 최적의 기술을 적용해 더욱 강한 X-선을 만들 수 있었다. 세대가 지나갈 때마다 X-선의 밝기는 수백배씩 뛰었다. 현재 내가 있는 아르곤연구소의 방사광가속기(APS)는 뢴트겐식 X-선 발생장치나 1세대 장치보다 10의 10제곱이나 X-선의 강도가 강하다. 이런 X-선은 강철도 뚫고 지나갈 정도로 강하다. 빛을 미세하게 집적하려면 우선 광선이 순수해야 한다. 즉 코히어런스가 좋은 광선을 얻는 것이 기술의 핵심이다. 내 연구는 이런 광선을 얻는 데 필요한 이론을 제공했다. 현존하는 3세대 방사광 가속기 가운데 가장 큰 것은 일본의 '스프링-8'로 전자의 에너지가 8GeV이다. 스프링-8과 함께 아르곤연구소의 APS 그리고 유럽공동 방사광가속기의 전자 에너지는 7GeV이다. 이들 3개가 가장 큰 방사광 가속기에 속한다. 로렌스버클리연구소의 방사광 가속기는 1.9GeV이고 포항방사광가속기는 2.5GeV로 비교적 큰 것에 속한다. 한국에서 이렇게 큰 방사광가속기를 건설한다는 것은 당시만 하더라도 혁명적인 생각이었다. 방사광가속기는 전자를 선형가속기에서 거의 빛의 속도로 가속해 저장링 속에서 돌리면서 방향이 바뀔 때 보통 빛보다 100만배 이상 강한 엑스선을 만들어낸다. 이렇게 강한 빛을 이용하면 종전에는 불가능하거나 매우 어려웠던 실험이 가능해져 생명과학, 환경과학, 의학연구 등 기초과학 및 응용분야에 요긴하게 이용된다. 이 빛을 이용하면 해상도가 높은 엑스선 현미경 영상을 얻을 수 있어 세포 같은 살아있는 조직을 그대로 영상화할 수 있다. 또 표면에 소량의 불순물이 어떻게 분포하는지, 화학결합상태가 어떤지 등을 알 수 있다. 단백질과 같이 거대한 생체분자의 구조도 방사광의 빛을 이용한 엑스선 회절법으로 얻을 수 있다.
-방사광 가속기의 응용분야는?
=기본적인 응용 분야는 원자나 분자가 어떻게 배열돼 있는지를 알아내는 데 이용하는 것이다. 분자와 원자의 기본적인 거리가 옹스트롱 단위여서 이런 것을 보려면 빛의 파장이 작은 X-선으로 볼 수밖에 없다. 특히, 엑스레이를 써서 단백질의 원자 배열을 알아내는 단백질 결정학은 방사광가속기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만큼 과학 발전에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켰다. 그전에는 단백질 분자 구조를 알려면 한달 정도씩 걸렸지만, 요즘에는 복잡한 단백질 구조도 방사광 가속기를 이용해 단 몇 분만에 해독한다. 버클리대의 김성호 박사는 이런 장비를 이용해 단백질 결정학의 권위자가 되었다. 구조를 연구하면 새로운 재료를 만들 수 있어 이 분야에 대한 연구도 시작되고 있다. APS에서는 나노구조에 대한 연구도 하고 있다. 반도체의 기본 성질을 조사할 때에도 방사광을 이용한다. 전자현미경으로 생명체를 보려면 생명체를 죽이고 말려서 화학처리해야 하지만, 엑스선을 이용하면 살아있는 상태로 볼 수 있다는 장점도 갖고 있다. 이밖에 방사광가속기에서 나오는 X-선을 이용해 연구를 할 수 있는 새로운 분야들이 자꾸 자꾸 생겨나고 있다.
-4세대 방사광 가속기도 연구가 진행중이라는 데 설명해 달라.
=지금 3세대 가속기가 한창 활동 중이지만 4세대 가속기를 만드는 실험이 벌써 진행 중이다. 그렇게 하려면 보통 전자가 아니라 자유전자로 넘어가야 한다. 내가 한 일 가운데 중요한 한 가지도 자유전자레이저의 개념을 발전시킨 것이었다. 자유전자 레이저에서는 빛이 나오면서 빛과 전자빔이 상호작용을 해서 전자빔 자체의 성질이 바뀐다. 성질이 변하면서 나오는 빛이 더 세지는 것이다. 자유전자레이저도 1980년대부터 실험이 시작됐다. 최초의 자유전자레이저의 프로토타입은 스탠포드대에서 만들어졌고, 브룩헤이븐, 산타바바라, 프랑스 등에서 조그마한 장치를 만들어 실험 중이다. 하지만 아직 규모가 작기 때문에 X-선은 만들지 못하고 있다. 현재 내가 근무 중인 APS에서도 90년대 말부터 4세대 가속기에 대한 실험을 시작했다.
-가족에 대해 소개해 달라.
=딸이 둘이다. 모두 캘리포니아에 산다. 큰 딸은 샌디아고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투자회사에서 일하고 있고, 작은 딸은 버클리를 졸업한 뒤 법과대학을 최근 졸업했다. 부인은 바이올리니스트이면서 커뮤니티 컬리지의 심포니 멤버이다.
-앞으로 계획은?
=가속기를 좀더 강력한 도구로 만드는 일을 해보려고 한다. 현재 고에너지 물리학은 기로에 서있다. 가속기가 자꾸 커져야 하는데 더 이상 크게 만들 수 없는 한계에 왔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새로운 아이디어로 극복을 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나는 후자의 입장에서 가속기를 개발하고 싶다. 특히, 최근에는 고출력 레이저 기술이 많이 발전했다. 따라서 이들 레이저와 가속기 기술을 결합시켜 기로에 서 있는 물리학을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가 내 관심사이다.
Kwang-Je Kim
Professor of Physics
The University of Chicago and EFI
and
Associate Director for Research
Accelerator Systems Division, APS, ANL
E-Mail: kwangje@aps.anl.gov
Phone: 630-252-4647
Fax: 630-252-73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