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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하고 싶은 것을 하는 행복

1. 회원님에 대한 소개와 학창시절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Kosenia로서의 활동이 너무 미흡한 제가 이 글을 쓰게 되니 무척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아마 더 열심히 활동하라고 격려해 주시려는 의미라고 생각해서 글을 씁니다. 저는 국립암센터 융합기술연구부의 기능유전체연구과에서 일하고 있는 이연수입니다. 전공은 분자유전학이며 박사학위를 받을 때의 주제는 DNA methylation이었는데 그 이후 포닥과정에서 Human Genome Project에 합류해서 일을 한 이래 계속 유전체학을 다루는 연구를 했기 때문에 유전체학이 저의 전공같이 되어버렸습니다. 제 이력은, 자세히 아는 분은 좀 신기하게 생각하는데, 학부 때 교육학을 전공했었습니다. 졸업할 때쯤, 친구들과 대학원을 가려고 같이 study모임을 만들어서 공부를 하는데 하면 할수록 ‘이게 아닌데…’ 라는 생각이 들면서, 정말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고 전부터 관심이 많았던 생명과학을 해 보고 싶은 마음이 점점 커졌습니다. 막내로 자라서 별 어려움을 겪어 보지 못했고 제가 하고 싶은 일이면 뭐든지 다 되는 줄 알고 있었던 철부지였던 저는 별로 많이 고민도 해 보지 않고 덜컥 독일 대학들에 apply를 했고 웬일인지 입학허가들을 잘 주어서 1987년 학부 졸업 후 곧 독일에서 생명과학을 다시 처음부터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독일에서의 공부가 어렵다고 하는데 저는 학부 처음부터 한 덕분인지 그다지 어렵지 않게 Diplom까지 베를린자유대학교에서 마치고, 학연과정으로 Max-Planck-Institute에서 박사과정 연구를 하게 되어 장학금을 충분히 받으면서 공부를 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고요, 박사과정의 지도교수님이 이탈리아 분이셨는데 워낙 아버지 같이 털털한 분이셔서, 제가 결혼도 하고 큰 아이도 낳으면서 공부할 수 있고 학위를 3년 마칠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결국 Post-Doc까지 모두 11년을 독일에서 지내서 지금도 독일사람처럼 융통성이 없다는 얘기를 듣기도 합니다. 젊어서 아직 패기도 있고 겁을 모를 때 시작해서 그런 지, 외국에서의 공부 기간동안 어려웠던 기억은 거의 없고 참 신나게 열심히 파고 들었다는 생각이 많이 납니다. 학부기간 동안에는 방학 때는 아르바이트를 해서 학비를 벌었는데, 그것도 무척 열심히 해서 마이스터가 예뻐한(?) 덕분에 방학 때 마다 오라고 해 주어서, 나중에 아르바이트 난이 벌어져 유학생들이 일자리찾기에 힘들어 할 때도 저는 일하기 어렵지 않았던 기억도 있고요. (지금 유전체 관련 연구를 하면서 왕 노가다도 마다하지 않고 힘들게 생각하지 않는 것을 보면, 저는 좀 천부적인 노가다 성향이 있나 싶기도 하네요.) 독일이 한국과는 많이 달라서 놀기에는 삭막한 분위기라 공부만 하기에는 좋았고요, 그래도 베를린에서 공부한 덕분에 저렴하게 베를린필하모니나 국립오페라를 가끔 갈 수 있었던 것은 무척 좋았습니다. 또 유럽은 여러 나라들이 붙어 있어서 여행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었던 것도 유학 생활의 부수입이었지요.
2. 회원님의 연구분야를 간단하게 설명해 주세요. 그간 이루어 놓은 연구실적과 앞으로의 연구 방향 및 계획을 듣고 싶습니다. 앞서 잠깐 말씀드린 것 처럼, 석박사학위 과정에서는 분자유전학 중에서 DNA methylation이라는 후성유전학(Epigenetics) 분야를 연구했었습니다. 그 때만 해도 Epigenetics의 중요성은 별로 알려지지 않았고, DNA methylation도 의미가 있느냐 없느냐에 대해서도 debate가 있었을 만큼 초창기였습니다. 저의 박사과정 논문은 DNA methylation의 pattern이 유전자의 on/off에 연관이 있다고 밝히는 것이었는데, 당시만 해도 개발 초기였던 Bi-sulfate treatment 후 sequencing에 의한 DNA methylation 분석을 시도했는데, 실험 조건을 잡느라고 무척 힘들었던 기억이 아직 새롭습니다. (어느새 손쉬운 Kit까지 나와서 DNA methylation 분석 결과가 무척 빠르게 나올 수 있게 된 것을 보면서 제가 구세대라는 것을 느낍니다.^^) Post-Doc부터, 당시 새롭게 독일이 참가한 Human Genome Project에 합류해서, 인간염색체 21번의 physical mapping, transcript mapping과 저희가 염기서열분석을 맡았던 부분에 존재하는 질병관련 유전자 탐색에 대해 연구했습니다. HGP는 무척 방대하기 때문에 제가 일했던 동안 나온 결과들이 전체의 극히 일부분만을 차지했고, 저 또한 뚜렷하게 결과를 손에 넣지 못해서 좀 실망한 측면이 있지만 연구 기법이나 실험 방법 등의 측면에서 최첨단의 것들을 많이 배울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습니다. 각종 Library를 다루는 것이나 Robotics등 최근 Genomics 분야에서 필요로 하는 여러 연구 방법을 접하고 체계적으로 배워서 현재의 연구에도 잘 활용하고 있습니다. 질병관련 유전자 탐색 분야는 저에게 정말 재미있었고, 지금도 연구하고 있는 분야입니다. 가장 처음 탐색한 것은 자가면역질환 관련 AIRE라는 유전자였는데, 저의 Post-Doc 지도교수인 Yaspo교수가 핀란드의 그룹과 연구하면서 NEJM등 좋은 논문을 많이 내면서 position을 잡아놓았었고, 제가 BAC, PAC, Cosmid 등을 분석하면서 positional cloning 등을 시도해 1년 만에 결국 찾아내서 Nature Genetics에 report 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유전체사업단과 삼성종합기술원 바이오랩 등에 근무하면서 계속 유전체학 (특히 SNP 분야) 및 질병관련 유전자 탐색 등의 연구를 진행했고, 최근 국립암센터로 오면서 암 관련 유전자 탐색, 바이오마커 분석 등의 연구를 착수했습니다. SNP의 경우에는 Large scale의 case-control study를 통해서 유의한 것을 찾고, validation을 진행하고 있는데 지난 1년의 실험 결과 이미 상당히 유의한 것들이 발견되어서 곧 report가 가능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올해부터는 암과 상당히 연관이 깊다고 여겨지는 DNA methylation에 대한 연구도 본격적으로 다시 시작하려고 합니다. 제가 처음 연구할 때만해도 암과 DNA methylation이 관련 있는 지에 대한 의문도 풀리지 않은 상태였지만 이제는 거기에 대한 답은 이미 주어졌고, 어떻게 연관이 되어 있는가에 대한 답을 구해야 하는 단계로 봅니다. 개별 유전자들의 promoter 또는 CpG island의 methylation 상태에 따른 암에 대한 영향을 향후 많이 연구하고자 합니다.
3. KOSEN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현재 KOSEN에서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신지요? 처음 인연은 독일에 있을 때 우연히 웹사이트를 방문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방문을 하게 되었는 지 계기는 잊어버렸지만, 아 이렇게 외국에 있는 연구자들을 생각해 주는 곳이 있구나라는 생각에 자주 들여다보았지만 직접 활동을 하지는 못했었고 다른 분들이 제공해 주시는 정보를 보기만 하는 수준이었습니다. 정보들이 아주 많이 도움이 되는 것들이고, 다른 곳에서 찾아 볼 수 없는 좋은 내용들이어서 아직까지도 부지런히 보고 있습니다. 한국에 돌아와서 자리를 잡은 이후에, KOSEN에 저도 뭔가 적극적으로 참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지 않을까 궁리 끝에 2001년부터 자료분석을 시작했는데,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정리하는 과정에서 제가 필요한 정보도 자세하게 볼 수 있고 제가 쓴 글이 나름 잘 썼다는 평가도 받았습니다. 그 후 상당수의 자료를 분석하고 학회보고서도 제공을 해서 지금까지 10여편의 자료를 올렸습니다. 그래도 활동에 게을렀다는 자책이 드는데, 제가 대전에 있을 때는 KOSEN과 좀 더 밀접했는데 대전을 떠나면서 멀어진 것 같아 많이 아쉽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좀 더 많이 활동을 하고 싶고, 또 주변에서도 그렇게 권유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올해는 전문가에도 도전을 해 보고 그동안 못 했던 커뮤니티 활동도 해 보고 싶습니다. 4. KOSEN 회원과의 교류와 관련해서 개인적인 의견이 있으신가요? 국내 과학기술자로서 KOSEN회원과 전 세계의 한민족 과학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이와 관련하여 KOSEN에 바라는 점 혹은 KOSEN에 거는 기대나 발전 방향을 제시해주세요.. 제가 게을러서 부지런히 교류를 못하고 있는 것이 가장 미안한 점이고요, 좋은 교류의 장을 마련해 주신 KOSEN에는 항상 감사하고 있습니다. On-line 뿐 만 아니라 Off-line 교류까지도 제공해 주시면서 많은 커뮤니케이션에 노력해 주시는 것이 정말 고맙지요. 지난 10여년을 한결같이 노력하고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셔서 이제 KOSEN에 대한 신뢰는 무너질 수 없는 만큼 된 것 같아요. 앞으로도 계속 KOSEN이 과학자들의 핵심 사랑방과 정보의 원천으로 있어주실 기대합니다. 하나의 사업을 이끌고 수행하시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으시겠지만 KOSEN 만큼은 계속 유지되어야 할,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의 핵심 프로젝트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며 여기에 수만의 KOSEN회원들이 다 같이 공감하리라 믿습니다. 5. 마지막으로 이공계 종사자 혹은 과학도에게, 또는 이 길로 접어들고자 하는 후학에게 힘이 담긴 격려를 해 주신다면. 많은 분들이 이공계의 위기를 말씀하시고, 유인책을 말씀하시는데 저로서는 물리적인 유인책보다 자신의 꿈과 희망이 실현될 수 있는 가능성을 설명해 주는 것이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합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그것을 열심히 했을 때 가장 행복해 지는 것은 모든 사람이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생명과학을 하고 싶은 분이 있으면 열심히 하라고 저는 권유하고 싶습니다. 높은 연봉을 원하거나, 교수직을 원하는 분에게 생명과학은 답을 제공해 주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이것이라면 여기에서 분명히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저는 얘기해 주고 싶습니다. 물론 인간이 꿈만 먹고 살지 못하기 때문에 일을 통해서 경제적인 것이 해결되어야 하겠지만, 물질적 보상에 대한 기대치를 조금만 낮춘다면 생명과학이 주는 재미는 그 어느 학문 분야에 뒤지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 모두 PDP를 가질 때 내가 못 가지면 소외감을 느끼거나, 자동차의 크기가 나의 가치를 결정짓는다는 생각을 가진 분에게 생명과학은 개인적 만족을 못 가져다 줄 수 있습니다. (물론 가져다 줄 수도 있습니다. 경제적 가능성 또한 무궁무진한 분야니까요. 그러나 펀드매니저로 일하는 것 보다는 실현 가능성이 낮겠지요.) 그렇지만, 생명 현상의 발견되지 못한 부분을 내가 밝혔을 때의 기쁨이 새로 자동차를 샀을 때의 기쁨보다 크다고 생각하신다면 그 분은 이 분야에서 반드시 일해야 하는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다행히, 부모님의 경제적인 지원 없이도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학위를 받고 또 지금은 좋은 직장도 잡았습니다. 결혼도 해서 가정도 있고,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는 상황도 되었습니다. 아마도 아주 많은 부분은 운이 작용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운이 왔을 때 잡으려는 노력 정도는 저도 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생명과학을 해 봐야 겠다는 의지는 남 못지 않았다고 봅니다. 그 의지는 제가 “가장 하고 싶은 것을 한다”라는 믿음에서 왔었다고 생각합니다. 과학을 하시는, 하고 싶어하시는 분들게 저는 한 가지 질문과 한 가지 조언을 하고 싶습니다. “당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이것입니까?”, “그렇다면 당신의 모든 열정을 불사르십시오. 반드시 원하는 것을 찾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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