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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을 만드는 곳 <화랑대역>

최근 나는 사는 게 12월의 겨울밤처럼 어둡게만 느껴졌었다. 무거움과 동반되어 함께 오는 어두움이 나의 지인에게로 전달되어지는 게 영 미안해, 그녀의 손을 이끌고 찾은 도심 속 한가로운 풍경 앞 <화랑대> 역을 찾았다.

인기척이 느껴져 뒤를 돌아보니, 어디서부터 걷는 느낌을 감지했는지 모르겠지만, 멀리서부터 하얗고 커다란 개 한 마리가 우릴 향해 바람처럼 슬렁슬렁 걸어왔다. 눈이 영 순하디 순해, ‘요놈은 백설기 같다야.’ 라며 인신 입 밖으로 떡 문듯 중얼거리며 머리를 쓰다듬으니 이내 사람손길을 그리워했던 하얀 개는 나에게 포복 자세를 보이며 더 만져 달라고 목을 연신 내 무릎 위로 자꾸 부벼 댔다.

우리 꽁무니를 졸졸 쫓아오는 개의 꼬랑지를 보며 우리는 철길을 걸어보았다. 아직 기차는 올 기색이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멀리서부터 기적소리를 내며 올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혀 자갈밭 철길을 휘청휘청 뛰어다녔다. 사실 말이지, 나는 철길을 걸어본 적이 없다. 언제 밀려올지 모르는 기차가 무섭기도 하였지만, 누군가 남기고 간 그리움의 잔재들이 흩어져 있는 철길을 걷는 게 여간 부담스러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곧 잘 뜀박질을 하는 나를 보고 있자니, 그간의 두려움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라는 허탕한 물음부터 들었다. 사실 두려움이라는 건 애초부터 없었고, 나는 공연히 있지도 않은 ‘두려움’이라는 이유를 만들어서 스스로 가두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서 걷지도 못하고, 뛰지도 못하고, 그저 바라보고만 있어 진정 나의 것이 되지 못하게 만드는 건 내가 아니었을까 라고 말이다.
 

그렇게 질퍽한 질문들과 답변들이 머릿속에서 오고가고 있는 사이 흰 개와 지인과 나, 이렇게 우리 셋은 만화 속 주인공처럼 이미 화랑대 간이역 안에 들어서고 있었다.
 

안에 들어서니 누군가 기증한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는 낡은 피아노 한 대와 물장구치는 아이들이 그려져 있는 커다란 그림액자, 낡지만 그게 더 잘 어울리는 소파, 작고 아담한 나무 의자, 커피믹스, 따뜻한 난로가 우리 셋을 맞이하고 있었다.
 
‘집처럼 편안히 치세요.’ 라는 문구가 달린 검은색 피아노는 창가 바로 앞에 놓여 져 나는 먼저 그 쪽으로 자리를 잡았다. 작은 아이가 까치발을 해서 올려다보면 때마침 지나가는 기차를 볼 수 있는 듯 한 위치와, 낡고 허름한 피아노가 여러 사람의 손길을 타고 내 앞에 있으니 하나의 작품 같아 보였다. 의자를 고쳐 앉아 몇 개의 코드를 보며 피아노 건반을 어루만지며 띄엄띄엄 글자를 쓰듯 쳤다. 간이역 안에 들어서면 째즈가 은은하게 풍겨 나오는데 그 소리와 혼합되어 소음으로 들리는 것 같아 나는 치는 걸 관둘 수밖에 없었다. 듣기 좋은 째즈가 흘러나와서도 이지만, 말 그대로 ‘똥깡똥깡’ 치는 내 피아노 실력이 여실히 들어나 약간 창피하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누군가 복사해 놓았는지, 악보는 꽤 많았고 그 중에 <이은미의 ‘애인있어요’>라는 악보도 눈에 띄었다. 내 지인은 어느 새 들어보라는 듯이 피아노를 치고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피아노 반주에 맞춰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었다. 슬픈 내용의 노래였지만, 그 순간만큼은 지인의 피아노 가락에 신나게 따라 부르는 음악 수업 시간 같은 느낌이었다. ‘행복한 음악수업’처럼 말이다.
 
오고 가는 이들이 글을 쓸 수 있도록 ‘방명록’ 또한 마련되어 있었는데, 나는 구비되어 있는 펜들로 한 장을 꼬박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조만간 없어질 <화랑대역>에 대한 사람들의 애정이 담겨 있는 글을 보면서 나 또한 한 켠에 <없애지 말고, 시민들의 휴식처로 계속 이용되길 바란다.> 라는 글을 썼다.
사실 내가 이렇게 발걸음을 빠르게 옮기 이유는 금번 년도까지 <화랑대역>(기차역 화랑대역)이 기차역으로써 운행을 중단하기 때문이었다. 서울 한 복 판에 이런 간이역이 있다는 것을 우연히 처음 알게 된 시점에서 운행을 하지 않아, 폐쇄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자주 이용하지 않은 시민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아쉬움과 더불어 희미하고 옅은 슬픔마저 느껴지기까지 했다.
<화랑대역>은 혼자오기에는 무언가의 외로움이 있다. 역 안에 들어서면 역장 아저씨도 보이시고, 가끔 지나가는 주민들도 보이고, 흰 개도 보이고, 간간히 지나가는 기차도 보이는데 말이다.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외로움과 그리움들이 뒤섞여 공존하는 기분이 그 역안에는 다 있어, 혼자 가기에는 무언가 쓸쓸하고 애잔한 기분이 든다. 지인의 말로는 그 역안에서 흘러나오는 째즈가 제법 외로움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다는데, 째즈를 좋아하는 나로써는 그 외로움이 자연스러움이라고 느껴져 그 것과는 별개의 외로움을 느꼈었다.
흔들리는 풍경, 바람의 움직임, 풀의 냄새, 잡음이 섞인 째즈, 오래된 소파, 웃음의 잔재들...
이 모든 것들을 담요 삼아 깔아져 있어 <화랑대> 간이역 안에 오랫동안 깊숙이 스며들어 외로움과 그리움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떠나는 자의 아쉬움과 남겨진 자의 그리움이 있는 기차역이니 말이다.
기차는 끊임없이 오고가고 있었고, 우리는 그런 기차소리를 벗 삼아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웠다. 간만에 만나는 지인과 함께하는 소소한 일상의 자락이 너무 따스해 눈물이 날 정도였다. 봄이긴 하였어도 추위가 몸 밖에서 겉돌듯 차가웠지만, 마음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더 포근하였다.
화랑대역을 오고 있는 기차소리가 들리자 역장아저씨는 밖으로 나와 우리에게 “타세요?” 라고 물어오셨다. 정말이지 나는 “네. 가요! 타면 되나요?” 라는 대답을 하고 싶었다. 간이역에 온 이유가 기차를 타기 위해서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그때가 가장 간절했던 것 같다. 하지만 대답은 이미 목 뒤로 삼키고 현실의 대답을 전해드릴 수 밖에 없었다. 그 아쉬움이란!
해는 기울어 <화랑대>역에도 어느덧 어두운 저녁이 찾아왔다. 역사주변에는 어둠을 밝히기 위해 주홍빛 불빛들이 하나 둘 켜지기 시작했는데 그 모습이 모든 사물을 아롱하게 만들어, 잔잔한 평온함마저 주었다.
우리는 자리를 털고, 강아지와 인사를 나눈 뒤 왔던 철길을 다시 타박타박 걷기 시작했다.
가는 길에 찬바람이 불어 옷깃을 여미게 하였지만, 마음만은 그 어느 때보다 따스하고, 정겨웠다.
마치 긴 여행을 같다온 여행자들처럼 우리는 긴 말을 하지 않았지만, 입가에 머물러있는 잔잔한 미소와, 언제든 펼칠 수 있는 마음의 책 속의 추억들이 함께 있어, 나와 지인은 행복한 자갈밭 철길을 더 가볍게 걸을 수 있었다.
‘<화랑대>역은 추억을 놓고 오는 기차역이 아닌, 만들어 오는 기차역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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