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이서 함께한 하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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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의 바쁘면서도 권태롭기 그지없는 일상을 잠시떠나 여유로운 햇살과 계절이 가져다주는 아름다움을 느끼며 일탈의 시간을 갖기를 원하는 것은 이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이 꿈꾸는 공통의 로망일 것이다.
우리 내외도 같은 일탈을 꿈꾸며 하루하루를 지내고있다. 하지만 매일의 정해진 일과에서 벗어날 수 있는 틈은 직장인에게는 - 그나마 돌아오는 주5일제 덕택에- 돌아오는 놀토를 이용하는것이 최선 일것이다. 놀토의 설레임은 비단 학생들만의 전유물은 아니라 우리같은 중년의 맞벌이 부부에게도 주말마다 찾아오곤 한다. 이것도 회사 눈치보랴 2주에 한번 정도만 조심스레 꺼내 쓸수 있고 아내와 주기가 맞아야 하기 때문에 이런 기회를 연출해내기는 그리 쉽지 않다.
암튼 이날은 오랜만에 아내와 같이 놀토의 여유로움을 즐겨보리라 내심 작정 했던 터라 아내도 기다렸다는 듯이 따라나설 기세다. 이 경우 대다수 경우에 다음번 풀어야할 과제는 바로 ‘근데 어디로 갈 것인가?’ 일 것이다. 차타고 나가자니 기름값에 주말 교통체증이 먼저 떠오른다. 또 너무 멀리 갔다 오는 것도 하루코스로 갔다 오기에 지치고 혼자 기다릴 아들놈이 걱정되는것도 어쩔수 없는 부모의 멍에인가 보다. 군대 제대 후 올해 대학졸업을 앞두고 있지만 여전히 혼자 밥차려 먹는것을 보면 어설프고 엄마가 차려주면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을텐데... 라고 바라는 듯한 말없는 아들의 표정을 아내도 나도 떠올리고 있다.
그래서 정한 곳이 황학동 풍물시장이다. 큰돈 들이지않고 - 또 주말나들이에 돈을 꼭 많이 써야 맛인가 , 그냥 맘에 맞는 친구랑 같이 있는것 자체가 즐거운일 아닌가? 이것 저것 구경하고 소박한 길거리 음식맛보며 옛날을 회상해 보는것, 이런것도 일종의 풍류에 속하는것이 아닐까?
이런 풍류속으로 나를 이끌어드린 주요요인중 하나가 바로 교통카드다.
교통카드를 사용한지가 1~2년 됐나? 근데 한번 사용하고나니 그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신용카드에 교통카드기능이 추가되서 요놈 한 장 갖고나가면 지하철이니 버스타고 다니는데 세상 편하더란거다. 주차신경 안 쓰고 길못 찾아 스트레스 안 받고 만사태평스럽게 서울골목을 누빌수있어서 요즘들어 아내와 같이 서울나들이 갈때는 애용하고있다.
이날따라 왜이리 추운지 2월 한파로는 최고란다. 날한번 지대루 잡았다.
지하철에서 내려 풍물시장 골목입구를 찾아 들어서는데 벌써 얼굴이 얼얼해지고 손이 시렵다.
그래도 같이 팔짱끼고 허연입김 연신 뿜어내면서 씩씩하게 풍물시장 입구에 들어섰다.
들어오는 입구에 환영하는 공기인형이 춤추며 맞아준다.
풍물시장 입구에서 한 컷 찍어주는 센스!
모델은 언제나처럼 영이! 연애시절부터 아내이름의 끝자리를 애칭삼아 부르는 그녀의 닉네임이다. 그녀의 자칭 닉네임은 앞에 수식어가 하나 더 붙는다.- 이쁜○○○이라고 ...
이제는 카메라만 갖다대면 자동으로 포즈가 나온다. 근데 그포즈가 나름 괜찮다
같은 장소에서 찍어도 내가찍힌 모습은 극히평범 수준에 불과하지만, 그녀는 언제나 뭔가 연출하기를 좋아한다. 마치 영화속 주인공인 것 처럼~~~
그럼 난 자연히 카메라 감독이 된다.
풍물시장... 말로만 들었지만 시간 있을 때 한번 둘러보는 것도 괜찮은 듯 싶다. 2층구조의 상가건물은 오늘같이 추운날도 그 안은 전혀 춥지 않다. 화장실도 무척 깨끗했다 자주오시는 분들이 아주 수준있으신 분들인가 보다. 여느 대중 공공장소 화장실에서 만나게되는 얼굴찡그리게하는 광경은 걱정안해도 된다. 대형마트나 상가 화장실의 청결함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1층 입구에는 각층별, 동별 매장을 설명하는 안내 게시판이 풍물시장이미지와 다르게 현대적 감각으로 빛을 내고있다
골동품, 중고가전제품, 의류, 공구, 잡화, 악세서리 등 다양한 매장이 들어서 있다.
가격은 시중가에 반 정도면 구입할 수 있을 것 같고 중고제품일 경우는 더 싸다.
중간 중간 따뜻한 차를 마실 수 있는 장소도 있다.
노화를 방지한다는 웰빙 벌꿀 한방차도 한번 먹어줘야 할 것 같았다.
맛 또한 환상적이다. 한방차에 벌꿀이 가미된 묘한 맛인데 한잔 마시니 언 손과 얼굴을 녹이기에 충분했다. 거기다 맛까지 Good이니 아내의 선택은 탁월했다.
여기까지 왔으니 뭔가 건져가야 할 것 같은 저렴한 지름신이 내려 오고야 말았다.
그래... ‘망원경’ 하나 건져야겠다.
집 근처 쇼핑점에서 비싸서 한두번 만지작 거리다 내려놓았던 것....
싼맛에 하나 건져보리라.....!
난 관찰하기를 좋아한다. 특히 동물들-조류나 동물원 호랑이나 사자등의 관찰용 아니면 오페라글라스 대용으로.... 가끔 오페라를 보러갈 때 로비에서 대여해주는 오페라 글라스를 보며 작은 휴대용 망원경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왔었다.
한 손아귀에 들어오는 앙증맞은 크기였지만 보는 것은 나름 괜찮은 듯 싶다.
메이커? 그건 상관 없다. 메이커 따지면 여기오지 말아야지~~^^
케이스에 세척포 까지 이만원!
옆에 차고 한 컷! ‘어~때?’ 안 찍을걸 그랬나? 뽈록이 배가 신경 쓰인다.
이 곳에 계신 분 들 중에는 다른 곳에선 쉽게 만날 수 없는 특이한 패션을 추구하시는 분들이 심심찮게 계신듯하다 그런 분들을 감상하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있는 일이다.
구경하다보니 점심시간을 넘겨서 식사할 곳을 찾았다.
음식점은 1층과 2층에 자리 잡고 있었다. 각종 국밥 및 부침류, 국수는 물론 팔도 토속음식, 홍어삼합 등 각양각색의 음식을 맛볼 수 있게 되어있다.
쇼핑보다 먹거리 맛 기행을 하는 게 더 나을 듯도 싶다.
우리가 택한 곳은 종로빈대떡 전문점, 어머니가 황해도 태생이셔서 살아생전 명절 때마다 먹었던 녹두빈대떡과 커다란 황해도만두.. 그때는 늘상 먹는 이 음식에 이력이 나기도 했지만 나이 들면서 그 맛이 새록새록 그리워진다. 하지만 이제는 그 맛이 그리워도 그 맛을 찾을 수 있는 곳이 없다 . 사람 찾는 것만 힘든 게 아니다, 맛을 찾는 것도 참 힘들다.
아니 어쩜 이생에서는 불가능한 내 기억 속에만 남아있는 맛일지도 모른다.
아내도 함경도가 고향인 시아버지와 황해도가 고향인 시어머니 곁에서10년 넘게 그 맛을 본 터라 이젠 나처럼 녹두부침 제대로 하는 곳을 찾아 먹어보고 싶어 한다.
이곳 서울에서는 녹두만 부치면 끈기가 없어 부서진다하여 찹쌀이나 기타 다른 가루를 같이 섞어서 만들고 있지만 오로지 녹두에다 잘 익은 김치만을 섞어서 부친 오리지날 이북식 녹두맛에 어찌 비하랴?
한번은 명동에서 유명하다는 녹두부침점을 찾아가 먹은 적이 있다.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그 맛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동안 먹어봤던 녹두지짐보다는 훨씬 내가 찾는 맛에 가까운 맛이었다. 오랜만에 찾은 맛에 연거푸 2장을 먹었다. 그 후로는 언제 시간나면 다시 그 집을 찾아가 먹자고 의기투합 하고 있었던 터라 풍물시장 녹두지짐 맛은 어떨까? 궁금했다 .
가격도 오천원으로 저렴하여 큰 기대는 안했다.
어쩜 이런 곳에서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녹두부침의 맛을 기대한다는 게 너무 세상물정 모르는 것인지도 모른다. 녹두지짐을 기다리면서 나온 생야채와 막장맛이 신선했다.
특히 이곳 막장의 맛은 환상적이다. 다른 것 필요 없고 그냥 보리밥에 쓱쓱 비벼먹어도 밥한그릇 뚝딱 비울 것 같았다.
이윽고 뜨거운 철판에 먹기 좋게 썰어 나온 녹두지짐!!
식지 않고 계속해서 따뜻하게 먹을 수 있도록 한 주인 아주머니의 센스! - 맘에 든다.
젓가락으로 먹을 만큼 떼어서 간장소스에 살짝 찍어서 맛을 본 순간~~~~~!!
와~우! 그래 바로 이 맛이야! 내가 찾았던 바로 그 맛! 그래 그 맛이다!!!.
100% 녹두맛! 우리는 맛을 보면 딱 안다. 이게 몇%짜리 녹두인가를....
근데 이건 진짜였다. 100% 녹두가 맞다. 주인 아주머니에게 100%녹두만 쓰세요? 물어봤을때 그럼요! 자신 있게 대답하시더니~ 그래도 설마 했는데......역시 맛있다!
재료만 정직하게 사용해도 그 맛이 나오는데....
다 먹고 살자니 순수하게 100%를 유지하기가 힘든거겠지...
세월을 탓해야지 누굴 탓하겠나!
암튼 이집 꼭 한번 추천하고 싶다. 나 처럼 오리지널 녹두부침의 맛을 그리워하는 분이계시면 자신 있게 추천한다. 황학동풍물시장 2층먹거리장터에있는 종로빈대떡에 꼭 들러보라고.
정말 맛보고 싶었던 녹두부침과 잔 막걸리 2잔에 아내와 나는 이미 행복해져있다.
발그레해진 아내의 볼이 오늘따라 더 이뻐 보인다.
먹고 나오려는 우리를 또 붙잡는 게 있었으니 일본식 오뎅점이다. 지나면서 봤는데 오뎅이 좀 특이하다. 호기심에 그냥 앉아서 다시 모듬 오뎅을 주문했다. 다양한 재료로 만든 오뎅의 각기 다른 맛이 풍성하게 느껴진다. 그중 한 오뎅은 속 재료에 당면을 넣었는지 오뎅밖으로 투명한 당면이 보여 풍미를 더욱 돋운다.
오뎅 역시 오천원이다. 이곳은 웬만한 것은 다 오천원이면 해결된다. 저렴한 음식값이 나를 더욱 여유롭게 만드는 것은 얇은 월급봉투 직장인들만이 느끼는 씁쓸한 자족감일까?
녹두지짐과 모듬오뎅을 줄줄이 해치운 뒤라 여한이 없다고나 할까?
아무튼 여러 가지를 건진 것 같아 흡족한 기분에 휩싸인다.
아내는 그동안 잘 안 찍히는 결재도장을 이번기회에 바꾸겠다며 도장가게에 발을 멈췄다, 예전에는 사람이 도장을 새겼지만 요즘은 컴퓨터에 다양한 필체와 크기 디자인을 선택하여 입력하면 3차원가공 기계가 자동으로 1분 남짓한 시간만에 도장을 새겨준다. 요즘 산업체에서 쓰는 대부분의 기계 가공기는 컴퓨터로 연결되어있어 복잡한 가공부품도 도면을 입력하면 그대로 입체적으로 가공하는 3차원 자동가공기가 보편화 되어있는데 도장 파는 것도 그기술이 접목되어 있었다. 도장가공은 방전팁에서 전기 방전에 의한 고온으로 순간적으로 컴퓨터에 입력된 디자인을 방전열로 도장재료에 새겨 넣는다.
이제는 도장파는기술을 전수 받는 일은 필요치 않게 됐다. 이젠 누구나 도장파는가게를 열수 있게 됐다. 컴퓨터만 사용할 줄 알면 되니까.
예전에는 도장 각인기술도 꽤 인정받는 기술이어서 기술이 좋은 장인집은 많은 사람들로 붐비기도 했었는데.... 다 옛날 이야기가 되었나보다.
그런데 이러한 첨단기술(?)이 왜 이곳 서울 변두리 풍물시장에서 보이는 걸까? 아마도 이제는 도장자체도 옛시대의 것으로 잊혀져 가고 있기때문인것 같다. 현재는 도장대신 사인이 통용되고 더욱이 전자서류사용이 대중화 되는 추세 때문에 얼마 안 있으면 종이문화가 사라진다고들 하니 그 세대는 또 어떻게 달라질까? 뭐 거기까진 생각안해도 되겠지!
그건 우리 아들세대가 고민 할 문제일테니까 .....
문명은 보다 편리하고 새로운 것들을 계속 만들어 내는데 그럴수록 인간은 왜 지나온 과거를 회상하며 그리워 하는 걸까? 아마도 옛 물건이 더 좋고 편해서라기보다는 그것과 같이 보냈던 시간, 사람 , 추억 그런것들을 그속에서 찾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있을때는 잘 모르는데 지나가면 항상 그리워 하는 게 인간인가보다.
그래서 인간에게서 철학이, 예술이 생겨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암튼 아내와 함께한 풍물시장 나들이를 마치고 그냥가자니 좀 허전하여 이태원에 잠시 들르기로 하였다. 교통카드 한 장이면 어디든 못가리..
젊었을때 몇 번 갔었던 곳이지만 다시 들르니 좀 더 깨끗하게 정비가 되어진 것 같았다.
여기저기 구경하고 해밀턴호텔 뒤 외국음식점에서 저녁을 먹고 돌아가려는 계획이었던터라여기저기 근사하게 보이는 음식점앞에서 한컷씩 날려줬다.
마치 외국의 어느 거리 같은 느낌이 든다.
북유럽 체코나 헝가리의 어느 거리라고 소개하면 넘어가 줄까?
한 한식고기집인데 외국인에게는 우리같이 고기를 직접구우면서 먹는것이 이색적일수도 있을것 같았다. 유리창너머로 숯불에 삼겹살을 구워먹는 서양인들이 오히려 구경거리로 보였다.
대학원 진학으로인해 혼자 도서관에서 점심,저녁 혼자먹고 공부하는 아들놈이 자꾸 머릿속에서 ?힌다. 말나오자마자 얼른 아들에게 저녁같이 먹을수있냐고 문자넣는 아내,
아내도 둘만 저녁식사하면 둘다 편치 않을거란걸 말 안해도 아는가 보다.
저녁 같이 먹을수 있냐는 말에 지루한 도서관에서 빠져나올 훌륭한 명분이 생겼는데 왜 그걸 마다 하겠는가? - 기다리겠단다.
오늘 주말 나들이는 여기서 접어야 겠다. 다음에 다시 나오자며 그땐 둘이서 저녁먹고 들어가자고 다짐해본다.
돌아가는 발걸음이 자꾸 빨라진다.
일상의 생활로 돌아가는게 그리도 좋기 때문일까...... ?
오래전 포토에세이이지만 아내에 대한 사랑이 뿜뿜하는 글이네요. :-) 지금도 여전히 행복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