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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기술이 공존하는 도시 : 그르노블(Grenoble)

Figure 1.Grenoble 그르노블

프랑스 남동부 쪽에 위치한 그르노블(Grenoble) 하면 떠오르시는 것이 있으신지요? 알프스에 둘러싸인 이 분지도시는 수려한 자연환경과 최첨단 나노기술로 유명합니다.(Figure 1) 그런데, 산과 최첨단 기술이라면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아시나요 ?

제지 공장을 운영하는 가족에서 태어난 프랑스 엔지니어 Aristide Bergès는 1878년 알프스 산맥의 높은 수위 차를 이용한 수력발전을 그르노블에 도입합니다. ◀ Figure 2. Aristide Bergès(1833-1904)
당시 원자력발전이 없던 상태에서 많은 에너지를 쉽게, 깨끗한 방법으로 얻을 수 있는 수력발전은 획기적이었지요. 그로 인해 주변에 많은 화공, 제철, 전자를 주축으로 하는 기술단지가 그르노블을 기준으로 이 무렵부터 꾸준하게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Figure 3)

Figure 3. 그르노블에 위치한 주요 회사들

아울러, 기술단지가 발전함에 따라 고급인력의 수요가 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Grenoble 산업단지가 원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취지로 전기 단과대학으로부터 시작하여, 하나씩 하나씩 단과대학을 늘려 컴퓨터, 재료, 물리, 기계, 제지, 통신 공학을 아우르는 유럽에서 제법 큰 cluster로 발전하여 지금의 Grenoble 공과대학(Grenoble INP)이 되었습니다. 그 중 제가 다니고 있는 Phelma (PHysique, ELEctronique, MAteriaux)는 물리, 전자, 재료를 함축해 만든 이름으로써 세 개의 단과대학을 통합해서 2008년에 성립된 학교입니다(Figure 5). Grenoble INP에서 운영되는 학석사 통합과정으로 이루어지는 3년짜리 코스는 프랑스에서 흔히 말하는 그랑제꼴에 속합니다. 첫해는 유럽 학사 3년 과정의 마지막 학년에 해당하는데 자기가 공부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는 시기입니다. 두 번째 해와 세 번째 해는 석사과정에 해당합니다. 이때부턴 기초지식을 바탕으로 심화된 코스를 밟는 과정입니다. 보시다시피 원자력공학부터, 의공학, 신호처리뿐만 아니라 IC까지 다양한 코스를 고를 수 있습니다(Figure 6). 그르노블뿐만 아니라 유럽의 다른 나라와 같이 공동으로 진행되는 Erasmus Mundus과정도 선택할 수 있습니다. (e.g. Master FAME i.e. functional material: http://www.emmi-materials.eu/ ; Master Nanotech : http://nanotech.grenoble-inp.fr/) Erasmus Mundus 과정같은 경우에는 수업이 영어로 진행되고 유럽 외 학생에게도 많은 장학금이 지원되며, 프랑스(Grenoble INP), 독일(TU Darmstadt), 스위스(EPFL), 이태리(Polito) 같은 나라를 거쳐 가며 진행되기에 매력적입니다.

Figure 4.Grenoble INP Logo
( PHELMA : 물리, 전자, 재료 ; ENSE3 : 전기, 기계, 환경 ; PAGORA : 제지, 생채재료, 공정 ;
ENSIMAG : 응용수학, 컴퓨터공학, 금융 ; Génie industriel : 산업공학, 경영 ; ESISAR : 전자, 통신)

Figure 5. Grenoble INP Phelma

저는 프랑스 고등학교를 거쳐서, 파리 11대학에서 학부 2년을 마치고 제가 지금 다니고 있는 학교에 수시로 입학했습니다. 첫해에는 응용물리와 재료를 선택했고 석사과정은 전기화학과 화공학을 공부했습니다. (Figure 7) 현재 6개월 동안 Photo water splitting by co-doped titania nanotubes에 관한 주제로 독일과 프랑스 경계에 있는 Strasbourg에서 석사논문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Figure 8)

Figure 6. 커리큘럼 Grenoble INP Phelma ( 1,2학기 : 1학년 ; 3,4,5,6학기 : 2-3학년)

Figure 7.학교에서 진행했던 마지막 학년 전기화학 프로젝트

연구소와 연관되어 수업과 연구를 같이하는 석사과정과는 달리, 프랑스공과대학에서의 과정은 조금 다르게 진행됩니다. 우선, 석사를 9월에 시작하게 되면 다음 해 4월까지 수업을 듣습니다. 그런데 그 수업이라는 게 고등학교 때처럼 아침 8시부터 오후 5시 반까지 실험과 수업을 동반하여 두 학기 동안 꾸준하게 듣는데요. 시험을 마침과 동시에 연구소 또는 산업체에서 의무적인 인턴십을 하게 됩니다.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첫해를 마치고선 공장에서 Operator 역할을 맡게 됩니다. 두 번째 해를 마치고 나서는 Assistant engineer로서 일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 해에는 연구소나 회사에서 Engineer나 Researcher의 경력을 인정받는 6개월짜리 인턴십을 하게 됩니다. 학기 중 일반 석사과정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이 할 수 없던 실험이나 실무를 이 인턴십 기간동안 보충한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학교에 다니는 동안 처음부터 차근차근 반도체 공장부터 연구원 생활까지 살펴볼 수 있었던 것은 저에게 큰 경험이 된 것 같습니다.

Figure 8. 현재 근무하고있는 ICPEES-Strasbourg (UMR 7515, CNRS UMR 7515, Strasbourg University).
Adviser : Prof. Elena. Savinova (왼쪽에서 3번째) 필자 : 왼쪽에서 2번째

지난 3년 반 동안 저를 지탱해주었던 힘은 옆에 있던 친구들과 산에 있었습니다.
알프스의 수도라고 불리우는 그르노블은 익스트림 스포츠와 알피니즘(Alpinism)의 수도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이곳의 사람들은 산과 더불어 살아갑니다. 교수님들이 점심시간동안 각종 산악마라톤 경기준비로 동네 산(?)에 뛰어갔다 오시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Figure 9. Lac de Monteynard

인공 댐으로 건설된 Monteynard 호수는 차로 한 시간 거리에 위치해 있습니다. 산악마라톤 경기가 해마다 주최되기도 합니다.

Figure 10.Vertical race Bastille (850m, 7km)

필자도 뛰는 것을 좋아해서 도시 바로 옆 산에서 주최된 산악마라톤 경기에 참여해보았습니다.

Figure 11. 전에 살던 기숙사에서 보이던 경치

눈만 뜨면 보이는 것이 산입니다. 전에 살던 기숙사 침대에 누워서 창문 밖으로 보이던 풍경에 미소 짓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그르노블 대학에서는 전문가이드를 고용해서 학생들에게 산행을 즐길 기회를 제공합니다. (산행당 5유로, 약 7500원, 교통비 제외).
그간 돌아다녔던 곳 중 몇몇 사진을 추려보았습니다.

Figure 12. Vercors Pas de l'Oeille (1960 m)



Figure 13.Col d'Ambin (이태리와 프랑스 국경, 해발 약 3000미터)

 

겨울 산행 중 빠트릴 수 없는 라켓(Raquette, Snowshoe)은 일반인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산행 도구입니다. 면적이 넓을수록 압력이 작은 현상을 이용해 북아메리카나 시베리아에서 인류가 이용해왔던 스키만큼 오랜 역사를 지닌 보행수단입니다. 경사면에서 스키처럼 미끄러지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경사면에서 껑충껑충 뛰어다니는 게 재미있습니다. 다만 눈사태를 대비해 등산 스틱과 삽, 그리고 눈사태로 매몰되거나 추락 등에 대비한 송수신기 비콘(Avalanche Transceiver)을 휴대해야 합니다. 또한 산에 대해 겸손한 자세를 지니고 산행을 해야 합니다.

겨울 산행 중 스노우보드를 타면서 즐길 수 있는 패러글라이딩도 산행 중에 종종 볼 수 있는 장면 중 하나입니다. 산에만 가면 하늘과 제가 가까워지는 것 같아 몸도 마음도 치유되는 것 같았습니다. 한발자국 내딛을 때마다 마음이 차분해지고 가슴이 후련해집니다. 그래서 산을 계속 찾게 되는 것 같습니다.

대체로 산은 올라갈땐 버겁지만

위에서 내려볼때서야 지금껏 걸어온 발자취가 느껴집니다. 마치 우리의 인생이 이런 것 같아 경건해집니다.

Figure 14.Taillefer(2857m)

Figure 15. Deux Alpes 스키장 (1650-3520m)

학생일 경우 리프트 비와 왕복 교통비를 합쳐 25유로(약 한화 38000원)으로 온종일 유럽에서 가장 큰 스키장에서 스키를 탈 수 있습니다. 또한 학교에서 학생들이 운영하는 스키스쿨에서 수준별 무료 개인지도를 받을 수 있습니다(Figure 15).

철의 길이라는 의미의 Via Ferrata도 그르노블 근처에서 쉽게 즐길 수 있는 산악스포츠 중 하나입니다. 별다른 암벽기술이 없이 강철로 된 사다리를 카라비너로 확보하면서 나아가는 산행법입니다. 1차대전 시기 이탈리아 산악병들이 돌로미테 산맥에서 쉽게 이동하고자 만든 철 사다리들이 유래되어 지금 유럽 전역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몇 년 전 강원도에 프랑스 엔지니어들이 시설을 설치했다고 합니다. 철사다리는 항공용 알로이(합금)를 사용했기에 아주 튼튼합니다. 몇몇 안전수칙을 준수하면 부담 없이 안전하게 즐길 수 있는 스포츠입니다. 일반 암벽과 비교할 때 초보자는 엄두도 못 낼 코스를 아름다운 경관을 보면서 시도해 볼 수 있는 게 매력입니다. 다만 고소공포증이 있으신 분들은 시도를 안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다음 사진들을 보시면 아시게 될 겁니다. 몇몇 사진들을 추려보았습니다.
 

제작년 제 생일파티를 친구들과 산에서 보냈습니다. 프랑스 전기공사(EDF)에서 수력발전으로 이용되는 인공댐 Lac du Sautet는 암벽등반지이기도 합니다. 지리적인 요건으로 여름철에만 이용이 가능합니다.

미끌미끌한 사다리와 바위를 넘어서면 자그만한 계곡이보입니다.

출렁다리를 건너서 비취빛 계곡을 지나가면 도착하게 됩니다. 건너편 댐의 아름다운 전경이 보입니다.

그르노블 내에도 학교나 회사를 마치고 즐길 수 있는 암벽등반 코스가 있습니다. 두 구간으로 나눠져있는데요. 첫 구간은 중급. 두번째 구간은 중상급에 속합니다. 두번째 구간부터는 팔뚝에 힘을 좀 줘야합니다. 첫번째 구간에서 찍은 왼쪽사진과 두번째 구간에서 찍은 오른쪽 사진의 표정 변화를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두번째 구간을지나면 그르노블 전경이 보입니다. 링모양의 ESRF (European synchrotron radiation facility)가 멀리보입니다. 산업뿐만아니라 세계에서 손꼽히는 강한 중성자빔을 갖춘 ILL(Institut Laue Langevin), ESRF와 CEA (Atomic Energy and Alternative Energies Commission), 그리고 세계적인 나노센터 MINATEC 같은 과학센터가 모인 Grenoble은 연구하기에 아주 좋은 도시중 하나입니다. 작년 Forbes 가 지정한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도시(World's Most Inventive Cities)에 그르노블이 세계에서 다섯번째로 선정되었습니다. (1만명당 특허 6.23개, http://www.forbes.com/pictures/efee45jeje/5-grenoble-france/)


 

지리적 이점 덕분에 그르노블에서 스위스와 이탈리아 같이 다른 국가로 여행을 하기가 쉽습니다. 제네바나 밀라노가 기차로 2-3시간 거리에 있습니다. (Figure 16, Figure 17)

Figure 16.Genève

Figure 17.Milano

그르노블에서 차로 1~2시간 거리에 위치한 리옹(Lyon)과 안시(Annecy)에서는 해마다 빛의 축제(Fêtes des lumières) 또는 호수의 축제(Fêtes du lac d'Annecy)가 겨울과 여름에 열립니다. 빛의 축제는 리옹시가지 전체에서 12월경 3일 동안 벌어지는 빛의 향연입니다. 적극 추천합니다. (Figure 18)

Figure 18.빛의 축제

8월 초순경 안시에서 열리는 호수의 축제는 유럽에서 손꼽는 폭죽놀이로 유명합니다. (Figure 19)

Figure 19.호수의 축제

Figure 20. 안시 시가지

안시호수에서는 수영과 일광욕을 즐기실 수 있습니다. 고유의 모습이 그대로 보전된 안시 시가지도 무척 아기자기하고 예쁩니다(Figure 20). 현재는 3년 반 간의 그르노블에서의 체류를 마치고 앞에 언급한 것처럼 Strasbourg에서 일하고 있지만, 10년간의 프랑스 생활 동안 저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도시는 그르노블인 것 같습니다. 자연과 기술이 공존하는 동적인 도시, 65000명의 학생의 젊음과 열정이 숨 쉬는 도시, 그르노블은 근래 프랑스 시장선거에서 유일하게 환경당 출신 시장이 당선된 도시이기도 합니다. 혁신을 추구하면서도 자연을 아끼고 즐길줄 아는 사람들이 사는 곳, 산이 있는 그곳에서 한 번쯤 여러분을 뵐 기회가 있었으면 합니다.
 

세월호 희생자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그들의 희생을 잊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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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멋진 곳에서 연구하고 계시네요.. 빛의 축제는 황홀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윤정선(jsyoon) 2014-06-09

우와~~ 사진들이 아주 예술입니다. 가까운 곳에 유명한 도시들도 많아 여행 다니시기 좋을거 같습니다.^^

여자친구가 참 사랑스러워 보이네요. ^^

손지훈(htlaz) 2024-05-02

고등학교부터 프랑스에서 마치셨네요! 사진들 참 보기 좋고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