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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의 리얼 캐나다 정착일기

캐나다에서의 직장생활은 16년 차가 되었고 유학을 위해 한국을 떠난 지는 19년이 흘렀네요. 혹, 유학을 준비하시는 분이나 해외취업 또는 이민을 준비하시는 분 또는 해외의 통신시장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께 작으나마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에 그동안의 북미생활을 유학할 당시부터 시간 별로 간단히 정리해보았습니다. 물론 저 자신만의 관점에서요.
대학 재학 중 틈틈이 했던 유학준비를 통해 캐나다 동부에 있는 맥길대학으로부터 입학 허가를 받고 학부를 졸업한 그해 5월, 함께 유학을 준비했던 여자친구와 결혼을 했습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6년 후 2002년에는 석박사를 마치고 귀국해 부모님과 함께 월드컵을 보리라는 다짐으로 1996년 8월, 캐나다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서류준비가 늦어져서 8월 말이 되어서야 비자가 나와 학기 시작을 며칠 앞두고 몬트로올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출신대학과 자매결연이 맺어져 있어서 교환학생 자격으로 학비를 면제받을 수 있었지만, 통신 분야를 공부하려던 본래의 목표와 차이를 느껴서 학교를 옮기기로 결정했습니다. 다른 학교를 고려하던 중 원래 입학허가를 해 주었던 뉴욕주에 있는 시러큐스 대학에 연락해 그다음 해인 1997년 가을 학기부터 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학부전공은 전산학(Computer Science)이었지만 대학원에서는 컴퓨터공학(Computer Engineering)으로 전공을 바꾸어 통신 분야를 공부했습니다. 한국인에게 알려진 대학이라 한국 유학생들이 많아 외롭지 않았고 다행히 아내도 같은 대학에서 패션 디자인을 공부해서 서로를 잘 이해해 줄 수 있었습니다. 학교를 옮기느라 약 1년이 늦어져 부담이 컸고 워낙 영어를 못해 열심히 공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덕에 3학기만에 석사과정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 즈음에는, IMF 경제위기로 인해 원·달러 환율이 2000원까지 올라 휴학을 하고 군대를 가거나 공부를 포기하는 학부 유학생이 많이 있었습니다.
짧은 대학원 생활을 통해 미국과 캐나다의 대학원 교육의 차이를 쉽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학풍의 영향도 있겠지만, 캐나다의 학교는 좀 더 학문에 가깝다면 미국의 학교는 훨씬 실용적이고 프로젝트 위주였습니다. 한 예로 시러큐스에서의 한 교수는 WWW 기초에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매년 수백만 불의 프로젝트를 따왔습니다. 그 교수님의 프로젝트를 돕는 Assistant Researcher가 10명 넘게 있었고, 대학원 학생들도 50명이 넘었습니다. 연구실이 왠만한 중소기업의 규모였는데, 그 덕에 학교의 가장 좋은 건물을 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프로젝트가 없던 교수는 기존의 연구실을 빼앗기고 조그마한 사무실로 옮기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에 반해 캐나다의 학교는 변화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좀 더 근본적인 것에 더 많은 신경을 쓰고 연구를 진행하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석박사과정으로 학위를 빠르게 따는 것이 목표였지만 이론이 현장에서 어떻게 응용되는지를 알면 더욱 박사과정에 유용할 것 같다는 생각에 석사학위만 마치고 취업을 위해 직장을 알아보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미국의 몇몇 대기업에 문을 두드려 보았지만, 현장 경험이 거의 없고 석사를 갓 마친 저를 비자 스폰서까지 해주며 뽑아주는 곳은 없었습니다. 다행히 캐나다 영주권을 받으면 비자 걱정 없이 저렴한 학비로 공부할 수 있다는 캐나다의 전공선배의 권유 덕분에 영주권을 따게 되어 공부하던 곳과 가장 가까운 토론토로 이주하게 되었습니다.
석사학위와 영주권을 가지고 시작한 토론토 생활이었지만 정착은 어려웠습니다. 석사과정을 마칠 때 즈음 아내가 첫아이를 갖게 되어 임신 5개월인 아내와 토론토라는 낯선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했고 컴퓨터 관련 분야가 Year 2000의 영향으로 유망하기는 했지만 쉽게 직장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좋은 분들을 만나서 여러 조언을 들을 수 있었는데 그 중 지금도 기억하고 있었던 이야기는 '이제 당신은 학생이 아니고 직장을 구하고 있으니 지금 당신의 직업은 직장 찾는 사람이에요.' 그러니 하루 8시간씩 직장을 찾으라고 하셨던 것이었습니다. 구인광고에 쓰여있는 요구사항과 저의 경력 간의 차이가 커서 공부만 하던 저에게 큰 도전이 되는 조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 날부터 하루에 10시간씩 구직 사이트를 뒤지고 이력서를 보내어 통장잔액이 25불 남아있던 8월 마지막 주 토론토로 이주한 지 3개월 만에 직장을 구할 수가 있었습니다. 대략 계산을 해보니 약 천 여 통의 이력서와 세 번의 인터뷰 후에 직장을 찾게 되었습니다. 후에 구직 관련 세미나에서 그 당시 보냈던 천 여통의 이력서를 언급한 것이 한인 방송국까지 전해져서 다큐멘터리 형태로 인터뷰를 찍게 되었고 그 방송이 한국에 방영되어 몇몇 지인께 전화를 받기도 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정식으로 직장생활을 해 본 적이 없었고 인턴십만 몇 번 해보았기에 캐나다의 직장생활을 한국의 생활과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 같아서 이곳 생활 중심으로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HP, Nortel, Bearing Points 등 토론토의 몇몇 회사를 거쳐 현재는 캐나다 서부 밴쿠버에서 있는 TELUS라는 통신회사에서 Sr. Technology Architect라는 직함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TELUS는 캐나다 전역에 무선통신 서비스 및 여러 통신과 의료에 관한 서비스와 서부지역의 고객들에게 전화, 인터넷, 그리고 IPTV 서비스를 제공하는 통신회사입니다. 한국의 KT 그리고 미국의 Verizon정도로 생각을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가입자 수로 보면 캐나다의 전체인구가 약 3천 4백만 정도이기 때문에 한국회사나 미국회사보다 규모가 작습니다.
Accenture라는 컨설팅 회사에서 10년 전 파견을 나왔다가 약 2년간의 근무 후, 고객사인 TELUS로 옮기게 되어, 일한 지는 총 10여 년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가정용 인터넷 관련 프로젝트에 개발자로 참여했습니다. 부서 간의 이동이 자유로워서 지금은 Gigabit MAN 구축 프로젝트와 기존 CDMA 이동통신망을 HSPA+로 변환하는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다른 소규모의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통신회사가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네트워크 장비뿐 아니라 수백 가지의 시스템의 새로운 도입이나 변환작업이 필요하고 여러 부서의 사람들의 업무 프로세스도 변경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시스템이나 네트워크 장비 제공 업체들과의 이런저런 미팅에 참가하느라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팀들이 캐나다 전역에 떨어져 있고 인도와 필리핀에도 개발자들이 흩어져 있어서 전화와 화상을 이용한 미팅이 대부분입니다. 처음에는 영어가 힘들어 의사소통에 무척이나 어려움을 겪었으나 이제는 비록 영어가 많이 늘지 않았지만, 눈치(?)가 늘고 담대해져서 미팅이 크게 부담이 되지 않습니다. 대학 때부터 영문 전공서적으로 공부했기에 업무 관련 대화를 할 때는 도리어 수월한데 가끔 개인적인 이야기를 할 때 오히려 어려움을 느낍니다.
일을 시작한 십 년 전과 지금을 비교했을 때 큰 변화를 꼽자면, 내부인력과 인도 외주 업체 간의 협력 개발이 정착한 것을 들 수 있습니다. 또한, Core가 아닌 부분은 클라우드 서비스(SaaS)를 사용해서 제공하거나 플랫폼을 사서 최소한의 Customization으로 최대한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CRM 관련 부분은 벌써 클라우드 서비스를 사용하고 있고 클라우드 서비스를 이용한 서비스를 자체 개발해서 고객에게 제공하고 있습니다. 하루가 멀다고 터지는 정보노출 사고에 대응하기 위해 정보보호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보니 프로젝트 진행이 조금씩 늦어지기도 합니다. 빅 데이타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사용하기 위한 업무도 진행 중입니다. 네트워크 분야는 한국이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변화하기에 한국과 비교하면 조금 뒤처진 감도 있지만, 최근 엄청난 투자를 해서 캐나다 서부지역에 Optic 망을 깔아 1G 정도의 속도를 제공하고 있고 그것을 위해 전체 BSS/OSS (Business Support Systems, Operation Support Systems - Order Management, Billing, Inventory, Assurance, etc.)에서 SOA(Service Oriented Architecture) 기반으로 새로이 구축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한국의 통신업체도 이것을 위해 많은 투자를 하고 외국의 자문 업체와 일을 하다가 실패했다는 사실을 뉴스를 통해 접했습니다. 워낙 많은 예산의 투입과 인적, 시간적 지원이 필요해 전사적으로도 부담스러운 프로젝트입니다. 저는 이 프로젝트에 Solution Architect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또한 LTE의 가용지역을 늘리고 LTE의 데이터망을 이용한 음성서비스구축을 위해 IMS 기반 프로젝트 또한 진행 중입니다.
몇 년 전부터는 Work Style이라는 제도가 생겨 많은 직원이 집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저는 일주일에 두 번, 화요일과 금요일에만 회사에 가고 나머지는 재택근무를 합니다. 주로 화상 미팅을 하기에 업무를 수행하는 데는 별 무리가 없고 출퇴근 시간을 줄일 수 있어서 좋기도 하지만 사람 간의 소통이 조금 건조해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사무실에 있는 동안은 같은 팀원과의 소통에 더욱 신경을 씁니다. 많은 분들이 집에서 일하는 것을 부러워하시지만, 일의 양은 줄지 않고 도리어 아침 일찍 일하기 시작해서 더 늦게까지 일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인이나 매체를 통해 들은 것을 바탕으로 개인적인 생각을 말씀드리자면 개발자가 개발자로 은퇴할 수 있는 분위기와 조직의 유연성이 시급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곳에서는 직책과 진급에 상관없이 60세가 넘어서까지 자바개발자로 일하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관리자가 되는 길을 선택할 수도 있지만 저처럼 기술적인 분야에 남아 기술을 관리하는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두고 그에 따른 보상이 잘 이루어지는 환경이 조성되었으면 합니다. 프로그래밍 또는 기술분야의 전문가가 좋은 관리자가 되리라는 보장은 없으며 또한 각자 잘하고, 하고 싶어하는 업무를 인정해주는 분위기가 필요해 보입니다. 주변에 이 문제 때문에 이민 오신 실력있는 기술자분들을 많이 보았기 때문입니다.
최근 여름방학을 맞아 친구 가족이 캐나다에 놀러 와서 밀린 이야기를 나누며 좋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무래도 타지에서의 시간이 많이 흐른 탓에 옛 친구들의 방문이 더 반갑습니다. 조국을 떠나 캐나다로 온 것이 잘한 결정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단지 그 결정을 최선으로 만들기 위해 현재의 삶에 감사하며 열심히 사는 것이 저와 저희 가족의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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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리(syreui) 2015-01-06

캐나다로 유학을 가고 싶어하는 학생입니다. 많은 경험을 통한 충고 및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

예전에 한국에서 TELUS향 폰을 만들던 기억이 나네요..어디가나 구직은 쉽지 않네요.캐나다쪽 구직에 관심있는 연구자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캐나다에 유학 및 취업이민을 가고싶어하는 늦깍이 개발자입니다. 캐나다에 장애인에 대한 복지혜택이 있다고 하는데.. 어떤 혜택이 있나요? 그리고 캐나다로 가기 위해서 무얼 준비해야하는지 해서요

김민(onemkim) 2015-01-07

질문을 해주셔서 감사한데.. 답변을 드리기가 무척 어렵네요...General하게 말씀드리자면 아무래도 이곳에 직장을 가지기 위해서는 영어준비를 잘 해야 되겠고.. 이곳에서 필요한 Skills을 준비하셔야 겠죠.. 이곳의 Job Search 사이트에 가셔서 찾아보시고 "ex, http://www.workopolis.com" 필요한 조건을 보시고 준비하시면 좋을것 같네요.. 장애인들에 대한 복지는 한국보다 좋다고 들었습니다. 주위에 장애아동때문에 이민오신 몇몇분을 보았는데 자세한 사항은 잘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