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글로벌 파운드리스(Globalfoundries) 연구원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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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ab in Luther Forest in Malta.
제가 근무하고 있는 글로벌 파운드리스는 이름 그대로 세계 다양한 곳에서 반도체를 생산하고 있는 파운드리 회사입니다. 파운드리라는 의미는 자사 브랜드로 반도체를 생산하는 회사가 아니라 설계를 고객 (퀄컴, 애플 등등)으로부터 받아서 주문형 반도체 생산을 하는 사업 방식을 뜻합니다. 저희 회사는 2009년에 AMD와 Chartered를 기반으로 아랍에미리에이트의 Mubadala Technology의 투자로 설립되었습니다. 현재 미국 실리콘벨리에 본사를 두고 미국 뉴욕주의 말타, 독일의 드레스덴 그리고 싱가폴에 생산 팹을 가지고 있으며 최근 IBM의 반도체 부분을 인수하면서 뉴욕주 퓌시킬과 벌몬트주 벌링턴팹까지 생산 능력을 확장 중인, 반도체 부분에서 신생 회사이지만 가장 빠른 성장을 보이는 회사입니다. 현재 파운드리 업계에서 대만의 TSMC에 이어 2위의 생산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앞으로 계속 성장할 것으로 예측됩니다.
워낙 회사가 세계 곳곳에 자리 잡고 있고 업무가 다양해서 전체를 소개해 드리지는 못하겠지만 제가 속해 있는 뉴욕 올버니 IBM semiconductor alliance 위주로 회사 업무와 이곳 생활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그 전에 저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겠습니다. 저는 서울대에서 석사를 마치고 삼성SDI (현 삼성 디스플레이)에서 OLED 개발 연구원으로 근무 후, 동경대에서 박사를 취득했습니다. 하버드 박사후과정을 거쳐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세계 최대 반도체 장비회사인 Applied Materials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다가 4년 전에 이곳 IBM 반도체 리서치 연합에 글로벌파운드리 Assignee(수탁자)로 조인 하였습니다. 차세대 반도체 관련 연구를 15년 넘게 수행 중입니다.
CNSE 전경
http://www.newelectronics.co.uk/electronics-technology/what-makes-finfets-so-compelling/56795/
제가 속해 있는 곳은 여러 회사가 공동 투자하여 연구 컨소시엄을 만들어서 차세대 반도체에 대한 기초 연구부터 실제 10, 또는 7나노급 핀펫 (Fin-FET) 로직 트랜지스터 소자까지 구현하는 조직입니다. 연구 팹 (CNSE: College of Nanoscale Science and Engineering: sunycnse.com)이 뉴욕주립대 올버니 캠퍼스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at Albany) 내에 위치해 있습니다. 뉴욕주 정부와 대학교, 세계 유수의 장비 회사, 그리고 디바이스 회사가 공동으로 연구를 수행하고 있어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연구소입니다.저는 이곳에서 high-k metal gate관련 연구를 수행 중인데 쉽게 설명하면 수도꼭지가 물을 흐르게 하는 것처럼 트랜지스터에 전류가 흐르게 조절하는 부분이 게이트입니다. 고전적인 게이트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도입한 것이 고유전 절연체와 메탈 전극인데 적용에 많은 연구가 필요하며 스케일링에서도 많은 문제가 있어서 활발한 연구가 진행 중인 분야입니다.
Globalfoundries Fab 1 in Dresden
회사 생활은 다른 반도체 회사의 연구소와 비슷하게 수 없는 미팅의 반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도체 회사는 몇 년 안에 정해진 스케일링을 해나가야 경쟁에서 살아남기 때문에 연구 일정이 상당히 타이트 하며 learning cycle이 길기 때문에 계획부터 수행까지 치밀하게 준비해야 일정 안에 정해진 사이즈와 성능을 가진 소자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미팅으로 계획을 검토 수정하고 결과가 나오면 바로 리뷰하고 결과를 업데이트 해서 공정을 최적화 해나가는 과정을 반복합니다. 현재 많은 젊은 연구원들이 반도체 분야를 기피하는 이유 중 하나가 이러한 경쟁이 전세계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단기간 내에 정해진 과제를 완수해야 한다는 압박이 커서인 듯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경쟁과 압박이 끝도 없이 반복된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반도체 연구소만큼 많은 연구비와 고급 인력 투입를 통해서 엄청난 데이터를 뽑아 내는 곳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공학의 가장 첨단 기술이 적용되는 분야가 이곳이라 생각합니다.
연구에 대한 열정과 과학/공학의 bleeding edge를 경험하고 싶은 도전적인 사람에게는 꿈을 펼칠 수 있는 멋진 직장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학교와 달리 모든 연구원이 각 분야에서 최고의 경력을 쌓고 모여 있는 연구소라 서로에게 많은 자극이 되어 성장할 수 있는 곳이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연구가 차세대 반도체 소자에 적용된다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직장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직장은 소통과 협력을 잘하는 분들에겐 좋은 직업이겠지만 내성적이며 남의 간섭을 받기 싫어하시는 분들에게는 힘든 직업일 수도 있습니다. 특히 많은 미팅에서 자신의 의견을 효과적으로 간략하게 전달해야 하기 때문에 뛰어난 논리력과 영어 실력이 꼭 필요한데 많은 한국 엔지니어들이 이 부분이 약해서 실제 능력보다 대우를 못 받으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학교에서 교수님, 동료들과 토론 및 의사 소통 그리고 결과 도출의 일련 과정을 훈련하고 사회에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대체적으로 한국 분들이 학교에서 업적 내기에 시간을 쓰고 커뮤니케이션 능력 개발을 소홀히 하시는 경향이 있는데 미국 내에서 직장 생활을 하시려면 이러한 능력이 연구 능력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전해 드리고 싶습니다.
이곳의 생활에 대해서도 간단히 소개해 드리면, 우선 뉴욕주 올버니는 뉴욕주의 주도로서 잘 아시는 뉴욕 시티에서 대략 북쪽으로 3시간 거리에 있습니다. 동쪽으로 3시간 거리에는 보스턴, 그리고 북쪽으로 3시간 올라가면 몬트리올이 있어서 몇 시간 이내에 여러 대도시를 접할 수 있는 교통의 요충지입니다. 뉴욕의 주도라고 해서 뉴욕 시티처럼 빌딩 숲 속에 있진 않습니다. 올버니는 행정 수도인 만큼 규모가 큰 도시는 아닙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필요한 시설은 주변에 다 갖추어진 살기에 좋은 도시입니다. 아래 사진에 보이는 건물이 주 정부 청사입니다.
뉴욕주 정부 청사
그리고 사진에 보이는 정도가 대략 다운 타운의 전부라 생각하시면 될 정도로 작은 도시입니다. 대부분의 한인 엔지니어분들은 학군과 주거 환경이 좋은 올버니에서 20~30분 가량 떨어진 시 외곽에 살고 계십니다.
올버니는 위도 42도 정도에 위치해 있으니 한국으로 보면 백두산 근처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따라서 상당히 겨울이 길고 춥습니다. 대략 춥다고 생각되는 기간인 11월부터 4월까지는 언제나 눈이 올 수 있는 날씨입니다. 1~2월은 영하 20도정도로 자주 떨어지는 아주 추운 곳입니다. 눈도 많이 와서 일년에 20~30센티 정도 폭설이 보통 4~5번 정도 오며 눈이 많이 오는 날에는 학교와 대부분의 관공소가 휴무를 합니다. 아래 사진은 폭설이 온 후 집 앞 도로를 치우는 사진입니다. 도로는 시에서 치워 주지만 자기 차고에서 도로까지는 본인이 눈을 치워야 하므로 폭설이 온 날은 출근이 쉽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보통 드라이브 웨이(차고에서 도로까지 개인이 소유하는 길)를 치우는데도 한두 시간 소요되니까요.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저렇게 눈을 치우려면 기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눈이 많이 오는 지역이라 주변에 스키장도 많은데요 한두 시간 이내 거리에 열 곳 정도의 스키장이 있어서 겨울 스포츠를 즐기시는 분들에게 추천할 만한 동네입니다.
그리고 동네에 그림에 보이는 것처럼 눈썰매를 탈 수 있는 곳도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설경은 저의 집 뒤뜰입니다. 대부분의 집들이 자연 속에 자리 잡고 있어 예쁘게 눈꽃이 만발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전에 살았던 산호세나 보스턴에 비하면 한국 분들이 그렇게 많이 사는 동네라고 할 수 없기 때문에 한국 식료품이나 식당은 상대적으로 빈약합니다. 그래서 올버니에서 두 시간 반정도 거리에 있는 뉴저지 한인타운으로 쇼핑을 자주 다닙니다. 그곳엔 거의 LA한인 타운에 이어 두 번째로 큰 한인 커뮤니티가 있는 곳이기 때문에 다양한 한국 요리와 식품 등을 구입할 수 있습니다. 물론 올버니에도 작은 한국 슈퍼가 두 군데 정도 있어서 일반적인 식재료 구입에는 큰 지장은 없습니다. 올버니는 겨울에는 춥지만 여름에는 상대적으로 시원합니다. 올버니에서 한 시간 거리에 뉴욕커들의 여름 휴양지인 '사라토가 스프링스'라는 타운이 있습니다. 그곳은 여름에는 경마로 유명한 곳이며 온천 지대 이기도 합니다. 또한 분위기 좋은 곳에서 식사하기에 추천할 만한 오랜 전통을 지닌 레스토랑도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근처에 많은 호수들이 있어서 여름에 캠핑을 즐기고 인공 모래사장에서 수영도 할 수 있습니다. 아래 사진도 그런 곳 중 한 곳인데 바닷가가 세시간 이상 걸리기 때문에 이런 곳에서 바닷가의 분위기를 낼 수 있습니다. 워낙 여름이 짧아서 이 동네 분들은 여름엔 아주 부지런히 근처에 캠핑이나 야외 활동을 즐깁니다.
그리고 뉴잉글랜드 지역은 세계에서 단풍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이기도 합니다. 가을이 되면 집 뒤뜰이나 회사 근처에도 아름다운 단풍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뉴욕은 사과로 유명하죠. 가을이 되면 근처 농장에서 사과를 직접 따서 싼 가격에 사 올 수 있는데 이 지역은 워낙 토질이 좋아서 그런지 엄청나게 사과가 많이 달려 있습니다. 하지만 떨어진 사과는 저렇게 그냥 버리는 것을 보면 좀 아깝기도 하고 축복받은 땅에서 너무 낭비하며 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가을이 짧아서 아쉽긴 하지만 분명한 사계절이 있다는 것은 미국 내에 큰 장점이기도 합니다.
사실 미국 생활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부분은 주택과 교육일 것입니다. 제가 이전에 살았던 곳에 비하면 올버니 지역은 상대적으로 주택 가격이 낮고 교육이 좋아 엔지니어로서 여유 있게 가족과 생활하기 좋은 지역이라 할 수 있습니다.
최근 많은 한국 분들이 이 지역으로 이사를 오셨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 미국 직장 생활에 관심을 가지신 한인 연구원분들께 드리고 싶은 메세지는 막연히 미국에 대한 동경으로 미국에 오면 실망을 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어느 회사나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반도체 관련 회사는 긴박하게 돌아가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미국 회사가 원하는 외국인 엔지니어는 경험 많고 실무를 처리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한국에서처럼 나이와 경력에 대한 대우를 기대하고 오신 분들은 크게 실망하시고 힘들어하십니다. '나이는 미국 올 때 태평양에 버리고 오라'는 어떤 분의 조언처럼 장인 정신으로 진정한 엔지니어로 살겠다고 생각하고 오시면 미국 직장 생활에 한결 즐겁게 적응하실 수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아직 힘든 부분이긴 합니다만 꼭 극복해야 할 부분인 것 같습니다. 두서없는 긴 글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글 읽고 좋은 간접 경험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