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운대학교 연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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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인하대학교 생명과학과에서 근무중이고, 현재 연구년을 맞아 브라운대학에 연수를 나와 있습니다.
우선 제 연수 기관 소개부터 해 드리겠습니다. 브라운대학은 아이브리그에 속하는 사립대학 중 하나로 1764년에 설립되어 2014년 개교 250주년을 맞았습니다.
아이비리그는 미국 동부에 있는 사립대학의 총칭입니다. 하버드, 예일, 코넬, 프린스턴, 콜럼비아 등이 속해 있는 것은 많이 아시지만 브라운, 다트머스, 펜실베니아 등 총8개의 학교가 있다는 것은 많은 분들이 잘 모르시죠. 아이비리그라는 명칭은 이들 대학교의 역사가 오래되었기에 담쟁이덩굴이 덮인 건물이 많은데서 유래했습니다.
아이비리그의 각 대학들은 나름대로의 특성이 있는데요, 브라운대학은 아름다운 캠퍼스와 자유로운 학풍으로 유명합니다. 사철의 캠퍼스가 다 이쁘지만 저는 봄과 가을의 캠퍼스를 제일 마음에 들어합니다.
한국의 단풍도 이쁘지만 이곳 뉴잉글랜드의 단풍도 참 아름답습니다. 일교차가 클 수록 단풍이 아름답게 든다고 하는데 그 덕인 것 같네요. 가을색이 완연한 브라운 대학의 캠퍼스는 참 고풍스럽고 아름답습니다.
아이비리그의 대학들은 각 대학마다 고유의 학풍을 지니고 있는데 브라운대학은 이미 언급한 자유 분방한 학풍으로 유명합니다. 엄격하고 까다로운 종교적 계율에 반발한 침례교단에 의해 처음 설립이 이루어졌기에, 초기부터 학문의 자유와 다양성을 강조해 왔고 현재까지도 진보적이고 자유로운 학풍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입학시 결정하는 학과에 4년 동안 종속되는 한국과 달리 브라운의 학생들은 전통적인 전공분야 외에도 자신의 혼성 전공을 만들 수 있고, 지도교수와 상담하에 자신이 원하는 프로그램을 직접 짜서 공부할 수도 있습니다.
이 자유로운 학풍을 보여주는 가장 단적인 예가 네이키드 도넛 (naked donut)이라는 행사입니다. 중간, 기말고사를 앞 두고 자정이 넘은 야심한 시간에 나체 차림의 학부생들이 도서관을 돌며 학업에 지친 학생들에게 도넛을 나눠주는 행사입니다. 언제 어디서 행사가 진행될지 철저한 내부 보안 속에서 진행되고 야심한 시간에 진행되기에 그 행운(?)을 즐기는 찬스를 얻기는 쉽지는 않습니다.
브라운 대학의 동문으로는 록펠러 가문의 아들 중 하나인 자선사업가 록펠러 주니어, 전 대통령 존 F. 케네디의 아들인 존 F. 케네디 주니어, CNN의 설립자 테드 터너등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해리포터 시리즈로 유명한 엠마 왓슨이 졸업을 하기도 했죠. 엠마 왓슨은 영국의 캠브리지, 미국의 예일, 컬럼비아 대학에도 합격했으나 브라운의 자유로운 학풍이 자신과 맞다고 판단하여 이곳을 선택했다고 합니다. 작년에 졸업식에서 찍은 사진이 그녀의 SNS에 올라왔을 때 학사모 속의 미모가 세간의 화제가 되기도 했죠. 사실 테드 터너의 경우 정학 중에 기숙사에서 여자친구와 잠을 자다가 들켜서 학위를 못 받고 제적 당했는데 인터넷의 여러 정보에는 동문으로 기록이 되더군요.
이 브라운 대학은 프로비던스라는 로드 아일랜드 주의 주도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로드 아일랜드라면 생소한 분들이 많으실텐데 매사츄세츠 주의 아래에, 코네티컷 주의 위에 자리잡고 있고 미국에서 제일 크기가 작은 주로 그 크기가 충청북도와 비슷하다고 합니다. 프로비던스는 그 뜻이 신의 섭리라는 뜻입니다. 미국에 정착한 청교도들 중 신앙의 다름으로 인해 박해받던 개신교 교파 일부들이 피난처로 프로비던스 지역을 선택해 정착하며 도시가 형성되었습니다.
미국 독립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던 보스톤 차 사건보다 1년 앞서서 영국에 대한 투쟁이 시작된 곳이 프로비던스이기 때문에 미국의 역사가 이곳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인권 보장을 위해서 미국에서 노예제도를 제일 먼저 폐지한 곳도 이곳입니다. 이러한 배경 덕분에 미국 내에서도 자유롭고 진보적인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여들게 되었고,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예술인들의 터전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파슨스와 더불어 미국 최고의 미술대학으로 손 꼽히는 로드아일랜드 디자인 대학교 (RISD)가 이곳에 위치한 것도 우연이 아닌 듯 합니다.
아무래도 초기 청교도들이 정착한 곳이기에 다른 미국 도시들과 다르게 유럽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많이 듭니다. 브라운대학과 RISD는 모두 칼리지 힐 (college hill)이라고 프로비던스 다운타운의 동쪽에 위치한 언덕위에 자리잡고 있는데 지은지 200년 이상 된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많이 있습니다.
제가 이곳을 제 연수기관으로 선택한 주된 이유는 제가 이곳에서 박사 후 연수를 했던 곳이기 때문입니다. 2004년부터 2007년까지 약 3년 반 동안 이곳 브라운 대학의 생태, 진화학과에서 박사 후 연수를 했습니다. 2007년 이곳을 떠난 후 거의 8년만에 다시 방문을 하게 되니 옛 생각도 많이 나고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아무래도 새로운 곳에 정착하자면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데 저의 경우는 익숙한 곳이라 그런 수고가 적었습니다.
현재 이곳에서는 박사 후 연수 당시 지도교수였던 Marc Tatar 교수와 함께 공동 연구를 진행중입니다. 저희의 연구 테마는 노화생물학으로 좀 더 자세히는 노화가 진행됨에 따라 면역기능도 떨어지는데 이의 메카니즘을 밝히는 연구를 진행 중입니다. 사람의 경우 노화는 수십년에 걸쳐 일어나는 과정이기 때문에 직접 사람을 대상으로 연구하기는 어려움이 많습니다. 저희 연구실은 수명이 70-80일 정도 되는 초파리를 이용해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초파리를 이용해 노화를 연구한다면 많은 분들이 신기해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원숭이의 경우 수명이 30-40년, 쥐만 하더라도 수명이 30개월이 넘기에 이들 동물들을 이용해 노화를 연구하는데는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그렇기에 효모, 예쁜꼬마선충, 초파리와 같은 모델동물들을 이용해 노화를 많이 연구합니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유전자의 70% 정도가 초파리에서도 발견되니 생각보다 진화상으로 아주 먼 친척이 아니죠?
사실 한국에서는 강의와 잡무 때문에 거의 논문 읽을 시간이 없었는데 이곳에서 호스팅 교수와 같이 리뷰 논문을 준비하며 많은 시간을 논문 읽는데 할애하고 있습니다. 또 한국에서는 학기 중에는 거의 일주일 강의를 비워야 하는 해외 학회 참석이 쉽지 않은데, 이곳에서 많은 학회를 참석하며 최신 연구 동향을 파악하고 많은 연구자와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공동연구 기회를 물색하고 있습니다. 14년 3월에는 시카고에서 열린 초파리 연구 학회 (Drosophila Research Conference)에 참가해 많은 공부를 하고 돌아왔고, 미국 각지에서 열심히 연구하시는 한인 과학자 분들과의 귀한 만남도 가졌습니다.
그외에 기회가 되면 초청 세미나를 불러주시는 곳에 가 발표를 하기도 합니다. 그간 NEBS(New England Biological Society)라고 뉴잉글랜드 지역의 생명과학자 모임에서 제 연구결과를 발표하고 한인과학자와의 만남을 가졌고, 저와 박사과정 때부터 연구분야가 같아 꾸준히 연락을 해 오던 플로리다 주립대학의 Daniel Hahn 교수와 John Hatle 교수가 제가 미국에 연수 나와 있는 것을 알고 그곳 학과 세미나에 초대해 주어서 좋은 시간을 보내고 오기도 했습니다.
연구도 열심히 하고 있지만 그간 한국에서 못 즐긴 취미생활도 틈틈히 즐기고 있습니다. 주로 바빠서 그간 잘 못 했던 운동을 많이 즐기는데요, 일주일에 한번 테니스를 즐기고, 일주일에 두 세번씩 체육관에서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로드 아일랜드는 애칭이 오션스테이트일 정도로 바다를 많이 끼고 있어 낚시꾼들의 천국이기도 합니다. 5월부터 시작되는 낚시 시즌에는 바다에 나가서 광어, 도미, 대구, 한치 등의 낚시를 즐기기도 합니다. 특히 한치는 미국의 다른 지역에서는 보기 힘든 어종으로 뉴욕 등지에서 이를 잡기 위해 올라 오시기도 합니다.우측의 사진은 black fish, 일명 tautag이라는 물고기로 흑돔과 비슷한 물고기입니다. 쫄깃쫄깃한 식감이 횟감으로 최고입니다.
보스톤이 한시간, 뉴욕이 세시간 정도 걸리는 곳에 위치하고 있어 가끔 문화생활을 즐기러 이곳 도시들을 방문하기도 합니다. 지난 여름의 경우 뉴욕 필 하모니 오케스트라가 맨하탄의 센트럴 파크에서 무료 공연을 열기도 했습니다. 돗자리 하나씩 펼쳐들고 널다란 잔디에 앉아 와인이나 맥주를 마시며 여름날의 밤을 아름답게 즐기는 뉴요커들의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그외에도 저희 아이들이 열광했던 라이언킹을 비롯한 브로드웨이의 뮤지컬이나 메트로폴리탄, MOMA 등을 비롯한 많은 미술관, 미국의 역사를 따라 걷는 보스톤의 freedom trail 등 많은 볼거리들이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프로비던스는 북위 41도 정도에 위치하고 있어 여름은 상대적으로 시원하고 겨울은 긴 편입니다. 다행히 바다를 끼고 있어서 온도 자체는 한국의 겨울과 비교해 그리 낮은 편은 아닌데 개나리가 4월 초순경이 되어야 피기 시작하니까 한국보다 한달정도 봄이 늦습니다. 지난 겨울은 특히나 눈이 자주 그리고 많이 내려 힘들어 하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수십년만의 폭설도 내렸는데요 MIT 기숙사 앞에는 치워 놓은 눈으로 작은 산이 생길 정도였습니다.
많은 대학들이 무한경쟁의 시대로 들어가면서 이제는 대학의 연구년 제도도 없어질지 모른다는 이야기가 들리고 있습니다. 이미 몇개의 대학은 이 제도를 축소하기 시작했다는 소리도 들리고요. 강의와 잡무에서 벗어나 재충전의 기회를 가지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고 있는 제게는 아쉬운 소식입니다. 그간 연구년을 나오면 연구는 뒷전이고 골프 실력 향상에만 매진했던 일부 교수들에게도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닐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는 그간 앞만 보고 달려 오느라 제 자신과 가족을 돌아볼 시간이 부족했는데 이곳에서 재충전하며 가족과의 돈톡한 시간을 보내고, 새로운 연구 아이템을 발굴할 수 있는 귀한 기회를 가지는데는 LG 연암재단의 도움이 컸습니다. LG 연암재단은 지난 89년부터 국내학문의 세계화를 위해 연암해외교수를 선정해 연구비를 수여하고 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LG 연암문화재단에 감사를 드리며 이만 포토에세이를 마칩니다.
민교수님 언제 브라운으로 가셨어요 ? 좋은 시간 보내시고 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