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국립보건연구소(INSERM) 연구실에서 인턴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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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University of Paris에서 보건사회학을 공부하면서 프랑스국립보건연구소(INSERM) 연구실에서 인턴생활을 하고 있는 정지원 입니다. 10년 전 우연찮은 기회로 잠시 파리에 머물게 된 적이 있었는데, 10년이 지난 지금 이 도시와 다시 인연을 맺어 이렇게 살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었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언어로 공부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사회의 소수자로서 살아간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인생에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에 아주 놀라운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제가 공부하고 있는 보건사회학은 공중보건을 사회학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는 법을 배우는 학문입니다. Sociology of health, medical sociology, health and social sciences, social epidemiology 등등 다양한 이름과 분과가 있지만 여기서는 통칭하여 보건사회학이라 칭하겠습니다. 이번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아마 많은 분들께서 개인의 건강이 결코 혼자 힘만으로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셨을 것 같습니다. 또, 코로나 초기에 양로원이나 요양병원 등에서 집단감염이 대거 발생하는 것을 보고 건강이라는 게 얼마나 차별, 소외와 맞닿아 있는지도 느끼셨을 것 같습니다. 외국에 있는 저는 공중보건이 시민의식, 그리고 더 깊이는 한 사회가 공유하는 중심가치와도 굉장히 연관이 깊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런 주제를 공부하는 게 보건사회학입니다. 저는 그 중에서도 약물중독을 연구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INSERM에서 의학-사회과학 학제간 연구실인 CERMES3에서 약물중독산모에서 태어난 출생아 코호트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프랑스의 보건사회학 전통이 굉장히 오래되었음에도 언어적 제약 때문인지 한국에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프랑스의 이론들을 국내에 소개하는 작업을 간간이 하고 있습니다.
공적인 일과 이외에, 현재는 적정기술연구를 병행하고 있습니다. 석사 진학 전에는 공적개발원조(ODA)의 일환으로 여러 개발도상국에서 공중보건사업을 수행 했었는데요. 그 덕분에 유럽에 거주하고 계신 여러 과학자분들과 적은 자본과 간단한 기술로 아프리카 지역사회의 보건, 식수, 에너지 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연구 중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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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대학교 도서관
파리대학교 본관
저는 생각보다 늦은 나이에 프랑스에서 석사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나이에서 늦다 빠르다 하는게 굉장히 주관적이긴 하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주변 친구들, 동료들이 회사에서 자리를 잡아갈 때 즈음, 저는 돌연 공부를 하겠다고 방향을 선회했으니 이른 나이는 아니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래서 사실 시작하기에 앞서서 고민도 많이 하고, 두려움도 많았습니다. 또 영어로도 할까말까 한 공부를 프랑스어로 해야하니 이게 가능할까 객기를 부리고 있는게 아닐까, 또 공부를 마치고 나서 취직은 잘 될까 등등 걱정이 한가득이었습니다. 제가 원래 걱정이 많은 스타일이긴 합니다.
그렇게 걱정의 나날들을 보냈는데, 웬걸, 막상 부딪히고 나니 또 어떻게든 사람이 앞으로 나아가게 되더군요. 수업에는 저보다 나이가 한참 많은 학생(무려 은퇴하신 할아버지!)분들도 계셨고, 또 저만큼 불어를 우물쭈물하는 외국인 학생들도 당연히 있었습니다. 심지어 유학생 분들 중에서는 육아와 학업을 병행하는 어마어마한 분들도 많이 계셨습니다.
이제서야 잠시 숨을 고르고 보니, 과거에 제가 무섭다 두렵다 못할 것 같다라고 생각했던 건 아마 많은 세계를 접해보지 못해서 그랬던게 아니었나 싶습니다. 주변 가족, 친지들 중 이렇게 장기 유학을 떠났던 사람이 한 명도 없었고, 친구들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습니다. 인터넷에 떠도는 이야기들은 정확한 출처가 없는 정보들이 많아서 오히려 불안감을 더 부추기는 경우가 많았고요.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KOSEN의 이 웹진 코너가 과거의 저 같은 사람들, 그리고 현재의 저 같은 사람들에게 정말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 먼저 해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나도 언젠간 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의 싹이 생기니까요.
늦은 나이에 시작했다고 생각한 프랑스 유학생활은 생각보다 훨씬 더 만족스럽습니다. 물론 유학에서 오는 어려움과 불안함 외로움 등의 감정들이 결코 가벼운 문제는 아니지만, 저는 지금의 경험이 참 값지다 생각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파리는 늘 무수한 관광객들로 가득 찬 도시라, 그 인파들 사이에 있으면 저도 덩달아 여행객이 된 기분이 들어 설렜는데 요즘은 어딜가나 텅 빈 공간에 찬바람만 불어서 좀 아쉽습니다. 그래서 조금이나마 헛헛한 마음을 달래보고자 코로나 전에 찍었던 사진들을 몇 장 공유해볼게요.
퐁피두 근처에 위치한 카페, 양파 수프가 맛있다.
파리 뤽성부르 공원, 일광욕을 하려는 사람들로 항상 가득하다.
튈르리 공원, 맞은 편에 루브르박물관이 있다.
마스크 없이 자유롭게 도시를 거닐 수 있었던 게 이토록 큰 일이 될 것이라곤 생각도 못했습니다. 모르는 사람과 스치고, 대화를 하고, 또 많은 인파에 휩싸이는 일을 날카롭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게 슬픈 일이기도 하고요.
파리 센느강변 카페, 샤크트리와 맥주. 조합이 아주 좋다. 한국인 입맛에 딱이다.
파리 퐁네프 다리, 다리를 마주보고 왼쪽 강변에 작은 프랑스 가정식 레스토랑이 있다. 해질무렵이면 퐁네프를 보며 분위기 있는 식사를 하기에 좋다.
이번에는 코로나가 끝나고 난 후 프랑스 여행을 계획 중이신 분들께 도움이 되고자 여행정보를 몇가지 드리려고 합니다. 파리에 대한 정보는 인터넷에 이미 너무 많은 것 같아서, 저는 파리 근교나 파리를 제외한 다른 지역에 대한 정보를 드릴게요.
먼저 파리 근교에 기차나 자동차로 1시간~2시간 사이에 갈 수 있는 곳들을 소개해드릴게요. 파리에서 기차로 가볼 만한 곳이라면 디즈니랜드(RER C선을 타고 약 40분), Sceaux 공원(RER B선을 타고 약 20분), 베르사유 궁전(RER C선을 타고 약 1시간)이 있습니다.
파리 디즈니랜드, 명성에 걸맞게 퍼레이드와 불꽃놀이가 매우 화려하다.
쏘 공원의 벚꽃, 4월이면 벚꽃이 만개하여 벚꽃놀이를 온 사람들로 가득하다.
기회가 된다면, 꼭 국제면허증을 가지고 오셔서 파리 근교를 둘러보시길 추천드려요. 파리도 예쁘지만 파리 바깥을 벗어나면 또 다른 프랑스를 볼 수 있습니다. 차로 편도 한시간 정도면 프로방스(Province)라는 중세도시에서 옛 도시 전경을 볼 수 있고, 퐁텐블로 성에서 자전거도 탈 수 있습니다. 편도 2시간 정도면 모네가 살았던 마을인 지베르니도 갈 수 있고요. 지베르니 자체도 아름답지만 파리에서 지베르니를 가는 길이 정말 아름다워요. 특히 봄철에는 지베르니 가는 길이 모두 유채꽃밭이라 예쁜 봄풍경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차로 가시길 추천 드려요. 또 파리에서부터 2시간이면 샤또 드 샹보흐(Chateau de Chambord)라는 아름다운 성이 있어요.베르사유궁전보다 화려하진 않지만 아름답고 고즈넉한 곳이라고 느꼈어요.
중세도시 프로방스, 관광객이 많지 않은 소도시라 조용하게 지내다 가기 좋다.
지베르니 가는 길, 이 들판이 유채꽃으로 가득 찬다.
샤또 드 샹보흐(Chateau de Chambord), 프랑스인들이 추천하는 고성 중 한 곳
샤또 드 샹보흐(Chateau de Chambord) 정원, 베르사유만큼의 화려함은 없지만 가을풍경이 참 아름답다.
그리고 꼭 가보셨으면 하고 추천 드리는 곳은 프랑스 북부에 위치한 에트르타(Etretat)와 옹플뢰흐(Honfleur) 입니다. 프랑스 남부의 유명한 니스, 깐느와 같은 화려한 맛은 없지만 북부만의 광활하고 웅장한 느낌이 가득한 지역입니다. 파리에서 에트르타까지는 차로 편도 2시간 30분에서 3시간 정도 걸리는데요. 남부의 유명한 도시들은 차로 가기에 무리가 있지만, 에트르타는 1박 2일 정도면 주변에 유명한 지역들을 천천히 둘러보기에 아주 좋은 코스입니다. 가시기 전에 모네의 에트르타 그림을 보고 가신다면 더욱 좋을 것 같아요.
에트르타의 코끼리 바위, 예술가들이 사랑에 빠질 만한 망망대해
마지막으로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지는 것을 기념하며 프랑스에서 크리스마스 마켓으로 유명한 릴, 스트라스부르그, 콜마르를 소개해 드릴게요. 릴은 벨기에 국경 근처에 있는 도시여서 벨기에와 함께 여행하기 좋아요. 스트라스부르와 콜마르는 차로 30분 정도 떨어져 있어서 두 군데 모두 함께 여행하기에 괜찮습니다.
스트라스부르 거리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스트라스부르 크리스마스 마켓
따뜻한 와인인 방쇼(Vin chaud) 를 들고 마켓 구경을 하기 좋다.
프랑스 북부도시 릴의 크리스마스 축제 전경, 크리스마스 대관람차가 유명하다.
프랑스 음식은 저에게 아직도 어려우면서 난해한(?) 영역이라 추천드리기가 어렵네요. 그러나 프랑스사람들에게 레스토랑에서의 외식은 정말 Fine dining에 가깝기 때문에 지금껏 가본 식당들 대부분 기본 이상의 맛을 보여줬습니다. 그러니 여행하실 때 맛집을 찾느라 너무 힘빼지 마시고 분위기가 좋아 보이거나 마음에 드는 곳이면 어디든 들어 가셔도 괜찮을 것 같아요. 와인은 프랑스 사람들에게 자존심(?)이라고들 하지만 제 주변에는 와인에 조예가 깊은 현지인들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워낙 물처럼 마시는 거라 어떤 것을 마셔도 기본은 하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러니 와인도 육고기에는 레드, 생선요리에는 화이트 정도만 맞춰서 아무거나 시켜도 괜찮을 듯 합니다.
콜마르의 크리스마스, 작은 마을이지만 건물의 색감이 정말 예쁘다
난해하지만(?) 맛있는 프랑스 음식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2년 여 간의 유학생활에서 제가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좀 더 내가 용기를 가지고 살아도 괜찮겠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인은 이렇더라, 프랑스인은 이렇더라, 남자는 이렇더라, 여자는 이렇더라, 30대는 이렇더라, 40대는 이렇더라 하는 프레임에서 빠져나올 필요가 있다는 걸 배웠습니다. 내가 한국인이기 때문에, 여자이기 때문에, 30대기 때문에 이렇게 살아야 한다라고 규정짓는 순간 제 가능성도 거기서 막혀버리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세상에 정말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을 보면서 나는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싶은지 그런 고민도 많이 할 수 있었습니다.
웹진을 읽는 많은 독자분들도 변화 앞에서 조금 더 용기를 내시면 생각지도 못한 기회들을 많이 만나게 되시리라 생각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보건사회학이라는 분야는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매우 중요하게 쓰여질 것 같네요. 외국어로 공부하는 어려움을 30여년전에 겪어본 사람으로서 격려해 드리고싶네요. 화이팅입니다!
덕분에 사진과 글 읽으며 잠시 힐링되었어요.^^ 마지막에 써주신 '좀 더 용기를 가지고 살아도 괜찮겠다'라는 말이 울컥하네요. 저도 걱정많은 사람이거든요. ㅎㅎ 늦게라도 떠나신 유학 너무 멋져요. 하고싶으신 일 마음껏 펼치며 이뤄내길 응원할께요!
정말 당장이라도 파리에 가고 싶네요 ㅠㅠ 코로나가 종식된다 해도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가긴 어렵겠지만 그래도 희망을 가지고, 마스크를 쓰고 웃으며 여행할 수 있는 날이 어서 왔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해요!
학교 내부가 예쁜만큼 이상 참 대단하십니다 앞으로 직진을 고수하신 결심이요.제가 힐링보다 더한 저만의 결심을 함 더 하게 하신 내용이었네요.
잘 읽고 나갑니다.
사진만 보아도 힐링이 되네요. 프레임에서 빠져나와 좀 더 용기를 가지고 살아도 된다고 하신 말씀이 많은 분들에게 공감이 되고 힘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