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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는 관찰된다?

위 사진을 보면 여러분들께서는 어떤 느낌이 드십니까? 뭔가 지저분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매직아이(?)가 아닌가 뚫어져라 뭔가 보려도 할지 모릅니다. 위 사진은 Fe계 비정질 금속 재료의 150만 배 고 배율 투과 전자현미경(TEM) 사진입니다. 사진의 가운데 위쪽 면을 보면 뭔가 지렁이처럼 꾸물꾸물한 것들이 불규칙적으로 배열되어 있는데 이것이 비정질 재료의 원자배열상태를 나타내고 있으며, 가운데 오른쪽 혹은 가운데 아래쪽 면에 일정한 간격으로 마치 작은 알갱이 (정확하게는 원자)들이 규칙적으로 줄을 서 있는 것처럼 보이는 영역이 있는데 이것은 결정재료의 원자배열 상태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왼쪽 아래의 검은색 선은 2나노의 길이를 나타내고 있는데 1나노란 10억 분의 1미터를 나타내는 단위입니다. 저는 이 사진을 볼 때마다 항상 대학원 때의 힘들었던 옛 기억을 떠올립니다. 모든 것이 신기하고 궁금하기만 했던 대학원 시절...... 처음으로 전자현미경이란 장비를 접했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많이 다루는 현미경은 주로 광학현미경으로 최고 배율이 (장비에 따라서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약 1,000배 정도까지 확대해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사 전자 현미경(SEM)의 경우 약 10만~50만 배까지 확대해서 재료를 관찰할 수 있으며, 투과전자 현미경(TEM)의 경우에는 최대 150만 배까지 확대가 가능합니다. 물론 모니터로 다시 10배 확대가 가능하다면 1,500만 배까지 확대해서 관찰하는 것이 되겠지요. 대학원에 오기 전까지 제가 알고 있던 지식으로는 원자란 “물질을 이루는 가장 작은 단위로서 더 이상 쪼개질 수 없고 눈으로 관찰할 수 없는 최소의 단위” 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과학과 장비의 발달로 그런 원자(정확하게는 atomic potential이라고 부르는 게 맞습니다만)를 직접 관찰할 수 있다니…… 장비에 관한 수업을 듣고 견학을 한 후 저는 저런 장비를 한번이라도 사용해 보고 싶은 마음에 가슴이 부풀어 오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저런 고가의 장비 사용에는 많은 어려운 관문이 있었습니다. 관련 수업을 이수해야 했고, 실습 수업을 통과해야 했으며, 일정시간 A급 사용자와 함께 장비를 다루어서 C급 사용자로부터 B급, 다시 A급 사용자의 권한을 얻어야 만 비로소 장비를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장비 사용만 어려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투과전자현미경에 사용할 수 있는 시편 만드는 일은 훨씬 더 어려운 노동(?)을 필요로 했습니다. 금속 시편을 얇게 잘라서 두께가 100um가 될 때까지 양쪽 면을 고루 연마합니다. (100um 두께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A4용지 두께 정도입니다) 이 후 시편으로 3mm 디스크 형태로 절단한 후 dimple, ion milling이라는 공정을 거쳐서 비로소 시편이 완성되는데, 석사 시절에 연마(polishing)만 2주 이상 한 경험도 있습니다. 해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금속 시편을 종이 두께로 연마해 내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너무 적게 연마해서 계속 두께를 측정해도 거의 변화가 없을 때도 있었고, 너무 많이 갈아서 손가락 지문마저 갈리는 경우도 많았으며, 적당한 두께로 연마를 마쳤는데 시편이 깨어지는 경우, 아니면 (어쩌면 가장 억울한 경우인데) 시편을 떨어뜨려 잃어 버리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정말이지 손가락 지문을 희생(?)해 가면서 몇 날 며칠을 연마해서 만든 시편을 잃어버렸을 때에는 울고 싶기도 했답니다. 지금이야 많이 숙달이 되어서 하루면 시편 제작이 가능하고, 아무리 어려운 시편이라도 2~3일이면 시편 제작이 가능하지만 그 당시에는 시편 제작에 드는 노력은 제치고라도 시간이 최소 몇 주씩 걸리곤 했었으니까요…… 여하튼 일정 경험이 쌓여 드디어 A사용자가 되어서 혼자서 투과전자현미경을 보던 날, 모든 것들이 다 신기해 보입니다. 저녁 무렵 관찰을 시작하게 되는데 이리 저리 둘러 보고 재료의 신비함(?)에 휩싸이다 보면 시간이 왜 그리도 잘 가던지…… 시편 크기는 지름 3mm이고 막상 관찰이 가능한 영역은 1mm도 채 안되지만 막상 투과전자현미경을 들여다 보면 정말 광활한 만주 벌판이었습니다. 장비에 관해 익숙지 않은 때에는 이전에 관찰한 부분을 다시 찾아가기란 정말 하늘의 별 따기였습니다. 여기 저기 잠깐 둘러보다 (참고로 투과 전자 현미경 실 내부는 암실처럼 어둡습니다) 밖을 나와보면 벌써 해가 뜨기 시작합니다. 보통 무슨 일이든지 한두 시간 일하고 나면 피곤해서 약간의 휴식이 필요한 법이지만, 정말 재미있고 좋아하는 일, 예를 들어 오락 같은 것을 하다 보면 피곤한지도 모르고 시간가는 줄 모르지 않습니까? 저의 경우가 그러했습니다. 그 당시는 정말 어렵고 힘들었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런 노력과 열정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존재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이 좋은 추억으로 가슴속에 자리잡고 있어서 TEM 관련 시편, 문헌을 볼 때마다 옛 기억들을 떠올립니다. 위 사진은 고배율 전자 현미경 사진(HREM이라고 부릅니다)인데, 저 이미지를 찍는데 얼마의 시간과 몇 장의 사진이 필요했을까요? 하루? 일주일? 10장? 100장? …… 아닙니다. 한번 장비를 사용할 때 마다 32장 또는 64장씩 사진을 찍었으며 약 20여 차례, 무려 3달(물론 매일은 아니지만 장비 스케줄 상 2~3일에 1번 이상씩)이라는 기간이 걸렸습니다. 대략 계산해 봐도 700~1000장 정도의 사진을 찍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왜 이렇게 많이 찍었느냐고요? 장비 사용 기술이 그렇게 떨어졌느냐고 물으시는 분들께서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고배율 전자 현미경 이미지를 찍을 때면 정말 신기한 일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아무리 배율을 올려도 원자들이 관찰되지 않는 경우, 원자들이 구형이어야 하는데 찌그러진 구로 보이는 경우, 초점이 잘 맞지 않는 경우, 그리고 배율이 150만 배배 정도 되면 숨쉬는 정도의 진동에도 원자들이 이리 저리 움직이거든요…… 그리고 이미지도 잘 보이고 초점도 잘 맞았다고 생각해서 찍었는데도 막상 현상, 인화를 해 보면 흐릿하게 나오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한번 찍을 때 같은 영역에서 초점을 바꾸어 가며 최소 5장씩 연속해서 찍습니다. 위 사진은 아주 단순해 보이지만 이렇게 어려운 과정을 통해 얻은 이미지랍니다. 그래서 저는 위 사진을 볼 때 그냥 단순히 비정질과 일부 결정질이 혼재하는 이미지구나…… 라는 단순한 결과보다는 저 한 장을 위해 내가 투자한 노력, 시간들이 먼저 떠오릅니다. 과학의 발전은 애정과 열정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에도 한번씩 힘들거나 일에 대한 회의를 느낄 때면 저 사진을 보면서 그 시절을 돌이켜 봅니다. 아마 지금 다시 하라고 하면 아무리 많은 돈을 준다고 해도 못해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당시 장비 사용에 대한 애정과 시편 관찰에 대한 열정이 있었기에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고 가능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과학을 하는 많은 연구자들에게 꼭 이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지금 연구하고 있는 일에 얼마나 많은 열정과 애정을 가지고 있습니까?” 헬스장에서 체력을 단련하는 일이나 막노동을 하는 일이나 다 같은 일이지만 전자는 건강에 대한 열정과 애정이 있기에 힘들어도 재미있게 느껴지는 것이고, 후자는 그것이 없기 때문에 힘들다고 느껴지는 게 아닐까요? 여러분, 우리가 연구하고 있는 과학에 대해 충분한 동기부여를 하고, 열정과 애정을 가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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