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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향 리용(1)

모든 사람에게 고향이 있듯이 나에게도 고향이 있다. 그것도 여러 고향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여러 고향이란 내 선조 21대가 한 집에서 600년을 계속하여 살아온 집이 있는 황해도 해주. 이 고향은 내겐 아주 중요하다. 내가 그 집에서 마지막으로 태어난 자손일 뿐 아니라 우리집안의 모든 뿌리가 그곳에서 파생되어 나왔다고 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에 뛰어 놀고 자연을 배우고 나의 세계를 형성하였던 경북 경산군 압량면, 이 옛 압독국의 땅은 나에게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법을 가르쳐 주었지만, 고사리 손으로 흙을 떠 아버지 관 위에 뿌려야 했던 눈물의 고향이 되었다. 이어서 상경하여 고독과 가난 속에서도 개성과 통솔력을 배양하던 북아현동 달동네 …… 세월의 길이가 문제가 아니라 마음에 새겨지는 내 인생에 있어 성장과정의 무대를 제공했던 고향들인 것이다. “나는 프랑스사람은 아니지만 리용사람에요.” 내가 즐겨 하는 말이다. 리용은 나의 또 다른 고향이다. 성장과정 중의 고향이 아니라 성장한 후 완성. 완숙기의 활동에 원동력을 제공하던 몸과 마음의 고향인 것이다. 대략 30년을 보냈으니 나의 인생역정에서 제일 오래 동안 머물렀던 고향인 것이다. 그리운 리용 – 한결 같이 그 이름만 들어도 가슴을 훈훈하게 해주고 다시 보고 싶은 정경들이 머리 속에 그려지며 혼자 미소를 떠올린다. 프랑스 동남부에 위치한 리용은 프랑스에서는 두 번째로 큰 도시이지만, 파리에 비하면 규모가 작은 편이다. 리용의 장점은 한 마디로 말하여 대도시이지만 인간적인 크기이므로 대도시가 주는 메마름 보다는 온정이 흐르는 도시이다. 그렇다고 지방의 소도시같이 항상 남의 집 안방에 사는 것처럼 이웃에 채이며 사는 것도 아니고 자유를 누리면서도, 대도시가 주는 문화생활을 풍부하게 누릴 수 있으며 생활인의 편안을 도모해주는 도시하부구조의 완비 등 현대도시의 모든 장점을 갖추고 있다.
리용의 보호를 위하여 세워진 후르비에르 성당 Basilique de Fourviere의 야경. 손느 La Saone 강변의 언덕 위에 위치하여 리용 어느 곳에서나 아름다운 그 자태를 감상할 수 있다
여행을 하거나 주거환경을 논할 때에 자연의 아름다움을 선호하는 분들이 많은데 나의 경우는 다르다. 자연은 두 번 같은 것을 보면 벌써 감흥이 떨어지지만 인간은 무궁무진하여 절대로 그 유형들을 전부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인간은 항상 새로운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유일한 피조체인 것 같다. 우스개 소리로 프랑스는 신이 자기의 정원을 만들려고 남겨놓은 땅이란다. 이름없는 시골에 잠시 들러 보면 이 아름다움을 몸으로 느낄 수가 있다. 유럽의 고풍 있는 도시가 거의 모두 그렇듯이 리용은 확실히 아름다운 도시이다. 아름답기 뿐만 아니라 평온하다. 여행이나 업무상 리용에 왔던 사람들은 내게 은퇴하면 리용에 와서 살고 싶다고 한 분들이 많이 있다. 파리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푸근한 도시가 리용이다. 월급을 훨씬 많이 줄 테니 파리에 가서 일하라고 했다고 회사에 사표를 낸 동료직원들도 있었다. 흔히 현대 사회에서는 “Time is money.“라고 하며 “시간의 가치“를 따지지만, 프랑스에서는 특히 리용에서는 “삶의 질“을 따진다.
후르비에르 성당의 모습. 언덕 숲의 색깔이 사철 변하여 항상 신비스럽고도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시내에서 리용을 수호하는 Fourviere성당이 있는 언덕을 바라보면 어느 계절이나 이루 형용할 수 없는 색깔로 언덕이 신비에 싸여져 있다. 너무나 조화 있고 잔잔한 색깔이기에 사진으로도 잡히지 않는 신비한 그 무엇이 있는 것 같다. 아마 그 풍경은 수채화로밖에 표현되지 않을 것 같다. 그 언덕에 오르면 리용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물론 낮이나 밤이나 그곳에서 내려다보는 리용은 하도 아름다워 보는 이의 감탄을 자아낸다. 파리의 지붕이 검은 색인데 비하여 리용은 거의 모든 지붕이 붉은색 기와로 되어 있다. 우중충한 파리의 지붕 보다는 오후의 강한 햇살 아래의 리용의 지붕은 열정적이고, 그 지붕 아래에는 사랑이 있다는 것을 우리모두들 헤아릴 수 있을 터이니……
성당에서 내려다 본 리용 시내 전경. 리용의 지붕은 밝은 벽돌 색이라 멀리 펼쳐지는 전경이 밝고 아름답다. 앞에 보이는 것은 손느 강 La Saone, 뒤에 보이는 연필 모양의 건물은 사무실 건물로 맨 위층은 호텔이다.
날씨는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을 허용해 주기도 아니기도 한다. 날씨가 나쁘면 여행을 해도 즐거운 추억을 만들 수 없을 테니까…… 리용은 날씨 또한 파리에 비하여 우호적이다. 파리와 북유럽의 비가 오지 않으면 음울하고 을씨년스러운 날씨가 아니라, 지중해에서 300km 떨어진 연유로 일조량도 풍부하고 적당히 서늘하다.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내리 쪼이는 지중해의 태양과는 다른 사랑의 태양이라 피부암에 걸릴 염려도 없다.
리용에는 언덕이 두 개 있다. 하나는 “기도하는” 언덕, 또 하나는 “일하는” 언덕. 후르비에르 성당이 있는 언덕은 “기도하는” 언덕으로 성당과 종교적인 건물들로 차있고, “일하는” 언덕은 견직물 직조를 전문으로 하던 크와 루스 (La Croix Rousse – 적십자) 언덕이다. 사진은 성당에서 바라본 “일하는 언덕”
포도는 햇볕을 먹고 산다. 일조량이 풍부한 리용, 그러니 리용은 유명한 포도주 산지로 둘러 싸여 있다. 북쪽에 보졸레 (Beaujolais), 남쪽에는 꼬뜨 드 론 (Côte de Rhône) 이 진을 치고 있다. 심심한 주말이면 여럿이 차를 몰고 포도주 양조장 순례를 떠난다. 마치 성지 순례를 돌듯이. 가는 곳 마다 차를 세우고 그 동네의 포도주를 맛본다. 염소 치즈를 곁들인 포도주 시음은 천하 일품이다. 모두들 와인전문가 (Connaisseur) 가 된다. “이 집의 포도주는 눈물이 여자의 넓적다리 같아!“ “아 이 집은 포도밭에 개양귀비 꽃이 피었나 봐! “ 이 집 저 집의 포도주를 맛본 우리는 오후가 되면 혀와 코를 감도는 포도주와 아름다운 경치와 흥건한 분위기에 취하여 마냥 유쾌하기만 하다. Ô ! La douceur de la vie ! (돌체 비타!)
리용은 파리에서 동남쪽으로 500km떨어진 곳에 위치하며, 지중해로 내려가는 길목에 위치하여 처음으로 TGV가 다닌 곳이다. 유명한 포도주 산지인 보졸레 Beaujolais와 꼬뜨 듀 론 Cores du Rhone사이에 위치한다. 위의 지도는 프랑스의 유명한 포도주 산지를 보여준다.
밤은 낮의 추함을 감추지만, 리용의 밤은 아름다움을 감추고 또 다른 아름다움을 내놓는다. 리용의 아름다움은 낮만의 일이 아니다. 밤의 리용은 정말로 압권이다. 도시 곳곳에 산재해 있는 조명 – 가히 영화를 발명한 도시답게 조명을 잘한다. 건물과 교량은 물론이거니와 아무 것도 아닐 상 싶은 언덕마루와 하수구도 조명하여 황홀감을 자아내는 조명 - 어쩌면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을까?! 나는 가끔 혼자 시내에 나가 아름다운 조명이 보이는 카페에 앉아 책도 읽고 편지도 쓰며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한국에서 맛보았던 행복과는 전혀 다른 행복이다.
왼쪽 사진은 리용의 오페라 하우스이다. 원래 전통식 지붕을 가진 건물이었었는데 너무 작아서 이전, 신축, 개축 등이 논의되다가 개조하기로 결정하고 전통 지붕을 뜯어내고 체육관식 돔 지붕을 만들어 모든 기계장치를 올리고 무대 공간과 좌석 수를 늘려 몰라보도록 확장했다. 이 건물을 볼 때마다 생각하게 하는 것은 이렇게 획기적인 구상을 한 건축가도 건축가 이려니와, 이런 전대미문의 계획을 인정한 담당공무원의 과감성이다. 오른쪽 사진은 론 강 Le Rhone에 비친 야경. 리용은 1985년대부터 도시의 구조물 및 자연물에 조명을 하기 시작했다. 이야기로는 보험회사들이 전기료를 지원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도시가 조명으로 아름다워지고 사람들이 순화되면서 범죄수가 줄었기에 보험료 지급이 많이 줄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프랑스사람과 한국사람들의 다른 점은, 프랑스사람은 어느 누구도 남과 같이 하려고 들지 않는다. 항상 남과 달라야 한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남과 다르면 불안하다. 남이 하지 않은 것을 하면 인정도 되지 않고 위험하니 모험을 할 필요도 없으며 독창적이면 따돌림을 받는다. 나는 프랑스인들의 오기를 좋아한다. 독창성을 좋아한다. 아마 라틴계열사람들의 자유분방한 사고방식에서부터 그 창의적인 생각들이 오리라. 사고의 자유분방함.
“처음으로 영화를 발명한 도시” 리용은 이름 그대로 “빛의 도시”이다. 그래서인지 리용 중심가 곳곳에 세워진 “빛의 아취”처럼 깜짝 놀랄만한 “빛의 마술”을 선보이곤 한다. 매년 “빛의 축제”가 열리는 12월8일에는 수많은 인파가 거리에 나와 새로운 조명을 감상한다. 사진 왼쪽은 벨꾸르 (Bellecours) 광장에 있는 “태양왕 루이 14세” 오른쪽은 동상과 언덕 위의 후르비에르 성당, 그리고 송신탑
프랑스의 빛은 하늘의 빛이 아니라 인간의 빛이다. 그래서 단순히 머리 위에서만 내리쬐지 않는다. 그렇게 단순한 생각은 프랑스적이지 않다. 가정 내에서도 거의 머리 위에서 중앙집권적으로 내리쬐는 차가운 불빛으로 조명하는 집은 거의 없다. 그런 것은 사무실에서나 할까? 대부분의 사무실조차도…… (단순한 궁핍형 절약보다는 분위기를 고조시켜 더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 더 경제적이라는 생각이다.)
론 강 Le Rhone쪽에서 본 뽕세 광장 Place A. Poncet. 리용의 조명은 기존 개념을 넘어서 과감한 색으로 조명한다. 이런 시도는 성당에도 적용되며, 아무리 복잡한 구조물이라도 마치 붓으로 그려낸 유화처럼 조명한다. 이는 아름다움 그 자체만이 아니다. 그 뒤에는 과학자들의 끊임없는 노력이 함께한 연구의 결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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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지훈(htlaz) 2024-04-28

야경이 멋집니다 아주! 구경 잘하고갑니다 홧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