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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속의 작은 프랑스, 퀘벡시티 탐방기(2)

퀘벡시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영국과 프랑스의 전쟁사를 알면 도움이 된다. 이 지역은 세인트 로렌스(St. Lawrence) 강과 세인트 찰스강이 만나는 전략적 요충지 일뿐만 아니라, 지대가 높고 강변으로 절벽이 형성되어 있어 천혜의 요새라고 한다. 그래서 일찍이 프랑스는 이곳에 요새를 건설하였으며, 이곳을 점령한 영국 역시 요새를 크게 확장하였고, 미국이 독립하자 시 전체가 요새화되었다고 한다. 이 지역에 도달한 최초의 유럽인은 프랑스의 탐험가인 자크 카르티에(Jacques Cartier)로서, 1535년 이곳의 인디언 마을을 발견하였다고 기록에 남아 있으며, 1608년 사뮈엘 드 샹플랭(Samuel de Champlain) 이 세운 기지가 인디언들과 프랑스인들 간의 모피 교역지로 발전하여 도시로 발전하였다. 이후 영국의 침공이 시작되어 1690년 영국 함대가 이곳을 점령하려 했지만, 이곳의 주지사인 프롱트낙 백작이 이끄는 군대에 패해 물러났으며, 1711년에는 세인트 로렌스 강 연안에서 격퇴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1759년 치열한 전투 끝에 영국군이 시를 함락시키고, 몬트리올까지 점령한 후, 1763년 파리 조약에 따라 공식적으로 영국의 지배에 들어가게 되었다고 한다. 도시의 곳곳에는 프랑스와 영국의 치열한 전쟁에 얽힌 기념물 및 유적지가 많다. 이 도시의 대표적인 건물인 샤토 프롱트낙 호텔뿐만 아니라, 강변을 따라 시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성곽, 아브라함 평원의 전쟁 기념공원, 승리의 노트르담 교회, 동상 및 전쟁 박물관 등 전쟁과 관련된 것은 셀 수 없이 많다.
[신시가지 방향에서 바라본 전장공원]
영국과 프랑스의 전쟁과 관련된 대표적인 관광지는 아브라함 평원에 자리 잡고 있는 전장공원(Parc des champs de bateille)이다. 공원은 비교적 높은 언덕에 자리 잡고 있어서 한눈에 세인트 로렌스 강이 내려다보이며, 꽃들과 나무, 조형물들이 잘 꾸며져 있어 과거에 양국 군인들이 치열하게 피를 흘린 전장이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으며, 사색에 잠기거나, 연인들이 산책하기에 적합한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전장 공원은 영국군과 프랑스군의 지휘관이 모두 사망할 정도로 치열한 격전을 벌인 곳으로, 양국을 대표하는 두 장군의 동상과 기념비가 모두 공원에 세워져 있다고 한다. 전쟁의 승리자와 패배자를 동시에 기리는 공원이라는 것이 조금은 이상하였나, 영국계와 프랑스계 모두 과거에 흘린 피를 잊고 공존하며 살자 라는 의미로 생각되었다. 그래서인지 두 동상의 크기는 비슷하며, 비문은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용기는 그들에게 같은 죽음을, 역사에는 같은 명예를, 후대에는 같은 기념비를 갖게 했다(Valor gave them a common death, history a common fame, and posterity a common monument).” 위의 사진은 공원의 북쪽 시가지 쪽 입구에서 바라본 공원의 모습으로 가운데 보이는 동상은 말을 타고 강변을 호령하고 있는 프랑스 몽콤 후작의 것으로 그 모습이 금방이라도 뛰어나올 듯이 생생하였다. 영국군 울프 장군의 동상은 입구 오른쪽 끝에 있다.
[ 퀘벡 주의회의 모습 ]
신시가지의 대표적인 건물은 퀘벡주 의회(National Assembly) 이다. 이 건물은 1886년에 세워졌으며, 퀘벡주의 중요한 일은 여기에서 결정된다고 한다. 당연히 전기시설 및 도색, 가구 등의 건물의 내장은 현대식으로 개조를 했겠지만, 100년이 훨씬 지난 건물을 아직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 대단하다고 생각이 되었다. 일부 구역은 관광객들을 위해서 개방하고 있다고 하지만, 학회 때문에 항상 관람시간에 올 수 없었기에 건물의 외양만 열심히 봐두었다. 건물의 앞면과 벽에는 주의 역사를 보여주는 22개의 동상이 진열되어 있으며, 주변은 공원처럼 꾸며져 건물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씨에도 주를 상징하는 깃발만이 휘날리고 있는 것이, 캐나다 연방에서의 정치와 경제의 주도권을 되찾고 싶어하는 퀘벡 사람들의 몸부림같이 처절해 보였다. 비바람 탓에 너무 감상적이 되었나 보다. 신시가지에서 중앙 도로를 따라 북동쪽으로 걸어가면 높이 5미터가량 되는 성벽이 나타난다. 이 성벽은 올드퀘벡을 둘러싸고 있어 과거의 도시는 성벽 안의 지역이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도시의 규모가 커지고, 전쟁무기가 발달함에 따라 성벽은 쓸모없어져 도시의 확장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었다. 따라서, 성벽 밖에 새로운 시가지를 꾸며 현대적인 건물을 세웠으며, 성벽은 허물기보다는 관광지로 개발하였다. 현재는 성문을 지나는 과거의 길을 따라 아스팔트 도로를 건설하였으며, 성문 옆의 작은 문은 보행자를 위한 길로 고쳤다. 현재 성문은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연결하여 주는 통로로서 숙소를 구시가지에 정한 까닭에 하루에도 여러 차례 왕래하였다. 비록 신시가지에서 구시가지로 이동하지만, 신시가지의 건물들이 구 시가지의 건물들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어 현대에서 과거의 유적으로 들어간다는 느낌은 크게 들지 않았다. 이상과 같이 신시가지의 모습은 과거 150~200년 전의 건물에 현대인이 살고 있는 모습으로 전반적으로 깨끗하고, 잘 정돈되어 있었다. 겉모양은 과거의 것이지만, 현대인의 생활이 가능하도록 잘 개조되어 있었으며, 과거의 모습을 보존해야 한다는 이유로 과거의 불편함을 무릅쓰고, 과거에 집착한 옹고집이 아니라, 생활에 불편함이 없더라도 외양은 최대한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려는 노력이 느껴졌다. 즉, “200년 전 도시와 현대인의 하이브리드(hybrid)”라면 이해가 빠를까? 말주변이 없어서 더 이상의 표현은 못 하겠다. 4. 샤토 프롱트낙과 어퍼타운 퀘벡시티는 도시의 주를 이루고 있는 어퍼타운(Upper town, Haute-Ville)과 강변을 따라 형성된 로어타운(Lower town, Basse-Ville)으로 나뉘며, 어퍼타운은 성을 경계로 신시가지와 구시가지로 구분된다. 프랑스식 주택가와 상가가 많은 서쪽의 신시가지에서 성문을 통과해 들어가면, 샤토 프롱트낙 호텔과 다름 광장으로 대표되는 올드 어퍼타운(old upper town)이며, 올드 어퍼타운의 중심인 샤토 프롱트낙 호텔 앞의 테라스 뒤프랭을 지나 강변의 동남쪽 언덕을 내려가면 로어타운이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어퍼타운의 구시가지와 로어타운을 합쳐서 올드퀘벡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유네스코(UNESCO)에서 지정하는 세계 문화유산에 등록되어 있다고 한다. 올드퀘벡은 비교적 면적이 작아 하루 정도 걸어서 다니면 전체를 둘러볼 수 있다고 하지만, 학회에 참석해야 하는 월요일에서 수요일까지는 학회 일정 후 어퍼타운을 주로 돌아다녔으며, 목요일은 특별히 시간을 내어 올드퀘벡의 관광에 나섰다.
[ 테라스 뒤프랭에서 바라 본 샤토 프롱트낙의 모습 ]
올드 어퍼타운의 중심에 우뚝 솟은 샤토 프롱트낙 호텔은 퀘벡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건물이다. 18세기 캐나다 총독의 관저에 프랑스식 성을 본떠서 지은 건물로, 군 지휘부 및 병원으로 사용하기도 하다가 19세기 말엽부터 호텔로 고쳐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세인트 로렌스 강 자락의 높은 언덕에 있어 강 및 시가지 전체가 보이며, 건물 옆으로는 테라스 뒤프랭(Terrasse Dufferin)이라고 불리는 나무로 된 넓은 테라스가 강변을 따라 마련되어 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세인트 로렌스 강이 전망은 훌륭하며, 넓은 테라스에서는 많은 거리 예술가들이 다양한 공연을 벌이기도 한다는데, 추운 날씨 때문인지 관광객들만 붐볐다. 위의 사진은 테라스 뒤프랭에서 본 샤토 프롱트낙의 모습으로 요새 혹은 성과 같이 견고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건물은 위에서 보면 강변으로 꼭짓점을 향한 오각형 형태로 건물이 배치되어 있고, 중앙에는 탑과 같은 높은 사각형 건물이 솟아 있다. 건물이 지어진 지대가 높을 뿐만 아니라, 중앙 건물이 워낙 높아서, 퀘벡시티 대부분의 지역에서 보이므로, 도보관광 중 방향을 잡는데 요긴하게 이용된다. 강변을 따라 현재는 장식용이 되어버린 대포가 진열되어 있어 과거 이곳의 용도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테라스 뒤프랭의 끝에는 총독의 산책로라고 불리는 언덕으로 올라가는 높은 계단이 있는데, 이는 시타델(La Citalelle)이라는 요새로 연결된다. 앞의 위성사진 오른쪽 위에 강변을 따라 찌그러진 별 모양의 건물로 프랑스군의 요새로 최초 만들어진 것을, 영국의 관리하여 오늘과 같은 형태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영국 연방으로부터 독립한 미국이 침입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1820년부터 30년 동안 만들었다니 그 견고함을 짐작할 수 있다. 이곳은 현재에도 북미대륙에서 유일하게 불어를 사용하는 캐나다 연방군이 주둔하고 있는 군사시설이라고 한다. 요새의 일부는 관광코스로 개방하고 있는데, 매일 아침에 있는 교대의식은 재미있는 구경거리라고 한다. 샤토 프롱트낙 호텔 앞 즉, 사진에 보이는 건물 뒤편은 다름 광장(Place d'Armes)으로 불리는 곳으로 퀘벡시티의 기초를 만들었다는 사뮈엘 드 샹플랭의 동상이 있으며, 주변으로 많은 볼거리가 모여 있어 유명하다. 특히 광장과 연결된 트레조르 거리와 생탄 거리 부근은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초상화 전문점과 작은 그림을 파는 가게들이 모여있는 관광 명소로 널리 알려졌다.
[ 샤토 프롱트낙의 입구 로비의 모습 ]
위의 사진은 사토 프롱트낙 로비의 모습이다. 호텔 내부는 명성(별 다섯 개)에 비하여 화려하지는 않으나 아기자기하며 깨끗하였다. 내부는 목재와 황동으로 생각되는 금빛의 금속으로 장식되어 가능하면 옛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려는 노력이 보였다. 안내 책자의 설명에 따르면, 옛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기 위하여 정부에서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이곳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호텔 중의 하나로, 세계 제2차 대전 중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결정한 연합군 회의가 열렸던 곳이라고 하며, 루스벨트와 처칠이 사용하였던 방과 기념사진을 전시하고 있었다. 사진은 입구 좌측에 마련된 휴게실에서 본 모습이다. 학생이 무슨 돈이 얼마나 많기에 학회 출장에 5성 호텔에서 묵느냐고 궁금히 여길 것 같다. 학회에서는 사전 예약할 경우에만 특별히 할인된 가격으로 이 호텔에서 묶을 수 있도록 준비하였으나, 나의 일정이 늦게 결정되어 이곳에 예약을 하지 못했다. 퀘벡시티에 도착하기 전만 해도 인근에 있는 저렴한 숙소를 찾아볼 요량이었으나, 막상 일요일 밤 12시 반에 와보니 날씨는 매섭게 춥고 밤이 늦어 숙소를 정하는 일이 막막하였다. 호텔에 도착하여 사정을 이야기하고 학회에서 제시하는 할인을 해달라고 이야기하니 의외로 쉽게 받아주었다. 추운 날씨에 밤늦게 찾아온 동양인이 불쌍해 보였는지, 아님 빈방으로 둘 바에는 한 사람이라도 더 받는 것이 이익이라고 생각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아무튼, 좋은 협상의 결과로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유명한 호텔을 하루 이용하게 되어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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