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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벡시티 탐방기(3) - “목부러지는 계단?, “벽화야 진짜야??“

다름 광장에서 트레조를 거리를 지나가면 높은 첨탑을 가진 노트르담 성당(Notre-Dame de Quebec)이 보인다. 이 건물은 프랑스 식민지 시절인 1674년에 지어진 것으로 북미에서 지어진 가장 오래된 카톨릭 교회라고 한다. 규모 및 화려함으로 유명한 노트르담 성당은 몬트리올에 있는 것이므로 착각하지 않길 바란다. 현재의 건물은 1922년의 화재 이후 전면 재건축한 것이지만, 종탑이나 벽면은 지어질 당시 것들이라고 한다. 교회의 외양은 신 고딕양식으로 다소 딱딱하며 오래되었음을 말해주는 듯 낡아서 허름해 보이지만, 내부는 매우 화려하다. 문을 열고 들어오면 대체로 어두운 실내로, 들어오면 전면에는 밝게 빛나는 천사상과 이들이 떠받치고 있는 태양을 형상화 한 듯한 금빛 조형물이 눈에 뛴다. 건물의 실내는 높은 아치형태로 설계되어 있으며, 구석구석 금빛의 화려한 문양과 천사상이 장식되어 있다. 전면의 높은 단에는 미사의식을 위한 것으로 생각되는 교구들과 그림, 여러 석상들이 놓여 있다. 단 위의 천장에 만들어진 큰 창을 통하여 밝은 빛이 들어오게 만들어져 있으므로, 금빛이 더욱 빛을 발하는 것 같았다. 좌우는 내실처럼 꾸며져 성모상과 천사상, 성자로 생각되는 사람상, 그림 등이 진열되어 있으며, 입구 위는 성가대 혹은 귀족을 위한 것으로 생각되는 난간과 파이프 오르간이 놓여 있었다. 중앙에서 보면 웅장하며 위압감을 주는 느낌이 들었다. 위의 사진은 입구에서 본 모습으로 그 화려함을 알 수 있다. 이 사진은 “재경이의 꽃과 도자기 그리고” 라는 블로그에서 가지고 온 것으로, 똑같은 위치에서 찍은 나의 것보다 더 화려하다고 생각되어 빌려왔다.
다름 광장에서 생탄 거리를 따라 한 블록가량 이동하면 한 눈에도 오래되어 보이는 아담한 교회건물이 나타난다. 이것은 성 트리니티 교회(Holy Trinity Church)로써 크게 눈에 띄지는 않지만, 영국 국교회에서 해외에 만든 최초의 교회로서 큰 의미가 있는 건물이다. 1804년 런던의 성 마틴 교회를 모델로 하여 지었다고 하며, 내부에는 조지 3세가 기증한 문화재로 가득하다고 한다. 특히 벤치들은 특별히 국왕의 지시에 의하여 로열 윈저 수림에서 가져온 오크나무로 만들었다. 영국인들이 지었기 때문인지 실내 전체가 군더더기 없이 단순하면서 안정감 있고 견고한 느낌이 들며, 스테인드글라스를 제외하고는 원색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점이 특이하였다. 앞은 성수를 담기 위한 것으로 생각되는 작은 단 같은 것이 있을 뿐, 천사상이나, 성모상과 같은 조형물은 찾아 볼 수 없었으며, 내부 장식이 소박하며 장식을 비교적 자제한 듯 하였다. 전반적으로 옆으로 넓게 보이게 설계되어 안정감이 있으며, 조금은 소박하면서 실용적으로 보이는 건물이었다. 입구 위는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이 놓여있는데, 이는 이 지역에서 매우 유명한 것으로 매년 여름에 연주회를 가진다고 한다. 두 교회의 모습을 비교하면 영국과 프랑스가 문화적으로 얼마나 다른 나라인가를 쉽게 알 수 있다. 프랑스인의 손에 의하여 만들어진 노트르담 대성당은 자연 채광을 활용하여 색감이 밝으며, 금빛의 화려한 장식과 곡선의 장식이 많이 사용되었다. 또한, 내부가 위로 높이 솟아 오른 것처럼 설계되어 사람이 위를 우러러 보게끔 되어 있었다. 성당의 내부는 화려하고 높아서 위압감이 들어, 마치 신 혹은 신의 대리인인 왕의 위대함에 비하여 인간이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지를 각인 시키려는 의도가 보이는 듯 하였다. 이에 비하여 영국인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성 트리니티 교회는 그 이름처럼 정갈하고 고요한 느낌을 준다. 꾸밈이 별로 없으며, 곡선보다는 단순한 직선의 구조물이 사용되었으며, 스테인그라스를 제외하고는 원색이 거의 사용되지 않았고, 의자 등의 내부 장식은 원목의 느낌을 그대로 살려서 제작하였다. 교회 건물의 형태도 옆으로 넓으며 안정감 있고 차분해 지는 느낌을 받았다. 건물의 형태가 주는 위압감은 없으나, 색감과 함께 차분하고 침착하게 하는 힘이 있는 듯 하였다. 이와 같은 차이는 종교의 특색에 기인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영국인과 프랑스인의 기질적인 차이로 생각되었다. 이렇게 문화적으로 다르며, 수백 년간 전쟁을 치른 두 앙숙의 후손들이 캐나다라는 나라를 이루고 함께 살고 있다고 생각하니 참 특이하다고 생각되었다. 특히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버젓이 이러한 건물이 있다고 생각하니 더욱더 신기한 생각이 들었다. 이와 같이 자신과 크게 다른 사람들과 한 울타리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점이 이들 캐나다인의 장점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회의 앞에는 위르쉬린파 수도원과 부속 박물관이 있다. 이것은 프랑스양식으로 지은 퀘벡의 대표적인 건물로서 퀘벡의 여성 교육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하며 현재는 여성 및 수녀들의 생활상이 전시되어 있으므로 관심이 있는 분들은 둘러 보기를 권한다. 5. 로어타운 관광
로어타운은 구시가지 아래쪽의 강변을 따라 발달한 지역으로 프랑스 식민지 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곳이다. 어퍼타운이 샤토 프롱트낙을 중심으로 요새화 되면서 개발되었다면, 이곳은 엣 항구와 인접한 루아얄 광장(Place de Royale)을 중심으로 시장이 형성되면서 발전하였다고 한다. 이곳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어퍼타운에 비하여 30여 미터 이상 낮은 지역으로, 테라스 뒤프랭에서 “퓌니퀼레르” 라고 불리는 유리로 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거나, 뷔이드 거리 끝에 위치한 일명 “목 부러지는 계단”을 따라 걸어 내려갈 수 있다. 계단을 내려오면 엣 항구로 가는 길과 연결되는 데, 과거에 술 취한 선원들이 배로 돌아가기 위하여 계단을 내려오다가 굴러 떨어져 목이 부러지는 일이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폭은 5미터 가량되며, 경사는 대충 50도 가량되어 비교적 경사가 급하지만 그렇게 위험해 보이지는 않았다. 아마도 계단자체가 위험한 것이 아니라 술에 취한 선원들이 많이 이용하게 될 수밖에 없는 계단의 위치와 이들의 시선을 빼앗기 충분한 화려하고 빼어난 야경 때문으로 생각되었다. 로어타운은 캐나다식 프랑스 문화의 요람이라고 불리는 루아얄 광장을 중심으로 발달하였으며, 프티 샹플랭거리 (Quartier Pitit Champlain), 슈발리에 저택(Maison Chevalier), 승리의 노트르담 교회(Notre-Dame des victroies), 문명 박물관 등이 유명하다. 퀘벡시티에서 가장 관광인구가 밀집된다는 프티 샹플랭 거리는 좁은 도로 양 옆으로 아기자기하고 예쁘게 꾸민 기념품 가게, 카페, 갤러리 등이 늘어서 있어, 오늘날의 서울 신촌이나, 대구 동성로의 “야시골목”과 같은 곳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의 모습은 관광 유적이라기 보다는 기념품을 사기 위한 곳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으며, 200백 년 전에도 오늘날과 똑 같은 모습으로 시끌벅적 하였을 것으로 생각하니 과거 속에 들어온 듯 한 착각도 들었다. 이곳의 기념품 가게는 대부분 공방 및 상점을 겸하고 있으며, 수공으로 제작하고 있다고 한다. 이곳의 유리공예품 및 접시, 쟁반 등의 생활공예품은 비교적 저렴하면서 아름다워 매우 유명하다고 한다. 관광책자의 안내에 따르면 추천하는 기념품으로 인근 오를레앙(Orleans)섬의 메이플 시럽과 이곳의 유리공예품을 추천하고 있다.
이 곳 거리는 어퍼타운의 레조르거리와 생탄거리와 멀지 않기 때문인지 유난히 벽화가 많이 그려져 있다. 허물어진 건물로 드러나 옆 건물의 벽에 장난 삼아 벽화를 그리기 시작한 것이 오늘날과 같이 되었으며, 현재는 주정부가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많은 벽화 중에서 가장 재미있는 것은 실제 크기로 그린 5층 건물 벽화이다. 이것은 실제 크기와 같아서 얼핏 봐서는 그림과 실제 사람을 분간하기 어렵다. 또한 그림 속에는 16인의 역사적인 인물이 그려져 있어서 교육적인 측면도 고려하고 있다. 실제로 퀘벡시티에서 우리나라 초등학생부터 중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학생들이 단체로 관람하고 있는 것을 자주 목격하였는데, 위와 같은 벽화는 이들을 위한 장난끼 어린 교육자료로 손색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티 샹플랭 거리를 지나면, 루이 14세의 동상이 있는 루아얄 광장이 나타난다. 이 곳은 로어타운의 중심 으로, 주변에 많은 명소가 있어 늘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본격적인 관광 철에는 여러 축제 및 이벤트가 있다고 하였으나, 아직 때가 아닌 듯 관광객들만 가득하였다. 이곳은 캐나다에 최초로 온 프랑스 사람인 자크 까르띠에의 집이 있었던 자리로서 광장으로 개조하고, 루이 14세의 동상을 세운 것을 계기로 이름 붙였다고 한다.
루아얄 광장 정면에 있는 높은 첨탑의 건물은 승리의 노트르담 교회이다. 1688년에 지어졌지만, 1690년과 1711년의 불•영 전쟁 중 프랑스군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하여 현재와 같은 이름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소박한 외관에 비하면 내부는 비교적 화려하지만, 노트르담 성당에 비하면 매우 단순하였다. 이 곳은 천장에 모형 배가 걸려있는 것이 특징으로 1664년 군 지휘자였던 마르키트라시가 타고 온 배의 모형이라고 한다. 모형은 대략 길이 1.5미터 가량으로 그리 크지 않지만 비교적 세부적인 모습을 잘 살려서 만든 듯 하였다. 모형을 제작할 당시 배의 바닥을 칠할 붉은 물감을 구하지 못하여 동물피로 색깔을 내었다니 다소 섬뜩한 생각과 기본적인 물자가 부족하여 고통 받았을 식민지 사람들의 빈곤이 느껴지기도 하였다. 프티 샹플랭 거리의 북쪽 끝은 옛 항구가 있으며, 그 맞은편에는 문명 박물관이 있다. 문명 박물관은 퀘벡의 역사와 문화, 즉, 인디언들의 생활사에서부터 영국-프랑스 식민지시대, 현재의 캐나다의 모습을 전시하고 있어서 퀘벡 및 캐나다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 밖에도, 자연과학관, 외국 문화관, 화폐관 등 여러가지 흥미로운 유물이 전시되어 있었다. 박물관 관람 후 항구를 거쳐 “목 부러지는 계단”을 조심스레 올라 어퍼타운으로 이동하였다. 6. 돌아오는 길의 감상 이상과 같이 약 5일간의 학회기간을 이용하여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어 있다는 퀘벡시티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대체적으로 관광 안내 책자에서 소개하는 내용을 따라 충실히 이동하여 넉넉하지 않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퀘벡시티의 모습을 잘 보고 온 것 같다. 도시자체가 도보로 이동하면서 둘러볼 수 있을 정도로 좁은 구역에 집중적으로 유적이 배치되어 있는 것이 특색이었으며, 현대의 사람들이 200여년 전의 생활상을 잘 보존하고 관광상품으로 개발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겨우(?) 200여 년 밖에 되지 않는 역사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모습을 잘 보존하여 훌륭한 관광자원으로 활용한 이들의 노력이 대단하다고 생각되었다. 캐나다 여행하면서 느낀 관광지로서 캐나다의 장점은 상냥한 캐나다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다소 귀찮을지도 모르는 이방인의 질문에도 웃으면서 친절하게 대답해주며, 농담까지 던지는 여유를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어느 길로 가야 하는지, 전차는 언제나 오는지, 관광지로서 모습은 어떠한지, 좋은 관광지는 어디인지, 요금은, 팁은 얼마나 줘야 하는지, 등등 수 많은 질문에 대부분 친절한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특히 나의 한국식 영어를 듣기가 편하지는 않았을 그들의 입장을 생각하니 그 고마움이 더욱 커지는 것 같다. 그리고, 주관적인 느낌으로는 이곳의 영어는 미국의 영어보다는 속도도 느리고 발음도 비교적 또렷하여 알아듣기 쉬웠다.
마지막 사진은 퀘벡시티를 떠나올 때 찍은 빨레역의 모습이다. 고속버스 터미널 맞은 편에 위치하고 있으며 맑은 날씨에 역사 건물이 앙증스러워 사진으로 담아두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이곳에서 출발하여 캐나다 동부를 둘러보는 기차여행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였다. 아름다운 자연이 사람들을 친절하고 여유롭게 만드는 것일까, 순수하고 겸손한 사람들이 자연을 잘 보전하는 것일까 라는 의문을 가진 채 퀘벡시티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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