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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나라 일본 – 간사이 지방에는 뭐가 있지?

    <첫째날> 겨울의 문턱을 넘어서던 지난 11월. 사람들의 옷차림이 조금씩 두꺼워지기 시작할 때쯤 오사카로 향했다. 오사카는 우리나라의 부산으로 비유되는 도시로 11월이라고는 하지만 전혀 춥지 않았기에 지하철에서 만난 사람들은 가벼운 바바리코트 차림이 대부분이었고, 심지어 반팔차림을 한 사람들도 볼 수 있었다. 간사이 국제공항에 도착해서 오사카 시내에 있는 숙소로 이동하면서 일본어로 적혀있는 간판들을 제외하고 ‘아, 여기가 일본이구나!’라는 느낌을 처음으로 받은 것은 전철이 지나가던 길가에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2층 구조의 집들이었다. 각양각색의 화려한 우리나라 주택의 모습과는 달리 단조롭게 정렬된 작은 집들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일본의 첫인상은 단조롭고 평온한 느낌이었다. 비슷한 체구의 같은 피부색을 지닌 사람들이었기에 그들이 주고받는 말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방인으로서 느낄 수 있는 낯섦은 전혀 없었다.
    숙소에 짐을 풀고 처음으로 찾아간 곳은 나라공원(나라코엔, 奈良公園)이었다. 나라(奈良)는 교토(京都)로 수도를 옮기기 이전의 옛 수도로서 일본불교문화의 사찰과 사적이 많이 남아 있는 곳으로 우리나라의 경주에 비교된다고 한다. 나라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대불이 안치되어있는 ‘동대사(東大寺, 도다이지)’의 대불전을 보는 순간 ‘우와~!’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현존하는 세계 최대의 목조건물인 만큼 그 웅장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동대사는 8세기 중엽에 세워졌으나 화재로 소실되어 1709년에 창건 당시의 3분의 2정도의 크기로 재건된 것이라고 한다. 그 큰 대불전의 중앙을 다 차지하는 높이가 약 15m나 되는 대불상(비로자나 불상)은 세계최대의 금동불좌상으로 불상의 손바닥 위에만 사람이 16명이나 올라갈 수 있다고 한다. 대불 좌우에는 협시보살 두 분이 앉아계시고 대불전의 네 귀퉁이에는 사천왕상도 서 있었다. 대불전 북동쪽 구석 기둥에는 네모난 구멍이 있는데, 사람들이 그 구멍을 통과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구멍의 크기가 대불의 콧구멍 크기와 같아서, 이 구멍으로 빠져나가면 행운을 얻는다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동대사를 둘러보면서 나는 줄곧 경주의 불국사와 석굴암을 떠올렸다. ‘귀엽고 예쁜 키티(Kitty)의 나라, 일본. 세계의 사람들이 이곳 동대사와 함께 우리의 불국사를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분명 우리나라의 불교문화가 이곳으로 전파된 것일텐데……’ 머리 속은 온통 동대사의 웅장함과 대불상의 거대함에 대한 질투로 가득 찼었다.
    동대사를 뒤로 하고 남대문(난다이문)으로 나오는데,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사람들과 어울려 유유히 걸어다니는 사슴들이 보였다. 나라공원을 사슴공원이라도 부른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전설에 따르면 사슴을 타고 온 신이 있어서, 예로부터 사슴은 신성시되면서 나라의 상징동물이 되었다고 한다. 이 공원에는 약 1200마리의 사슴이 서식하고 있는데, 공원의 사슴들은 천연기념물로 등록이 되어있다. 가방 속에 있던 쿠키의 냄새를 맡은 것인지 먹이를 달라는 듯 쫓아오는 사슴을 보며, 먹을 것을 함부로 주면 공격을 받을 수도 있다는 안내책자의 말이 기억이 나서 얼른 그곳을 빠져나왔다. 공원 내에서 고후쿠지사원(興福寺)으로 향하던 중 인력거를 보았다. 중국에도, 일본에도, 우리나라에도 과거에 이런 인력거가 있었다는 사실에 ‘예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것은 어디든 다 똑같구나’ 하는 생각에 괜시리 피씩 웃음이 나왔다.
    고후쿠지는 나라시대의 최고 귀족인 후지와라씨의 후원으로 건설된 절로써 당시 사원의 건물이 175채에 달했다고 하나 여러 차례의 소실 끝에 현재는 12채만이 보존되고 있다. 이곳은 50미터 높이의 5층 목탑(고주노토)으로 유명하다. 멀리서 5층 목탑의 꼭대기를 처음 보았을 때 ‘설마 저것이 탑은 아니겠지?’라는 생각을 했었기에, 목탑의 전체 형상을 보고 그 엄청난 크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는 일본에서 두번째로 큰 목탑으로, 건립이래 6번이나 소실되었으나 복원된 것이라고 한다. 탑의 안은 어떤 구조로 되어있을지 궁금했지만 내부가 공개되지 않아서 아쉬움을 남긴채 발걸음을 옮겼다. 목탑 옆에는 당시 병든 황후의 쾌유를 기원하며 건립된 도콘도라 건물이 있고, 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남실(난엔도)과 북실(호쿠엔도)이 있는데 모두 팔각형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파괴되고 재건되면서 원래의 모습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지는 않다고 할지라도, 주춧돌만 남아있는 절터를 중심으로 175채의 건물이 있었을 본래의 모습을 상상해보니 사원의 엄청난 크기를 짐작할 수 있었다.
    나라공원을 빠져나와 역주변 상가에 이르렀을 때, 마주보고 서 있는 건물들을 이어주는 아치형 지붕이 눈에 띄었다. 비나 눈이 오더라도 쇼핑의 편리를 더해주는 지붕을 처음부터 설계를 하고 건물을 지은것일지, 후에 지붕을 얹은 것인지 내심 궁금했다. 식당가를 둘러보며 고픈 배를 달래기위해 일본의 대표음식 중 하나인 우동정식을 먹고, 다시 전철에 올랐다. 이미 어둠이 짙어있었지만 다음 목적지인 해유관(海遊館, 카이유칸)으로 향했다. 해유관 옆에서는 엄청난 크기의 대관람차가 초록형광의 불빛을 발하며 돌아가고 있었다. 11월의 때이른 크리스마스를 해유관 입구에서부터 느낄 수 있었다. 세계최대규모의 수족관이라는 해유관은 둥근 통유리관에 나선형의 통로를 만들어놓은 것만 같은 해저수조 아쿠아게이트가 특징적이었다. 태평양 바다 한조각을 떼서 가져다 놓은듯한 태평양 수조를 중심으로 다양한 수조가 있었고, 물 위아래를 오가며 사는 펭귄에서부터 수심이 깊은 곳에서 사는 가오리에 이르기까지 총 30,000여종의 다양한 해양 생물들이 있었다. 새의 날개짓과 유사한 가오리의 움직임과 갓을 쓰고 있는 듯한 해파리의 모습, 그리고 물 밑바닥에서 가만히 서 있는 킹크랩들을 보면서 비행기의 모양과 영화 속에서 흔히 보아왔던 우주선과 로봇괴물을 떠올렸다. 몇해전부터 국내에서도 각광을 받고 있는 현대과학의 생체모방 연구의 싹은 우리가 의식을 하지 못한 오래전부터 우리의 상상 속에 존재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내심 놀랐다.
    오사카의 해유관은 작은 수조로 구성된 관찰자 중심의 우리나라의 여느 수족관과는 사뭇 다르게 바다생물들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시멘트바닥의 쇠창살 우리에 갇힌 동물들을 모아놓은 우리나라의 동물원과는 달리 자연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그물망을 쳐 둔 미국의 자연사박물관의 동물원 이미지와 비슷했다. 아쉬웠던 점은 물고기들의 활동범위가 컸기에 자세히 관찰하기가 힘들었고, 그 큰 수조 안에 수십 혹은 수백여 종이 뒤섞여 있었기에 무엇이 무엇인지 특징적인 몇 가지 물고기나 바다생물을 제외하고는 알아보기 힘들었다는 점이다. 해유관에서의 관람을 마치고 찾아간 곳은 우메다역 스카이빌딩이었다. 우메다역은 주변의 건물들과 지하상가들과 직결된 크고 복잡한 역이었다. 역을 빠져나와 한참을 걸어서야 스카이빌딩에 도착할 수 있었다. 스카이빌딩 공중정원전망대는 특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는데, 빌딩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기둥처럼 서 있는 두 건물 위로 중앙에 원형으로 구멍이 뚫린 널판지를 올려놓은듯한 모양이다. 40층에 위치한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야경은 정말로 장관이었다. 지치고 피곤한 몸으로 힘들게 찾아간 곳이었는데, 전망대의 야경이 실망을 주지않았기에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오사카는 크고 작은 보석들이 빽빽이 박힌 마냥 예쁘게 반짝이는 네온 빛으로 가득 차 있었고 야외 전망대에는 쌍쌍의 젊은이들로 가득했다. 차가운 11월의 밤바람을 맞으며 ‘이곳에서 첫눈을 맞으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잠시 하면서 발길을 돌렸다.
    새벽부터 강행군으로 지친 몸을 이끌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서 오사카의 명물탑이라고도 불리우는 통천각(通天閣, 츠텐카쿠)을 만날 수 있었다. 통천각 주위에 작은 가게들로 빽빽하던 먹자골목은 몇 개의 선술집을 제외한 대부분의 가게가 이미 문을 닫아버려 조용했다. 통천각을 뒤로하고 밤바람에 옷깃을 여미며 숙소로 향했다. <둘째날>
    아침 일찍 전철을 타고 향한 곳은 교토. 교토는 794년부터 수도가 있었던 곳으로 1869년에 도쿄로 천도될 때까지 천년 이상 일본의 수도로서 번영한 도시이다. 교토에서 처음 찾아간 곳은 세계문화유산의 하나인 니조성(니조조, 二條城)이었다. 니조성은 1603년에 도쿠가와 초대장군 이에야스가 교토를 처음 갔을 때 머물 거처로 건립한 성이다. 성의 출입문부터 화려한 장식을 가지고 있었고, 저택의 내부 역시 그림이나 장식물 등으로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서 저택을 견학할 수 있었는데, 국보인 니노마루 어전을 지나갈 때 ‘찌익~찍!’하는 소리가 들렸었다. 니노마루 어전은 한국인들에게도 소리나는 마루로 잘 알려져있는데, 적의 침입을 방지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소리가 나도록 설계되어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저택의 정원 또한 화려했다. 연못 내에는 네개의 돌다리가 있었고 폭포와 수많은 수석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교토의 유명 사찰 중 하나인 금각사(金閣寺, 킨카쿠지)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일본은 섬나라여서 우리나라와는 달리 차의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다. 버스는 뒷문으로 올라타고 앞문으로 내리는데, 내릴때 요금을 계산하도록 되어 있어서 조금은 생소했다. 금각사는 원래 로쿠온지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으나 경내에 금박을 붙인 사리전인 금각이 유명해지면서 킨카쿠지로 불린다고 한다. 금각사로 들어가는 입구는 비가 오는 날씨였는데도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특이하게도 관람권은 여느 입장권과는 달리 부적이었다. 사원 안으로 들어서자 연못을 앞에 둔 금각이 한눈에 들어왔다. ‘저 금각이 진짜 금박으로 만들어진걸까’ 하는 의문을 가지고 그 앞에서 사진 몇 장을 찍고 발길을 돌렸다.
    금각사와 함께 유명한 사찰은 은각사(銀閣寺, 긴카쿠지)이다. 금각사를 만든 사람의 손자가 할아버지를 따라서 절에 은박을 입히려 하였으나 완성하지 못한채 죽었다고 한다. 사실 은박을 입히려 시도한 흔적만 보일 뿐 은각사라는 이름이 조금은 무색할 정도였다. 은각사는 정원이 아름답기로도 유명한데, 비가 오고 날씨가 흐려서 정원의 경관을 제대로 보고 느낄수는 없었던 것이 안타까웠다. 은각사 앞뜰에는 사이호지의 정원을 모방한 특유의 회색모래 장식이 있는데, 뿔이 잘린 원추 모양은 후지산을 상징하고 그 앞에 편평한 밭 이랑같은 줄무늬는 파도를 상징한다고 한다. 이 장식은 일본의 전통 정원 장식의 한 방법이라고 하는데, 모래를 어떻게 쌓아올려서 만들었는지 신기하기만 했다. 또 다른 교토의 대표적인 사원인 청수사(淸水寺, 기요미즈데라)로 향했다. 청수사는 절벽 위에 세워진 본당으로 유명하며, 그곳에서는 도시 전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고 한다. 비가 오는 와중에도 버스를 타고 이동한 뒤 한참을 걸어서 찾아갔었는데, 청수사에 도착했을때는 이미 어둠이 짙게 깔려있어서 본당의 경관을 제대로 볼 수 없었기에 너무나도 아쉬웠다. 사원을 한 바퀴 돌면서 교토의 야경을 바라보고 교토에 다시 가게 된다면 청수사에 꼭 들러야겠다는 다짐으로 내려왔다. 교토에서는 각 유적지를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한다는 것이 꽤나 힘들었었다. 일본의 시내버스는 운행시각이 비교적 정확한 편이어서 이용하는데에는 별 어려움이 없었지만, 버스를 타고 이곳저곳을 이동하면서 많은 시간을 소비하게 되고 몸이 빨리 지쳤던 것 같다.
    오사카에 도착한 시각은 밤 8시가 넘어서였다.‘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을 떠올리며 먹자골목으로 유명한 도톤보리 거리로 갔다. 여정을 준비하면서 각종 안내책자와 인터넷에서 보았던 많은 음식점들의 간판을 그곳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서울의 명동처럼 북적거리는 사람들 틈을 헤치며 찾아간 곳은 초밥집이었다. 바깥 진열대에 보이는 도시락형 초밥을 보고 들어간 곳이었는데, 들어가보니 회전초밥집이었다. 먼저 와서 기다리는 한국 학생들이 몇 명 있었는데, 일행인지를 묻는 종업원에게 영어로 대답하였지만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서 난감해하던 때에 앞서 기다리시던 한국 아주머니께서 통역을 해주시면서 친절히 계산하는 법까지 가르쳐주셨다. '초밥 맛은 가히 일품이었고, 가끔 그곳에서 먹은 초밥이 생각날 때가 있다.' 한국의 고급 일식집에서 맛볼 수 있을 좋은 질의 초밥을 저렴한 가격에 먹을 수 있었기에 더욱 맛있었던 것 같다.
    식사를 마치고 찾은 곳은 도톤보리 극락상점가(道頓堀極商店街)였다. 그곳은 오사카의 명물이라고도 할 수 있는 타코야끼와 오코노미야끼를 비롯한 각종 음식과 기념품을 파는 작은 가게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입장권을 따로 구입해야하는 번거로움이 있기는 하지만, 옛 오사카의 거리를 그대로 재현하였기에 과거의 일본의 모습이 궁금하다면 한번쯤 구경할 만한 곳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100엔샵에 들렀다. 한 때 우리나라에서 꽤나 성행했던 천냥가게가 100엔샵에서 비롯된 것임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대부분의 제품은 중국산이었지만, 일본 특유의 작고 귀여운 소품들도 있었다. 인사동에 가면 볼 수 있는 옛날 불량과자와 비슷한 일본식 과자 몇 개를 집어 들고 다시 숙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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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동에 번쩍, 서에 번쩍입니다. ^^ 시간이 되면, 미국 이야기도 이렇게 기행문 형식으로 사진과 함께 보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