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간사이지방에는 뭐가 있지?(2)

    <셋째날>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커튼을 젖히고 창문을 열어 하늘을 보았다. 기온이 조금 떨어져 싸늘했지만, 전날 온 비 덕인지 하늘은 그지없이 맑고 깨끗했다. 서둘러 채비를 하고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히메이지로 가기 위해서는 우메다역에서 환승을 하고 약 1시간 30분정도 급행전철을 타고 가야만했다.
    오사카의 지하철과 전철은 여러 노선이 각각 별도로 운영되고 있으므로 여행객은 사전에 교통정보를 알아두어야 할 것이다. 대부분의 역에서 우리나라의 지하철처럼 환승을 할 수가 없고, 환승을 하기위해서는 이용했던 노선을 빠져나오면서 요금을 지불하고 새로운 표를 구입하여 갈아탈 노선으로 다시 들어가야한다. 그렇기에 오사카의 지하철 노선도를 보면 같은 역이지만 노선별로 별도의 역처럼 표시가 되어있다. 간사이지방 여행을 계획한다면 사전에 교통비를 고려하면서 여정을 짜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할 만큼 교통비가 많이 드는데, 오사카 지하철의 기본요금이 220엔인 것을 보면 교통비가 어느 정도인지를 쉽게 짐작을 할 수 있을것이다. (현재 환율은 엔화 100엔이 원화 약 800원에 해당한다.) 다행히 오사카를 비롯한 간사이지방의 각 도시들에서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시내 일일 승차권을 구입하여 사용할 수 있고, 관광객의 경우 고가이기는 하나 ‘간사이 스룻패스’라는 승차권을 구입하여 해당 날짜만큼 간사이지방 대부분의 교통을 무제한으로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히메이지역 앞에는 넓은 인도가 길게 쭉 펼쳐져있고, 인도의 한 가운데에는 작은 조각상들이 늘어 서 있다. 여느 지역과는 다른 분위기에서 단번에 관광객을 위해 꾸며진 길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 길을 따라 걸어가면 채 몇분이 지나지않아 멀리에 하얀 외벽의 아름다운 성이 눈에 들어온다. 히메이지성(姬路城)은 오사카성과 함께 일본의 3대 성 중의 하나로 꼽히는 곳으로 16세기의 대표적인 건축물로써 건축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서 더욱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천수각을 중심으로 한 성의 모습이 마치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려고 하는 백로(白鷺)를 닮았다고 하여 백로의 성이라고도 불리기도 한다. 성문을 들어서면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알리는 문구가 적힌 커다란 돌에 姬路城(히메이지성)이라고 씌어져있고 그 옆에는 성을 등지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단체 관람객 기념 촬영소까지 마련되어있다. 성벽을 둘러싸고 삼중으로 파 놓은 해자(방어용 호수)와 천수각을 쉽게 찾지 못하도록 교묘하게 설계된 내부는 적의 침입을 방지하고 성을 수호하기에 유리하게 설계되어 있었다.
    잘 꾸며진 정원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가장 먼저 서문을 지나게 된다. 신발을 벗고 성의 외곽 벽을 한쪽 벽면으로 한 나무바닥의 긴 복도를 따라가면 성 바깥쪽 아래로 비스듬히 만들어놓은 크고 작은 수많은 구멍을 볼 수 있다. 높게 지어진 성에서 그 구멍으로 돌이나 창을 던지며 적들을 방어했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 복도는 소천수각까지 연결되어 있었는데, 소천수각에 가까이 가면 복도를 따라 시녀들이 거주했다는 많은 작은 방들을 볼 수 있다. 소천수각에 이르면 그곳에서 기거했다는 쇼군의 딸인 쎈공주의 방이 있는데, 방 안에는 공주 모형까지 있다.
    소천수각을 빠져나와 탐방로를 따라 걸어가면 대천수각 내부로 들어가는 입구에 다다른다. 바깥에서 보면 5층 건물이지만, 내부는 7층의 목조건물이다. 건물 내부를 둘러보니 ‘이렇게 큰 나무를 어디서 다 구했을까?’ 하는 생각마져 들었다. 또한 위층으로 올라가는 층층의 계단이 굉장히 가파르게 놓여 있어서 그 옛날에 전통 기모노차림으로 이런 곳을 어떻게 오르내리며 일을 했을지, 시녀들의 생활이 상상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성의 내부는 부드럽고 우아한 여성적인 느낌의 첫인상과는 달리 그다지 화려하지 않았고, 벽면에 걸려있는 많은 칼과 총, 그리고 전시된 갑옷을 보면서 성의 방어와 수호에 굉장히 큰 비중을 두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일본의 많은 유적지들이 가문들의 정복 전쟁으로 인한 소실이 많은데, 히메이지성이 오늘날까지 건축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은 잘 설계된 내부 구조는 물론 철저한 방어와 수호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천수각에 이르러서 바깥을 내다보면 가장 먼저 샤치호코라는 지붕 장식이 눈에 띄고, 히메이지 시내가 한 눈에 다 들어온다. 이 지붕 장식은 성채의 화재를 막아준다고 하는데 ‘정말 그 덕에 히메이지성이 여태껏 본래의 모습을 유지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성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대천수각 주위를 둘러싼 넓은 정원과 소천수각들이 히메이지성이 얼마나 넓고 큰지를 다시 한번 확인하게 해주었다. 싸늘한 11월의 초겨울 바람을 느끼며 그곳을 내려와 천수각 주위의 건물들을 둘러보다보니 성을 지을 당시 돌이 모자라서 사용했다는 내부가 빈 석관이 눈에 띄었다. 심지어 맷돌까지 성벽을 쌓는데 쓰였다고 한다. 그 당시 오늘날과 같은 최신의 건설장비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어떻게 그렇게 크고 높은 성을 지을 수 있었는지 그저 놀랍기만 했다. 히메이지성을 뒤로 하고 전철역 근처로 돌아갔을때는 이미 점심시간이 지난때였다. 지하철역 주위를 헤매다가 어렵사리 찾아간 곳은 지하상가의 작은 돈까스집이었다. 관광지를 조금 벗어났기때문인지 메뉴판은 일본어로만 적혀 있었고, 영어가 한마디도 통하지 않아서 하는수 없이 종업원을 붙들고 가게 앞에 붙어있던 두 장의 음식 사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주문을 해야만 했었다. 작은 구멍가게 같은 식당이었지만 손님은 끊이지 않았고, 음식맛은 일품이었다. 돈까스와 오무라이스를 주문했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쉽게 맛볼 수 있는 일본식 돈까스에 카레소스가 함께 나왔고 오무라이스 역시 카레소스가 얹혀져 나온것을 보고, 일본인들도 그러한 퓨전음식을 즐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식사를 끝내고 고베의 이진칸 거리로 향했다. 고베는 항구도시로써 일찍이 서양문화를 접하였던 곳으로, 서양인들이 살면서 마을을 형성하게 된 것이 지금의 이진칸 거리가 되었다고 한다. 이진칸이란 이방인이라는 뜻인데, 전철역을 빠져나오면서부터 여느 일본의 거리와는 다른 이색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예쁘게 꾸며진 거리와 과거의 영사관 등 서양인들이 살던 대저택을 개조하여 만든 각국의 전시관들이 골목 구석구석에 있었는데, 제 각각 많은 볼꺼리를 제공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우연히 미술관에 들렀는데, 미술관의 한쪽 전시실에는 과거 수십년 전의 고베의 모습이 담긴 사진과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1995년도 대지진 당시의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 사진을 통해서 일본의 엄청난 발전 속도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진칸 거리의 언덕길을 내려오는 중간에 신사를 발견하였다. 전날 버스를 타고 이동하면서 돌이나 나무로 만들어진 신사를 나타내는 상징물을 흔히 보았었는데, 이진칸거리에서 만난 신사는 색다른 느낌이어서 관광객들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알 수 없는 일본식 한자가 씌어있는 돌계단을 한참 올라갔더니 넓은 마당 안쪽에 제사를 모시는 사당이 있었다. 참배를 하는사람들을 보면서, 한때 논란꺼리가 되었던 일본 총리의 신사 참배 문제가 떠올랐다. 관광이라고는 하지만 신사에 들른 것에 마음이 편치 못해서 마당에 서서 고베시내를 내려다보며 잠시 쉼호흡을 하고는 곧 그곳을 내려와 전철역으로 향했다. 어느덧 해는 뉘엇뉘엇 지고 있었다.
    전철역에서 하버랜드방향이라는 표지를 보고 역을 빠져나가면 작은 전구로 장식된 가로수 길이 쭈욱 펼쳐져 있는데, 그 길에 들어서는 순간 ‘예쁘다!’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그 길을 따라 걸어가니 하버랜드의 대관람차가 조명에 반짝이며 돌아가는 것이 눈에 띄었다. 길 건너에 있는 대형 백화점들과 앞쪽에 보이는 예쁜 조명들의 가게들을 보면서 ‘고베의 야경이 이래서 유명하구나’ 라고 느낄때 쯤 모자이크 거리에 이르렀다. 하루에도 10만여명이 찾는다는 그곳은 거대쇼핑단지인데, 건물 내는 작은 가게들로 가득했다. 2층의 데크에서는 겨울밤 바닷바람이 꽤나 싸늘했지만 야경을 즐기는 젊은이들로 가득했다. 데크에서 건물 바깥쪽을 보면 유람선이 지나다니는 바닷길 건너에 포트타워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포트타워는 일본의 건축작품상을 받았다고 하는데, 예쁜 조명과 함께 날씬한 디자인이 에펠탑을 연상하게끔 했다. 포트타워 옆쪽으로는 메리켄 파크의 전시관과 호텔이 예쁜 형광색 빛을 발하며 빛나고 있었는데, 순간 한강의 야경을 떠올리며 ‘한강도 이렇게 예쁘면 좋을텐데……’ 하는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하버랜드에서 포트타워 쪽으로 향하는 길에서 크리스마스 트리와 야외공연을 하는 밴드그룹을 만날 수 있었다. 밤바람에 손이 시렸지만, 공연을 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젊음을 느낄 수 있었고, 그들의 뜨거운 열정에 묘한 감동을 받으며 그곳을 빠져나와 숙소로 향했다. <넷째날> 일본을 찾는 많은 한국관광객들이 빠뜨리지 않는 주요 행선지 중의 하나는 분명 온천일 것이다. 빠듯한 여정으로 고민하던 중 간밤에 숙소 근처에서 우연찮게 온천을 발견하였기에 그곳에 들르기 위해 새벽부터 서둘렀다. 온천 앞에 다다랐을 때 밤에 본 것보다 좀 더 허름한 모습에 약간 주저하기도 했지만, ‘천연온천수(天然溫泉水)’라는 한자를 보면서 그곳에서 이번 여행 중에 가장 황당하고 재미난 기억을 만들 줄것이라고는 전혀 예상도 못한채 과감하게 안으로 들어갔다. 탈의실로 들어 가는 문 앞에 자판기가 있었는데 어떤 표를 끊어야할지 몰라 주저하던 중 앞서 들어가는 아주머니가 있어서 슬쩍 보고는 같은 표를 끊고 안으로 들어섰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한 할머니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는데 표를 받는 분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표를 드리고 수건을 받아들고는 안으로 들어가는데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려서 갔더니 샴푸와 로션 등 이것저것 챙겨주셨다. 그것들을 받아들고 옆으로 돌아서는 순간, 너무 당황하여 고개를 휙 돌려버렸다. 이른 새벽 낯선 그곳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깜짝 놀랄 일이 벌어진 것이다. 벽이어야 할 할머니의 왼쪽에는 벽이 없었고 남자 탈의실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게 아닌가! 분명 여탕이라는 한자를 보고 안으로 들어선 것이었지만, 일본은 예부터 혼탕이 있다던 말이 떠오르면서 설마 하는 마음에 놀라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표를 받는 할머니를 중심으로 왼쪽과 오른쪽에 남탕과 여탕이 구분되어 있어서 할머니는 양쪽 탕을 모두 관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 할머니가 앉아계신 자리를 제외하면 남탕과 여탕은 벽으로 분리가 되어 있었다. 여탕 탈의실 안쪽과 탕 안으로 들어가는 문 앞에는 칸막이를 세워두었기에 어느 정도의 활동범위는 보호되었지만, 남탕 쪽에는 탕으로 향하는 문까지 아무런 칸막이도 없었고 그 할머니 자리에서는 서로의 탈의실을 다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아무런 의심도 없이 한국의 목욕탕을 생각하며 간 곳이었기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곳을 그냥 나와야할지, 탕에 들어가야할지 망설이던 중, 아무렇지도 않은 듯 탕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어짜피 여기까지 왔는데……’ 하면서 용기를 냈다. 실내는 우리나라의 여느 목욕탕과 별 다를 바 없는 온천이었지만 온천수는 정말 좋았고, 며칠간의 힘든 여정으로 쌓인 몸의 피로를 풀기에는 더더욱 좋았던 것 같다. 간단히 온천욕을 즐기고 최대한 재빠르게 탈의실을 나갈 채비를 끝냈을 때 또 한번 놀랍고 당황스러웠던 일이 벌어졌다. 일하는 아저씨가 손님이 있는 여자 탈의실을 아무렇지도 않게 들어왔다가 나가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탈의실에 있던 사람들 중 누구 하나 불편해하거나 불만스러워하지 않았다. 순간 ‘이것이 일본의 목욕탕 문화구나’ 라고 깨달을 수 있었다. ‘천연온천수’라는 말에 마음이 끌려서 들어간 곳이긴 했지만, 그곳은 우리나라의 동네 목욕탕 같은 곳이었던 것 같다. 탕에 들어가기까지 많은 망설임이 있었고 지금 생각해도 황당한 기억이지만 두고두고 웃을 수 있는 재미난 추억이 되고 있다.
    그렇게 아침 일찍부터 황당한 사건을 겪고, 오사카성으로 향했다. 오사카성은 도요토미 히데요시 권력의 상징물로 그가 일본을 통일한 후 3년에 걸쳐 건설한 성으로 1586년에 완성되었다고 한다. 그가 죽고 17년 후에 전투로 파괴되고 재건되었으나 번개로 불타버려서 다시 재건한 것이 지금의 모습이라고 한다. 일본의 다른 성들과 마찬가지로 성 주위에는 해자가 있고, 겹겹의 성벽으로 쌓여있다. 성 안은 많은 나무들로 예쁘게 꾸며진 큰 정원이 있었는데, 공원 내의 조경에서 현대적인 느낌을 강하게 받아서인지 유적지라는 느낌보다는 그저 잘 꾸며진 공원 같은 느낌이었다.
    오사카성은 전날 다녀온 히메이지성과는 달리 금박의 장식과 청기와로 굉장히 화려했다. 또한 재건되었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 볼 수 있을 정도로 깔끔한 외관을 가지고 있었다. 천수각 내부에는 주로 역사 유물들이나 모형이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오사카성 바로 앞 마당에는 오사카 시립박물관이 있는데, 비행기 시간 때문에 오사카성 내부와 박물관은 보지못한채 발길을 돌려야만했다. <돌아오는 길에…>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나흘간의 강행여정이었기에 몸은 조금 피곤했었지만, 간사이지방 여행을 통해서 일본을 조금이나마 더 알게 되었고, 그들의 문화를 직접 체험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끔했던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렇게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조금씩 넓힌다는 것이 여행이 주는 최대의 선물이 아닌가 한다.
  • 좋아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