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신인상파의 그림에 담긴 색채의 과학(2)

이번에는 색을 인지하는 눈의 구조를 살펴보겠습니다. 물체에서 반사된 빛은 각막과 수정체를 거쳐 망막에 도달합니다. 망막에 도달한 빛은 시세포를 자극하지요. 이 자극이 전류의 형태로 시신경을 거쳐 대뇌로 보내집니다. 대뇌는 눈에서 받은 정보를 종합해서 물체의 색과 모양, 밝기 등을 해석하게 됩니다.
시세포에는 크게 두 가지 형태가 있습니다. 망막주변부에 있는 간상세포와 망막 중앙에 있는 원추세포가 바로 그것입니다. 약한 빛에도 잘 흥분하는 간상세포는 명암을 구별하는 역할을 하고, 원추세포는 밝은 빛을 감지하고 색깔을 구별하는 일을 합니다. 이 원추세포는 각각 청, 녹, 적색 빛의 자극에 반응하는 세 가지 세포로 나누어집니다. 우리가 빛을 삼원색으로 분류하는 것은 이 원추세포가 세 가지 종류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뇌는 세 종류의 원추세포가 감지하는 가시광선의 파장을 조합해 어떤 색의 빛도 알아볼 수 있습니다. 신인상파의 원리는 원추세포가 행하는 일을 화가가 미리 점으로 분할하는 방식입니다. 아래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색의 분할이 눈이 아니라 화가에 의해 미리 계산된 방식으로 행해집니다. 대뇌에서 인식할 때 색깔의 차이는 없고, 빛의 혼합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밝고 산뜻한 느낌을 주게 됩니다.
원추세포는 빛이 매우 희미할 때는 작용하지 못하는데 이때 감도가 훨씬 좋은 간상세포가 작동하게 됩니다. 그러나 간상세포는 명암, 즉 밝고 어두운 정도는 알아보지만 색깔을 구별하는 일은 할 수 없지요. 그래서 밤에는 색상을 구별할 수 없는 것입니다. 보색원리도 세 가지의 원추세포가 있다는 점을 알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보색대비의 원리는 진화와도 관계가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초록색 잎 사이에 있는 빨간 열매를 더 쉽게 발견할 수 있도록 우리 눈과 뇌가 진화했다는 것이죠. 포유류 중에는 인간과 원숭이만이 원추세포를 가지고 있습니다. 때문에 다른 동물들은 색을 인지하지 못하고 흑백만 구별할 수 있습니다. 투우장에 나선 소가 투우사의 빨간 천을 보고 흥분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소는 원추세포가 없어서 색깔을 구별할 수 없으니까요. 투우사의 붉은 천은 소가 아니라 오히려 관중을 흥분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동물 중에서 인간과 원숭이만 색을 구별할 수 있는 걸까요? 여기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지만, 진화와 관련있다는 주장이 가장 그럴듯해 보입니다. 잡식성을 가진 영장류 중 색깔을 구별할 수 있는 개체가 자연계에서 음식물과 독극물을 더 잘 구별할 수 있어 생존률이 더 높아진 결과라는 주장입니다. 색에 관련된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여성들이 쓰는 립스틱에는 빨간색, 오렌지색, 자주색, 흑자주색, 흑적색 등 여러 가지 색깔이 있습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남성들은 이 색깔을 잘 구별하지 못하고 모두 ‘빨간색’으로만 본다고 합니다. 여성들이 화장품에 더 익숙하기 때문일까요? 하지만 그것 때문이 아니라고 하네요. 최근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빨간색을 보는 유전자는 유독 돌연변이가 많으며, 성염색체인 X 염색체 위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남성의 경우 XY, 여성의 경우는 XX이므로 여성이 남성보다 두 배나 많은 유전자를 가지는 셈입니다. 이 때문에 여성이 붉은색을 보다 잘 구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사람이 색을 인지하는 과정이 과학적으로 밝혀진 것은 겨우 50년쯤 전의 일입니다. 미국의 왈드와 하트라인, 그리고 스웨덴의 그라니트는 색의 인식 과정을 밝혀낸 공로로 1967년에 노벨 의학상을 받았습니다. 인간의 눈은 흔히 카메라에 비유됩니다. 실제로 눈의 구조는 카메라와 비슷한데 특히 디지털카메라와 거의 흡사합니다. 원추세포가 대략 700-800만개, 간상세포가 1억에서 1억 2천만 개 정도 존재하니 우리 눈은 700-800만 화소의 디지털 카메라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단, 명암에 있어서는 아직 인간의 눈이 10배 이상 더 정밀합니다.
19세기 들어 이루어진 색에 대한 과학적 이해는 신인상파의 그림을 거쳐, 칼라 영상매체와 인쇄술의 발명으로 이어졌습니다. 빛에 대한 과학적 이해는 회화는 물론이고 컴퓨터그래픽스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디즈니와 픽사 등에서 제작된 애니메이션 영화의 사실적 화면은 모두 빛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토대로 컴퓨터를 활용해 구성한 것입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아름다운 영상시대에 살 수 있게 된 셈이지요. 주: 본 원고는 저자의 최근 저서인 <명화속 흥미로운 과학이야기(시공아트)>(공저)와 사비나 미술관에 있었던 중등교원 직무연수를 위한 세미나 내용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저자 약력: <이식 한국정보기술연구원 선임연구원> 서울대학교 화학과를 졸업하고 포항공대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MIT 물리학과,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 캐번디시 연구소와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2007년 현재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슈퍼컴퓨팅센터의 슈퍼컴퓨팅응용지원 팀장 및 경상대학교 생명과학부 겸임교수로 일하고 있다. 과학칼럼니스트로 신문과 잡지에 글을 쓰고 있으며, 함께 지은 저서로는 <영국 바꾸지 않아도 행복한 나라(리수)>, <명화 속 흥미로운 과학 이야기(시공아트)>, <철과 함께 하는 시간여행(한국철강협회)>이 있다.
  • 좋아요
손지훈(htlaz) 2024-05-02

인간의 눈 화소가 디지탈카메라와 비슷하나 명함의 인식은 인간이 10배나 앞선다니 놀랍네요.news 잘 보관하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