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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올에 취한 예술가(1)

영화 <토탈 이클립스Total Eclipse>는 베를렌느Paul Verlaine와 랭보Arthur Rimbaud의 엽기적(?) 사랑을 그린 영화로 유명합니다. 사진에서 랭보(레오나르드 디카프리오Leonardo DiCaprio)의 잔에 들어있는 녹색의 물질은 19세기를 풍미했던 압생트(Absinthe)란 술입니다. 19세기의 유명한 화가인 마네Edouard Manet, 드가Edgar Degas, 고흐Vincent van Gogh, 로트렉Henry de Taulouse-Lautrec, 피카소Pablo Ruiz Picasso도 압생트를 즐겨 그렸습니다. 먼저 이들 화가들이 그린 그림을 몇 장 보도록 할까요.
화가들에게 압생트가 이토록 인기였던 것은 특유의 멋도 있지만, 투존Thujone이라는 환각성분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투존은 중추신경에 심각한 장애를 동반하며, 지각장애와 정신착란 그리고 간질과 유사한 발작을 일으켜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하는 성분입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유럽 여러 나라들은 1910년부터 압생트를 마약으로 분류하고 판매를 금지해 왔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압생트의 환각성분은 화가들의 예술적 정서를 풍성하게 해주는 역할도 했었지요.
물에 희석해 마시는 압생트는 탁한 녹색을 띠며 쓴 맛을 지니고 있습니다. 압생트 애호가들은 이 쓴 맛을 해결하기 위해 ‘압생트 숟가락’이라는 특별한 은수저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먼저 압생트 숟가락을 잔에 걸치고 그 위에 각설탕을 올려놓습니다. 이 위로 압생트를 조금 부은 후에, 차가운 물을 서서히 부으면 각설탕 녹은 물이 흘러내려 술을 희석시킬 뿐 아니라 쓴 맛도 제거해줍니다. 이러한 절차는 예술 또는 신성한 종교의식에 비유되었으며, 예술가들이 압생트에 매료되는 큰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당시에는 일과 후 카페로 몰려가 늦은 시간까지 압생트를 즐기는 사람이 많아서, 늦은 저녁 시간을 ‘녹색의 시간’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알버트 간트너(Albert Gantner)라는 화가는 압생트의 금지를 희화하는 <녹색요정의 종말(The end of the Green Fairy)>이라는 그림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압생트에서 알코올로 범위를 넓혀 생각해볼까요. 아주 오래 전부터 예술가들은 알코올과 밀접한 관계를 가져 왔습니다. 로트렉Henry de Taulouse-Lautrec, 모딜리아니 Amedeo Modigliani 등 알코올 중독으로 세상을 떠난 예술가가 적지 않지요. 역시 알코올 중독으로 사망한 미국 추상표현주의 화가 잭슨 폴락Jackson Pollock의 작품 는 최근 1억 4천만달러(그랜저 4천대 의 가격)에 팔려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으로 기록되기도 했습니다.
사람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술을 마시면 누구나 취하게 됩니다. 술에 포함된 에틸알코올(에탄올) 때문이지요. 술에 들어 있는 알코올의 10% 정도는 위에서, 그리고 나머지 90%는 소장에서 흡수됩니다. 이렇게 몸속으로 흡수된 알코올은 혈액에 섞여 우리 몸을 빙글빙글 순환하게 됩니다. 그리고 간은 이 알코올을 분해하는 역할을 합니다. 간에서 알코올을 분해하는 속도는 매우 느립니다. 체중 60kg인 사람의 간이 한 시간에 분해할 수 있는 알코올은 고작 6g밖에 되지 않습니다. 소주 한 병을 마신 사람의 간은 자그마치 24시간 동안이나 알코올을 분해해야 하는 거지요. 분해가 모두 끝날 때까지 대부분의 알코올은 혈관을 타고 몸속을 돌아다니는데, 음주운전 여부를 조사할 때 ‘혈중알코올 농도’를 조사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간으로 흘러 간 알코올은 어떤 과정을 거쳐 분해될까요? 간에서 알코올은 알코올 가수분해효소를 비롯한 여러 효소의 작용으로 아세트알데히드를 거쳐 이산화탄소와 물로 분해됩니다. 그림과 함께 설명을 들으면 이해가 더 빠를 것입니다.
간에서 알코올이 분해될 때, 맨 첫 단계에서 생겨나는 물질이 ‘아세트알데히드’입니다. 술을 마신 다음 날, 숙취로 머리를 아프게 만드는 주범이죠. 아세트알데히드는 ‘새집증후군’을 일으키는 독성물질인 포름알데히드와 화학적으로 비슷한 계열의 물질입니다. 심한 경우 심혈관계에 영향을 미쳐 사람을 죽게 만들 수도 있는 강력한 독성물질이죠. 술에 맛과 향을 가미하기 위해 넣는 여러 첨가물들은 아세트알데히드에 의해 생긴 두통을 더 심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간에서 술을 분해하는 속도는 개인차가 심합니다. 유전적으로 알코올을 더 잘 분해하는 사람도 있지요. 이러한 속도 차이는 어디에서 나는 걸까요? 사실 알코올이 아세트알데히드로 분해되는 속도는 개인별로 큰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나 아세트알데히드가 이산화탄소와 물로 분해되는 속도는 훈련에 의해 크게 향상된다는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술은 마실수록 는다’는 말이 어느 정도는 신빙성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제 술이 취하는 것, 즉 ‘중추신경억제작용’에 대해 알아볼까요? 사람들은 술에 취하면 몸의 중심을 못 잡은 채 비틀거리고 말이 많아지거나 잘 웃게 됩니다. 이러한 행동들은 알코올이 대뇌 신피질에 작용해 ‘중추신경억제작용’을 하기 때문에 생깁니다. 그 결과 술을 마신 사람은 느긋하고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일시적으로 기분이 좋아져 웃거나 말이 많아지는 거지요. 또 술을 마실 때 소변이 자주 마렵고 갈증을 심해지는 것은, 알코올이 신장에서 수분의 재흡수를 일으키는 호르몬(항이뇨호르몬)의 분비를 저하시키기 때문입니다. 수분이 재흡수되지 않고 곧바로 소변으로 배출되니까 자주 화장실에 갈 수밖에 없고, 몸은 몸대로 수분이 없으니 빨리 더 많은 물을 마시라는 신호 즉 ‘갈증’을 느끼도록 만드는 거지요. 이렇듯 술은 분명 몸에 해롭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편하게 하고 긴장을 풀어주는 술의 긍정적인 효과도 무시할 수는 없겠지요. 항상 창작의 산고에 시달리는 예술가들에게서 ‘알코올 중독’이 많이 발견되는 것은 그만큼 그들이 현실을 잊고 무엇인가로부터 위로받고 싶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다음호에 계속 이어서...다음은 와인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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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재미있어요~!!

우병일(quddlf) 2007-08-01

이제 왜 술에 취하는지 알겠네요`~` 역시 과유불급이네요 ㅋㅋ

손지훈(htlaz) 2024-05-05

흥미롭게 잘 읽었고 천재들의 기인 행동들은 동서양이 따로 없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