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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올에 취한 예술가(2)

      알코올은 작가의 작품세계를 크게 좌우하기도 합니다. 화려한 색채표현으로 유명한 고흐는 압생트를 즐겨 마셔 심각한 알코올 중독 증세를 보였습니다. 압생트에는 시신경을 손상시키는 테르펜terpene 유도체가 함유되어 있기 때문에 고흐의 그림에서는 시각장애나 알코올 중독, 정신착란의 징후가 발견됩니다. 기기묘묘한 노랑과 파랑조의 색깔이 돋보이는 아를Arles에서 그린 일련의 그림에서도 그러한 징후가 자주 보이는데요. 이 당시 탄생한 <아를의 노란 집> <해바라기> <밤의 카페> <수확하는 사람> 등은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명화들입니다.
      고흐의 <밤의 카페>를 보면 알코올 중독의 여러 증세가 발견됩니다. 그림 속의 시계는 새벽 2시를 가리키고 있고, 늦은 시간까지 술을 마시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중심을 잃고 탁자에 기대어 있습니다. 원색의 색체와 비틀린 구도는 파격적이기까지 합니다. 고흐는 알코올 중독으로 인한 시각장애 때문에 이런 비정상적인 그림을 그리게 된 것입니다. 금단현상에 시달리던 고흐는 심지어 물감희석용으로 쓰이는 테레펜틴(압생트 성분 중 하나인 투존이 포함되어 있음)을 마시려 한 적도 있다고 합니다. 알코올과 관련해서 와인 이야기를 또 빼놓을 수가 없을 듯 합니다. 양질의 포도주를 만들기 위해서는 당연히 좋은 품질의 포도가 필요합니다. 양조용으로 재배되는 포도는 우리가 먹는 일반포도와는 좀 다릅니다. 당도와 산도가 높고, 미네랄과 페놀계 화합물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야 하지요. 또 적당한 토양과 풍부한 일조량 등도 양질의 와인을 얻는데 매우 중요합니다. 오죽하면 ‘와인의 품질은 절반 이상 포도밭에서 결정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이겠어요. 흔히 와인을 선별할 때 ‘빈티지(생산년도)’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해당 생산년도의 날씨가 포도농사에 좋았는지 그렇지 않았는지에 따라 와인의 품질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몇 해 전부터 우리나라에도 ‘와인열풍’이 거세게 불었습니다. 건강 다큐멘터리나 TV 뉴스를 통해 와인의 ‘항산화 작용’이 소개되었고, 일본만화 <신의 물방울>은 공전의 베스트셀러로 자리 잡기도 했지요. 보통 과실주에는 항산화 작용을 하는 페놀계 화합물이 다량 함유되어 있는데요. 와인에 포함된 페놀계 화합물은 혈소판의 응집을 방해하고 항산화제로 작용하여 관상동맥과 뇌동맥경화증을 감소시킵니다. 프랑스인들이 과다한 지방섭취와 적은 운동량, 과다한 알코올 섭취에도 불구하고 심장질환을 적게 앓는 이유도 와인을 많이 마시기 때문이라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프랑스인의 모순, 즉 ‘프렌치 패러독스’라 불리는 이 연구결과가 발표되자 적포도주 소비량은 전 세계적으로 크게 증가했습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격언이 있죠? 이 격언도 와인 때문에 생겨났습니다. 옛날에는 유리병 대신 가죽부대에 포도주를 저장했는데, 와인이 발효되는 과정에서 이산화탄소가 발생해 낡은 가죽부대가 터져버리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고 합니다. 새 술은 발효가 더 많이 되고, 그렇기 때문에 튼튼한 새 가죽부대에 담지 않으면 터질 위험이 더 컸겠죠. 그래서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격언이 생겨난 것이라고 합니다. 화가들은 순간순간 마음을 사로잡는 예술적 감흥에 의지해 작품 활동을 합니다. 창작의 고통과도 매일 싸워야 하지요. 그래서인지 와인, 압생트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술은 화가들의 오랜 벗이었습니다. 술은 작품의 주요 소재이기도 했고, 알코올 중독으로 고생한 화가들도 아주 많지요. 미술작품을 감상할 때 그 작품과 연관된 술과 화가 그리고 술에 관련된 과학적 상식까지 알고 있다면, 훨씬 다양한 느낌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요. 주: 본 원고는 저자의 최근 저서인 <명화속 흥미로운 과학이야기(시공아트)>(공저)와 사비나 미술관에 있었던 중등교원 직무연수를 위한 세미나 내용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저자 약력: 서울대학교 화학과를 졸업하고 포항공대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MIT,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 캐번디시 연구소와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2007년 현재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슈퍼컴퓨팅응용지원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과학칼럼니스트로 신문과 잡지에 글을 쓰고 있으며, 저서로는 <영국 바꾸지 않아도 행복한 나라(리수)>(공저), <명화 속 흥미로운 과학 이야기(시공아트)>(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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