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원 디지털 형상제작기술을 이용한 러쉬모어 상 제작
2008-07-04
이상호 : hale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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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나는 경상남도 고성군의 작은 시골마을에서 자랐다. 그때는 요즘에 비해서 겨울이면 날씨가 꽤 추워서 저수지와 물은 댄 논이 꽁꽁 얼곤 했다. 그러면 동네 친구들이랑 여기 저기서 구한 목재와 철사를 이용해서 썰매와 양날 스케이트를 직접 만들어서 타곤 했다. 썰매 타는 것이 재미가 없어지면 나무를 깎아서 팽이외곽형상을 만들고 맨 아래부분에 머리를 제거한 못을 박아서 만든 팽이를 치면서 놀았다. 겨울철은 바람이 많이 불기 때문에 연을 날리기에도 더없이 좋았다. 내가 자란 고성에는 마을에 인접한 곳에 대밭이 많았다. 대나무를 잘게 자른 다음 풀을 먹여서 한지에 십자로 붙여서 만든 연을 논둑 위에 올라서서 친구들과 같이 연을 날리기도 했다. 때론 땔감으로 산에서 잘라온 소나무의 가지를 작두로 잘라서 자치기용 토까이(자치기용 나무토막)를 만들어서 마을 마당에서 편을 나누어 자치기를 하면서 놀기도 했다. 이렇게 요즘처럼 장난감이 많지 않던 시절에 나는 동년배들에 비해서 조금 후미진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덕분에 대부분 자연으로부터 얻은 재료를 이용해서 대부분의 놀이기구를 직접 만들어서 노는데 익숙했다.
이런 어린 시절을 보낸 인연 때문인지 나는 부산대학교를 졸업하고 KAIST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3차원 형상 제작’ 기술을 전공하게 되었다. 내가 대학원에 진학한 98년에는 국외에서는 “쾌속조형기” 또는 “3D Printer”로 불리는 많은 ‘3차원 형상 조형기’가 상용화 되어 판매되고 있었고 국내에서도 KAIST를 비롯하여 서울대와 한국기계연구원 등에서 활발한 연구가 진행 되고 있었다. 오늘의 내가 존재할 수 있도록 새로운 기회를 주시고 많은 가르침을 주신 KAIST 기계공학과에 양동열 교수님의 열정적인 지도 아래 종래의 기술보다 5배 이상 빠르고, 2배 이상 저렴한 새로운 개념의 ‘가변 적층 쾌속조형장치’를 순수 국내 기술로 독자 개발 할 수 있었다. 본 연구는 과학기술부의 자금지원에 의해 1998년 12월부터 2003년 9월까지 5년간 ‘주문적응형 쾌속제품개발시스템 사업단’ 아래의 단위과제로 진행되었는데 나는 운이 좋게도 과제를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참여하는 행운을 누렸다. 과제 첫해에는 지금 한국기계연구원에 계신 정준호 박사님과 부산대에 계신 신보성 박사님과 함께 ‘가변 용착 쾌속조형장치’ 개발에 무수히 많은 밤을 지새며 장치 설계와 실험에 매진하였지만, 만족할 만한 소기의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 1999년 말에 그동안의 성과를 정리해서 ‘EVA를 이용한 가변 용착 쾌속조형공정 개발에 관한 연구’라는 주제로 나는 석사학위를 받았다. 비록 ‘가변 용착 쾌속조형장치’ 개발과 관련된 연구는 만족할 만한 성과는 얻지 못했을 지라도 뒤에 이어진 연구를 수행하는데 주춧돌이 되었다. 2000년에 박사과정에 진학하여 지난 연구의 교훈으로부터 새로이 제안한 ‘가변 적층 쾌속조형공장 및 장치’ 개발에 몰두하면서 시행착오를 거듭하고 있는 와중에 지금 조선대학교에 재직하고 있는 안동규 박사님이 만학의 꿈을 이루고자 새로 박사과정에 입학하셔서 같이 연구를 수행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그동안 쌓아온 실험실의 노하우와 지도교수님의 ‘된다고 생각하고 하자’라는 적극적인 격려에 대기업에서 많은 경험을 쌓고 오신 안동규 박사님의 추진력이 더하여져서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 때 석사과정에 들어와서 연구를 함께 수행했던 홍석이와 민섭이, 그리고 마지막에 합류해서 나와 함께 과제를 마무리했던 김효찬 박사 모두가 본 연구가 유종의 미를 거두는데 없어서는 안될 후배들이었다. 모든 연구원들이 새로운 연구과제를 수행하여 성공하기까지가 다 그렇겠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정말 이 과제가 성공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수도 없이 하고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그만 두고 싶은 마음을 이겨냈었는지 그 수를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인 것 같다. 이렇게 과제에 성과가 나오면서 나도 2003년 2월에 졸업을 하고 실험실에 포닥으로 있으면서 ‘가변 적층 쾌속조형장치’의 상용화를 지원하고 기술적 완성도를 높이는데 주력하였다.
새로 개발된 장비의 기술력과 가능성을 보여 주기 위해서 부천에 소재한 미니어처 테마파크인 아인스월드에 미국의 역대 대통령 얼굴이 새겨진 러쉬모어 상을 제작하여 기증하기로 하였다. 영화 슈퍼맨에도 나온 적이 있는 러쉬모어 상은 미국의 중서부 사우스다코타(South Dakota)주 래피드시 남쪽 러쉬모어 국립공원에 있는 미국을 빛낸 네 사람의 대통령 얼굴을 새긴 조각상으로서, 왼쪽부터 초대 조지 워싱턴, 제 3대 토머스 제퍼슨, 제26대 시어도어 루스벨트, 제16대 에이브러햄 링컨이 새겨져 있고, 이 조각상은 보그램이라는 조각가가 러시모어 산의 대리석을 다이너마이트로 폭파하여 15년에 걸쳐 조각한 것으로 높이가 18m나 되는 대작품이다.
막상 도전과제는 정해졌지만, 시작부터 쉽게 해 낼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우선 3차원 CAD 모델 데이터를 얻는 것이 첫번째 과제였다. 일반적으로 쾌속조형기술(Rapid Prototyping)은 시작품을 신속하게 제작하기 위해서 3차원 CAD 모델 데이터(STL 파일)를 일정한 두께 간격으로 슬라이싱한 각 층을 한층씩 적층하여 3차원 형상을 제작하는 기술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주로 휴대폰이나 자동차 부품 등의 시작품 제작 및 디자인 교육과 역공학에 많이 활용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쾌속조형기술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3차원 CAD 모델 데이터가 필요하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 얼굴이 새겨진 러쉬모어 상의 3차원 CAD 모델 데이터를 얻기 위해서 마침 미국의 Fluent사에 개발자로 있던 이영규 박사님께 러쉬모어 상의 기념품을 보내달라고 부탁드렸다. 한 2주 뒤에 DHL로 러쉬모어 상의 축소된 기념품이 도착하였다. 이 축소된 러쉬모어 상 기념품을 3차원 스캐너로 측정하여 원하는 3차원 CAD 모델 데이터를 얻을 수 있었다. 일단 3차원 CAD 모델 데이터를 얻은 것으로서 실제 3차원 형상 제작을 위한 준비는 되었지만, 문제는 제작 크기였다. 아인스월드 측에서 전시를 위해서 최소 1 m 이상의 크기로 제작해 줄 것을 요구했다. 당시만 해도 국외에 몇몇 사례가 있기는 했지만 국내에서 1 m 이상의 크기를 가진 시작품을 제작한 사례가 거의 없었다. 그리고 종래의 쾌속조형기들이 0.1mm의 얇은 두께를 가진 층을 적층하기 때문에 대형형상을 제작하기에 부적합한 측면이 있는데 비하여 새로 개발된 ‘가변 적층 쾌속조형장치’는 1mm 이상의 두꺼운 두께를 가진 층을 적층하기 때문에 대형형상 제작에 유리했지만, 개발 당시에는 대형형상 제작용 장치는 아직 개발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러쉬모어 상을 제작하려고 할 당시에는 조형크기가 A4 크기인 VLM300과 조형크기가 A3 크기인 VLM400이 개발되어 있었다. 그래서 측정된 3차원 CAD 모델 데이터를 ‘불리안 연산(Boolean Operation)’으로 내부가 빈 셀 형상의 데이터로 만든 후에 조형크기에 맞게 절단하여 각각의 얼굴형상을 제작한 다음에 다시 재조립하는 방식으로 제작하였다. 이 과정에서 많은 실험실 후배들이 자기 일처럼 도와 준 덕분에 1.5 m x 0.8 m x 0.9 m (가로 x 세로 x 높이)의 크기를 가진 러쉬모어 상이 성공적으로 제작될 수 있었다. 이러한 대형 크기의 러쉬모어 상을 제작하면서 대형 형상 제작용 장비 개발의 필요성을 절감하여 가로 x 세로의 크기가 2 m x 2 m 까지는 제작이 가능한 대형 형상 제작용 장비도 그 해에 개발하였다.
Fig. 1이 제작된 러쉬모어 상을 배경으로 하여 교수님과 실험실원들이 함께 찍은 사진이고, Fig. 2가 부천에 소재한 미니어처 테마파크인 아인스월드에 실제로 설치된 러쉬모어 상을 보여 준다. 2004년 연말에 아인스월드 측에서 실제 러쉬모어 상에 가장 가까운 축소모형을 제작하여 기증해 준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관광버스를 실험실에 보내줘서 교수님과 실험실원들이 모두 무료로 부천 아인스월드를 관람하고 돌아 왔다. 나는 이때 이미 실험실을 떠나서 LG 전자 생산기술원에 몸담고 있어서 같이 가지는 못했지만, 실험실에서 고생한 것에 대해서 나름대로 외부에서 인정해 준 것에 큰 보람을 느꼈다.
나는 이후에 LG전자 생산기술원을 거쳐서 현재 특허청 자동차심사과에서 심사관으로 근무하고 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부산대학교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KAIST 대학원에 진학하여 석박사 과정을 보낸 그 시절이 내 인생에서 가장 많은 고민을 하고 가장 많은 성취도 이룬 때인 것 같다. 도저히 불가능할 것만 같은 일들이 하나 둘씩 이루어 지는 경험을 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자신의 인생에서 그 무엇과도 바꿀 수가 없는 것이리라!
이제 나는 지난 13년간의 공학도로서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과제에 도전하고 있다. 특허청의 심사관으로서 특허법 및 제반 지식을 습득하여 항상 공명정대한 심사를 함으로써 우리나라의 산업발전에 이바지함은 물론이고 개인적으로도 더 큰 성취를 이룰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해야지. “두려움 속에 사는 것은 반쪽 인생이다.”라는 말처럼 항상 변화하는 세상에서 새로운 과제에 도전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을 두려워한다면 그나마 짧은 인생이나마 전부를 다 누리지 못 할 수 있으니 우리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순간을 영원히” 살 수 있기를 바라면서 두서 없이 써 온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부천에 있다고요 꼭 가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