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꽃이 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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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제시 칠천도 곡촌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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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걸 처음 보니까. 갑자기 벌어진 일이니까….어떻게 된 영문인지."
그날은 수요일 아침이었다. 기상을 알리는 우렁찬 아침방송 알람이 켜지고, 아직 잠에서 덜 깬 내 뒷목에 소름이 오소소 돋아났다. 그리고 벌떡 일어나 완전히 얼어버린 나는 한동안 TV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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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前)주 금요일 아침, 책장에 꽂혀 있던 먼지 쌓인 책을 무심코 집어 들었다. 표지에는 ‘나무에게서 배운 인생의 소금 같은 지혜들’이라고 적혀 있었다. 처음 들어보는 작가 우종영의 『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였다. 죽음의 문턱에서 나무를 만나고 덕분에 연장된 삶을 나무를 위해 바치겠다며 나무의사 로 살아가고 있다는 저자의 서문을 보며 때마침 앉아 있던 나무의자와 어감이 비슷해서인지 ‘나무의사 ’라는 단어가 입안을 맴돌았다.
“나무의사...... 나무의자...... 나무의사......”
그리고 단숨에 읽어버린 그 책에서 알게 된, 나를 딱 한 번 망연하게 했던 나무가 대나무였다.
나무는 보통 일 년을 주기로 같은 일을 반복한다. 이른 봄 새순을 올리고 그것을 기반으로 꽃을 피운 다음, 가을에 열매를 맺고, 겨울엔 다음해를 기약하며 긴 수면기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대나무는 그런 일반적인 나무의 삶에서 참 많이도 벗어나 있다. 다른 나무들은 살면서 수십 번, 많게는 수천 번까지 꽃을 피우지만, 대나무는 60~120년 동안 단 한번 꽃을 피우고 그 즉시 생을 마감한다.
서울 도심에서도 볼 수 있던 그 대나무의 꽃에 대해 알지도 못했지만, 그런 기구한 생애주기를 갖고 있다는 것은 더더구나 몰랐었다. 나무의사인 저자도 아직까지 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평생 한 번 볼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대나무 꽃, 책의 어디에도 대나무 꽃 사진은 없었다. 그 순간 나는 대나무 꽃을 보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에 빠져들었다. 인터넷에서도 대나무 꽃 이미지를 찾을 수 없었다. 그때부터 나는 지인들을 만날 때마다 부탁했다.
“살면서 혹시 대나무 꽃을 보게 되면, 나한테 연락해줘요. 어디든지 갈게요. 대나무 꽃을 꼭 한 번 보고 싶어요.”
지인들은 뜬금없다는 표정으로 지나가는 대답을 했지만 나는 진심이었다.
그리고 닷새 후, 아침 방송에 한 노인이 그랬다.
“팔십 평생 나도 처음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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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밤, 부산행 마지막 열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열차가 역사를 떠나 한강을 다 건너기 전, 자정이 지나갔다.
동트는 부산 자갈치시장을 출발한지 세 시간, 네비게이션이 목적지에 도착했다며 잠잠해져도 곡촌마 을은 나타나지 않았다. 무작정 달려서 언덕을 돌아 내려와 길 모퉁이를 도는 순간 아빛나는 대나무 숲이 펼쳐졌다. 아침의 부지런한 햇살과 더불어 왈츠라도 추듯 대 나무 꽃은 출렁거리고 있었다.
꿈★은 이루어진다
“평생 한 번 보기도 어렵다는 대나무 꽃을 보게 된다면, 그때 같이 있는 사람은 평생 소중한 기억이 될 거야.”
무심코 내뱉었던 이 한 마디에 침묵했던 사람이 있다. 그리고 며칠 후,
"대나무 꽃이 피었대. 거제도에. 보고 싶어."
"당장 가자."
잠시도 주저하지 않고 400km(부산을 거쳐 거제도로 갔기 때문에 실제거리는 600km)가 넘는 거제도까지 가자고 한 사람과 갑작스런 여정에 더 설레이며 동참한 두 친구와 함께 밤 새워 기차를 타고, 차로 달려 대나무 꽃 앞에 섰다. 태어나서 30년 넘도록 몰랐던 대나무 꽃을 처음 알게 된 순간부터 그 꽃을 꼭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지 여드레 만에 정말 그 꽃을 보게 된 것이다. 100년 만에 한국에는 처음 대나무 꽃이 피었다고 했다.
대나무는 죽는 그 순간까지 한 치의 흐트러짐조차 보이지 않는다. 죽음의 순간, 조금이라도 삶을 연장하기 위해 발버둥 친다거나 다음해를 기약하며 땅 속 줄기를 지키려 들지 않는다. 오히려 제대로 된 꽃을 피우기 위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한다. 그만의 푸르름, 그만의 곧음을 간직한 채 말이다.
간절히 원했던 것이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지는 것, 우리는 이런 소소한 기적을 경험하면서 가끔은 세상이 내 편이라는 안도감을 누리는 것이 아닐까.
평생 단 한 번뿐인 개화
“평생 동안 이거 하나를 만들고 죽은 사람도 있었어요.”
16년 전, 대만국립고궁박물관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든 유물이 있었다. 바늘 끝에 알료를 묻혀 3cm정도 되는 작은 유리 병 안쪽에 풍경화를 그려 넣은 아편 병이었다. 지금은 꽤 알려진 Inner-Painting 아티스트가 있기도 하지만 당시 그 풍경화는 고작 하나의 포장지로 쓰였을 뿐인데, 병 속의 그림 하나를 평생 그리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은 충격이었다. 그리고 확대경으로 봐야만 알아 볼 수 있는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또 한 번 충격을 받았다. 병 속의 그림은 손가락 두 마디정도, 그 작은 공간에 무한한 크기의 무릉도원이었다. 그림 속에서는 폭포수가 콸콸 쏟아지고, 물먹는 사슴의 경계하는 눈망울과 막 나무에 내려앉고 있는 새의 날개까지 생생하게 살아있었다.
다시 말하지만 확대경이 없으면 볼 수 없는 풍경이었다. 대나무 꽃 앞에서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평생 하나의 그림만 남기고 간 이름 모를 화가는 어쩌면 대나무 꽃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죽음의 형태는 또 얼마나 잔인한지, 한 번 꽃이 피고 나면 땅 속에 있던 숨은 줄기까지 모두 죽어 버린다. 초토화된 그 현장에서 작은 싹들이 올라오지만 채 그 모습을 갖추기도 전에 다시 꽃을 피우고 죽기를 두 번. 그렇게 세 번 죽고 나서야 비로소 진짜 새 생명이 시작된다.
꽃은 열매를 맺고 씨앗을 뿌려 생명을 이어가는 식물의 생명력이다. 그러나 대나무 꽃은 생명 연장이 아닌 생명의 끝, 땅 속에 숨어 있는 한 줌의 생명까지도 완전히 말려버리는 잔혹한 죽음을 향하고 있다. 막 솟아나온 죽순은 하룻밤 사이에 30cm가 자란다고 한다. 정적이 가득한 밤, 대나무 숲에서는 꺼이꺼이 죽순이 자라는 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황금으로 만발한 꽃이 바람에 흔들리고, 대나무 숲 전체가 꽃으로 뒤덮인 그 땅 아래에 오늘 밤에도 자신의 운명을 모르는 죽순은 성장통을 앓는 소리를 내고 있을 것이다. 생명과 죽음이 공존하는 최후까지 치열함을 다하는 대나무, 생명을 잉태하지 않아서 그런 걸까. 대나무 꽃이라는 걸 알고 보지 않으면 꽃인지도 몰랐을 것 같다. 가까이 다가갔지만 역시 향기도 없었다. 아름답지도 향기롭지도 않은 보리 이삭같은 대나무 꽃이 아무렇지도 않게 찰찰 소리를 냈다. 대나무 꽃이 바라보는 그곳에는 골목가게 하나 없는 작은 마을, 곡촌마을이 있었다.
대나무 꽃이 피었습니다곡촌마을 어귀에 들어서면 높다랗게 펄럭이는 태극기 아래 빨간 지붕의 노인회관과 마당에 놓인 낡은 소파가 눈에 띈다. 각자의 집에서 갖다놓은 모양이 다른 의자들은 나뭇잎으로 뒤덮인 자연천막 아래 한 폭의 그림처럼 자리잡고 있다.
주민의 대부분이 노인인 곡촌마을에는 두 명의 꼬마 세미와 재혁이가 살고 있다. 대나무 꽃 소식이 알려지자 외지에서 찾아오는 낯선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통에 두 꼬마 녀석들은 낯선 어른에 대한 두려움이 전혀 없다. 거리낌 없이 다가와서 어느 새 내 허리춤에 기대는 아이들의 눈은 도시의 아이들과 달리 경계심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누나는 남자 친구 있는데 나는 없어요.”
“왜 없어?”
“누나 학년에는 남자가 있는데, 우리 학년에는 여자가 없어요.”
마을 입구에는 간만에 찾아오는 외지 손님을 기다리는 할머니들이 있다. 양철 주전자의 물이 폭폭 끓으면 인스턴트 커피를 권한다. 시어머니가 최씨라서 시집살이를 호되게 했다는 아주머니는 고추, 깻잎, 호박 등 온갖 채소를 손수 재배하는 텃밭으로 우리를 이끌었다. 땅콩이 정말 땅 속에 있다는 것을 처음 보는 내게 싱싱한 풋고추를 한 아름 안겨주시고, 집반찬과 멸치 한 봉지를 싸주셨다. 마을에서는 가수 뺨치게 인기몰이를 하는 아주머니의 선창에 답가를 두 곡이나 불러야 했던 곡촌마을, 대나무 꽃을 찾아 떠난 짧은 여정에서 평생 소중한 기억이 될 사람들은 한꺼번에 만났다.
“대나무 꽃을 보면 대박난답니다.”
요즘은 사람들의 입에서 ‘힘들다, 어렵다’는 소리를 종종 듣는다. 제법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던 선배가 감원의 칼바람을 맞고 내년에는 더 힘들 거라는 불안한 예측들이 일기예보처럼 빗겨갔으면 좋겠다. 100년 만에 처음으로 대한민국에 대나무 꽃이 피었다. 평생 한 번 볼 수 있을까 한다는 희귀한 대나무 꽃을 보면 대박이 난다고 한다. 당장 먹고 사는 것이 힘들어지면 마음도 냉랭해진다. 어느새 바람이 겨울을 앞서 느끼게 한다. 올 겨울은 예년보다 더 추워질지도 모르겠다. 그 전에 곡촌마을에 핀 대나무 꽃을 보고 내년에는 분명히 잘 될 거라는 희망이 소문처럼 번져갔으면 좋겠다.
대나무 꽂이 그리 귀한가요? 첨 알았고 흥미있게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