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운전사와 자율주행차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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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네기멜론대학이 소재한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의 피츠버그에서는, 최근 자율주행차량의 시운전이 있었다. TV를 통해 소개된 장면을 보니 제법 복잡한 시내길을 마치 운전자가 운전하듯 부드럽게 주행하였다. 운전석에는 인간 운전수가 핸들을 잡을 자세로 앉아 있었다. 혹시 인공지능이 오동작을 하면 인간 운전수가 바로 운전을 떠맡을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그럴 일은 없었다. 기술적으로 상당히 성공적인 시운전으로 보였다. 일전에 필자도 여기서 관련 글을 쓰면서 장차 자동차 회사들이, "수고한 그대 퇴근길부터 취침!" 또는 "당신은 핸들 위에서도 꿈 꿀 권리가 있습니다!" 등의 문구로 자율운행차량을 선전할 것이라고 했었다. 그런데 막연했던 그날이 의외로 빨리 올 수도 있을 것 같다.
결론부터 말하는 나는, 이런 인공지능 적용을 상당히 염려스러워 한다. 과학기술에 대한 태도가 보수적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가 인간이기를 보장하는 여러가지 기능들이 있는데, 기술은 그 기능들을 보완해주고 확장해줘서 인간을 더 인간답게 해준다. 즉 도구를 사용하면서 인간은 노동에서 해방되고 사고나 질병으로부터 보호받는다. 그래서 인간수명은 늘어나고 불치병들을 점점 퇴치해왔다. 즉 기술은 도구여야할 뿐, 본질적 존재의 영역을 침범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아주 쉬운 예로, 우리는 나눗셈이 불편하여 계산기에 의존한다. 하지만 나눗셈의 방법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나눗셈을 안 배우고 계산기의 답만 베껴 쓴다면 계산기는 인간을 도와주는 장치가 아니라, 대신하는 장치가 되어버린다. 계산기를 개발한 소수 엘리트 몇명에게는 계산기가 도구이지만, 99% 다수의 사람들에게 나눗셈은 신비의 계산이며, 계산기는 자신의 머리로 대체불가한 초월자가 된다. 이것은 애초에 인간이 도구를 만든 취지에 반하는 행위다. 그래서 우리가 도구와 기계를 사용하는 기준이 분명해야 한다. 없으면 불편하고 느리기 때문에 사용하는 것이어야 하고, 없으면 안되는 지경에 이르면 이미 일정부분 존재적 가치를 포기한 중독현상에 들어가게 된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많은 도구들은 불편해소와 중독현상의 중간에 와있다. 기계가 없으면 패닉에 빠지는 개인과 사회를 쉽게 볼 수 있다. 실수로 휴대전화를 놔두고 출근한 날은 불안감이 극에 달한다. 허전한 바지 주머니뿐 아니라, 기억나는 전화번호가 하나도 없지 않은가? 심지어 자기 번호마저 기억에서 오락가락하지 않은가? 동전이나 카드만 있으면 되었던, 거리의 그 많던 공중전화기는 모조리 사라졌다. 확실히 우리는 중독되었다. 불량한 철학에 물려 좀비가 되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운전도 할 필요가 없어진다고?
사실여부를 확인할 수 없지만, 예전에 들은 이야기가 생각났다. 조선말 서울에 있는 한 서양대사관을 방문한 조선관리는 서양대사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테니스를 치는 장면을 보았다고 한다. 통역을 통해 그가 대사에게 전한 이야기는,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런 힘든 일이라면 하인들을 시키지 왜 사서 고생을 하느냐고 전해라~"라고 했단다. 자동주행차량 소식을 접하며 곧바로 머리에 떠오른 이야기였다. 이제 이런 추세는 유행이 되고 금방 전세계가 "누가 누가 잘하나?"의 경쟁분위기로 갈 것이다. 경제효과를 의식한 미국정부도 금방 자율주행차량개발에 지지 의견을 밝혔다. 종국에는 교통사고가 줄어들 것이라며… 자율주행차량은 해커에 의해 원격조정될 수도 있다는 경고도 까맣게 잊었나보다. 걷는 해커 위에 뛰는 구글이 있으니 걱정 없을 것이다. 그러다가 해커는 날고 구글은 우주로 향할 것이다.
이쯤되면 향후 과학기술은 마치 묻지마 살인처럼 걷잡을 수 없을 것이며, 과학기술의 철학이나 윤리는 개발경쟁용 휴지로나 사용되어 쓰레기통에 처박힐 것이다. 묻지마 살인이야 겨우 몇 명을 살상하지만, 묻지마 기술은 집단학살을 초래할 수 있다. "구더기 무섭다고 장을 담지말란 말이냐?"라고 삿대질을 해대면 사실 답변이 궁하다. 당장 묻지마 학살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우선은 훨씬 편해질 것이니 말이다. 그래서 필자는 무작정 반대를 하기보다 살짝 다른 방향을 보여주고 싶다. 인공지능이, 이런 자동운전 기능보다는 차라리 테니스 로봇과 골프 로봇 같은 것에 집중하여 자기네들끼리 "인공지능 올림픽" 같은 것들을 개최하면 좋겠다. 이번에는 IBM이 우승하고, 다음에는 구글이 우승하고, 그 다음 해에는 삼성이 우승하고 등등… 인간 올림픽은 지금의 장애인 올림픽처럼 한참 후에 쓸쓸하게 열릴지라도… 물론 올림픽을 통해 충분히 검증된 기술들은 조심스럽게 인간 사회에 적용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북핵문제, 지진문제, 테러예방, 기록적인 더위 같은 우리 삶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데 우리의 과학기술이 더 많이 기여했으면 좋겠고, 자율주행 같은 유행성 연구는 좀 천천히 따라가면 좋겠다. 그런데 아마도 조만간 "한국형 자율주행차량" 소식이 신문에 떠들썩하지 않을까 한다. 도대체 이런 가벼움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은근과 끈기의 민족이라는 우리의 유전자는 변형되었는가? 아직 한국에서 나오지도 않은 소식을 가불해서 연구의 가벼움을 비판하자니 얼굴이 간지럽지만, 안나온 것이 아니라 못나온 것 아니냐고 우길 요량으로 뻔뻔해지기로 했다. 잔잔한 편리가 아니라, 큰 문제 해결에 일조하자는 부추김으로 전세계 코센인들에게 띄우고 싶은 가을편지를 대신한다. 과학하는 마음이 더 깊어지는 가을을 기원드리며…
잔잔한 편리가 아닌 큰 문제 해결~ 좋은 도전인것 같습니다. 글 재미있게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