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사회화와 세계화 그리고 생각치도 않게 쓰게 된 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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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어디에서나 코로나 바이러스 이야기다. 처음에는 중국만의 문제로 여기며, “역시 아직 후진국이야…”라며 남의 일로 생각했던 문제가 국경을 넘고 대륙을 넘어 창궐하고 있으니, 세계전체가 혼비백산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국경이나 지역을 봉쇄하는 것은 별 실효성이 없다는 괴상한 결론까지 나오고 있다. 당연하게도 봉쇄는 코로나 퇴치 자체에는 효과가 있겠지만, 절대다수의 국가와 지역이 식재료와 생필품 자급자족이 안되기 때문에, 원천봉쇄는 또다른 문제를 만들 것이다. 21세기에는 세계가 서로 발을 묶고 뛰는 경기여서 한쪽이 넘어지면 이쪽도 넘어진다. 왜 이다지도 엮이게 되었을까? 국경없이 어울려 사는 인류의 평화를 위해서? 아니다. 거대자본화를 위해서다. 엄청난 생산력을 갖춘 선진국들은 그 생산에 필요한 재료와 값싼 노동력을 구해야 하고, 만든 다음에는 팔아야 하는 시장이 필요하니까 점점 국경을 넘어왔다. 언젠가 본 적이 있는 그림이다. 20세기 초 제국주의 정책들과 많이 닮았으니까. 차이가 있다면 그때는 강압적 침략이었다면 지금은 자발적 협력이라는 점이다. 링컨에 의한 노예해방이 “농장안 노예”를 “농장바깥 노예”(자유 노예)로 바뀐 구조와 비슷하다. 물론 냉소적으로는 둘 다 비슷하지만, 질적인 차이는 현저하다. 자유 노예화 과정에서는 가끔씩 (예외적으로) 흑수저들의 성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간헐적인 성공담이 ‘자유노예’ 제도에 대한 당위성을 제공한다. 하지만 자유무역과 자본주의가 싫다고 해도 대안은 없다. 모든 인간은 자기 신변보호와 상승 그리고 행복과 편리를 위해 사회제도를 이기적으로 이용하고 싶어하니까 말이다.
현재의 세계화, 그리고 종교집단까지 동원되는 거대사회화를 막을 길이 없고, 또 막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는 발전을 도모하는 쪽과 빠른 발전의 후유증을 연구하는 쪽이 대등하게 좀 더 과학적인 방식으로 논의하는 사회구조가 필요하다. 발전을 늦추거나 방향을 바꾸려는 쪽은 시민단체들이다. 이들은 거대권력과 싸울만큼의 역량이 안되다보니, 주장이 과격하고 국가전체를 보는 안목도 없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기득권자들에게는 - 심지어 중산층들에까지 - 그들은 억지와 몽니를 부리는 집단으로 보여진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싸워야 하니 과격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일 것이나, 기울어진 운동장에 적응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정부나 자본의 영향력에서 거리를 둘 수 있는 독립된 전문가 그룹이 필요하고, 그들을 후원할 사회적 합의와 재원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들도 사회를 거꾸로 뒤집기보다는 일단 방향부터 살짝 트는 정도로 타협이 가능한 집단이 되어야 한다. 예를 들면, 일전에 엄청난 국고를 들여서 4대강 사업을 밀어부쳤고, 다음 정권에서는 설치된 보들을 제거하느라 또 돈을 들이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발생했다. 당시 4대강을 반대하는 쪽은, 밀어부치는 쪽과 타협하여 가장 상황이 심각하다고 파악되었던 섬진강부터 먼저 해보는 것으로 타협할 수는 없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랬더라면 일단 시간을 벌 수 있었을 것이고, 조사자료들을 기본으로 추후 좀 더 합리적인 결정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복잡한 정치적 배경과 ‘여기서 밀리면 끝장이다’라는 강한 압박감이 양측에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양측에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 코로나가 지나가고나면 이제는 AI나 5G, 자율주행 같은 첨단기술이, 장밋빛 선전만 앞세워 부작용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채 일상에 적용되면서 또 얼마나 황당한 사건사고들을 불러일으킬 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그 다음으로 눈여겨 짚어봐야 할 문제는 언론이다. 줄기세포 문제 때, 언론들은 뭐가 줄기세포인지에 대한 설명은 없이, 매일마다 엄청난 주변뉴스만 쏟아냈었는데, 이번 코로나 사태때도 유사하다. 예방방법, 검사방법, 백신 만들기 등에 관한 유용한 기사들에 비교하면, “드디어 여기까지도 뚧렸다!”는 식의 정신 빼기 뉴스가 열 배는 더 많다. 마치 기생충 영화를 두고, ‘양극화 사회는 결국 서로를 죽이는 비극으로 끝날 수 밖에 없는가?’라는 논의보다, 아카데미상 소식이 열 배는 더 많았던 것처럼 말이다. 현대 언론의 고질적 선정성에 지친 사람들이 유튜브로 대거 이동했는데도, 기성 언론매체들에게 변화는 없다. 길거리 매체, 개인 매체에 사람들을 다 빼았겨도 언론사 자기들끼리의 경쟁에서만 살아남으면 된다는 생각인지?
마지막으로 생각해봐야 할 문제는, 표 때문에 정치가 개입하기 정말 불편해하는 거대종교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신천지가 이단이라는 논리를 성경해석에 의거한다면 설득력이 없다. 그들은 그들대로의 신학이 있을 것이고, 어떤 신학이 맞는지 다수결로 증명할 길 또한 없기 때문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신천지 교인들은 기성교회가 전부 이단이라고 믿고 있을 것이다. 국민들 누구나 자기가 믿고싶은 것을 믿을 신앙의 자유가 있기 때문에 국가가 나서기 어려운 면이 있다. 하지만 성직자 과세문제와 거대교회당 운영의 환경문제 (주차나 소음 등) 그리고 헌금의 투명성 같은 부분들은 국가나 제3자 전문가들이 개입할 여지가 충분하다. 그리고 종교가 덩치 키우기 경쟁에 몰린 것은 결국 약한 신앙을 가진 일반 신자들의 미숙하거나 잘못된 신앙에 기인한다는 것을 이제는 제발 알아야 한다. 다수가 모이는 곳이 진리가 아닌, 바이러스가 전파되기 쉬운 곳이라는 설교를 코로나가 설파한 셈이다.
결론적으로, 우리 삶은 코로나가 있을 때나 없을 때나 주류와 약간의 거리를 두려고 노력해야 하며, 그 거리 때문에 불안해하거나 소외감을 느끼는 대신, 자기만의 지식과 시각 그리고 철학을 가지기 위해 독서하고 토론하는 방향의 삶의 답인 것같다. 그나저나 모두가 지혜를 모아, 우리 두개골을 짖누르는 이 무겁고 흉물스러운 왕관을 빨리 벗어던지고, 화창한 햇볕 아래에서 거리를 활보하는 자유인의 생활로 속히 돌아가자.
약간의 거리두기 좋습니다.^^ 이참에 국민들의 위생 의식은 많이 발전할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