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율표 Primo Levi(프리모레비)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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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Sulfur 와 Platinum으로 8년, Carbon과 Sulfur로 8년, Carbon과 Silicon으로6년 여 일하다가 현재는Momentive 한국연구소에서 Silicon과 Platinum Chemistry로 전자재료를 개발하고 있는 신경순입니다. 프랑스 CNRS에서 박사후 연구원을 시작한 다음해인 2008년부터 KOSEN 회원으로 지내면서 논문 자료 요청할 때마다 전 세계에 회원분들께서 짧은 시간안에 답변을 주신 덕분에 연구가 한결 수월했습니다. 귀국 후 과제기획서를 작성 할 때 어떤 자료보다 KOSEN의 동향보고서가 귀하게 사용되어, 저의 연구개발과 네트워크의 보물창고가 된 KOSEN에 항상 감사합니다. 릴레이북에 올리는 짧은 글이 여태껏 받은 값진 자료에 대한 작은 보답이 되길 바랍니다.
제 연구경력을 원소로 표현한 이유가 있겠죠? 이번 릴레이에서 소개할 책은 화학자이자 작가인 프리모레비의 [주기율표] 입니다. 제목과 표지만 보았을 때는 학술서적이라고 오해할 수 있겠지만,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자의 미완의 자서전입니다. 모순의 역사속에서 살아남은 화학자이자 작가인 프리모레비는 21개의 원소의 주기율표적 속성과 연결하여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책의 시작은 비활성기체인 Ar으로 자신의 존재 근원인 민족 정체성으로 시작하려는 의도였을 수도 있겠습니다. 프리모레비의 선조들은 스페인에서 이탈리아 피에몬테 지방으로 이주한 유대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한 민족이라 스스로 생각하는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에서 추방당한 이후 전 세계를 떠돌면서도 히브리어와 율법을 고수하며 살아왔고, 작가는 자신과 조상들이 Ar과 닮아 있다고 여깁니다. 그는 토리노대학교 화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할 만큼 유능한 학생이었지만 대학 생활 중 이탈리아에서 인종법이 시행되면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을 강렬하게 자각할 수 밖에 없었고 파시스트 정권에서 내세우는 인종법과 차별에 항거하여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바로 총살되는 것을 면하고 죽음의 열차인 아우슈비츠로 끌려가게 됩니다. 2차세계대전 막바지의 아우슈비츠 수용자들은 평균 수명 3개월,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자는 10%도 채 되지 않았으며, 해방 후 탈출에 성공했더라도 참상의 증인으로 살아남지 못하도록 대부분 살해당했으나, 그에게는 믿을 수 없을 만큼의 운과 복이 따랐습니다. 역사의 파도에 휩쓸렸지만 Ar처럼 다시 화학자의 삶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 책의 마지막장에서 탄소로 자신을 정의하고 완성합니다. 그는 ‘탄소는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고 긴 사슬속에 스스로 들어가 결속할 수 있는 유일한 원소’ 로 표현합니다. 그는 살아도 살아지지 않는, 시간이 한 방울 씩 흐르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의 기억을 용해하며 일생을 탄소로 살았을 것입니다. 그의 마지막 작품인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에서 살아남은 것에 대한 죄책감과 부끄러움을 기술하였고, 그 작품을 끝으로 자결로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프리모레비는 안네 프랑크나 빅터 프랭글 등이 그랬던 것처럼 비극적인 역사가 되풀이 되서는 안된다는 것을 그의 많은 저서를 통해 이야기 하고 있고 자신의 첫 책인 [이것이 인간인가]를 통해 자신은 증언자가 될 자격이 없다고 냉소적으로 고백하였습니다. 피해자의 역사가 가해자의 역사로 돌아오는 상황이 되풀이되며 인간과 인간성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한 시대에 역사의 정답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나, 중간자로 살아가기 보다는 끊임없는 질문속에서 중용을 배워가야 할 것입니다.
다음주자는 벨기에 Umicore 연구원으로 재직중인 조진연 박사입니다. 프랑스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재직하던 시절, 재불과협 모임에 참석하면 만날 수 있었던 유학생들 중에 Ecole Polytechnique에서 공부하던 석사과정 학생이었습니다. 석사 학위 후 KCC와 현대중공업에서 일하다가 유학길에 올라 벨기에IMEC에서 실리콘 태양전지로 박사학위를 마치고 현재는Ge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SNS로 실리콘 태양전지 연구 동향과 벨기에 생활을 전해주고 있는데 어떤 책을 소개해주실 지 궁금합니다.
좋은 글 잘 읽고 답니다. 늘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