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존스홉킨스 대학에서 심리 및 뇌과학과 연구원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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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미국 메릴랜드 주 볼티모어 시에 있는 존스홉킨스 대학에서 심리 및 뇌과학과의 박사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기공명영상(MRI)기계 안에서 이런저런 동영상을 보고 그 내용을 기억해서 말하게 하는 등의 실험을 통해서, 기억을 회상할 때 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이미 많은 분들이 미국에서 유학생으로 혹은 연구원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 글을 올려 주셨고, 존스홉킨스 대학과 볼티모어 시에 대해서도 작년에 다른 분이 소개를 잘 해 주셨습니다(링크는 여기). 그래서 저는 소소하게 지난 1년 반 정도 코로나로 재택근무를 하며 살아가는 동안 겪은 흥미로운 일들과 그 때 찍은 사진들을 보여 드리려고 합니다.
미국에 계셨던 분들은 아마 모두 비슷한 상황을 겪으셨을텐데요, 2020년 3월 초 코로나바이러스 대유행 선언 이후, 봄방학 동안 떠나 있던 학생들은 학교로 돌아오지 못하게 되고 직원들은 재택근무를 하도록 지시를 받았습니다. 이게 웬 난리야 생각하면서 모니터를 들고 연구실에서 집까지 걸어오느라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
재택근무 동안 집에서 먹을 음식을 사러 대형마트에 갔는데 물건이 없어서 음식을 사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어이가 없어서 사진을 찍어 두었습니다. 사실 음식보다도 전국적으로 화장실 휴지가 동나서 엄청난 사회적 혼란이 일어났었는데(지금 생각해도 이해 할 수 없는 사건) 저는 다행히 코로나 이전에 휴지를 미리 많이 사서 쌓아 두었기 때문에 휴지 이외의 다른 것을 사용해야 하는 사태는 피할 수 있었습니다. 음식도 며칠 뒤에 다시 마트에 가 보니 저장식품들은 동나 있었지만 의외로 신선식품은 평소와 같이 공급되고 있어서 굶지는 않았습니다. 이것이 아마 락다운 이전 저의 마지막 쇼핑으로, 그 이후로 백신 접종을 완료할 때 까지 약 1년 이상 마트에 가지 않고 모든 음식과 물품을 온라인으로 주문해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3월 말 부터 5월 말 까지는 모든 시민이 생존에 필수적인 활동 이외에는 집에만 있어야 하는 강력한 락다운이 시행되었습니다. 하지만 며칠 이상 집에만 있으면 몸과 마음의 건강을 해칠 것 같아서 락다운 중에는 이틀에 한 번, 락다운 조치가 완화된 이후에는 하루에 한 번은 꼭 밖에 나가서 산책을 했습니다. 산책은 생존에 필수적이라는 명분이 있었습니다. 눈길이 닿는 모든 곳에 인간이라고는 존재하지 않는 캠퍼스를 하염없이 걸어다니는데 그 와중에도 봄이 와서 꽃이 만개하고 새들이 지저귀는 것을 보고 들으니 세상이 이렇게 아름답게 망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미묘했습니다. 락다운이 끝난 뒤에도 그대로 연말까지 모든 수업은 온라인이고 코로나바이러스 연구를 제외한 인간 실험은 중단되고 업무는 재택근무로만 진행되는 기이한 상태로 한 해가 갔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인간이라고는 발자국밖에 찾아볼 수 없는 사계절의 캠퍼스 사진들을 잔뜩 찍게 됩니다.
해가 바뀌고 2021년 봄이 되자 생각보다 빨리 백신을 접종 받을 수 있게 되고 세상은 아주 잠깐 정상으로 돌아오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메릴랜드주에는 또 다른 괴이한 일이 일어납니다. 바로 17년에 한 번 씩 땅 위로 올라와 번식하는 매미떼의 창궐이었습니다.
어느 날 산책을 하는데 왠지 이런 벌레가 바닥에 많이 보입니다.
그리고 땅에는 이런 구멍들이 숭숭 뚫려 있습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니 온갖 나무줄기와 잎에 눈이 빨간 매미떼가 덕지덕지 붙어있는 것이 보입니다.
덕지덕지 붙은 매미들
탈피를 갓 마쳐서 하얀 매미
저 나무 밑에 떨어져 있는 갈색의 것들이 모두 매미 허물입니다. 충격과 공포
길바닥에서 교미 중인 매미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이 매미떼는 미국 동부에만 나타나는데 17년 동안 유충 상태로 땅 속에서 나무 즙 같은 것을 빨아먹고 살다가 한꺼번에 땅 위로 나와서 몇 주 동안 번식하고 죽어서 사라진다고 합니다. 매미가 갑자기 몸에 날아와서 붙고, 바닥에서 기어다니는 매미를 밟지 않으려고 까치발로 다녀야 하고, 큰 나무 밑을 지나가면 매미 소리에 귀가 따가워서 귀를 막아야 하는 등 불편한 점도 많았지만 인생에 보기 힘든 진귀한 광경이었습니다. 그리고 정말 신기하게 그 많던 매미가 귀신에 홀린 듯이 몇 주 뒤에 다 사라졌습니다. 그 뒤로 지금도 공원 같은 곳을 산책 할 때면, 보이지는 않지만 이 땅 밑에 수십억마리의 매미 유충이 살고 있다는 것을 종종 생각하게 됩니다. 자연은 정말 신비롭습니다.
그렇게 여름이 지나고 델타 변이의 등장으로 코로나 환자가 늘어나든 말든 가을 학기부터는 학생들이 돌아와 대면 수업을 하게 되고 대부분의 생활은 정상(이제는 무엇이 정상이고 아닌지 모르겠지만)으로 돌아옵니다. 학과 행사와 야외 파티가 은근히 많아지나 싶더니 10월이 되자 갑자기 분위기는 할로윈이 되었습니다. 한국에서도 요즘은 할로윈 코스튬 파티 같은 것을 많이 한다고 들었는데 호박 장식도 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한국인은 먹을 것에 장난질을 치는 것을 참지 못하기 때문에 아마 호박 장식은 한국 문화에 영원히 자리잡지 못 할 것 같지만, 미국에서는 집집마다 호박을 깎거나 그림을 그려 문 앞에 놓고 썩어 문드러질 때 까지 방치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귀여운 고양이 호박입니다.
어쩌다 공룡이 되어버린 호박.
(좌) 공중보건을 위해 방역 지침을 준수하는 호박. / (우) 만든 이의 정성이 느껴지는 눈알 호박.
(좌) 정성을 넘어선 어떤 광기가 느껴지는 호박. / (우) 위의 것과는 다른 종류의 광기가 느껴지는 호박.
저희 연구실에서는 코로나 방역 지침을 준수하며 야외에서 호박에 그림그리기 파티를 했습니다.
저는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의 모니카 선생님을 생각하며 그렸습니다. 눈매에 공을 들였습니다 (모니카 사진 출처: https://youtu.be/9Vj12WYFLVA).
마지막으로 대유행 기간에 캠퍼스와 볼티모어 구석구석을 하염없이 산책하는 동안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것으로 눈에 자주 들어왔던 것이 있어 소개합니다. 바로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입니다.
무지개는 아파트에도 있고
옷가게에도 있고
문구점 간판에도 있고
음식점에도
자동차 안
학교 건물
캠퍼스 안
심지어 교회에도 붙어 있습니다.
볼티모어에서는 이렇게 성소수자들이 본인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혹은 성소수자를 환영한다는 메시지를 정말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미국 생활에 대한 가벼운 포토에세이를 마무리하는 주제로는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이것이 제가 미국 동부에서 박사 유학과 연구원 생활을 하면서 느낀 한국과의 가장 큰 차이점 중의 하나이기에 이 지면을 빌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미국의 Z세대는 6명 중 한 명이 성소수자이고 그 비율이 점점 더 늘어날 것이라고 합니다(출처: 워싱턴포스트). 미국에서 유학하시는 분들은 같이 공부하는, 혹은 내가 가르치는 학생 6명 중 한 명이 성소수자라는 것입니다. 교수를 임용하는 공고문에도 우리 대학은 성정체성이나 성적 지향성 그리고 다른 여러 사회적 약자성을 근거로 차별하지 않으며 소수자의 지원을 환영한다는 등의 문구가 거의 항상 있고, 임용 지원 서류에도 본인이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위해 교육/연구/봉사 면에서 어떤 식으로 공헌을 해 왔는지를 설명하는 글을 작성해서 제출하도록 하고 그것을 참고해서 지원자를 평가합니다. 즉 실제로 학내 구성원 개개인이 속으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학과와 대학의 공식적인 입장은 항상 어떤 종류의 차별이든 철저히 반대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그런 입장 표명을 하는 대학을 거의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심지어 국민의 과반수 이상이 찬성하는데도 차별금지법이 아직도 제정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성소수자뿐만이 아니라 다른 많은 사회적 소수자들이 인간으로서 사회에서 당연하게 누려야 하는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차별금지법이 조속히 국회에서 통과되기를 희망합니다.
뉴스로 본 것보다 더 심각했군요 미국 락다운 상황이.
매년 불쌍하게만 생각하는 매미들 제가 직접 봤다면 징그러웠겠습니다. 좀만 더 조심하시고 건강 챙기시고요.
미국 상황을 신문기사로 나오는 한줄 글이나 짧은 영상으로만 알고있었는데, 직접 살아가는 입장은 매우 심각했군요..ㅎ 한국에서 살아가는 감사함을 느끼기도 하면서 세상은 넓고 다르다 라는 생각도 듭니다. 성소수자에 대해서는 사실 제대로 생각해본적이 없는것같습니다.. 사회에서 이야기가 많이 되는 만큼 건강한 논의와 합의가 되면 좋겠네요.
월요일에 진행된 코센 브릿지 포럼에서 뵈어 이름이 낯설지 않았네요~^^ 오늘 지금도 MRI를 이용한 뇌과학 연구 하고 계시겠죠~ 멀리서 응원하겠습니다~!! ^^
오 교수 임용 공고문에도 환영한다는 문구가 적혀있군요! 아직까지는 국내에서 있을 수 없는 일 같아요.들어보지 못해 아주 신선하네요! 사람은 누구나 다 평등하다고 생각하지만, 평등할 수 없는 상황이 있는거 같아요. 그렇다고 차별이 되어서는 안되겠죠~! 성소수자, 사회적 약자라는 말이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 처럼 우리 사회에서는 아주 다양한 이슈들이 해결되야하는거 같네요 ㅎㅎㅎ 글 잘 읽었습니다.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