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야
과학기술과 인문사회
발행기관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
발행일
2020.06.26
URL
김호원 서울대 객원교수 hwkim8053@hanmail.net
전대미문의 코로나19가 올해 초 중국 우한에서 공식 확인된지 5개월, 금년 6월 초 현재 전 세계에서 500만 명을 넘는 확진자와 사망자 40만 명을 내고도 아직 그 끝을 알 수 없어, 각국 정책당국의 고민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 변종 바이러스 감염이 알려졌을 때 방역당국들은 발병 및 전파과정 등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지리적 봉쇄 조치를 할 것인지 또는 집단감염방식을 택할 것인지, 사회적 거리두기는 어떤 강도로 할 것인지, 심지어 마스크 사용은 해야 하는지에 대한 주요 결정을 해야만 했다. 결과는 최고 수준의 의료기술과 사회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자부하던 주요 의료 선진국들의 처절한 실패였다.
언제쯤 이 바이러스가 사라질 것인지, 2차 대유행은 있을 것인지, 치료제와 백신은 언제 개발가능한 건지, 그 백신이 새로운 변종 바이러스에는 통할 것인지 등에 대해 최고 전문가들의 답변은 한결 같이 “아직 모른다”이다. 그만큼 이 코로나 바이러스는 미지의 예측대상이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나라는 대규모 봉쇄조치없이 선방하고 있다는 국제적 평가를 받고 있다. 의료진의 헌신적 노력 등 여러 가지 요인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과거경험으로부터 얻은 교훈이었다. 사스와 메르스사태의 경험과 세월호 침몰사고의 아픈 경험으로부터 정부와 국민들이 미래상황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었고 발빠르게 대응할 수 있었다. 단합된 노력으로 3월 이후 빠르게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고 치명률도 낮은 수준이다.
그러나 약간의 방심 때문인지 6월 들어 수도권 중심의 코로나 집단감염사례가 줄어들지 않고 있는 가운데 2차 대유행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어, 정부는 6월 12일 현행 수도권 방역강화조치를 무한 연장하기로 했다. 정말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정부와 국민들의 인내심을 시험하고 있는 코로나19라는 불가측한 위험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정책당국자의 고민은 오늘도 진행형이다.
지난해 말부터 경기 회복세를 보여주던 우리 경제는 금년 1월 말부터 국내외에서 코로나19가 급속히 확산되면서 경제활동이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이에 정부는 과거 위기와 비교할 수 없는 전방위적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전례없는 수준의 과감한 정책대응을 해오고 있다.
그동안 방역을 통한 사태 조기종식에 총력을 기울이면서 신속한 피해극복 지원, 민생안정 및 일자리 지키기에 힘써온 정부는, 지난 6월 1일 코로나19 국난 극복과 포스트코로나시대 개척을 위한 선도형경제 기반구축을 정책목표로 하는 ‘2020년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한 바 있다.
포스트 코로나시대를 개척하기 위해 ‘한국판 뉴딜’을 본격 추진하기로 한 것이 가장 관심이 가는 대목이다. 고용안전망을 강화하면서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을 2개의 축으로 추진될 한국판 뉴딜은 2025년까지 총 76조 원 수준이 투자될 계획이다. 디지털 뉴딜에는 2022년까지 13.4조원이 투자되어 일자리 33만 개 수준을 창출할 계획이며, 향후 추가과제를 보완·확대하여 7월 중 종합계획을 발표할 예정으로 있다.
OECD 등 주요국제기관들은 이러한 한국 정부의 강력한 방역대응노력과 신속한 정책대응이 2020년 한국의 경제성장율 하락을 주요국가가운데 가장 소폭에 그치게 할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주목할 만한 특이 국가(Notable Outlier)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러한 긍정적 평가에도 경제정책당국자는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코로나19가 경제여건 등 모든 것을 좌우하는 초불확실성에 직면하고 있는 가운데, 경제위기국면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겨울철 2차 대유행이 현실화될 경우, 경제심리와 경제활동이 다시 급속도로 위축되고 그동안 투입된 막대한 재정과 노력이 수포가 될까봐 좌불안석이다.
요즘 경영학계에서는 VUCA라는 표현이 자주 사용된다. VUCA란 기업을 둘러싼 경영환경이 얼마나 변동성이 크고(Volatile), 불확실하며(Uncertain), 복잡하고(Complex), 애매모호한지(Ambiguous)를 나타내는 단어의 앞글자만 따서 만든 표현이다. VUCA시대 기업경영은 과거처럼 수립한 계획과 전략이 어긋나는 경우가 많이 생기고, 그래서 지속적으로 상황을 관찰하고 전략을 수정해 실행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고려해야 할 요소가 훨씬 많아지고 복잡성이 높아져서 전혀 예상치 못한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도대체 우리가 직면한 문제가 무엇이며 해결책이 무엇인지도 애매모호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한다. 이러한 VUCA시대는 이제 정책이나 행정의 영역에서도 보편적이 되었다.
그렇다면 이런 정책환경 하에서 정책의 효율성을 제고하고 실행가능성을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모든 정책결정자가 궁금해하는 사항이다.
첫째, 정책결과가 아닌, 상황을 분석하고 미래를 예측하면서 정책과제를 명확히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과정(Process)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아무리 예측하기 어려운 위기라 하더라도 사전에 징후를 전혀 감지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징후가 감지되더라도 이를 준비하기 위한 정책적 결정을 쉽게 내릴 수 없다는 데 있다. 만약 많은 노력과 비용을 들여 위기 상황을 준비했는데 실제로 위기가 일어나지 않았을 경우, 정책 결정자는 그 책임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정책을 한 번 정하고 상황변화에 관계없이 당초 계획대로 집행해 나가는 방식을 탈피하고, 진행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변화된 상황에 맞춰 빠르게 수정해나가는 ‘과정으로서의 정책 결정시스템’을 구축해 나가는 것 뿐이다.
3차에 걸친 추가경정예산 편성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의 2차 대유행이 현실화된다면 예산사업과 정책의 구조조정을 통해 새로운 정책을 강구해 나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정부가 추구해야 할 가치는 기민함(Agility)과 유연성(Flexibility)이며, 정책의 지속적 점검과 피드백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해질 것이다.
둘째, 예측행정, 시나리오 행정의 적극 도입이다. VUCA시대 정책의 성공여부를 결정하는 99%는 미래 예측의 정확도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복잡하고 급속한 정책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기존 추세기반의 예측 활동에서 벗어나 미래불확실성을 고려한 예측으로 전환이 필요하다. 불확실성의 수준을 단계별로 구분하여 다양한 미래를 상정하고 각각의 대응방안을 마련함으로써 어떤 상황이 일어나더라도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시나리오 행정이 요구된다.
지난 6월 10일, OECD가 발표한 경제전망이 좋은 사례가 된다. OECD는 금번 경제전망에서 코로나19로 인한 전례없는 불확실성(Exceptionally Uncertain)을 감안하여, 금년 4/4분기 코로나19 재확산 여부에 따라 재확산이 없는(Single-hit) 시나리오와 재확산(Double-hit) 시나리오 두 가지 시나리오를 발표한 바 있다. 우리 정부의 디지털 뉴딜정책을 포함한 코로나19 국난 극복과 포스트 코로나시대 개척을 위한 각종 대책들도 향후 코로나19가 언제 종결될 것인지, 2차·3차 대유행이 올 것인지, 온다면 언제 올 것인지에 대한 각각의 시나리오를 상정하고 시나리오별 대책을 수립·추진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전개될 주요 선진국들의 무한정책경쟁에 있어서 승패는 바로 이 예측의 정확도, 1인치 싸움에서 결판이 날 것이다.
우리 사회의 미래예측력(Foresight)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이런 관점에서 앞으로의 경제정책 수립은 경제전문가 위주의 관행에서 벗어나 과학기술자의 전문성, 인문학자의 인문사회적 성찰과 상상력, 그리고 일반 시민의 적극적인 참여가 요구된다 할 것이다.
셋째, 장기적 관점의 근본적 접근방법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코로나19로 인한 지금의 경제적위기는 그 강도와 지속기간이 글로벌금융위기보다 크고 길 가능성이 높다. 기저체력마저 쇠약한 한국경제가 단기간에 회복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따라서 정책당국자는 두세 번의 대규모 유동성 공급으로 현재의 위기가 극복될 것으로 기대하기보다는 장기전을 각오해야한다.
더구나 우리는 단순히 원래 경제상태로 회복하는(Bounce Back)것이 아니라 위기를 기회로 삼아 앞으로 나아가는(Bounce Forward) 것을 목표로 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단기적 성과에 일희일비할 것이 아니라 장기적 관점에서‘기업하기 좋은 나라’라는 목표를 향해 근본적 혁신을 해 나가야 할 것이다. 지속적 재원을 확보하기 위한 보편증세문제, 은산분리·수도권규제·원격진료등 핵심규제문제, 지난 20년간 제대로 추진하지 못했던 4대 구조개혁문제, 소득주도성장정책으로 대표되는 기존 정책기조의 전환문제 등을 지속가능한 발전측면에서 고민하고 리셋해 나가야 한다.
독일집권당이 지난 5월26일 발표한 코로나 이후 노동·세제개혁방안을 참고할 만하다. 근로시간 유연화, 법인세인하, 심지어 최저임금 동결과 인하방안까지 포함하고 있는 것은 눈여겨보아야 한다.
재정투입을 통해 단기적 수요를 확대하는 정책은 쉬운 정책들이다. 그러나 정책기조의 획기적 전환을 통해 국가전체를 재개조하는 일은 실행하기가 어려운 정책들이다. 코로나19로 한국국격이 높아지고 여러모로 정부·여당의 정책추진여건이 좋은 이때가 중요하지만 미루어 왔던 정책들을 추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넷째, 사실에 근거한 정책(Fact-Based Policy) 수립이다.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이 코로나19 봉쇄령을 단계적으로 해제하고 경제활동을 재개하면서 전례없는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쏟아내고 있다. 우리나라도 한국판 뉴딜 등에 막대한 재정을 투입 중이다.
당장 호흡기를 달아야 하는 형편이니 불가피한 측면이 있고 일부 단기부양책의 반짝효과도 있었다. 그러나 막연한 공포심이나 정치적인 목적으로 또는 ‘선제적 대응’이라는 조급함 때문에 충분한 연구나 검토없이 대책을 내놓은 것은 없었는지 냉정하게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1930년대 미국의 뉴딜정책이 프랭크린 D.루즈벨트 대통령과 민주당의 정치적 성공은 가져왔지만, 경제적으로는 정부의 지나친 개입으로 경제의 역동성이 저하되고 자원이 비효율적으로 배분되게 함으로써 경제 위기를 장기화시켰다는 역사적 교훈을 곱씹어 보아야 한다.
최근 경제정책의 정치적 종속현상에 대해 많은 우려가 있다. 좋은 정책이냐 나쁜 정책(포퓰리즘적 정책)이냐를 구분하는 간단한 기준은 사실에 근거한 정책이냐 여부이다. 단순한 슬로건이나 당연해 보이는 정책의 유혹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과연 기대한 효과가 있을지에 대해 치열하게 검토하는 것은 정책당국의 숙명이다. 빠른 정책결정의 필요성과 사실에 근거한 정책 수립은 결코 상호모순되는 것이 아님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다섯째, 규칙기반의 정책(Rule-Based Policy)적 접근이 필요하다.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은 코로나 유행에 따른 경제적 영향을 상쇄시키기 위해 강력한 재량적(Discretionary) 재정 및 통화정책을 시행 중이다. 그러나 IMF 경제전망 분석(2020.4.)에 따르면 거시경제지표가 악화될 때 자동적으로 작동되는 규칙기반 재정부양책(Rules-Based Fiscal Stimulus)이 경기침체 대응에 매우 효과적임을 확인하고 있다.
재량적 재정확대정책을 시행할 경우, 코로나19의 충격에 대한 속도와 깊이가 불확실하여 정책의 적시 설계와 시행을 어렵게 할 여지가 많다. 만약 충격발생 전에 재정부양책의 규칙이 정해지고 정치적 합의가 잘 이루어진 경우, 부정적 충격이 현실화되었을 때 경제활동의 위축을 완화할 수 있을 것이다.
실업률이 특정임계치를 상회할 경우 유동성이 부족한 저소득가계에 대한 임시맞춤형 현금이전지출과 같은 규칙 기반 재정확대정책이 전형적 수요부족에 따른 경기침체대응에 매우 효과적인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정부의 긴급재난지원금을 70% 국민 또는 전국민에 지급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기준이 보편적 복지 또는 선택적 복지라는 정책이념과도 관련이 있지만 긴급집행의 가능성 여부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국민의 70%를 구분·결정하는 객관적이고 투명한 기준이 사전에 부재할 경우 적시실행에는 많은 한계가 따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채무건전성 유지를 위해 국가 부채나 재정수지 등에 대한 한도를 법으로 정해 강제하는 재정준칙도 적극 도입해야 할 필요가 인정된다 하겠다.
VUCA로 표현되는 지금의 정책환경은 경제를 이끌어가는 리더들에게 많은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포퓰리즘적 정책에 매몰되지 않는 좋은 정책을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뭐가뭔지 잘 모를 때는 단기적인 대응이나 하나하나의 개별 정책보다는 본질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큰 그림속에서 어떻게 하면 장기적 발전을 도모할 수 있을지에 대해 집중하여야 한다.
김호원(金昊源)
현 서울대학교 객원교수이자 경제추격연구소 이사장이다. 23회 행정고시 합격 후 산업자원부와 국무총리실에서 산업기술국장, 산 업정책국장, 미래생활산업본부장, 규제개혁실장, 국정운영2실장을 거쳐 제 22대 특허청장을 역임했다. 퇴직 후에는 국가지식재산 위원회 민간위원, 국회예산정책처 자문위원 등을 역임한 바 있으며 현재 경제자유구역위원회 부위원장, 한국창의성학회 부회장, 특 우회 회장 등으로 활동 중이다. 주요 공저로는 『미래산업전략보고서』(21세기 북스, 2018.4.), 『2020 한국경제대전망』(21세기 북스, 2019.11.)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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