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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는 9회말부터, 인생은 60부터!” 프로방스를 떠나 새로운 보스턴 생활

매달 코센웹진에 칼럼을 싣는 전창훈입니다. 이번 달에는 포토에세이까지 올려 웹진을 도배하게 되었으니 송구스럽습니다. 사실 제가 칼럼을 쓰지만, 웹진에서 매달 가장 기다리기도 하고 또 재미있게 읽는 코너가 포토 에세이입니다. 포토 에세이 작가님들 모두 글도 재미있게 쓰시고 사진도 잘 찍더군요. 그런데 이번 포토에세이가 부실하여 이 코너 명성에 누를 끼칠까봐 걱정스럽습니다.

본인 소개부터 하면, 저는 한국에서 석사까지 마치고 회사생활을 하다가 늦게 프랑스로 유학을 갔습니다. 박사학위를 마치고 운좋게 프린스턴 대학이 운영하는 미국 에너지성 연구소 Princeton Plasma Physics Lab 에 엔지니어로 취직되었고 미국으로 건너와 10년을 근무했습니다. 그런데 프랑스로 장소가 정해진 국제공동 프로젝트 ITER로부터 참여제의를 받고 식구들과 다시 프랑스로 이사를 했어요. 처음 계획은 파견기간 5년만 채우고 돌아오는 것이었는데, 결국 프린스턴을 사직하고 그곳에 남게 되었습니다. 세월을 그렇게 15년을 보내다가 마침내 작년 가을에 프랑스 생활을 정리하고 미국으로 되돌아 왔습니다. 현재 다니는 회사는 MIT와 공동 프로젝트를 하는 곳이어서 MIT Visiting Scientist 자격도 받게 되었습니다. 늦은 나이에 이직했으니 “야구는 9회말부터, 인생은 60부터!” 라는 슬로건이 사실일 수도 있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사설이 길었습니다. 포토에세이 제의를 받고, 제가 떠나온 프로방스 지역과 Harvard-MIT가 있는 보스턴 지역을 함께 소개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습니다.

프랑스 남부지역 프로방스는 명확한 경계가 존재하지 않지만, 위로는 Lyon 동쪽으로는 Montpellier, 서쪽으로는 Nice까지를 포함하는 지역이라고 보면 됩니다. ITER 프로젝트 본부는 프로방스 지역 한가운데에 위치합니다. 아마도 프로방스는 세계에서 가장 좋은 기후를 가진 지역일 것입니다. 사계절이 뚜렸하지만, 겨울에도 날씨 좋은 주말에는 가족들과 아파트 발코니에 나와서 점심을 먹을 수 있는 날들이 제법 있고, 태양이 강력한 여름에도 습도가 낮아서 그늘에 들어가면 견딜만합니다. 건조하지만 알프스에서 눈녹은 물이 강으로 흘러 지중해로 들어가기 때문에, 비슷한 기후를 가진 캘리포니아와 다르게 물 걱정도 없습니다.

생뜨 빅뜨와르 산 전경

위의 사진은 세잔느가 평생동안 화폭에 담았던 생뜨 빅뜨와르 산을 제가 아래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산등성이가 비슷한 높이로 길게 이어지는 특이한 산입니다. 자세히 보면 산 정상 한 봉우리에 작은 십자가가 보일 것인데, 그곳에 성당이 있습니다.

프로방스는 시골인데도 역사적으로 유명한 사람들과 신화같은 이야기가 많습니다. 근처에는 예언자 노스트라다무스 생가와 피카소 미술관이 있고 교통사고로 요절한 이방인의 작가 카뮤와 화가 세잔느의 묘지가 있습니다. 인상파 이후 표현주의라는 미술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세잔느, 그리고 아마도 유럽 근대사중 가장 유명한 인종혐오 사건인 드레퓌스 사건 당시 ‘나는 고발한다’는 사설을 신문에 싣고 영국으로 몸을 피신해야 했던 에밀 졸라는 어릴 때 프로방스 중심도시인 액상 프로방스에서 같은 중학교를 다녔던 절친이라고 합니다. 세잔느가 젊을 때 살았던 집과 임종을 맞이한 집이 매일 저녁 산책하던 길을 따라 있었습니다.

세잔느 묘지 / 아파트 베란다에서 찍은 사진

위 왼쪽 사진은 액상 프로방스 시내 공원에 영면한 세잔느 묘지입니다. 이곳을 떠나기 전에 꼭 방문해봐야 한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어, 비오던 어느 주말 오후에 찾아가서 찍은 사진입니다. 오른쪽 사진은 몇 년 전 늦은 봄 저녁으로 기억하는데, 샛별이 너무 밝아서 저희 집 아파트 베란다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아래에 걸린 초승달과 비교될만큼 크게 빛나는 샛별(금성)은 도데의 소설 ‘별 이야기’ 속 목동이 봤던 그 별이겠죠?

너무 오랜 기간을 프랑스 시골구석에 갇혀사는 것이 답답했었지만, 떠나온 지금은 마치 판타지한 꿈을 꾸고 깨어난 것처럼 아련합니다. 언제 다시 가보게 될런지 벌써 기다려지는군요. 그때는 지팡이를 짚어야 할만큼 세월이 지난 후 일까요?

프로방스 시내의 자연 분수

위 사진은 어느 초가을 주말에 액상 프로방스 시내를 산책하던 중 아내가 찍어준 사진입니다. 걸터앉은 곳은 땅속에서 간신히 올라와 돌쟁반에 모인 물들이 아래로 힘없이 떨어지는데, 아마 수백년 이상 얌전하지만 끊임 없이 솟아나고 있는 물일 것입니다

위 사진은 사진은 20미터 높이를 가진 ITER 진공용기 조립장비입니다. 이 거대한 장비를 한국 제조업체들이 만들어 공급했습니다. 우수한 품질과 경쟁력 있는 가격으로 현재 한국은 제조업 가성비가 가장 좋은 국가입니다. 반세기 동안 힘써 이룩한 제조업 기술이 IT우선정책에 밀려나서 위축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참고로 프랑스에서 진행중인 ITER 프로젝트는 현재 제작과 조립 과정중이어서 아직도 많은 엔지니어와 과학자, 그리고 CAD Technician과 행정인원들을 모집중입니다. 한국도 참여국이어서 지원가능합니다. 관심있는 분들은 너무 전공이 달라서 안될 것이라거나, 경력이 짧아서 힘들것이라고 미리 판단하지 마시고 지원해보시길 바랍니다. 참여국 지분으로 선발되는 것이기 때문에 유엔산하기관들같이 높은 영어실력이 요구되지는 않습니다. www.iter.org 상단 중앙에 Jobs라는 코너를 들어가 보시기 바랍니다.

보스턴은 3가지로 유명합니다. 미국이 태동된 지역, Harvard와 MIT를 비롯하여 인근에 대학이 워낙 많은 교육도시,그리고 현재는 제약회사들을 필두로 엄청난 숫자의 회사들이 밀려들고 있어서 살인적인 집세와 물가를 보여주는 지역입니다.

위의 3가지 외에도 미국의 여느 도시들과는 다른 점이 있습니다. 대중교통이 안전하고 편리하다는 점입니다. 아래에 보스턴 전철 노선을 올렸습니다. 여기에서는 전철을 숫자가 아닌 색깔로 구분하여 부릅니다. Red Line은 하버드와 MIT(노선도에서 빨간 선 왼쪽 위) 를 보스턴 시내와 연결해줍니다. Green Lines은 서울의 2호선처럼 주로 횡으로 뻗어갑니다. Green lines 네 개의 브렌치 중 세 개가 모이는 점 근방에는 버클리 음대가 있습니다. 그 앞을 지나다보면 학생들의 K-Pop 연주를 가끔 들을 수 있습니다. Green Line맨 윗선을 타고 서쪽 (왼쪽) 끝까지 가면, 유명한 단과대학 Boston College(BC) 가 있습니다. 그리고 보스턴 국제공항 Logan Airport는 정반대편인 동쪽(오른쪽)끝 바닷가에 위치합니다.

보스턴 전철 노선

버클리 음대

보스턴 시내에 위치한 버클리 음대입니다. 캘리포니아에 있는 UC Berkeley와 혼동하여, “버클리 음대가 보스턴에 있다고?”라며 놀라는 사람들이 있는데, 스펠링도 약간 다르지만 전혀 다른 대학입니다. 보스턴의 버클리 음대는 우리나라 대중가요 가수들이 많이 유학한 곳으로, 재즈 등의 ‘실용음악과’로 유명한 대학입니다.

Boston College

지난 겨울 엄청 추웠던 날 방문했던 Boston College 정경입니다. 단과대학이어서 규모가 작을 줄 알았는데, 건물들이 웅장하고 도서관도 너무 커서 놀랐습니다.

보스턴 분위기는 뉴욕보다는 오히려 런던에 가깝습니다. 이곳은 겨울이 아주 길고 눈도 많이 오는데, 요즘은 지구온란화 현상 때문인지 강설량이 좀 줄었다고 합니다. “모두에게 해롭게 부는 바람은 없다.”는 서양 격언이 생각나는군요. 누구에게는 역풍인 바람이 다른 누구에게는 순풍인 것처럼, 저처럼 추위에 약한 사람들에게는 여기 지구온란화로 덜 추운 겨울을 보내게 된 것이 다행입니다. 보스턴 시내에 오래된 건물들은 아래의 사진처럼, 벽이 울룩불룩 튀어나온 건물들이 많습니다. 아마도 일조량이 적은 탓에 햇볕을 많이, 오랜시간 받으려고 벽을 돌출시킨 것 같습니다. 프로방스 지역에는 햇볕이 너무 많아서 거의 모든 집에 발코니가 있지만, 거의 6개월 정도가 겨울인 보스턴 지역은 발코니 있는 집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대신 이렇게 튀어나온 벽쪽으로 다가오면 창문을 열지 않고도 발코니에 나온 것처럼 집바깥 풍경이 앞으로뿐 아니라 옆으로도 보이겠죠. 이곳 오래된 주거용 건물들은 멋있긴 한데, 바퀴벌레나 쥐들과 한가족처럼 지내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여서 악명이 높습니다.

보스턴은 광역권을 포함한 도시전체의 크기는 아담해서 전철을 이용하든 운전을 하든 한쪽 끝에서 다른쪽 끝까지 1시간 정도 걸립니다. 보스턴 시내에서 Red line을 타면 두번째 전철역이 캠브리지에 있는 MIT,네번째 전철역이 하버드여서, 이 두 대학은 미국대학들 중에는 시내접근성이 최강입니다. 뉴욕시내에 있는 NYU 와Columbia, 그리고 런던 시내에 있는 런던정경대 (LSE), UCL 같은 대학들을 제외한다면 말입니다.

MIT 본관

MIT 캠퍼스는 담장도 없고 캠브리지 전체에 흩어져 있어서 대학의 경계가 확실하지 않습니다. 많은 랩들과 벤처회사들이 주변에 포진하여 있는 구조때문인 것 같습니다. 본관은 전철역에서 도보로 5분 정도 거리에 있습니다. 겨울 내내 추워서 여기까지 걸어갈 엄두를 못내다가 최근에 찍은 사진입니다. 맨 앞에 걸어오고 있는 여학생이 노란파커 차림인데, 사진찍은 날은 4월 하순입니다. 여기는 5월까지도 가끔 눈이 온다고 합니다.

하버드 대학 캠퍼스

위 사진은 하버드 전철역이고 뒷배경은 하버드 대학 캠퍼스입니다. 전철역에서 나와 길만 건너면 캠퍼스입니다. 하버드 캠퍼스(하버드 대학은 캠퍼스를 ‘Yard’라고 부릅니다.)에서는 주로 학부생들 수업이 있고, 케네디 스쿨 (정치학 대학원), 비지니스 스쿨, 로스쿨, 의과대학원들은 모두 바깥 지근 거리에 따로 건물이 있습니다.

저희 세대 때는 “하버드 대학의 공부벌레들” (원제: The Paper Chaser) 이라는 책이 유명했는데, 로스쿨에 다니는 주인공이 교수님의 과제질문에 어찌 답할지를 고민하며 찰스강을 따라 산책하던 이야기가 지금도 기억납니다. 하지만 철들고 보니 일류나 명품 팔아서 장사하는 사람들의 마켓팅에 놀아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현지의 분위기도 하버드나 MIT 보다 훨씬 랭킹이 떨어지는 대학에 다니는 젊은이들도 자기 대학 이름이 적힌 티셔츠를 자랑스럽게 입고 다닙니다.

다만, MIT나 하버드는 취업에서 어느 정도 가산점을 받는 정도의 대학이 아닌 것만은 확실합니다. 미국과 세계의 미래 리더들을 키우는 대학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죠. 하지만 과도한 기득권으로 공정한 경쟁을 왜곡시키는 행위는 막아야 합니다.)

‘하버드 대학의 공부벌레들’의 배경이었을법한 찰스강가 사진을 한장 싣습니다. 사진작가가 시원찮은 관계로 장비탓을 하자면, 핸드폰으로 찍은 탓인지 입체감이 충분하게 살려지지 않는군요.

하버드 대학쪽에서 촬영한 찰스강과 다리

위 사진은 하버드 대학쪽에서 찰스강과 다리를 담아본 사진입니다. 유럽의 한 도시같지 않나요? 건너편 왼쪽에 보이는 건물들은 보스턴 시내 약간 북쪽에 위치한 Boston University (BU) 캠퍼스 광경입니다. 이 강을 따라 조정경기하는 모습을 영화에서 가끔 본 것같은데, 아직은 날씨가 추운 탓인지 연습하는 카누들만 가끔 봤습니다.

끝으로 MIT 학생회관에 들렀다가 흥미로운 장면을 보게 되어 아래에 사진으로 소개합니다. 그리고 세계와 우리 모두를 참담하게 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관련 사진도 올립니다.

MIT 학생회관 내에 전시된 미술작품

MIT 학생회관 내에 전시된 미술작품입니다. 한국의 초가집 지붕모양과 재료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 같아서 급하게 카메라에 담아보았습니다.

하버드 대학본부 건물

하버드 대학본부 건물은 성조기와 함께 우크라이나 국기가 펄럭이고 있습니다. 전투기까지 줘서 대대적으로 우크라이나를 지원하자니 확전이 부담스럽고, 두고보자니 서방전체가 만만해보일 터이니 진퇴양난인 전쟁입니다. 뻔한 이야기지만, 먼저 스스로 방어할 힘을 가지는 수밖에 없겠죠. 그리고 가운데 작게 보이는 의자에 앉은 하버드 목사님 청동상을 가까이에서 보면, 오른쪽 구두 발끝 부분만 녹이 벗겨져 순금처럼 반짝입니다. 하버드 목사님의 구두를 만지면 하버드에 입학하게 된다는 속설이 있어 방문객들이 열심히 손가락으로 문질러 닦아준 덕분입니다. 1636년에 개교한 하버드 대학은 하버드 목사님이 돌아가시면서 기증한 토지와 개인 도서관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아직도 코로나가 완전종식되지 못했으니, 누구를 만나 인터뷰를 하거나 단체사진을 찍는 것이 서로에게 부담이 될 듯하여, 건물 내부에서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동료들의 사진을 싣지 못했음을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다음호에서 더 멋진 포토에세이를 기대하면서 저는 이만 물러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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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사진들....감사합니다. 힘든 시기에 먼 이국 땅에서도 건강 잘 지키시기를 바랍니다.

namjune(agricola) 2022-05-04

글이 참 재미있습니다^^ 작가 하셔도 되실거 같습니다 ^^

진승교(t4716) 2022-05-04

박사님 대단한 경험들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포토에세이를 보고 있으면 외국에 대한 동경이 커지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더 많이 연구하시고 더 많이 나눠주세요! 건강하세요~~

한국찬(gchan) 2022-05-04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KAIST 나석주 교수님 연구실 후배 한국찬입니다. 성함은 많이 들어 익숙했지만 한번도 뵌적이 없었는데 선배님의 예전글을 읽고 확신이들었습니다. 저도 20년전에 한국을 떠나 독일에서 생활하다 현재는 미국에 정착해서 살고 있습니다. 최근 졸업생들이 대화방을 열었는데 관심이 있으시면 연락주십시오.

손지훈(htlaz) 2022-05-05

저도 제대 후 런던, 학업과 도쿄/후쿠오카, 업무로 타지 생활하며 얻은 결론 중 하나는 기후는 우리나라가 최고라고
확신을 가졌었는데 프로방스 지역 기후가 세계 최고라니 마~이 궁금합니다.끝나지 않은 코로나에 그리고 타지 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 등에 건강 챙기시고요. 항상 글 잘 읽고 있습니다 맛나는 글로 귀하신 경험 공유해주셔서 항상 감사하고요.

전창훈입니다. 읽어주시고 댓글도 달아주신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박건호님, 사진을 좋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재주는 없지만 발로 뛰며 직접 찍어봤습니다. namjune님, 칭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책을 한 10권 정도 출판했기에 스스로는 작가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진승교님, 외국생활은 사진만큼 멋있지 않고 고독과 오래동안 싸워야 합니다만, 좋은 점은 주변 신경 덜 쓰고 자기인생에 충실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찬 후배님, gmail로 연락드렸습니다. 스펨에서도 찾아보시길... 손지훈님, 자주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제 한국 나가면 한 번 만나뵙길 바랍니다.

윤정선(jsyoon) 2022-05-09

두개의 대륙을 넘나드는 스케일 큰 포토에세이 잘봤어요. ^^
베란다에서 찍은 별이 정말 크네요.
어느 곳에 계시든 평안하고 건강하시길 축복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