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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아이 기르면서 일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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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솔한 내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선진, 후진, 동진들과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미국에서 어느덧 13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동부와 서부를 오가면서, 여러차례 일하는 장소를 바꾸었지만, 줄곧 눈에 대해 연구해 오고 있다. 또 한국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후진을 위한 충고부터 먼저 해 두려 한다. 미국 박사 후 연구를 나오는 것은 심사 숙고하자. 공부를 오래하지 말고, 직장을 얼른 잡으라고 말하고 싶다. 또, 연구라는 것이 미국이나 한국이나 이젠 별 차이 없고, 아무래도 언어 장벽이 있는지라, 미국에 나오면 고생이 크니, 연구자로서 얻는 것보다 잃어 버리는 시간이 될지도 모른다는 큰 각오로 나와야 한다 말해주고 싶다. 또, 내가 못해냈기에 후진들에게 해 주고 싶은 조언은, 무언가 어려움이 커도, 버텨내는 힘을 기르라고 쉽게 포기하거나, 사표같은 걸 쉽게 내지 말라 말하고 싶다. 살다 보면, 이런 저런 일들이 있지만, 매사 긍정적 마음도 잊지 말라고 하고 싶다. 또 너무 연구에만 매달리지 말고, 큰 눈과 큰 마음으로, 친구도 만들고,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라 말하고 싶다. 이제 막 미국에서 비자를 바꾸었다면, 직장이 좋을 때, 얼른 집을 사라고 말하고 싶다. 또  리큐르터들이 접근하여 좋은 조건을 걸어오면, 적극적으로 고려해 보라는 말도 해 두고 싶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조건을 제시하여도, 온 가족의 대이동은 불가능 한 경우가 많다. 배우자의 직장과 아이들 학교 문제가 함께 해결되어야 하니 말이다. 여기선, 가족들이 따로 산다거나, 저 멀리 코네티컷에서 플로리다로 직장을 나간다거나 하는 일들이 진짜로 벌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가 어리면 직장생활 하는 것 자체를 감지덕지 해야 할 상황이니, 무언가 큰 결정을 내리는 것은 역시나 쉬운 일이 아니다.  



사진 1. 2010년 미국 국립보건원 빌딩 10 안 카페 옆 벽. 신랑과 딸아이 


난 2010년 미국 국립보건원에서의 박사 후 연구를 시작으로, 미국에서 13년째 살고 있는 가정 주부이자 두 아이의 엄마이다. 미국 국립보건원 눈연구소에서 5년의 문화교류 J-비자가 끝나갈 무렵, 존 홉킨스 윌머 눈연구소에서 연락이 왔고, 2015년 3년짜리 직업 H-비자와 좋은 월급으로 나노메디슨으로 이동을 할 수 있었다. 그 당시에는 연구와 연구의 태도가 전부였던 시기였기에 무모하게 혹은 배은망덕하게 사표를 던졌던 것 같다. 아무튼 난 그곳에서, 3년을 버티지 못하고, 이동하였고, 2015년부터 2023년 길지 않은 8년동안 직장을 여러 번 바꾸었다. 그 나마 다행인 것은 줄곧 한 연구 분야에 있었다는 것이다. 이젠 어디를 가도 오래도록 머물고 싶은데, 미국에서 오랫동안 한 곳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듯 하다.  



사진 2. 2015년 홉킨스 윌머 눈 연구소 안쪽 정경. 건물 외벽과 안쪽 벽이 모두 유리


그럼 미국에서 경험한, 국가 연구소 국립보건원, 사립 대학교 연구소, 주립대학, 또 바이오 회사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지금 한국의 국립보건원이 어떤 구조로 변화 되어 있는지 상상하기 힘들지만, 2000년 내가 머물렀을 때는 불광동에 건물 한 개에 모든 연구실들이 함께 있었고, 거의 모든 부장급 헤드들이 Ph.D 소지자들이었다. 미국은M.D. M.D +Ph.D., Ph.D. 들의 헤드들이 골고루 섞여 큰 조직을 이루고, 조직 안에서도 서로 시너지를 내고 공동연구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연구 발표를 함께 하기도 한다. 내가 경험한 국립 눈 연구소와 존홉킨스 윌머 눈 연구소는 전세계에서 온 박사 후 연구원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미국에 잠시 머물러 좋은 논문을 내어 한국으로 돌아 갈 계획이라면, 또는 안식년으로 나온다고 한다면, 이런 연구소들을 선택하는 편이 좋을 듯하다. 하지만, 미국 대학생활을 보고 싶고, 학생들을 좋아한다면, 미국에 남고자 하는 마음이 조금 이라도 있다면, 대학교를 선택하라 조언한다. 



사진 3. 2017년 버지니아 커먼웰스 대학 - 약대 건물에서 밖을 내다보며 찍은 사진


내가 일했던, 버지니아 커먼웰스 약대와 의대 그리고 생물학과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결론부터 이야기 한다면, 난 이곳에서, 기초연구에서 비로소 응용연구, 임상연구에 눈을 뜨게 되었고, 대학교와 대학원 학생들 또 학부 학생들과 교류할 수 있었다. 내 자신이 영어로 무언가를 하는 것에 겁을 먹어 일반 생물 실험 강의와 소규모 팀 강의만 했지만, 대형 강의도 마음만 먹으면 할 기회들이 있었고, 교수님들께서 인터넷 강의를 도입 할 수 있도록, 학교에서 교육의 기회도 제공하고 있었다. 여러가지로 운이 좋아 여자 교수님들 모임, 생물학과 교수님들 모임, 교수님들 강의 트레이닝 모임을 함께 했다. 또, 버지니아 커먼웰스 대학교는 여름방학 때, 아이들 여름 캠프 프로그램이 있었고, 도서관, 수영장, 헬스장 이용도 쉬워 식구들 모두가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또 리치몬드는 예술을 사랑하는 문화 공간이 자연 공간과 어우러져 보기 좋은 동네였다. 박사 후 연구원들 숫자는 많지 않았고, 그 덕에 이 곳에서 약간의 호사를 누릴 수 있었던 것 같다. 이쯤 국립 보건원의 동료들과 동네에서 교류하던 워킹 맘들이, 나에게 한 소리 했다. 영주권자인데, 왜 학교에만 있냐고, 회사로 옮겨야 한다고…미국 친구들은 일단 대학을 마치면, 거의 모두 회사로 이동하는 듯하다. 회사를 다니면서, 필요에 의해 석사도 하고 박사도 하는 느낌이다. 


난 둘째를 기르면서 애창곡이 “고향의 봄”이 될 만큼 한국을 그리워 했고, 한국에 진달래, 코스모스 같은 꽃들도 많이 그리워 했었다. 용기를 내어, 식구들에게 한국에 가자고 했다. 결론은 5살 작은 아이를 데리고 1년 정도 한국에 다녀오는 것으로 결론이 내려졌다. 그동안 제일 하고 싶었던 연구 중 하나였던, 엑소좀 회사로 자리를 이동하였고, 코로나 팬대믹을 한국에서 보냈다. 한국은 그동안 일하는 엄마들을 위해서 정말 선진국이 되어 있었다. 손쉽게 아이 돌봄 서비스를 이용하여 아주머니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어, 춘천에서 서울까지 출퇴근 하였다. 내가 머물렀던 작은 회사는 벤쳐 투자금pre-series의 회사였지만, 복지도 분위기도 팀원들도, 그 당시 최고였다. 함께 일했던 대표님께서 퇴사를 하셨고, 나 또한 프로젝트 메니져로, 나의 프로젝트가  끝남과 동시에 미국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매릴랜드에서 캘리포니아로 대이동을 강행했다. 



사진 4. 2021년 식약청 방문차 그 앞에서 한컷



사진 5. 2021년. 안국역 전주식당 - 아침 일찍 서울에 임금님이 살던 궁궐들을 구경한다고 나왔는데,  운 좋게 전주식당에서 맛 있는 아침 식사를 했다. 전주식당 할머니가 오래 오래 사셔야 하는데.. 


태어나서 처음으로 계약을 하지도 않은 회사와 딜을 했다. 신랑도 함께 일 할 수 있다면 이동을 고려해 보겠다고. 회사는 흔쾌히 좋은 조건들을 주었고, 우리 식구들은 캘리포니아로 이동했다.회사는 투자금 series B 의 중국 회사였다. 식구들은 300명쯤. 중국 본사와의 미팅들은 미국 식구들을 챙겨주고 있다는 느낌과 함께 일을 해 나간다는 힘을 주었고, 잘 정비된 회사 분위기를 주었다. 그런데, 올해 가을 회계감사가 있었고, 미국 R&D 센터 클로징이 결정되었다. 물론 중국 본사 감축도 결정되었다. 회사는 series C를 받았지만, 많은 팀들이 해산되고 식구들이 떠나야했다. 회사가 문을 닫아 당장은 문제이나, 좋게 생각하면 뒤돌아 볼 시간과 성장의 기회이다. 늘 성장이란 것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나, 늘 배우고자 하는 성장점을 스스로 도려내지만 않는다면, 용수철처럼 뒤로 갔다가 앞으로 갔다 하면서 좀더 성장할 수도 있을 지 모른다.



사진 6. 올 여름 미국 세포 및 유전자 학회 참석 기념 사진. I love LA


잠시 쉬는 이 틈에, 일단 밀린 논문들을 읽고, 근처 회사 기계 데모 세미나에도 참석하고, 코센에 글도 쓰고, 전문 잡지 스페셜 에디터 초대에도 응하고, 논문 리뷰도 하고, 시작이 반이라고 시작만 하고 안 하던 네이버 블로그에 글도 올리고, 아직 못해본 것이 있다면, 동네에 lagoon트레일을 모두 돌아 보는 일이다. 이번주 신랑과 하려고 한다. 또 코쎄라에 공짜 수업도 하나 듣고 싶어 신청을 했다. 좀더 시간이 허락 되다면, international project manager자격증을 받아야지 하는 마음도 있다. 프로젝트 리더, 프로젝트 메니져로 일을 하면서 언제고 자격증을 받아야지 하는 마음을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었다. 투자금  pre-series의 회사와 series B 회사, clinical stage의 회사와 IND filing 을 위해  manufacturing process 부터 만들어야 하는 회사. 회사 생활이라는 것이 늘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벌써 회사원이 되어 버린 것인지, 회사를 떠난 나의 작은 존재감이 느껴진다. 어젠 필라델피아에 있는 회사 소속의 리큐르터와 미팅이 있었다. 기회가 있다면, 꼭 가보고 싶은 회사였는데, 역시나 이번 년도에는 가족과의 약속 때문에, 캘리를 떠나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 회사와, 좋은 조건을 딜하려면 아무래도 대이동을 해야 하거나, 일하고 있는 상태에서 사표를 던지고 다른 직장으로 이동 할 때, 좋은 조건을 요구할 수 있는 듯하다. 이곳 샌디에고 일하는 엄마들이 하는 소리가 있다. LA 쯤은 출퇴근 할 수 있다라든가,  목숨 줄 길게 한 직장에서 일 하려면, 승진을 하면 안 된다거나. 미국도 큰 돈 받고 일할 때는 위험 부담이 크고, 큰 회사들도 컨트랙을 많이 이용한다. 작은 돈을 받아도, 회사의 혜택이 많은 곳이 잘 사는 비결일 지 모른다. 결국은 학교와 병원 연구소에 회귀해야 하는지 모른다. 어려운 시기지만, 아직은 무덤덤하게 나와 가족의 성장을 가슴 설렘으로 무한 긍정의 마음으로 지켜보고자 한다.


진승교(t4716) 2023-11-08

좋은글 감사합니다!

윤정선(jsyoon) 2023-11-09

와~ 진솔한 글이네요. 생생한 경험담을 담담하게 적어주셔서 글도 재미납니다. 무엇보다 비슷한 고민을 하는 분들, 후배들에게 유익할거 같습니다.

김수영 박사님, 에세이 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일하는 여성으로 또 두 아이의 엄마로써 가족을 생각하여 쉽게 직장을 결정하기 어려운 점에 많이 공감했습니다. 그리고 리치몬드에 있는 버지니아 커먼웰스는 저도 어학연수로 미국에 갔을때 잠시 다녀봤던 곳이에요. :) VCU 사진을 보며 너무 반가웠습니다. 박사님 앞으로 어떤 길을 가실지 정말 기대가 되고요, 저도 함께 응원하겠습니다!!

김수영(gungil) 2023-11-10

이렇게 진솔한 이야기를 쓸수 있도록 이 자리를 마련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응원 받았으니, 힘을 내야죠!

경험에서 우러나온 현실적인 조언들 많이 와 닿습니다~ 미국이 선진국 이긴해도 타지에서 워킹맘으로 사는건 어려운 일 인것 같네요. 한국도 제도는 많이 개선되었지만 출산율이 나아지지 않는 건..아직 현실적인 어려움은 많아 보여요..무한 긍정의 기운 받고 갑니다~ 더불어 좋은 소식 있으시길 기원합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저도 본 받을점이 정말 많은것 같아요 좋은 글 잘봤습니다.

좋은 글 공유 감사합니다. 그간의 고단함이 느껴지네요. 화이팅!

이철연(ehif45) 2023-11-17

진솔한 글 잘 보았습니다. 타지에서 고생이 많으십니다. 그래도 가족이 함께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거에요! 화이팅입니다 ^^

윤지숙(jigel8) 2023-11-28

한국에서 박사하면서도 애 하나 키우기도 힘겨웠는데 두명이나 낳았다니 대단하네요.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