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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기 좋은 엑상프로방스  

엑상프로방스(Aix-en-Provence) 는 파리에서 남쪽으로 800km 떨어져 있는 인구 14만5천명의 작은 도시이며 물의 도시, 예술의 도시라고 불리고 있다. 프로방스라는 말이 우리에게 익숙하기 때문에 처음엔 줄인 명칭이 “엑상”인 줄 알았는데, 여기서는 프로방스 지방의 “엑스”라는 의미이므로 “엑스”라고 부른다. 마르세유 (Marseille), 니스 (Nice), 칸느 (Cannes), 아를 (Arles), 등 유명한 관광휴양도시가 있는 프로방스는 많은 사람들이 휴가지로 찾아 오기도 하지만 유럽인들이 살고 싶어하는, 돈이 있으면 이사를 오거나 별장을 하나 장만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 중에서도 엑스는 살기 좋은 곳으로 유명한데, 그럼 왜 그리고 어떤 사람이 살기 좋은 곳이란 말인가?

 


 

처음엔 엑스가 물의 도시라고 하길래 사방을 둘러봐도 바다를 접하는 것도 아니고 큰 호수나 큰 강이 인접해 있는 것도 아니고 비가 많이 오거나 장마가 지는 곳도 아닌데 왜 물의 도시라고 하는 지 궁금해서 관광안내원에게 물어 봤더니, 분수가 많아서 물의 도시라고 부른다고 했다. 물의 도시라고 까지 하기에는 납득하기 어렵지만, 소도시 엑스에는 약40개의 각양각색의 공공분수가 있고, 15세기부터 지하수를 이용한 분수가 개발되었고, 미라보거리 (Cours Mirabeau)에 있는 온수의 분수(Fontaine d’eau chaude)의 물은 미지근해서 겨울에도 이끼가 파랗게 자라고 있고, 그리스-로마 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는 온천도 있기는 하지만 물의 도시라고 하기는 과장이 심하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Aix”라는 어원에 물이라는 의미가 있다고 하며, 지하수가 풍부하고, 태양이 작열하고 풀들이 말라 죽는 여름에도 물 걱정을 하지 않고 정원수, 가로수, 그리고 작물에도 물을 뿌리며, 분수에서는 밤에도 물이 뿜어져 나온다. 또한, 홍수라는 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장마라는 것도 없다. 프랑스 남부에는 고대 로마시절부터 수로를 개발하여 물을 활용했는데 엑스에서도 오래된 수로의 흔적을 볼 수 있다. 또한 엑스의 북쪽에 있는 있는 La Durance라는 강은 알프스 산의 자락으로부터 내려오는데 이 강을 따라 대형 수로를 개발하여 수력발전도 하고 다목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엑스는 세잔느(Paul C?zanne)의 도시라고도 한다. 세잔느가 태어나 그림을 그린 곳이기는 하지만 엑스의 관광에는 세잔느를 빼고 나면 특별한 게 없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세잔느를 과대포장하고 있다. 세잔느의 흔적을 찾아 관광객이 유적을 걸어서 방문할 수 있게 길바닥에 놋쇠의 상징표시를 박아두었다. 그가 태어난 곳, 외할머니집, 엄마가 살았던 아파트, 누이의 집, 그가 다니던 학교, 교회, 커피집, 아버지의 모자가게 및 은행, 친구의 집 등 시시콜콜한 것들 얘기를 엮어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있고, 그가 늦은 오후에 즐겨 다녀던 Deux Gar?ons의 커피값은 다른 곳보다는 비쌀 정도로 유명하기도하며 유명인 들이 방문한 흔적을 계단복도에 그림으로 그려 놓았다. 엑스의 동쪽 15km 정도에 있는 쌩빅토와르 산(Montagne Sainte Victoire)은 세잔느가 즐겨 그리기도 했지만 특징이 있는 산이다. 남쪽은 마치 채석장처럼 깎아 내린 바위산이고 북쪽 뒷면은 보통의 나무들이 많은 육질의 산인데, 계절마다, 날씨마다, 보는 시점마다,보는 각도에 따라 달리 보이는 산이고, 등산하기에도 괜찮은 산이기도 하고, 여러 화가가 화폭에 담기를 좋아했던 산이기도 하다.


 

쌩빅토와르 산 뒤편에는 피카소(Pablo Ruiz Picasso)의 무덤과, 그와 함께 살았던 7여인 중 72세에 만난 마지막 여인 자클린 로크(Jacqueline Roque)의 무덤이 있는 보브나흐그 성(Le ch?teau de Vauvenargues)이 있기는 하지만, 피카소가 작품활동은 많이 한 곳은 아니다.

 

파리에서 태어난 소설가 에밀졸라는 어린 시절을 엑스에서 보내며 세잔느와 친하게 지내기도 했다고 하지만, 그의 흔적은 상대적으로 너무 적은 편이다. 엑스에서 태어난 화가 그하네(Fran?ois Marius Granet, 1777 ?1849) 의 이름을 딴Mus?e Granet에는 세잔느의 그림 8점을 포함한 많은 그림과 조각품이 있다. 또한 자연사 박물관(Mus?e d'Histoire Naturelle), 양탄자박물관 (Mus?e des Tapisseries), 도기박물관 (Paul Arbaud Earthenware Museum) 등 박물관이 많이 있고, 예술극장(th??tre), 도서관 등 인구 13.5만의 소도시인 것을 감안하면 문화재가 상당히 많은 편이기는 하지만 문화예술의 나라인 프랑스에서 예술의 도시라고 하기에는 뻥이 너무 센 것 같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예술의 도시라는 걸 실감하게 된다.


매년 초가을에는 문화유산의 날(Journ?es du Patrimoine)로 주말에 박물관, 문화재, 시청 등을 무료로 개방하기도 하고, 화가들은 아뜰리에를 공개하기도 하며, 여름에는 거리음악제 (Musique dans la rue)가 열리는데 대중음악과 클래식음악을 시내 광장/골목/도로변 등에 시간을 정하여 공연하기도 하며, 주말에는 지속적으로 다양한 페스티벌을 개최하여 관광객을 유치하고 지역주민을 흥겹게 해주고 있다. 로똥드 (rotonde)라고 불리는 분수교차로와 1650년대에 마차도로였던 미라보거리(Cours Mirabeaux)는 엑스의 심장이자 축제의 거리이기도 하다. 엑스의 중심부인 구도심은 재건축/재개발하지 않고 낡은 건물을 내부만 수리하여 그대로 사용하고 있고, 벽은 허물어지고 햇볕을 차단하는 볼레(volet), 창틀 등의 페인트는 벗겨져 흉하기도 하지만, 유럽의 전형적인 좁은 골목에는 간판으로는 인식하기 어려운 구멍가게 같은 명품가게도 즐비하고 있고 걸어 다니기가 곤란할 정도로 행인이 많은 경우가 허다하다.

 

구도심을 제외하고는 새로 짓는 건물도 다수 있지만 고층건물은 허가를 하지 않고, 시청에서 예술성을 평가한 후에 허가하는지? 유명한 건축가들이 설계한 독특한 건물이 다양하게 많이 있다. 주민들이 백화점 진입을 반대하고 있다는 소문도 있을 만큼 주민들은 자연친화적인 것을 좋아하는 것 같고. 엑스의 사람들은 대부분 걸어서 다니고 식사 때가 되면 바게트 빵을 옆구리에 차고 뜯어 먹으면서 여유롭게 걸어가는 사람을 흔히 볼 수 있다.

엑스 주변의 메종(주택) 하나하나는 단순하고 황금빛/황토색깔의 무미건조한 것 같기도 하지만, 마을들은 마치 한 사람이 자연형상을 그대로 활용하며 설계한 것처럼 아름답기 그지 없다. 조경을 인위적으로 많이 하지 않는 것도 이 사람들의 자연사랑인 것 같다. 시간이 지날수록 친근감이 생기고 아름다워 보이는 걸 보면 예술을 이해하는 만큼 보인다는 게 맞을 것 같다.


프로방스의 특산품은 쌍통(santons) 이라는 점토로 만든 전통인형과 올리브유, 칼리송 (Calison)이라는 말랑하고 꿀처럼 달콤한 아몬드과자, 그리고 보르도와 부르고뉴 만큼은 유명하지도 비싸지도 않지만 건조하고 햇살이 좋기 때문에 포도주도 유명하며, 특히 로제(ros?)와인이 많이 생산되고 있고, 7월에는 라벤다가 만발하는 들판도 관광객을 감탄시키며, 라벤다 향기를 이용한 향수, 화장품, 라벤다 꿀 그리고 마르세이유 천연비누도 유명한 편이다. 건조하기 때문에 병충해가 적은지도 모르지만 농약을 살포하는 것을 보기는 흔치 않다.

 

 

처음 출근은 ITER에서 보내준 택시를 타고 갔더니, 엑스에서 동북방향으로 50km떨어진 까다라쉬(Cadarache ? 1959년 원자력연구를 위해 지정한 곳)라는 허허벌판에 이중 철조망의 군부대 같은 곳에 내려준다. 원자력시설에 익숙한데도 삼엄함을 느끼며 경비실에서 갔더니 나의 정착을 담당할 젊은 여인이 기다리고 있어 다소 안심이 되기는 했다. 군부대 같은 곳은CEA (프랑스원자력연구소)이고 그 옆에 ITER를 건설하고 있었지만, 보이는 건 이중철조망과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숲과 그 속에 허름하고 낮은 건물 몇 개만 보였다. 거주지와는 너무 동떨어져 있고 생소한 분야에서 하루하루를 지낸다는 건 훈련소 생활만큼이나 힘들기도 하였다. 주소지 확인, 수표 등이 없으면 휴대전화 신청도 할 수 없는데, 은행계좌를 개설했는데도 수표는 몇 주를 기다려야만 하고, 시골도시 월세가 왜이리 비싼지? (75평방미터에 월 250만원) 북미와는 달리 돈 많이 주고도 월세 구하는 것도 쉽지가 않고, 한달 반이 걸려 아파트에 입주를 하고 이삿짐을 받았지만, 인터넷 및 케이블 TV를 개통하는데 또 2-3주의 인내가 필요했는데 이렇게 적응하기 어렵고 모든 행정업무가 느리고 답답한데, 은행, 우체국, 가게, 음식점, 어딜 가나 고객은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는데,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은 상관하지도 않고 볼키스(bise) 도 3번을 하며 수선을 떨어도 고객은 웃으며 기다려야 하며, 점심시간에는 많은 가게들이 문을 닫는데 물건을 보고 있어도 나가달라고 요청할 정도이니 빨리빨리 문화에 젖어 있는 한국인이 정착하려면 신경안정제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불어를 모르니 읽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특급장애인으로 현지 적응하기가 너무 어려운데 먼저 정착했던 사람은 그래도 필자는 빨리 적응편이라고 약을 올린다. 초기에는 이게 무슨 꿈에 그리던 국제기구 근무이고 살기 좋은 프로방스란 말인가? 하며 한숨을 수없이 쉬기도 했다.


엑스는 프랑스의 남쪽이지만 백두산보다 위도가 높은 곳이라 겨울엔 낮이 더 짧지만, 평균기온은 1월에는 5-6도씨, 7월에는 21.9도씨인 온화한 곳이며 차가운 북풍, 태풍 등이 없는 곳이기도 하다. 다만 시속 90km까지 불기도 한다는 미스터랄(Mistral)이라는 바람이 시도 때도 없이 불어오기는 하지만, 이 바람이 날씨를 맑게 하고 먼지를 쓸어가는 효자라고도 한다. 위키피디아에서는 연중 비가 가장 많이 온 기록이 91일이라고 하며, 엑스의 관광안내책자에서도 300일 이상 따사로운 햇살을 즐길 수 있다고 한다.

 

여름에는 고흐의 그림에서처럼 태양이 이글거리고 작열하는 햇살은 피부를 따갑게 하지만 양산을 쓰는 사람이 거의 없다. 자외선을 두려워하는 한국인은 이해하기 어렵고, 무슬림교인도 아닌데 전면마스크까지 하고 산책을 하는 한국여인은 더 이해할 수 없을 테지만, 프로방스 사람들은 썬크림을 바르긴 하지만 보트 위에서도 벌렁 벗고 일광욕을 즐기며, 피부가 검은 건 결코 창피한 일이 아닌 것 같다. 겨울에도 신종감기가 유행할 때도 마스크를 쓰는 사람은 구경할 수가 없다.


프랑스가 그렇지만 엑스는 더욱 개와 애들의 천국이기도 하다. 어린애들은 차 없는 길거리가 많아 다니기도 편하고, 스포츠/레저 비용이 엄청 저렴하여 의욕만 있으면 골프, 승마, 악기연주 등을 배울 수 있고, 2시간만 가면 알프스에 스키 타러 갈 수 있고, 2월에는 스키방학이 따로 있어 기본적으로 일주일씩은 다녀 와야 할 정도이다. 30분만 가면 파도가 거의 없는 지중해에서 수영, 요트를 즐길 수도 있다. 자식 셋만 되면 국가 지원금이 많아 월급쟁이 보다 낫다는 말도 있다.


 

여기서도 골프가 부자스포츠라고 하지만 모두가 자연친화적인 퍼블릭 골프장이고 그늘집도, 캐디도, 목욕탕도 없어 불편한 점도 있지만, 실제 비용은 상당히 저렴하기도 하고 예약이 쉽고, 코스에서 늦게 플레이 한다고 재촉하는 경우도 거의 없고, 복장검사를 하여 아마추어가 모자 쓰지 않았다고 출입을 제한하는 경우는 더욱 없다. 따사로운 햇살을 즐기기 때문에 모자를 쓰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300만원내지 700만원을 내고 연간회원으로 가입하면 비가 많이 오거나 미스트랄이 불거나 골프장이 문을 닫는 날을 제외하면 330일 정도는 골프를 즐길 수도 있다. 주중에는 많은 은퇴자들이 강아지와 함께 골프를 즐기기도 한다. 어린이들은 1/5 또는 1/10만 내면 회원가입이 가능하다.

 

얼마 전 연금제도 변경으로 데모를 했지만, 은퇴 후에도 일하고 싶어하는 우리와는 너무나 다른 프랑스인과 같은 문화를 즐기기는 쉽지가 않다. 주 35시간 근무하면서 연간휴가가 50일 정도 되는데도 더 놀고 싶어하는 이 사람들, 천혜의 스키장과 태풍도 없는 지중해를 포함해서 3면이 바다로 둘러 쌓여 있고, 과장인지 모르지만 유럽이 먹고 살수도 있다는 광활한 농지가 놀고 있는 농업국가에서 뭐가 부족해서 지구 반대편에 있는 규장각까지 약탈하면서 침략을 했는지 착한 한민족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살기 좋은 곳이다. 수퍼에 가면 소주만큼 저렴한 포도주를 살 수도 있고, 점심 때는 연구소 식당에서도 포도주를 팔고 마시는 사람이 다수 있다. 한 때 포도주 및 올리브오일 때문에 남부유럽인이 수명이 길다는 얘기도 있었지만, 낙천적이고 인생을 즐기기 때문이라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국의 중산층이란 중형차를 소요하고 40평정도의 아파트를 보유하고 해외여행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 했는데, 프랑스의 중산층은 악기 등 취미생활을 하면서 친구를 초대해서 대접할 수 있는 요리를 할 수 있어야 하고, 사회봉사를 하는 사람들이라고 할 정도로 개념의 차이가 있다.

 

식사시간이 되면 바게트를 옆구리에 차고 여유롭게 걸어가는 사람들,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지만 끝없이 수다를 떨고 있는 사람들, 야외 카페에 앉아 멍하니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는 사람, 프로방스에서는 빨리라는 말을 들어보기 어렵고, 뛰어 다니거나, 인상을 쓰면서 성질을 부리는 사람을 볼 수가 없다. 겨울에도 카페/레스토랑의 실내는 텅텅 비어있고, 난로를 피우는 천막을 좋아하는 것을 보면 프로방스인은 구속을 싫어하는 것 같다. 룸싸롱과 같은 접대문화를 찾아 볼 수도 없는 것을 보면 얼마나 자유롭고 즐길게 많은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산이 거의 필요 없을 정도로 기후 탓을 할 수도 없는 프로방스, 일년 내내 관광객이 몰려오는 걸 보면 구경하거나 즐기기에도 좋은 곳인 것 같지만, 근처에 마르세이유와 같은 대도시도 있고, 가까이 니스, 모나코, 아를, 아비뇽 등 휴양지와 문화재의 도시가 있으며, 원자력연구소 같은 대규모 직장도 있고, 교통도 편리하고 치안도 좋은 곳이라, 열심히 일한 사람들, 여유를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 편히 노후를 보낼 수 있는 곳이 이곳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도전~!!!힌트 고고!

  • 좋아요

강박사 코센에서 자네를 보게 될줄이야!
물의 도시, 예술의 도시 엑상프로방스의 이모 저모를
상세하게 소개하여 으슴프레 들어본 것 같은 도시를 복습하게 되었네,
고맙네, 건강하게 잘 지내고 계시제~
하루 빨리 보고 싶네.
아무쪼록 제수씨와 건강하게 잘 지내시고 귀국하면 꼭 봄세!

우와~ 대단한 포스팅입니다.^^
프로방스에 대해 정말 많은걸 알게 된거 같아요.
결론은 프로방스는 좋다네요. 꼭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에요. 단기 여행말고 한달정도 느긋하게 즐기고 싶네요.

프로방스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갑니다. 아릅답고 살기 좋은 프로방스.....고흐를 비롯한 많은 예술가들이 열정을 불사른 곳.... 한번 가보고 싶네요

프로방스까지는 못가고 아를, 칸, 니스, 모나코까지만 갔었는데, 프랑스 남부지방의 여유로움은 참 좋더라구요. 이 글을 보니 그 때의 추억이 생각납니다.